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2)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82화(183/668)
휘이잉.
항구에 바람이 분다.
갑판 밖으로 나와 있던 검은 정장의 청년은 태블릿 속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한국에서 피해가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러시아인입니다. 한국에서 재판받아서는 안 됩니다.
-따지고 보면 세종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관리하지 못한 잘못 아닙니까? 애초에 학생들을 악마로 만들지 말았어야죠. 교육을 어떻게 한 겁니까?
-두억시니라는 존재 자체가 저는 의심됩니다. 일단 한국의 요괴라면서요? 이는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병기이며, 자국민조차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뭔가 악마를 양산하려고 한 한국의 음모다….
“미친.”
청년은 절로 욕을 내뱉었다.
-비록 이능력을 전부 잃었다고 말은 하지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악마가 되었었다고 해도 그는 내 형제. 나는 내 형제를 구해 고향으로 돌아올 겁니다.
-일반인이 되었다면 이미 그걸로 모든 죗값을 치른 게 아닌가요? 이능력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일반인이 아니라 장애인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지금 장애인을 억압하고 있어요.
그가 보고 듣는 영상과 소리는 대부분 두억시니 사태에 관한 각국 정부의 비판과 비난, 그리고 음해가 전부였다.
굳이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쓰레기를 뒤적거릴 이유는 없었지만, 청년은 이들의 말을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청년이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적들’의 마음가짐이었으니까.
“여기 있었네, 오빠?”
“…왔어?”
청년을 향해 오빠라고 부른 정장의 여인은 캔 커피 하나를 들고 청년의 곁으로 다가왔다.
“또 뭘 보고 있어?”
“외국 반응.”
“그런 걸 왜 봐. 그냥 상대하면 되지. 남의 땅에 불법 침입해서 우리 죄수들 빼가려는 놈들은 다 악당이라고, 악당.”
“그래. 그런데 걔들이 왜 그런 짓을 할까 생각을 해봤어.”
청년은 다소 복잡한 얼굴로 캔 커피를 받았다.
“개중에는 정말로 자기 가족이 억울한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잖아.”
“나 참. 별걸 다 신경 쓴다. 오빠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왜 그런 것까지 신경 써? 세계연합 소속도 아니면서.”
“야.”
“내 이름 야 아니야. 김윤지라고. 하다못해 이명으로 부르든가.”
“뇌제야.”
“……아, 이 오빠 꼴 받게 하네.”
S급 히어로, [뇌제] 김윤지는 발끝에 전격을 모아 청년을 향해 휘두르려고 했다.
“확 썬더킥 맛 좀 볼래?”
“아프니까 그만둬.”
“맞지도 않으면서.”
“안 맞는다고 해도 사람한테 번개 두르고 돌려차기 날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청년, [투신] 이준영은 옆으로 손을 흔들며 거리를 벌렸다.
“힘 아껴둬. 첩보가 진짜라면 우리, 최소한 S급 다섯을 상대해야 할지도 몰라.”
“설마 진짜로 오겠어? 부산에서 세종섬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그 짧은 순간에도 습격할 수 있는 게 S급이잖아. 막말로 갑자기 허공을 열어젖히면서 튀어나오면 어쩔 거야?”
“걔는 우리 편이지 않을까?”
김윤지는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무사태평해 보이기도 했지만, 푸르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착한 애 같았잖아. 적어도 외국에서 죄수들 납치하러 오는 사람들 제압하는 거 도우면 도왔지, 함께 나서서 가져가시오 할 사람은 아니잖아. 안 그래?”
“…후.”
이준영은 태블릿의 전원을 끄며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나는 백금태양을 믿지 않아.”
“어머, 왜? 우리 제주도 파견 나가 있는 동안 본토 지켜줬잖아. 악마도 다 젠로스 만들어줬고.”
“정말로 한국을 위한 히어로라면 복면부터 벗어야지.”
“아항. 히어로는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해야 한다? 뉴욕에 있는 거미 인간이 슬퍼하겠어.”
“코믹스 이야기랑 다르잖아. …후. 하여튼 나는 자기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아. 판은 이렇게 벌여놓고 자기는 뒤에서 편할 때만 나타나다니. 그런 건 너무 이기적이고….”
