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5)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25화(126/668)
〈 125화 〉 5장. 도지환의 야심만만 프로젝트 (1)
* * *
“후.”
입을 터느라 고생을 했다.
이제 나머지는 백설희가 혼란에 빠져 도지환을 상대로 좋게 봐주기를 기다리는 것뿐.
‘이제 좀 쉴 수 있겠네.’
적어도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게 다행이다.
보통 불륜이라는 게, 거짓말을 거짓말로 덮다가 파멸하는 거거든요.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명사의 강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완전 폭망하는 겁니다. 거짓이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여러분의 상대방은 그렇게 바보가 아녜요. 여러분만큼이나 똑똑하고 눈치 빠른데, 당신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니까 자신을 속이는 겁니다.
사랑을 하니까 자신을 속이고, 자신이 잘못 안 거라고 착각을 하는 것.
즉, 사랑은 S급 히어로의 이성적 판단조차 마비시킬 수 있다.
그러니 휴식을
띠링.
태극워치가 울렸다.
누군가 했더니, 펜션 장 사장이었다.
“여보세요?”
[예, 도 과장님. 지금 ‘아내분’ 올라갑니다.]“……!”
나는 침대에서 급히 튀어 오르듯 몸을 일으켰다.
“아니, 지금요?”
[원래 이 시간에 도착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아, 그, 그런데.”
유미르의 일정은 그랬다.
단지 백설희가 이렇게 아침부터 바다를 달려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 일단 올려보내 주세요.”
[…흐음.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이겨내시길.]장 사장의 격려가 왠지 모르게 격려답지 않았지만, 나는 바로 침대에서 내려와 아래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저기요.”
“아, 예! 설희 씨.”
이런 젠장.
“제가 생각을 해봤거든요?”
“예, 예.”
“…왜 그렇게 식은땀을 흘려요?”
백설희는 내가 당황한 걸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게, 그런 이야기를 해놓고 내가 이렇게 당황하고 있으니 뭔가 의심을 할 수밖에.
“뭐 아내한테서 이야기라도 들어왔어요? 방금 백설희 만났다고, 그런 이야기 했어요?”
“…그런 건 아니고.”
이렇게 된 이상.
“유미르 학생이 도착했습니다.”
“……헤에에.”
백설희는 반쯤 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곧 아래에서 문이 덜커덩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왜 이렇게 경쾌한지.
이곳이 울릉도인 만큼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올 텐데, 그 현관에서의 하이힐 굽소리가 천둥과도 같이 울렸다.
“저기, 설희 씨.”
“아, 괜찮아요. 유미르 학생, 아카데미 학부생이잖아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게.”
올라온다.
계단을 따라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올라오고, 하필이면 그게 내가 있는 침실이다.
“설희 씨.”
“왜요?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요?”
“유미르 학생은 아직 제 문제에 관해서”
“썬쌩님ㅡㅡ! 미르왔어요오ㅡㅡㅡ!”
젠장.
동네방네, 울릉도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크게 인사하며 침실로 오는 유미르에 나는 평정을 가장했다.
진정해라, 도지환.
어차피 이런 일은 결사에서 네 명의 간부를 상대하면서 많이 겪어본 일이 아닌가.
S급 넷을 상대로 하던 게 S+급 둘, 아니 EX급 2명을 상대하는 거로 변했을 뿐이다.
임기응변.
지금까지 나를 이곳까지 오게 해준 배경이 아닌가.
그리고 하나를 더 믿어보자면, 유미르의 눈치와 사전지식.
백설희는 모르는, 유미르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이 난관을 극복한다.
도지환이 도지/환이 되기 전에.
“어서 와, 유미르 학생.”
“……스노우화이트?”
“맞아요. 안녕하세요?”
유미르는 백설희를 보자마자 멈칫했고, 백설희는 대수롭지 않게 유미르를 향해 인사하더니
“지환 씨. 일단 아까 하던 이야기나 계속할까요?”
내가 조금 전까지 누워있던 침대의 끝에 엉덩이를 붙이며 앉았다.
유미르는 그 모습을 보고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고, 나는 왠지 모르게 방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은, 아니 습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백설희는 얼음 속성이고.
유미르는 백금태양이다.
겨울과 여름이 만나게 된다면, 차가운 기단과 따뜻한 기단이 만나게 되면 그 가운데에는 전선이 생기기 마련.
장마가 오리라.
왠지 모르게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나는 유미르의 뒤를 가리켰다.
“유미르 학생. 그 짐은 뭐야?”
“아,. 이거요?”
유미르는 제법 커다란 캐리어를 손으로 두드리더니, 백설희를 바라보지도 않고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오늘 자고 가기로 했잖아요. 그래서 가져왔어요.”
“…생각보다 캐리어가 더 큰데?”
“이것저것, 다양한 게 들어있으니까요.”
“지환 씨?”
바로 백설희가 나를 불렀다.
“아까 저한테 했던 질문에 대한 답, 지금 들어주셔야겠는데.”
끝에 말이 짧아진 건 분명 착각이 아니리라.
“알겠습니다, 설희 씨. 유미르 학생? 일단 짐부터 방에 풀고….”
“방, 여기잖아요?”
유미르는 캐리어를 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백설희의 눈치를 살짝 한 번 보더니, 곧 당당히 캐리어를 옷장 앞으로 밀었다.
“여기 제 방인데요.”
“…유미르 학생?”
“백설희 씨가 왜 여기에 계신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 방은 제 방이라서요.”
