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7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70화(171/668)
〈 170화 〉 7장. 혼탁의 일주일 (5)
* * *
부우웅.
양양 공항에 비행기 하나가 천천히 내려와 착륙했다.
한국이 혼란 아닌 혼란을 겪기는 했지만 비행기를 되돌릴 수는 없었고, 다른 곳으로 항로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래도 바꿔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다행히 도깨비가 두억시니를 처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장은 원래 항로대로 움직였다.
만약 항로를 바꿔 블라디보스토크나 일본 쪽에 임시 착륙을 해야 했다면, 분명 옥토버 트래블은 크나큰 경제적 손실을 일으켰을 테지.
무엇보다도, 지금 1등석에 앉아있는 흑발의 여인으로부터 상당한 질책을 받았을 테고.
“손님,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뭘요. 고생했어요.”
검은 정장 차림의 흑발 여인은 선글라스를 가볍게 내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붉게 반짝였지만, 승무원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 물어보죠. 만약 한국에서 난리를 수습하지 못했다면, 비행기는 어떻게 되었던 거죠?”
“아마도…한국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아무래도 이능력자 승객분이 한 명이라도 탔다가 악마라도 된다면, 그때는 진짜 저희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요.”
승무원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깔려있었다.
“수천 미터 상공에서 악마로부터 피할 곳은 기내 화장실 뿐일 텐데, 악마에게 화장실 문을 뜯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테니까.”
“악마를 태울 바에는 차라리 한국으로 안 들어가는 게 낫다?”
“네. 휴, 정말이지, 도깨비님 아니었으면 정말….”
“후후. 그렇긴 하죠.”
여인은 옅게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정장 안쪽, 몸에 착 달라붙는 붉은 셔츠를 만지작거리며, 그녀는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비행기에서 내렸다.
“어서 오십시오. 이사님.”
“그래. 몇 주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네. 반가워. 일단 차로 먼저 가자.”
여인은 자신을 마중 나온 비서에게 캐리어 하나를 건넸고, 비서와 함께 이동하여 리무진 차에 바로 탑승했다.
사아아.
여인의 머리칼이 붉게 변했다.
창밖에서는 그 누구도 그녀를 볼 수 없었고, 머리칼과 눈동자까지 붉게 물든 여인궁기는 손거울로 자기 얼굴을 살폈다.
“설마 또 이렇게 호출될 줄은 몰랐는데.”
“호출…입니까?”
“응. 회장님 명령. 아무래도 다른 둘은 지금 여기로 못 오잖아. 도철은 유럽 쪽 관리하느라 바쁘고, 혼돈은…보니까 총수님 옆에서 지원하고 있던데.”
“그러면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이사님들이 전부 움직이는 겁니까?”
“응.”
궁기는 좌석에 느긋하게 몸을 뉘었다.
“아아, 정말. 간부가 더 필요해. 돈이 많으면 뭐 하니. 쓰러 다닐 시간이 없는데.”
“간부를 하기를 바라는 자라면 얼마든지 있을 텐데요.”
“적어도 우리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하잖아. 어때? 너도 한번 간부 해볼래?”
“저는 아직 미숙합니다. 실력도 부족하고요. 애초에 뭐든지 ‘4천왕’ 구조를 갖추는 게 제일 좋다고 지난번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그냥 간부 늘리자고 했지. …아.”
궁기는 손뼉을 치며 조수석을 향해 다가왔다.
“제법 똘똘한 애들 불러서, 한 S급들로 간부들마다 세 명씩 전속 부하를 부리는 건 어때? 총수님의 도깨비처럼, 우리도 직속으로 딱 세 명 다루는 거야.”
“남자…는 아니겠죠?”
“당연하지. 남자는 생각도 없다, 얘. 애초에 남자를 부를 이유가 없지. 도깨비가 이질적인 거지. 사장급이야 뭐 남자들이 있어도, 이사급…우리 위치에는 여자가 하나도 없지.”
