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80화(181/668)
병가를 냈다.
진단서는 주모를 통해 하나 만들면 되고, 일은 도서관에 있는 다른 사서가 대신 할 테지.
다른 사람이 나서지 않겠다면 도서관장이 나서서 하겠다고 할 테니, 아마 도서관 사서들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리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게 중요한 건 이제 막 세종섬으로 들어올 준비를 마쳤다고 하는 ‘배’니까.
“저, 결강이에요.”
유미르 또한 결강했다.
아마 백설희가 알게 된다면 ‘둘이서 또’라고 생각하겠지만, 백설희도 이제는 그러려니 할 것이다.
우리가 일도 하지 않고 온종일 애국하는 줄 알겠지.
하지만 우리는 애국하기 위해 쉬는 게 아니라, 작전을 짜기 위해 울릉도에 모이기로 했다.
“선생님. 저를 또 공간이동 셔틀로 쓰시네요.”
“그럼 공간이동 가르쳐줄래?”
“도깨비가 공간이동까지 배우면 난리 날 것 같은데.”
“원래 신출귀몰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앞으로도 신세를 지지. 그보다.”
“왔어?”
펜션 안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던 도올이 우리를 맞이했다.
“새벽에 싸우던 거 잘 봤어. 유미르, 너 잼민이 기강 확실하게 잡더라?”
“그냥, 스트레스 해소하려고 간 거예요.”
“혹시나 애국하는데 태조가 방해해서 화가 난 건 아니고?”
“제 애국은 아니지만.”
“…그런가? 인터넷에서는 다들 난리던데. 백금태양이 도깨비랑 애국하다가 방해받아서 나온 거라고.”
“그게 무슨.”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우리는 도올이 보여준 커뮤니티 반응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억떡 굴리는 거네.”
“그러게요.”
“근데 유미르, 네가 일부러 그런 멘트를 한 거로부터 시작된 떡밥이라는 거 알지?”
“저는 보편타당한 사람들의 애국을 말한 거지, 딱히 도깨비랑 애국하다 왔다고는 하지 않았는데요?”
“억떡 굴리는 사람들한테는 좋은 먹잇감이지.”
나는 유미르의 머리를 잡고 헝클였다.
“도올. 지금 그녀는 어디에 와있지?”
“여객선에 승선하기 위해 잠입 중이야.”
“여객선…?”
“세종섬으로 드디어 ‘매국종자’들이 올 예정이지. 출산은 애국. 생식능력을 잃은 자들은 매국. 그래, 유미르 네가 정화해서 더 이상 번식하지 못하게 된 악마들. 젠로스를 두고 이 나라에서는 매국종자라고 부르기로 했어.”
매국종자.
이름부터 참 그렇다.
“본인의 의지가 어떻든, 국적이 어떻든 일단 다들 이 나라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일으켰잖아? 그러니까 나라 팔아먹은 자들이라고 하는 거지.”
“그들을 데리고 세종섬에 와서 인체실험을 하는 거군요?”
“그래. 두억시니가 뿌리던 악마의 씨앗. 원래는 악마로부터 그걸 채취했지. 하지만 저들은 몰라. 알아도 마지막 하나까지 확인하려고 들겠지.”
정말로 번식할 수 없는 건가.
“대외적으로는 이능력자로 되돌리겠다는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악마의 흔적을 찾으려고 하는 거야. 본격적으로 실험하려면 세종섬이 제격일 테니.”
“저희는 그 실험장을 찾는 거고. …잠입은 어떻게 하시게요?”
“이걸로.”
도올이 자기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더니, 곧 마력을 일으키며 변신했다.
“짜잔.”
“…젠로스?”
“맞아. 우리가 직접 실험체가 될 거야. 아, 너희 말고.”
도올은 젠로스 중 한 여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카피했다.
“나랑 궁기가. 너희는 나랑 궁기를 각각 전담하는 요원이 되는 거고.”
“위험…하지 않을까요?”
“도깨비가 직접 계획한 거야. 너를 믿는 거지.”
“유미르. 한 번 보겠어?”
나는 펜션 내부의 전자기기를 통해 상세한 자료를 띄웠다.
“저들이 실험실에 끌려갔을 때 겪게 될 것들이야.”
“……!”
모자이크 처리했는데도 참상을 쉽게 알 정도로 끔찍한 장면들이 가득했다.
“이건….”
“내 기억 속에 있던 장면들을 마력으로 뽑아내서 사진으로 만든 거. 염사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도깨비방망이를 통해 셀프로 뽑아낸 기억이다.
“저들은 악마를 이렇게 연구했어. 젠로스라고 해도, 이렇게 연구할 가능성이 있지.”
“저는 뭘 하면 되죠?”
“선택.”
할까 말까 선택을 내리는 게 아니다.
“백금태양으로 대놓고 나설지, 아니면 백금태양으로서의 모습을 숨기고 완전히 새로운 컨셉으로 나설지.”
“…결사의 인턴으로?”
“그래. 백금태양은 정의로운 히어로지만, 이런 일에 나서는 건 뒷세계의 일이니까.”
나는 새로운 자료를 꺼냈다.
“오늘 할 일은 네 컨셉을 정하는 거야. 어떻게 할래?”
“…할게요.”
유미르는 내가 보여주는 자료들을 한 번 더 훑으며,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몸에서 마력을 방출했다.
“그런데 저만 컨셉을 잡나요?”
“응?”
“결사라는 걸 공개하고 움직이는 건가요, 아니면 결사인 걸 숨기고 움직이는 건가요?”
“모습을 드러내도 별문제는 없는데.”
도깨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일인 만큼, 결사가 나서면 얼마든지 수습할 수 있다.
“그럼, 아예 제3의 세력이 되는 건?”
