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69)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69화(170/668)
〈 169화 〉 7장. 혼탁의 일주일 (4)
* * *
“이선아, 뭐 해?”
“전쟁 중.”
윤이선은 스마트폰을 붙잡은 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내가 미는 1픽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지.”
“뭐 아이돌 경연 같은 거야?”
“비슷해.”
눈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아 유미르는 차마 옆에서 뭐라고 말을 하기 애매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자신에 관한 내용인 것 같았다.
“무슨 프로그램인데?”
“음, 아이돌 경연은 아니고, 그냥 ‘짝이 되었습니다’ 같은 인터넷 썰? 아, 근데 지금 저기 반대편에 있는 애가 이상한 걸 1픽으로 밀고 있잖아.”
그리고 유미르는 이런 상황에서 ‘아, 그렇구나아….’라고 하면서 물러설 사람이 아니다.
“어디 한번 보자.”
“…….”
“뭐야. 백금태양이 도깨비 정실…?”
“어, 그게….”
윤이선은 갑자기 고개를 바로 옆으로 들이민 유미르에 움찔거렸다.
“이거, 이선이지? 너, 부모님 고향이 춘천이라고 했잖아. 흐응, 불여우라는 건 뭔지 알겠고. 춘천불여우가 미는 1픽은 백금태양? 도깨비 파트너로?”
“그, 그게.”
“좋네. 고마워. 여러모로.”
“…응.”
흉악한 마력 주머니가 자기 어깨를 짓누르는 감각에 윤이선은 잠시 울컥했지만, 그보다 먼저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거리낌 없이 거리를 좁히는 유미르의 친화력이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런 건 왜 하는 거야?”
“이, 이제 여론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여론?”
“도깨비랑 엮이는 사람. 도깨비가 정부 입장에서는 빌런이라고 해도, 사람들한테는 인기가 많잖아.”
“그건 그렇지.”
도깨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컬트적인 인기라고 하기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좋아하지만, 대중이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겉으로 대놓고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존재다.
“인기는 많지만, 그래도 대놓고 막 도깨비 사랑해요, 뭐 그럴 수는 없는 거 아냐?”
“지금까지는 그랬지.”
일단은 빌런이니까.
정부에서 공인하는 빌런이니까.
“그,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스노우화이트랑 엮었잖아? 아무래도 서로 많이 부딪치기도 했고.”
“응응.”
“스노우화이트를 엮는 건 기사 내려가고 그럴 수 있지만, 도깨비를 다른 사람과 엮는 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아.”
“빌런이라서?”
“응. 빌런이니까.”
물론, 오히려 빌런이기에 떡밥 굴리기 수월한 게 있다.
“빌런을 가지고 떡밥 굴리면 무서운 아저씨들이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지만, 빌런을 욕한 것도 아니고 막 칭찬하는 건데 뭐 하러 처형하러 오겠어. 오히려 검은 선글라스 쓴 양복 아저씨들이 찾아가는 건 히어로 욕했을 때지. 정부랑.”
“…….”
“히어로를 욕하면 고소장이 날아오지만, 빌런은 적어도 고소장이 날아오거나 그런 게 적거든.”
적어도 매니지먼트든 본인이든, 히어로가 아닌 이상 인터넷에서 이상한 떡밥 좀 굴렸다고 고소당할 일은 없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예전부터 도깨비로 커플링 많이 만들고 그랬어. 그걸 나라에서 조장하기도 했고.”
“조장해?”
“여자 이능력자랑 엮어서 도깨비를 자기 나라 사람으로 만들면, 사법 거래를 통해 지금까지 저지른 죄를 사하고 인간으로 만들겠다나 뭐라나.”
한국뿐만 아니라, 실제로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게 법을 마련하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도깨비랑 엮이는 여자들이 많았어. 이능력자도 그렇고, 연예인도 그렇고, 뭐 기업가도…. 그중 스노우화이트가 가장 인기를 끌었다고는 해도, 이제는 달라.”
