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4)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64화(165/668)
〈 164화 〉 6장.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1)
* * *
두억시니는 죽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조용히, 그저 평범한 체육관 안에서 소멸했다.
[다행이군. 밖에서 빨리 처리가 되어서.] [그, 혹시 일부러 다 처리되고 난 뒤에 나온 거예요?] [그래.] [만약 하나라도 살아있었으면….] [두억시니가 그 육신으로 또 도망갔겠지.]내 말에 밖에 있던 세 명은 동시에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이렇게 판을 짜놓고도 또 두억시니가 도망간다면, 그때는 내가 이 셋에게 화를 내야 할 상황일 테니.
‘그런 건 안 돼.’
죽이려고 작정하고 사용한 기술이다.
애초에 진실의 방을 해제한 것도 바깥이 어느정도 정리된 걸 눈치챘기 때문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나는 안에서 두억시니를 처리하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마무리하지 않고 나온 이유는 유미르에게 막타를 양보하기 위함이며, 두억시니에게 절망을 안겨주기 위함일 뿐.
아슬아슬했나?
그건 모른다.
만약 유미르가 두억시니를 놓쳤다면 모를까, 유미르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바로 두억시니를 없애버렸다.
유미르를 믿었다.
설령 유미르가 순간 놓치더라도, 내가 바로 지시를 내렸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두억시니를 썰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면…이걸로 진짜 끝인가요?”
[그래. 윤이선, 너도 고생했다. 너를 휘말리게 했던 것, 다시 한번 사과하마.]“아, 아녜요! 도깨비 님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요! 문자를 보낸다고 한 건 저였는 걸요!”
문자의 문구는 내가 적었고, 그걸 주모가 보내기는 했지만, 계정은 윤이선의 것을 빌렸다.
아카데미 학생이 보낸 거라면 바로 빡쳐서 달려올 테니.
그 함정은 제대로 통했고, 아마 다른 이들이 보냈다면 의구심을 가지고 달려오지 않았을 테지.
[슬슬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겠군.]어느새 시각은 새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윤이선이나 유미르나 몰래 자리를 빠져나온 터라, 둘은 일단 울릉도의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나 또한, 도올과 함께 울릉도로 돌아가야 한다.
[백금태양. 윤이선을 부탁한다. 돌아갈 때 항상 조심하고.] [다음에 곧 연락드릴게요. 아, 그런데 여기는….]“우리가 정리할게.”
체육관 안은 난장판이었다.
내부가 무슨 피칠갑이라도 된 것처럼 핏물이 흥건했다.
벽에는 칼자국이 가득했고, 유리창은 두억시니가 처음에 들어온 하나만 깨졌지만 대부분 형태만 유지하고 있을 뿐 태풍이라도 오면 금방 와장창 깨질 기세였다.
[윤이선. 나중에 누군가가 GPS를 추적해서 왜 여기에 있었냐고 묻는다면, 해킹당했다고 말해. 해킹 이력은 이쪽에서 남겨둘 테니.]“아, 그렇게까지…?”
[네 태극워치가 여기에서 뒷계정으로 문자를 보낸 기록이 서버에 남아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거다.]언제나 그럴 가능성은 열려있고, 가능성이 있다면 조심하는 게 맞다.
[고맙다. 답례에 대해서는 조만간 논의하도록 하지.]“아, 네!”
[그럼 저희는 지금 갈게요. …진짜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은 네가 했지.]유미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윤이선의 손을 잡고 공간을 열어젖혔다.
파ㅡ앗!
금빛이 반짝이기 무섭게 둘은 사라졌다.
“…후.”
체육관에 단둘이 남게 된 나는 가면을 벗었고, 도올은 바로 내게로 다가왔다.
“괜찮아?”
“…정신력을 한계까지 사용한 기분이다.”
“마력은 회복되었다고 해도, 정신적인 피로는 다른 문제니까.”
“이 정도로 지치는 건 진짜 오랜만인 것 같은데.”
“그래. 쉬러 가야지. 바로 데려가 줄게.”
올 때는 유미르의 공간이동을 통해 넘어왔지만, 윤이선에게까지 우리의 목적지가 울릉도라는 걸 알릴 필요는 당장은 없다.