“……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예전부터 하던 생각이요.”
유미르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노트북 앞에 앉더니, 뭔가를 검색하며 새로운 자료 하나를 꺼냈다.
“이런 컨셉으로 나서보는 건 어때요?”
“…오.”
이것 참.
“부캐양학은 못 참지.”
재미있겠는데.
* * *
그 시각, 부산 정부청사.
“태조는 아직도 방에 처박혀있는가?”
“예. 아무래도 이번 ‘세종행’ 작전에 자신이 열외된 것에 아직도….”
“쯧.”
대통령 태채진은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S급이라고 해도 히어로로서의 능력이 S급인 거지, 이런 국가적 일에 나서는 부분에 있어서는 A급보다 못하거늘….”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 돼. 부족해. 녀석은 아직 영웅 놀이에 심취한 녀석일 뿐이야.”
집무실 벽에 걸린 TV 화면이 반짝이자, 수많은 이들의 프로필 사진이 떠올랐다.
“공식적으로 여객선에 직접 오르는 S급이 두 명. 세종섬 현지에서 지원을 나올 S급이 두 명. 거기에 ‘비공식적’으로 호위함에 타고 나설 S급이 한 명. 1위인 그 친구를 제외하면, 사실상 2위부터 6위까지 모두 동원되는 작전이라고.”
세종섬에 스노우화이트와 바리데기.
비공식 호위함에 척준경.
거기에 여객선에 직접 타서 세종섬까지 안전하게 호위할 다른 둘까지.
“거기에 호위함으로 각종 군함이 무려 30척이나 붙었어. 젠로스들을 무사히 세종섬으로 옮기기 위해서.”
부산항에서 세종섬까지 여객선으로 얼마나 걸린다고 이렇게 호들갑을 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마저도 군함 동원이 줄어들었다.
“참 신기한 세상이 되었지. 군함 30척보다 S급 두 명이 더 믿음직한 시대라니.”
“그만큼 이능력이라는 게 강하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래도 태조는 안 돼. 자기가 왜 제외되었는지도 모르는 녀석이 혈기만으로 이런 중요한 임무에 나설 수는 없는 일이야.”
“항간에서는 장손을 감싸기 위함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내가? 장손을? 장손이라고 안전한 곳에 두려고 했으면 그 녀석이 그렇게 나대도록 가만히 놔뒀겠나.”
태채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젠로스 중에는 녀석과 예전에 사귄 여자도 있어. 그러니까 녀석도 그걸 알고 어떻게든 호위함에 같이 승선하려고 하는 거야.”
“…….”
“개인의 감정? 좋다 이거야. 그런데 그런 사적인 이유로 임무에 참여한다면, 나중에 사고라도 생겼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개인의 감정을 우선시하다가 사고가 난 경우는 정말로 많지요.”
“그래. 장 보좌관, 자네도 알겠지만, 영웅이라는 건 정말 섬세한 존재야.”
태채진은 태극워치를 두드려, 기밀문서 하나를 열었다.
“일본이, 중국이, 러시아가 어떻게든 접촉하려고 작정하고 달려들고 있어.”
휴민트든 뭐든, 국가의 모든 첩보망을 동원해서 얻은 극비문서에는 잠수정과 비행기를 비롯한 온갖 사진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자네, 정말로 젠로스들을 백신 맞추는 일 때문에 수송이 느려졌다고 생각하나?”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조금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자들을 전부 솎아내다가 시간이 지연된 것 아닙니까.”
“그렇지. 자네 말대로, 우리는 사람을 동원하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했네.”
태채진은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의자에 푹 눌러앉았다.
“젠로스와 친인척인 자를 빼고, 젠로스 피해자와 친인척인 자를 빼고, 지연, 학연, 혈연이 하나라도 엮인 자를 빼고, 거기에 배에 승선하려는 인원 중에서 과거에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던 자들을 빼고. 수상한 전화나 메일을 받은 자들도 빼고. …다 빼고 빼다 보니, 간신히 이런 인원을 모을 수 있었지.”
정부는 지독할 정도로 인원을 추리고 또 추렸다.
“이렇게 했는데도 놈들은 분명 나타날 걸세. 왜냐고? 나나 정부는 모든 대처를 다 했지만, 이능력으로 갑자기 허공에서 뿅 나타나는 그런 것까지 대처할 수는 없거든.”
가령, 허공을 열어젖히며 나타난다거나.
가령, 하늘에서 스카이랜딩으로 착륙한다거나.
가령, 바다를 헤엄쳐와서 군함 사이를 파고들어 점프한다거나.
“세종섬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자국의 젠로스를 확보하려고 할 걸세. 모든 국가가 전부.”
이것은.
일종의 세계대전이다.
“젠로스라도 확보해서 그걸로 연구하려고 한단 말일세. 이미 미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인체실험….”
“그런 거겠지. 악마였던 자의 몸 안에 남아있는 악마 세포 하나라도 발견한다면, 뒤틀린 유전정보를 얻어내서 그걸 연구한다면, 어쩌면 악마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세계 지도가 펼쳐졌다.
푸르게 물든 지도 위, 붉은색으로 반짝이는 곳들이 무려 17곳이나 나타났다.
“단 한 명도 빼앗겨서는 안 돼. 공간이동이든, 비행기 낙하 자유 납치든…. 그 어떤 역사를 살펴봐도, 유배지로 가는 죄인이 호송 중에 납치되는 일은 없었어. 그런 건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
불끈.
“그래. 저들이 젠로스를 납치해서 인체실험을 하든 말든.”
태채진은 주먹을 움켜쥐며 이를 갈았다.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 사람을 죽인 살인자들을 우리 땅에서 처벌해야지. 어딜 감히 자기네 나라로 데리고 가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