“이제 백금태양을 엮을 차례다?”
“도깨비랑 같이 몇 번 나왔잖아? 지금 도깨비의 아치 에너미, 아니 아치 히어로라고 불릴 정도야.”
“백금태양이?”
“그럼.”
“…흐.”
유미르는 도깨비와 나란히 대척점에 있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기뻤다.
“일단 도깨비랑 엮이면 백금태양도 인지도가 높아지고, 무엇보다도….”
윤이선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내가 백금태양을 지지해. 도깨비랑 엮이는 거.”
“너, 도깨비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좋아하지. 팬으로서.”
“그럼 도깨비가 만약 백금태양이든 스노우화이트든, 만일 진짜로 결혼한다거나 애라도 낳으면 어떻게 할 거야?”
“예전에도 이 질문 들었는데.”
윤이선은 어딘가 해탈한 얼굴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럼 행복하기를 빌어야지. 나는 도깨비의 행동에 감화된 팬이지, 도깨비한테 안기고 싶다 뭐 그런 건 아니거든. 아, 여기서 안긴다는 건….”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리고 지금 댓글 쓰는 거, 고마운 이야기인데 그렇게까지 안 불타도 돼.”
“왜?”
“음….”
그야 이미 볼 장 다 봤으니까.
말해야 하나.
괜히 말했다가 윤이선의 환상만 깨뜨리는 거 아닐까.
그리고 굳이 윤이선에게 괜한 정보를 줄 이유도 없다.
도깨비가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면.
지금도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연락을 넣어서 상담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질 지경인데, 괜히 또 요상한 변수가 생기는 건 바라지 않는다.
“백금태양은.”
결론을 내린 유미르는 가슴을 쭉 폈다.
“이렇게 여론전을 펼치지 않아도, 정실은 백금태양이니까.”
“…진심이구나?”
“물론.”
그건 확실하다.
“이전에 누가 있었든, 이제 도깨비 옆에는 백금태양이 함께 있을 거야.”
마음을 정한 이상, 모든 걸 허락한 이상 유미르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
설령 상대가 스노우화이트가 아니라 저기 이매망량의 간부들, 심지어 가장 꼭대기에 있는 ‘총수’라고 해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최소한 총수와 동등한 자리, 아니면 그보다도 더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 지금의 유미르라는 한 여자의 목표.
그 목표를 위해 유미르는 앞으로 달려갈 뿐이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알겠어. 그런데 이 시비 거는 잼민이는 내가 좀 기강을 다잡아야겠어.”
“…잼민이 아니면 어쩌려고?”
“잼민이 맞아. 딱 봐도 억결 굴리면서 그걸로 재미 보려고 하는 이능력자인 것 같은걸.”
“무슨 소리야?”
“잘 생각해봐.”
윤이선은 댓글을 하나하나가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
“이 나라에 S급 이능력자인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나이 차이가 무슨 10살 이상 차이 나는 것도 아니고 뭐 하러 도깨비랑 떡밥을 굴리겠어? 얘는 그냥 분탕이야. 다른 S급 남자들이 싫어서 도깨비 미는 거라고.”
“…….”
S급의 성비는 지금 4:3, 남자가 네 명이고 여자가 셋이다.
가장 나이 많은 둘이 S급의 1, 2위를 차지하고, 거의 나이순으로 정렬되듯이 아머드 태조가 마지막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니면 백설희랑 다른 S급들 엮으려고 일부러 도깨비랑 분탕 치는 걸지도 몰라.”
“그건 무슨 소리야?”
“이런 거지. 마침 여기…매사 진지한 선비께서 등판하셨네.”
댓글이 하나 달렸다.
[홍길동] : 아니, 무슨 소리임? 당연히 우리나라 S급끼리 서로 애국해서 영웅을 낳아야지. 어떻게 한국인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남자한테 우리 S급을 결혼하라고 할 수 있음?“…와 같이, 국제결혼 반대자들도 있다는 거야.”