“그럼…여기는 이렇게 정리할까.”
도올이 합장하듯 손을 모으자, 그녀를 중심으로 녹색 바람이 터져 나오며 체육관 안을 휘감았다.
“일단 확인부터.”
고오오!
체육관 내부에 남아있던 핏물이 바람과 함께 몰아치며 한곳으로 모였다.
“…유미르를 먼저 보내지 말 걸 그랬나? 이거 안에 두억시니 있는지 확인하려면.”
“나한테 유미르의 마력이 남아있어. 그거, 지금 여기에 다 털어내면 돼.”
도올은 두억시니가 흘린 피를 하나로 모았고, 나는 짐볼보다 훨씬 더 큰 핏빛 구체를 살폈다.
화륵.
마지막으로 남은 유미르의 마력을 전부 쏟아냈다.
하지만 피는 그저 피일 뿐이었고, 딱히 핏속에서 무언가 불타오르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잔류사념이나 그런 건 없는 것 같지?”
“응. 있었으면 너든 나든 유미르한테 부탁해서 이것까지 없애버렸을 거 아냐. 이건 그냥 피야.”
“난 또 피에서 두억시니가 돋아나는 줄 알았네.”
“…그렇게까지 부활하면 진짜 더러운 놈 아닐까?”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두억시니는 완전히 죽었다.
또 어딘가에서 나타난다면, 그때는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게 죽여버려야겠지.
천왕성의 신을 자칭하든, 아니면 진짜든, 그들의 힘을 얻은 화신아바타든 뭐든, 일단 쓰러뜨릴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걸로 충분하다.
“판데모니엄도 난리가 나겠네. 자기네 일곱 머리 중 하나가 죽었으니까.”
“음. …아. 도올. 하나 부탁을 좀 해야겠는데.”
나는 방망이를 꺼낸 다음, 핏방울 하나를 가볍게 방망이로 떠냈다.
“여기다가 사념을 담으려고 해. 괜찮겠어?”
“누구의 사념? 두억시니?”
“부활할 걱정은 하지 마. 그냥, 놈과 대화를 나눈 단편을 실어놓을 뿐이니까. 남길 사념은…내 거다.”
도깨비의 기억.
그 일부.
편린을 복사하여 이 핏방울에 남겨둔다.
“…너인 걸 드러내려고?”
“일단은. 사실상 백금태양의 힘으로 죽였다는 걸 판데모니엄에서 알아채는 것보다, 도깨비가 뭔가 특별한 힘을 이용해서 죽였다고 속이려고 해.”
“속든 안 속든 상관은 없지만, 적에게 혼란을 주겠다?”
“그것도 목적이고.”
대화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필요한 부분은 단 한 곳뿐이니까.
“두억시니로부터 시작된 균열이 판데모니엄 전체로 시작되게 만들려고 해.”
“너 그거까지 하면 기절할걸?”
“기절하면 네가 나를 울릉도까지 옮겨줬으면 하는데.”
“하, 정말.”
도올은 내게로 다가와, 미리 나를 번쩍 들었다.
“…이렇게 옮겨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평소에 이렇게 사람들 들어보다가 공주님처럼 안기니까 기분이 어때?”
“최소한.”
나는 다시 가면을 눌러쓰려다, 그냥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도깨비가 이렇게 도올에게 안겨 가는 걸 사람들에게 들키지는 말았으면 좋겠군.”
“후후. 걱정하지 마. 그런 건…내 전문이니까!”
도올의 몸에서 녹색의 바람이 일어나며, 우리는 순식간에 천장을 뚫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붕괴.”
도올이 아래로 마력을 쏟아내자, 체육관이 순식간에 폭삭 주저앉았다.
구구구.
흙먼지가 일어나 내부가 망가지고, 안에 구체 형태로 모여있던 두억시니의 피는 마치 무너진 천장에 압사된 것처럼 터져서 잔해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나의 기억을, 나의 사념을 담았다.
누군가가 두억시니의 피를 통해 뭔가 흔적을 찾고자 한다면, 그들은 찾게 되겠지.
도깨비와 두억시니가 싸웠다는 것.