“또, 또. 누가 애국 교육 받은 사람 아니랄까 봐. 오빠 같은 사람을 두고 뭐라고 그러는지 알아? 진지충 샌님 십선비라고 부르는 거야.”
“…선비는 좋은 말 아니야?”
“하.”
김윤지는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하여튼 어려서부터 국뽕 사상교육 받은 사람들이란.”
“말 함부로 하지 마. 네가 아무리 외국에서 살다가 왔다고 해도, 보편타당한 정의라는 게 있는 거야.”
“히어로로서의 신념이나 정의에 관해서 복잡하게 논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오빠. 나는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고 싶어질 뿐이야.”
김윤지는 구두로 가볍게 바닥을 두드렸다.
“여기 갑판 아래에 있는 죄수들, 안전하게 세종섬으로 이송한다. 한 명도 빠짐없이. 끝!”
“……너는 참 단순해서 좋겠다.”
“오빠가 쓸데없이 복잡하게 사는 거지. 아 참. 그 말 하려고 온 건데.”
김윤지는 음흉한 얼굴로 뒤를 가리켰다.
“세종 아카데미에서 온 책임자, 교수님이 오빠한테 관심 있어 보이던데?”
“…누구?”
“그 있잖아. 갈색 머리. 그, 리사라 라크슈미 교수님.”
“……크흠.”
이준영은 헛기침을 하며 태블릿을 들었다.
“지금 어디 계셔?”
* * *
폭풍전야.
세종섬에 들어오는 것도 세종섬에서 나가는 것도 통제되는 지금 이 시각.
“공간이동 참 편하네. 저기, 유미르라고 했지. 혹시 내 전속 비서가 될 생각 없어? 공간이동만 시켜주면 되는데. 주급 5천 줄게.”
섬으로 들어오는 게 너무나도 까다로웠던 나머지, 궁기는 결국 유미르 게이트를 통하여 울릉도에 들어왔다.
“주급 5천…?”
“그래. 어때?”
“저기 도올은 한 번 이용할 때마다 천만 원씩 준다고 하던데요.”
“뭐야? 도올, 너….”
“냐하항.”
가벼운 차림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던 도올은 궁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사실이야?”
“비행기 타는 시간이랑 공간이동 하는 시간이랑 다 따져보면 한 번에 천만 원도 안 아깝지 않겠어?”
“그래도 그렇지…!”
“간부가 오자마자 결속을 무너뜨리다니. 역시 무서운 히어로야. 백금태양.”
나는 자연스럽게 간부 사이의 균열을 조장하는 유미르의 언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다고 무너질 결사는 아니지만.”
“결사라뇨? 이번에 결사로 안 나서기로 했잖아요.”
“…무슨 대화가 오고 간 거야?”
“그렇게 됐다.”
궁기는 막 울릉도에 도착해서 잘 모르는 정보.
나는 유미르와 도올, 그리고 세종섬에서 정보를 취합하고 있는 주모와 함께 확정한 계획을 그녀에게 알렸다.
“그럼 도깨비의 계획은?”
“그건 그거대로 진행하는 거지. 유미르의 계획은 대놓고 습격이 이루어졌을 때를 가정하는 거야.”
일차적으로 내 계획을 우선시하되,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유미르의 제안을 따른다.
“결사의 간부급 인사 셋이 참가하는 전투지만, 결사가 나서는 게 아니야.”
“회장님은?”
“승인해주셨어. 이번에 인턴의 계획이 얼마나 잘 성공하는지에 따라서 인턴에 대한 서비스를 지원해주시기로.”
“대화가 통하는 분이라 다행이었어요.”
총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유미르에게 호의적이었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결사 차원에서 백금태양에 관한 사이버 여론전을 펼치기로 했어.”
“성공은 확정되어있고, 얼마나 확실하게 처리하느냐! 그게 제 목표랍니다. 히힛. 역시 불륜애국하던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 덕분인가?”
“…….”
“영상까지 하나 보내드려서 그런지, 되게 좋으신 분이었어요.”
뭐, 그렇게 됐다.
“그럼, 지금부터 작전을 설명하지.”
