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29)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29화(130/668)
〈 129화 〉 5장. 도지환의 야심만만 프로젝트 (5)
* * *
그 시각.
펜트하우스와도 같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방의 안, 족히 10명은 함께 누워도 공간이 남을 것 같은 넓은 침대에 누워있던 금발 소녀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하암.”
소녀의 체구는 거의 140cm에 이를 만큼 작았다.
작은 체구와 어울리지 않게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은 어엿한 성인보다도 더 자극적인 옷이었지만, 드넓은 방 안에는 소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백설희. 유미르.”
소녀가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하자, 천장에 홀로그램이 반짝이며 두 사람의 모습이 단숨에 드러났다.
홀로그램 화면에는 둘에 관한 온갖 자료들이 나타났다.
글자, 사진, 동영상, 심지어는 각종 이능력자 연구기관에서 뽑아낸 보고서까지 한 장 한 장 넘어가고 있었다.
“둘 다 괜찮겠네. 한 명은 빙결계 S, 다른 한 명은 악마의 이능력을 강탈하는 EX급.”
소녀는 잠시 손으로 머리를 쓸었다.
“제발 와달라고 빌어야 할 판인 인재들인데, 이렇게 쉽게 우리 편이 된다면 말 다 했지.”
그러자 소녀의 손이 지나간 곳이 잠깐 검은색으로 물들었고, 소녀가 손을 떼어내자 다시 금발로 변했다.
“하암.”
[회장님?]화면의 아래에 반짝이는 팝업창이 하나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궁기?”
[방금 회의 중에 받으신 전화, 도 과장입니까?]“네, 맞아요. 당신도 옆에서 들어서 알겠지만, 도 과장님이 작전 중에 이런저런 변명을 하다가 꼬여서 저한테 전화한 것 같더라고요.”
[그걸 그 한마디만 듣고 아신 겁니까…?]“보통 저한테까지 전화할 상황이면 맞춰달라고 전화하는 거니까요.”
소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대단하지 않아요? 세종섬 아카데미에 잠입한 지 고작 두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이렇게 S급 히어로 둘을 유혹하다니. 역시 도 과장님이에요.”
[괜히 히어로들에게 뒤가 밟히는 게 아닐지.]“밟히면 오히려 도 과장님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보일 사람이잖아요. 수단과 방법을 전부 동원해서 상대를 설득하고 결사의 이득으로 만드는 게 도깨비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기에 당사자시면서.”
[그건 회장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그렇죠. 아니까 지금 이렇게 여유로운 거 아녜요.”
소녀는 연신 싱글벙글 웃었지만, 궁기는 불안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만약 결사를 배신하고 히어로들에게 붙는다면]“궁기.”
소녀는 웃던 얼굴 그대로 목소리를 낮췄다.
“도깨비는 배신 안 해.”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은 발언을.]“괜찮아요. 당신으로서는 갑자기 6개월 만에 굴러들어온 신입이 이 정도로 커버렸으니, 이상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겠죠.”
[아니, 그게 아니라.]“아니면 질투하는 건가요? 백설희와 유미르, 두 S급을?”
[…저희만으로 충분히 도깨비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글쎄.”
궁기의 말에 소녀는 다리를 꼬며 고개를 단호히 가로저었다.
“크리스마스 이후 신년 연휴까지, 다들 그렇게 박살이 났으면서 아직도 모르겠어요? 도깨비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 다섯 명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요.”
[하지만 그래도 저희가 노력하면…!]“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어요. 도깨비 상대로 5:1을 해도 밀리는데, 1:1을 확실하게 이길 수 있어요?”
“못 이겨요. 장담해요. 애초에 그것 하나만큼은 EX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니 전 세계 최강인걸요. 얼마 전에 직접 확인도 했으면서.”
소녀의 말에 궁기는 헛기침을 흘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질투하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다행인 줄 알아요. 우연이지만 당신 일에 도깨비가 지원 나간 거. 더군다나 밤일보다 더 좋은 합일까지 했으면서.”
[회, 회장님!!]궁기는 빽 소리를 질렀다.
[아, 죄, 죄송합니다. 언성을 높일 처지가 아닌데…!]“아녜요, 아녜요. 당신들이랑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 매번 신박해서 재미있으니까. 언제나 저를 잡아먹으려고 벼르고만 있던 처녀 귀신들이 이렇게 머리에 비녀 꽂은 아낙네처럼 구는 게 참 귀여우니까.”
[으읏…!]궁기는 머리카락만큼이나 얼굴이 새빨개졌고, 소녀는 그런 궁기를 향해 옅게 웃으며 엄지를 들었다.
“앞으로 도깨비와 자주 만나지는 못할 거예요. 대신 옥토버 트래블 건이 정리되는 즉시 한국으로 돌아와요. 강릉 일대를 비롯한 강원도 외국인 구역을 당신이 맡아주셔야 해요.”
[제가 강원도를…?]“예. 그리고 하나둘 다른 사람들도 한 구역씩 맡을 테니까, 혹시 도깨비가 강원도 가면 현지에서 서포트 좀 잘 부탁해요. 저는 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니까.”