그리고 두억시니가 죽었다는 것.
거기에 윤이선도, 유미르도, 도올도 없다.
그저 주변이 뭔가 이상해진 또다른 세상에서, 두억시니가 도깨비에게 철저하게 처발렸다는 정보만 알게 되겠지.
그리고.
“…결사는 배신자가 없어서 다행이야.”
나는 눈을 감았다.
판데모니엄의 신 칠죄종’칠성/세븐 스타즈’가 부디 두억시니의 마지막 단말마를 알아차려 주기를.
쏴아아.
도올은 바다 위를 달렸다.
세종섬을 벗어나 울릉도로 향하지만, 그 누구도 도올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주로 쓰는 ‘영체화’와 달리, 그냥 도올이 너무 빨라서.
“이 정도면 따라잡을 수 있어?”
“…그 사이에 이 정도로?”
초고속 이동.
나와 합일한 상태에서 두억시니를 추격하지 못했던 것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도올은 초고속 이동 능력을 깨우쳤다.
“어떻게 개발한 거야?”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어. 평소에 내는 속도보다 두 배, 그것보다 두 배, 거기서 또 두 배. 이런 식으로 빨라지면 닿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과연. 이배속의 무한 반복인가.”
두억시니가 보여준 초고속 이동과는 결이 다르다.
천천히 가속을 붙여서 결과적으로는 64배나 128배의 속도로 움직이게 되는 경우지만, 그 속도에 다다르는 시간 자체를 단축하면 분명 최고속도에 이르는 타임랙 없이 초고속 이동을 사용할 수 있을 터.
“이거, 졸지에 신기술을 익히게 되었네.”
“정작 두억시니랑 상대할 때 도움이 되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이렇게 잘 되었으니 다행이지.”
중간에 한 번 놓치기는 했지만, 결과만 두고 보면 썩 나쁜 결말은 아니다.
두억시니는 죽었다.
유미르는 윤이선이라는 믿음직한 동료를 얻었다.
윤이선은 도깨비와 접점이 생겼다.
그리고 도올과 안면을 텄고, 도올은 초고속 이동을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야. 두억시니 죽은 거, 세상은 모르잖아.”
“…….”
“어떻게 할 거야? 공개할 거야? 도깨비가 죽였다고?”
“글쎄.”
두억시니를 죽였다는 걸 저기 판데모니엄이 알게 할 생각은 있어도, 거기까지 굳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단 두억시니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하긴, 우리가 좀 너무 빨리 움직였지. 유미르말이야, 추진력은 있는데 그 행동에 따른 결과는 좀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동감이다. 뭐, 그런 걸 해결해주는 게 에이전트, 결사의 역할 아니겠어.”
어느새 도올은 울릉도의 펜션에 도착했다.
“주모.”
“다녀왔어? …성공한 모양이네.”
“아아. 물론.”
나는 도올로부터 내려 소파에 누웠다.
“태극워치 줘봐. 회장님께 보고하게.”
“바로 보고하려고?”
“어. 겸사겸사 물어볼 것도 있고.”
삐빅.
바로 전화를 받았다.
“늦은 새벽인데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뇨. 깨어있었어요.]“두억시니를 처리했습니다. 완벽하게 소멸시켰습니다.”
[…고생했어요. 푹 쉬어요.]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정치적인 문제는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 과장님은 푹 쉬어요. 알겠죠?]“…사랑합니다, 회장님.”
[저도 사랑해요. 전화 계속 하고 싶은데,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이네요. 잘 자요, 내 사랑.]뚝.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그대로 태극워치를 가슴에 품고 눈을 감았다.
“주모.”
“응.”
“…아침에 일어나면, 국밥 하나 뜨끈하게.”
“그래. 푹 쉬어.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고.”
“…….”
나는 눈을 감았다.
“얍.”
“…….”
위에서 도올이 내 위로 몸을 겹치며 내 옆에 누웠지만,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도올도 나도, 휴식이 필요했으니까.
즉시 두억시니를 잡아 토벌해야 합니다!
정부와 세계에서 두억시니를 찾느라 난리가 나든 말든, 일단 나는 쉬어야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