“그러면 이사님들마다 각 비서로 또 여직원들이 늘어나는 겁니까?”
“무지성으로 늘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후후후. 기대되네, 정말. 그리고 남자라면….”
궁기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낳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예?”
“지금 이상하게 성비가 불균형해져서 그렇지, 성비가 정 문제가 된다면 낳아서 기르면 그만이잖아.”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런 말씀 하시면 세상이 난리가 나겠군요.”
“적어도 1년 뒤에는 난리가 나겠지.”
궁기는 키득거리며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넣은 뒤, 손가락으로 사나운 괴물의 모습을 그렸다.
“아. 간부가 아니라 아이를 셋 낳으면 되는 건가?”
“세, 셋…?”
비서는 소름이 돋았다.
“궁기님께서 셋을 낳으면 다른 분들도 셋을 낳을 텐데….”
“낳는 걸 도깨비가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도깨비의 자식이라면, 분명 이 세상에 큰 도움이 될 녀석들일 거야. 그래.”
궁기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그러지. S급 이능력자를 최대한 많이 낳아서 세계를 위한 인재로 기르자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도깨비의 자식을 최대한 많이 낳는다면, 그 자식들이 훗날 인류를 위한 영웅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을까?”
“그건 도깨비님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걔 의견은 이미 들었어. 만약 자식을 낳는다면, 자식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겠다고 그러더라. 사람 죽이거나 범죄 일으키는 게 아니라면, 세계의 평화에 큰 지장을 주는 게 아니라면 뭘 해도 자기는 존중해줄 거라고.”
“……그러면.”
비서는 왠지 모르게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도깨비님이 빌런을 비롯한 사회의 악을 청소하는 것도, 언젠가 도깨비님의 자식들이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그렇게 되나? 아, 그렇게 되겠네.”
궁기는 입김을 불었던 유리창을 손으로 쓱 닦았다.
“모든 것은, 평화로워질 세계를 위해서.”
이매망량의 이름 아래.
“…한 명당 3명씩 낳아도 지금만 24.”
히죽.
“이야, 한 해에 S급 8명씩만 나와도 20년 뒤면 전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 수 있겠어.”
* * *
“도 과장님. 지금 인터넷에 또 떡밥 올라왔는데?”
“무슨 떡밥?”
“백금태양이랑 사실 부부 아니냐고.”
“부부가 아니라 불륜남이랑 상간녀 관계이기는 한데, 그런 떡밥은 왜 도는 거야?”
“울릉도에 지금 도깨비 나타났다 간 거 아니냐는 말이 은근히 나오고 있어서 그래.”
백설희와의 억결 떡밥은 일단 이전부터 있었으니 그러려니 치고, 사람들은 슬슬 백금태양과 나를 엮기 시작했다.
“엮으면 나야 좋기는 하지만, 굳이 이 시점에서 이렇게 떡밥 굴릴 이유가 있나?”
“백설희 파랑 유미르 파랑 나뉘어서 서로 싸우는 중인데?”
“…왜 그런 걸로 싸우는 거지. 월드컵도 아니고.”
히로인 월드컵을 벌이는 거야 독자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건 현실의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 떡밥이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
“도 과장님. 과장님은 백설희파야, 유미르파야?”
“회장님파.”
“이지선다인데.”
“그 어떤 누구와 비교해도 무조건 이기는 선택지가 하나 있는데 뭐 하러.”
아무리 백설희나 유미르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해도, 나의 마음은 총수를 향하고 있다.
“그럼 옛날 회장님파야, 아니면 지금 회장님파야?”
“…….”
어.
“왜 대답을 못 해?”
“음. 잠깐. 이건 중대한 문제다.”
나는 잠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예전의 총수와 지금의 총수, 그러니까 거다이총수와 경량화총수를 둘 다 겪어본 나로서는 함부로 대답하기가 정말 어려운 문제다.