[회장님의 명령에 따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그래요. 알죠? 잘만 하면 최고의 성과를 줄게요. 나중에…음, 한 추석보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난 뒤에.”
소녀는 자기 하복부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이전보다 훨씬 더 편한 미소로 천장의 화면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개천절. 하늘이 열리는 날, 그날 정도면 이제 당신들이 가장 원하는 ‘합일’을 해줄게요. 제게.”
[……!!]“진짜예요. 그도 그럴게, 개천절이잖아요? 국경일, 국가에 경사가 있는 날이니까.”
[말 그대로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날이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예정일대로 잘 진행되길 바라며, 저는 페이그린 쪽의 일을 마저 처리하겠습니다. 변화가 생기는 대로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이상, 하나 될 세계에 영광을.]“하나 될 세계에 영광을.”
삐빅.
팝업창이 내려갔다.
소녀는 궁기를 화상으로 배웅한 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밖은 온통 어둠이 가득했다.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지하의 안쪽과도 같은 모습이었으나, 소녀는 자신의 방에서 나간 불빛에 비친 밖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래, 그 괴물을, 우리끼리 감당하는 게 말이나 되겠어.”
소녀는 기지개를 켜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최소한 여자 다섯 명은 더 있어야 감당할 수 있지.”
딸칵.
“그래야 내가 살지.”
소녀가 눈을 감자, 무언가 장치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괴물을, 나 혼자 감당하라고 하면 나 진짜 죽어버리는걸.”
클래식.
“백설희, 유미르. …둘이서 감당 되려나 모르겠네. 후후후.”
펜트하우스의 방 안, 브람스 작곡 ‘비의 노래’가 잔잔히 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보?]“…….”
거의 해가 질 때쯤, 수 시간이 지난 뒤에 걸려 온 전화에 소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그렇지.”
* * *
끝났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저녁 5시에 가까워졌다.
“…….”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백설희와 유미르가 눈을 감은 채 얌전히 잠들어있었다.
뭐,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냥 둘과 상담을 좀 길게 했고, 둘이 얼마나 이 나라와 이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스륵.
나는 물티슈를 꺼내 둘의 몸에 흐른 땀을 닦았다.
4월인데도 대낮에 이야기를 나눠서 그런지 몸에 땀이 흥건했고, 나는 최대한 둘이 찝찝하지 않도록 물티슈로 땀을 닦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후.”
둘이 휴식을 취하는 사이, 나는 책상에 놓아둔 태극워치를 들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괜히 방 안에서 태극워치를 찼다가 괜히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나는 부엌에 오고 난 뒤에 태극워치를 차고 전화를 걸었다.
“아, 아아. 여보? 응, 나야.”
[그럼 그렇지.]“응?”
[그냥. 어떻게, 반나절은 버티나 싶었더니.]“…그러게. 그렇게 됐어. 둘 다 지금 기절한 듯이 자고 있는 중.”
[…그래요? 흐흥.]낮은 웃음소리는 자기 예상대로 되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일까.
아니면 정해진 약속을 통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자는 신호인가.
[우리 과장님, 좋았어요?]“…언제나 고맙지. 여보 덕분에.”
[스피커폰이었어요?]“아니. 그냥. 혹시나 해서.”
[아항.]저쪽에서는 내게 평소처럼 말해도, 나는 최소한 말을 원래대로 해야 한다.
[스피커 소리까지 들을 정도면 아예 조심해야 하는데.]“그건 아니야. 둘 다 지금 못 일어나. 내가 확신해.”
[과장님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믿을 만하죠. 어떻게, 둘이 결사로 들어올 것 같아요?]“전혀.”
나는 복분자 병을 꺼낸 다음, 유리잔에 한가득 복분자를 채워 한 모금 들이켰다.
“…한쪽은 눈치를 챘어도 자기 의지를 관철하고, 다른 쪽은 눈치는 못 챘어도 설득이 통하지 않을 사람이고.”
[그럼 방법은 역시 미남계뿐이네요. 잘 엮어봐요. 혹시 사고 나면 바로….]“짐 다 싸 들고 고향으로 가야지. 그냥 가는 건 섭섭하니까, 제일 큰 보물도 같이 싸서 가야하고.”
[어머. 납치라도 하겠다는 뜻?]“필요하다면.”
백설희.
유미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게 되어 사서 도지환을 유지할 수 없다면, 나는 둘을 강제로라도 결사로 일단 데리고 갈 것이다.
원래 주인공이든 히로인이든, 적 조직에 납치당하든 뭘 어떻게 하든 붙잡혀 구금당하는 건 예정된 수순이니까.
[그렇구나. 음, 끊기 전에 하나만 물어볼게요. 흰 소가 잘해요, 노란 소가 잘해요?]“…….”
시간은 어느덧 3분에 가까워지고 있다.
“누가 더 잘하냐니.”
나는 손을 내 입으로 당겼다.
“너.”
쪽.
이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고, 나는 남은 복분자를 단번에 들이켰다.
“……저녁이나 할까.”
둘이 깨어나서 씻고 나올 때까지, 나는 둘을 위한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철분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으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