“도깨비가 만약 한국인이라면?”
“그럼 당연히 다들 이런 사람들도 도깨비랑 스노우화이트랑 결혼시키려고 하겠지? 애국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건 한국인끼리 결혼해서 ‘한국인 영웅’을 낳는 거니까.”
윤이선은 툴툴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나는 혈통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진짜로 중요한 건 국적이지. 봐봐. 외국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 이능력자들이 퍼져나갔는데. 이제는 글로벌 시대라고. 국제결혼이 뭐 나쁜 것도 아니잖아?”
“음…. 저기.”
이건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유미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한 건데, 나 사실….”
소곤소곤.
유미르의 말에 윤이선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진짜야.”
“아, 아무리 봐도 너는….”
“메이플 시럽을 많이 마셔서 그래.”
“아, 으응. 서프라이즈. 와…. 말해줘서 고마워. 엄청, 놀랍네. …큿.”
윤이선은 유미르의 흉부로 잠시 고개를 숙인 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부럽네. 결국 유전자 차이라는 건가.”
“그, 있잖아.”
유미르는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이능력으로 키우는 방법이 있어.”
“…정말?”
“응. 한 번, 시도해볼”
[아아. 알립니다. 잠시 후, 10분 뒤에 세종섬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학생 여러분은 짐을 챙겨 하선 준비를 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방송이 울렸다.
“좋아. 그럼…섬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해보자. 어차피 남은 실습 동안 휴교니까.”
“…어?”
유미르는 표정이 굳었다.
“가, 가자마자 바로?”
“어. 왜? 급한 일 있어?”
“그, 급한 일은 아니긴 한데….”
유미르는 울상을 지었다.
친구를 사귄 건 좋지만, 그 친구가 상당히 상식적이고 자신을 배려해주고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자신을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준다는 건 좋지만.
“왜? 내 방 안전해. 다른 사람들한테 들킬 일도 없어. 학생회장 방은 1인실이거든.”
“…그런 게 아니라.”
“실습으로 친해진 거니까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거야. 후후, 좋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응.”
친구를 향해 호의를 베풀어줬는데, 그게 하필이면 자기 발목을 잡을 줄이야.
* * *
주모가 점심으로 수육을 삶는 사이,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온 도올과 결사의 움직임이 정리된 자료를 받아 정리하며 내용을 살폈다.
“도깨비가 나선 덕분에 혼란은 잦아들었고, 두억시니의 죽음을 이용해서 이제 반격에 나설 차례야.”
도올은 사진 하나를 건넸다.
공문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조잡해 보였지만, 공문 속 내용물을 확인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 젠로스된 사람들, 세종섬으로 들어오게 만든 건 총수님 판단이야.”
“역시.”
세종섬으로 굳이 들어온다면, 당연히 정의감 넘치는 이들이 괜히 건드릴 수 없게 숨길 것이다.
“총 52명. 이 중에 만약 바꿔치기 당하거나, 소재를 파악할 수 없거나 그런 자가 있다면….”
“악마연구소로 끌려간 거겠지.”
아무리 두억시니가 죽었다고 해도, 52명이나 되는 실험체를 놓치고 싶지는 않을 터.
“세종섬에서 지내면서 그들의 소재가 파악되는 즉시, 바로 세종섬에 있는 악마연구소를 전부 덮치는 거야.”
“너랑 나 둘이?”
“아니.”
도올은 나를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히어로 둘이랑 재미있게 썸을 타셨으면, 이제 빌런 둘이랑 질펀하고 질척하게 노실 때 아니겠어?”
“…누가 오는데.”
“궁기.”
우리는.
“히어로들이랑 소꿉장난하셨으면.”
젠로스한 악마를 이용해, 세종섬에 있는 악마연구소를 전부 파괴할 것이다.
“이제, 우리랑 찐하게 놀아주셔야지 않겠어?”
빌런답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