“…꼭 한 쪽만 정해야 하는 건 아니지? 둘 다 선택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나만 정해.”
“왜 정해야만 하지? 짜장면과 짬뽕이 있으면 둘 다 먹으면 되는 거잖아. 짬짜면이라는 아주 좋은 문명이 있다고.”
“하지만 둘 중 하나를 무조건 선택해야만 한다면?”
“난 죽음을 택하겠, 아니. 진짜 골치 아프게 만드는 질문이군.”
상당히 골치 아프다.
백설희와 유미르 두 사람을 비교하라고 하면 둘의 장점을 비교분석하여 어떤 부분에서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총수는 이야기가 다르다.
“회장님이랑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
“그렇고 그런 사이를 넘어서 평생을 함께할 반려의 사이지.”
“새삼 다시 들어도 조금 충격적이긴 하네.”
주모는 혀를 내두르며 TV화면 앞에 사진 두 장을 꺼냈다.
“선택해. 어느 쪽 회장이 더 취향이신지?”
“회장님이 취향인데.”
“도깨비 씨, 한국어 잘하면서 왜 그렇게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지? 오니세요? 곤니치와?”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나는 주모의 머리를 손으로 꾹 눌렀다.
“차라리 백설희랑 유미르를 옆에 두고 누가 더 좋냐고 질문을 듣는 게 낫겠어. 면전에서.”
“…이거랑 비교하면 그게 훨씬 더 지옥 같은 난이도 같은데?”
“그건 현장에서 약간 혀에 기름칠만 해도 바로 돌파할 수 있는 문제고, 이건 그런 거랑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거다이총수냐.
경량화총수냐.
양쪽 다 나름 함께 해본 나로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굳이 지금 있는 사람들에 비유하자면.
거다이총수는 유미르보다 크고, 백설희보다 골반의 선이 예쁘게 잘 빠져있다.
경량화총수는 윤이선보다 작고, 윤이선만큼이나 아담하다.
누군가 한 사람이 두 번이나 피격당한 것 같지만, 그건 내 주변에 아는 인맥이 그러하니 비유를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뭐야. 지금 뭐 하는 건데.”
도올이 밖에서 다가왔다.
그녀는 하품을 내쉬며 주모가 띄운 사진을 보더니,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도깨비 취향이 저런 쪽이었어?”
“어느 쪽이 취향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지금 고민 중이었다.”
“지금 회장님 사이즈가 취향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 저 모습으로 계신 거고, 저 모습을 앞으로 오피셜로 내보내려고 이번에 모습 드러내신 거 아니었어?”
“아니지. 저 모습이 되신 건….”
아주 큰 일이 있었기 때문.
그 일을 지금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으니 넘어가고.
“그러니까 네 말은 내 취향이 경량화 쪽이라서 그렇다?”
“그럼. 확인해볼래? 하압…!”
도올이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더니.
“마법소녀, 프리즈마…도올! 변신!”
한 손을 높이 치켜듦과 동시에, 순식간에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짜잔.”
내 앞에는.
“어때? 당신, 이게 취향 아니었어?”
10살이 된 것 같은 모습의 도올이 나를 향해 짐승이 할퀴는 듯한 손 모양을 만들며 내게 손을 겨눴다.
“당신, 언제는 이런 거 두고 애최몸이라며.”
“그런 적 없다.”
음해다.
“내가 저기 다른 나라에 있는 미친놈들인 줄 알아?”
나는 아청의 나라에서 온 자.
“나는 이상성욕자가 아니야.”
이 세계의 인간들처럼 이능력자를 양산하겠다며 생식능력이 갖춰지자마자 바로 ‘출산이 애국과 평화’라면서 가스라이팅 하는 그런 빌런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빌런을 쳐 죽이는 자지.”
“하지만.”
도올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합법이라면?”
“…….”
주민등록증을 꺼내다니.
비겁한 자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