나는 두 명의 프로필 사진을 띄웠다.
“젠로스 중에는 악마가 되었지만, 인명피해를 일으키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각각 D급 악마 둘이었고, 이제 15살이 된 중학생들이지.”
아직 얼굴에 젖살도 빠지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지만, 두억시니는 이런 아이들에게도 악마의 씨앗을 심었다.
“궁기. 가족에 대한 접촉은?”
“준비는 다 끝났어. 우리가 빼내고 난 다음 보내기만 하면, 바로 외국으로 출국할 거야. 양양 공항에서 전용기 화물칸에 넣어서 보내면 모든 게 끝.”
우리가 ‘바꿔치기’할 학생들의 가족은 이미 포섭이 끝났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이들이었으나, 그들은 이능력을 잃었다고 해서 자식을 잃어버린 복권 취급하는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두 사람 부모가 그러더라. 태어나고 자라면서 크게 다쳐서 병원 신세를 지는 애들도 있는데, 우리 애들은 15살까지 누릴 거 다 누리고 행복하게 자랐으면 된 거 아니냐고.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뭔가…이능력자 부모 같지 않은 부모님들이네요.”
“아무리 그래도 젠로스가 서른 명 가까이 되는데, 그중에 부모 두 쌍 정도는 이래 줘야지.”
모두가 괴물 같은 부모일 수는 없다.
이능력을 잃었지만 사랑으로, 그리고 결사의 지원 아래에서 살아간다면 유미르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궁기. 도올. 저 아이들로 변신해다오. 그리고 나와 유미르는 몰래 잠입한 다음, 너희들의 주변에서 상황을 살피겠다. 혹시나 바꿔치기하는 게 우리만 해당하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
우리는 사람을 바꿔치기할 예정이다.
하지만 위정척사가 개입하고 있다면, 배 안에서도 뭔가 수작을 부리겠지.
“컨테이너를 통째로 바꿔치기하든, 안에 무고한 사람을 집어넣고 세종섬으로 넣든, 그도 아니면 배를 아예 대놓고 습격하든. 분명 놈들은 젠로스를 노릴 거다.”
“해외의 이능력자뿐만 아니라, 판데모니엄까지?”
“그래. 두억시니는 죽었지만, 아직 두억시니 말고 다른 이들이 있을 수 있으니. 위정척사가 나타난다면…이걸로 박살을 내는 거지.”
나는 방망이를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확실한 의지를 전했다.
“내 계획은 잠입, 정찰, 그리고 처형이 골자야. 모든 젠로스가 세종섬으로 들어가서 정부 공문에 적힌 젠로스 수감 시설에 들어간다면 작전은 종료.”
“하지만 한 명이라도 이상한 곳으로 간다면….”
“습격해서 초토화.”
꼬리를 밟는 즉시 놈들을 없애버릴 것이다.
“좋아. 도깨비 계획이야 뭐 알고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그럼 인턴은?”
“빨강까지 왔으니, 이제 완벽해졌어요. 빨강. 금발벽안. 녹색. 그리고 이렇게…변신!”
유미르는 손을 위로 뻗더니, 곧 신체가 반짝이며 줄어들기 시작했다.
“짜잔!”
“…그건 또 언제.”
“선생님 변하는 거 보고 연구했죠. 히힛.”
내 앞에는 유미르 릴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줄무늬 원피스, 하얀 스타킹, 구두만 신은 채 나를 향해 손으로 V자를 만들었다.
“저 따라 하면 결사라는 거 안 들킬 수 있어요. 자, 저처럼 변신하세요!”
“……나보고 지금, 이걸 하라고…?”
“흐흐흥. 재미있잖아. 왜? 쪽팔려? 어차피 우리인 거 들키지도 않을 건데.”
“아니, 하아. 이거 도대체 뭔데?”
“뭐냐고요? 이름하야.”
유미르는.
“잼민퍼프걸!”
캐나다에서 왔다.
“저한테 맞춰주시면 공간이동 스킬 알려드릴게요.”
“…….”
“아. 당연히 리더는 빨강인 거 알죠?”
“…….”
때때로.
인간은 욕망을 위해, 현실과 타협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