유미르는 유미르대로 태연자약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 펜션에 방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내가 지금 머무는 이곳을 자기 방이라고 하겠는가.
아직 방도 정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선생님. 원래 백설희 씨랑 이 시간에 만나기로 했어요? 저랑 약속 잡으셨던 거 아니셨나?”
“일단은 그렇지.”
일단은.
“원래는 유미르 학생 ‘상담’ 시간이었는데, 백설희 씨가 먼저 와서 상담하게 됐어. 둘이 처음 만나는 사이지? 이쪽은 백설희 씨. 스노우화이트. 부산에서 인연이 생겨서 나랑 SNS 주고받는 지인이야. 이쪽은”
“유미르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네. 반가워요. 유미르 학생.”
내가 소개해주는 것도 끊어버리면서 유미르는 당당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E급이 S급을 상대로 악수를 신청한다?
서양인이라고는 해도, 한국에서 저런 짓을 저지르는 건 실례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게 대수랴.
“와. 저 S급 히어로 분이랑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나는 거 처음이에요. 팬이에요, 정말.”
“고마워요.”
안 고맙잖아.
그리고 팬도 아니잖아.
“지난번에 강원도에서 싸우신 거 정말 멋졌어요. 도깨비랑 싸우는 게 거의 춤을 추는 것 같더라고요.”
유미르는 지금 실례인 척, 약간은 소심한 백설희보다 대범하고 담대하게 행동하며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다.
“혹시 진짜예요? 도깨비랑 막 그렇고 그런 거.”
“전혀 아닙니다. 유미르 학생은…생각보다 말에 거침이 없네요.”
싸가지없게 말하지 마라.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거든요. 불쾌하신 건 아니죠? 어머, 죄송해요. 다른 사람들 다 그런 이야기를 하길래.”
겨우 그거 가지고 화내는 거냐.
“도 쌤. 백설희 씨랑 카운슬링 계속하시던 거예요? 음, 그, 조금 당황스러운데. 이 시간에 제가 하는 줄 알고 있었거든요. 예약도 잡혔고.”
유미르는 뻔뻔하게 나왔다.
“아무리 S급이라고 하셔도, 순서는 지켜주셨으면 하는데.”
마치 은행에서 어플로 시간 예약했는데 옆 창구에서 튀어나온 할머니가 냅다 ‘자리 비어있으니까 이야기할 수 있잖아’라면서 창구 앞에 앉아버린 걸 두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미안하네요. 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라서.”
미안한 기색은 하나도 없으면서 양해를 구하는 솜씨가 역시 히어로답다.
이걸 두고 히어로답다라고 말하는 것도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일단 나는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유미르 학생. 설희 씨와는 내 ‘아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내가 급발진하는 게 답이다.
“…선생님 아내 분이요?”
“응. 내 아내. 지금 임신이 안 되는 거에 관해서.”
“…….”
유미르가 침묵하며 나를 바라본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느냐는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린 채 백설희와 나를 번갈아 보기를 반복했다.
“…흐응.”
나는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유미르가 제발 알아서 눈치를 채주기를.
“뭐, 거기까지 말씀해주셨다면 저도 뭐라고 하지는 않을게요.”
유미르의 목소리가 가벼워졌다.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하셨다는 건, 백설희 씨가 그만큼 믿을만하면서도…동시에 그걸 할 대상이라는 거니까.”
유미르는 마치 ‘다 알고 이해한다는 것처럼’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오늘은 셋이서 하는 건가요?”
“잠, 뭐?”
백설희가 당황했다.
마치 서양인의 인싸력에 당황한 동양인 유학생처럼, 얼음장처럼 굳어있던 백설희의 얼굴이 당황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상담이요, 상담. 물론 보통 상담은 아니지만.”
유미르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눈빛만 읽어보면.
내가 지금 당신 살려주는 거니까, 나중에 크게 한턱 쏴라.
역시.
유미르는 주인공이 맞다.
“휴. 전 또. 백설희 씨가 선생님 유부남에 아이 문제까지 있는 걸 모른 채, 선생님께 다가오는 줄 알았잖아요.”
“저, 저기?”
“오늘 처음 들으신 거예요? 괜찮아요. 조금 생각이 깊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선생님 보세요. 지금 이렇게 지내려고 노력하시고 있잖아요.”
자신이 살짝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설령 곤경에 처한 존재가 빌런이라고 해도 도와주는 게 히어로며, 주인공이다.
“백설희 씨께서 저랑 같이 선생님 사정을 도와주신다면, 저도 백설희 씨를 그렇게 막 싫어하고 그럴 이유는 없죠.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조금 전까지는 경계하고 날 선 목소리였다가, 순식간에 밝은 목소리로 백설희를 대하는 유미르를 보라.
“앞으로 도지환 선생님이랑 저랑, 같이 서로 고민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그런 고민들.”
마치 비밀을 공유하는 클럽에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것처럼.
“아 참. 그러면 선생님.”
유미르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향해 다가와 반달처럼 휘어진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백설희 씨한테 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나요?”
“아직.”
“그렇구나. 그러면.”
유미르는 잠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더니, 손짓으로 나를 향해 뭔가 신호를 보냈다.
약간.
내가, 지금, 당신 살려주는 거다.
라고 말하는 듯한.
“그럼 저도 제 비밀을 백설희 씨에게 말씀드려야겠네요.”
“비밀…?”
“백설희 씨?”
유미르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저는 백금태양이에요.”
백설희는 혼란에 빠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