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5)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85화(186/668)
다시 또, 작가놈을 욕하지 않을 수 없다.
‘세탁 어중간하게 하려다가 작품 망쳤지.’
에르미나 슈테른페르트.
율리아나 페이그린.
원작 히로인들이 지금 하나는 악마 나베리우스가 되었고 하나는 유전자 도둑질을 한 빌런이 된 가운데, 나는 원작 속 히로인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천마 이예령도 그렇다.
저 여자는 작가의 번뇌와 고민, 그리고 이런저런 감정이 섞여 만들어진 캐릭터다.
-중국인 히로인은 좀 그렇겠지?
-그런데 중국에도 히로인이 한 명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럼 조선족 히로인을 넣을까? 그건 또 좀 그렇고.
라는 사고방식을 거쳐.
-아, 그러면 중국으로 망명간 히로인을 넣자!
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만들어진 캐릭터가 바로 전 한국 S급 히어로, 이예령이다.
뭐, 나름 세탁각을 잡으려고 단서는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마련해놓았다.
해그늘에 피해를 보기도 했고, 정부에게 개처럼 부려 먹히다가 고생하기도 했고, 부모를 걸고넘어지고 협박하는 모습을 보며 분노하기도 했고, 결국 부모를 데리고 외국으로 넘어가 부모를 저기 1,000평짜리 정원 딸린 집에 모시고 사는 효녀계 히로인이라는 뒷설정을 가지고 있다.
단지 중국으로 망명했을 뿐.
한국을 배신하고 다른 나라의 S급이 된 케이스는 많지만, 그중 단연 한국 사람들의 욕을 먹는 게 이예령이다.
‘멘탈 하나는 되게 좋아서 망정이지.’
한국에 있는 5천만이 전부 싫어하는 존재.
독자들도 ‘왜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냐?’라고 싫어하는 존재.
그러면서 동시에 일단 캐릭터는 나름 잘 뽑아내서 ‘왜 히로인에게 이런 거지 같은 설정을 붙여놓았냐?’라고 원성이 자자했던 존재.
그런 여자를 여기에서 볼 줄은 몰랐다.
“이봐. 뭐 해?”
“매국천마가 나왔다고 해서.”
“하. 그 웃긴 여자.”
내 앞, 다른 젠로스 하나를 마치 죄수 끌듯이 수갑에 달린 줄을 당기고 있는 상관 요원이 대놓고 천마를 비웃었다.
“머저리 같은 여자지. 자기 위에 스노우화이트가 있고, 그 여자한테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까 중국으로 넘어간 거야. 중국에서 여성 히어로 1등 찍고 있잖아? 쯧.”
“……그거 말고도 많지 않습니까?”
“그래. 돈 때문에 넘어갔지. 어휴. 우리나라 한 해 국방예산을 연봉으로 받는 거 보면, 나 같아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
이능력 관련 예산을 빼고, 순수하게 국방예산으로 들어가는 돈이 약 50조쯤 된다더라.
즉, 이예령은 연봉이 50조다.
“그, 50조면 중국 국방예산에서도 제법 큰 비율 아닙니까? 거의 1/7 정도 될 것 같은데요.”
“S급 한 명 연간 이용권으로 50조면 적절한 돈이라고 생각하겠지. 그 돈으로 탱크 뽑느니, S급 히어로 하나 데리고 있는 게 이득 아니겠냐. 탱크는 애를 못 낳잖아.”
“저라면 한 10조만 줘도 넘어갈 것 같습니다.”
“10조가 뭐냐? 나는 1조만 줘도 젖꼭지 달달하게 빨아줄 수 있는데. 어휴. D급으로 태어난 게 죄지.”
“…….”
심지어 개인 연봉이 그러하고, 부모를 향해 따로 들어가는 연금이나 환경, 이런저런 지원까지 포함하면 아마 그보다도 더 많은 금액과 지원을 받고 있을 터.
“항간에서는 중국에서 인센티브 같은 개념으로, 실적에 따라 세금을 면세해준다고 하더라.”
“그거는 그냥 돈 퍼주는 거 아닙니까?”
“돈을 퍼주더라도 S급 중에서도 상위권인 사람 한 명 데리고 있는 게 어디겠어. 어디는 돈이 있어도 S급을 구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곳도 있는데.”
“하긴.”
‘국적 바꿀 만큼 큰 금액인 것 같기도 하고.’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을 좇는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신 그로 인해 욕을 먹는다면 그건 본인이 감당해야겠지만.
“올해 10월 즈음에 있을 이능력자 국가대항전에 사활을 건 거지. 쯧쯧.”
“…….”
생각해보니 그런 이벤트도 있었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초대형 이벤트로서, 2025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각국의 S급들이 초청되어 대결하는 이능력자 월드컵 비슷한 이벤트가 있다.
물론, 이 또한 원작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한 이벤트.
거기서 주인공은 천마를 비롯한 온갖 이능력자를 꺾으며 진정한 S+급, 전 세계 1위 자리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당연히 월드컵인 만큼, 애국 행위도 엄청 많이 나왔다.
“에휴. 바깥에서 뭘 하든, 우리는 우리 일을 하면 되는 거지. 다 왔다.”
상관 요원과 함께 계단을 내려오자, 나는 이미 도착한 유미르와 도올 페어를 비롯한 다른 젠로스와 요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건 벌어지기 딱 좋은 곳이네.’
안 쓰는 세미나실로 보였고, 바깥이 보이는 창문 하나 없는 실내 공간이었다.
‘유미르는 잘하고 있고. 도올도.’
유미르는 나를 눈으로 한 번 흘기더니 묵묵히 앞을 바라볼 뿐, 내게 아는 척을 한다거나 안도하는 일 없이 요원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선배님, 저희 조 왔습니다.”
“어, 그래. 아직 한 조 안 왔으니까, 다 오면 같이 움직이자고.”
상관 요원이 더 높은 계급의 요원에게 말을 건네는 사이, 나는 젠로스의 면면을 살폈다.
다들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다.
자해를 해서 그런지 손이 꽁꽁 묶여있는데도 안에서 손을 문지르는 것 같은 소년도 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아직도 자신이 젠로스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여자도 있었다.
“흐흐, 흐흐흐, 흐흐….”
가장 심각해 보이는 건 광기 어린 헛웃음을 흘리는 남자.
내가 잡은 악마로, 그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거의 죽일 뻔했다.
‘안타까운 일이야.’
두억시니에 의해 강제로 악마의 씨앗을 주입 당해 악마가 되었던 이들이다.
젠로스 대부분은 자기 추악한 욕망이 폭발하여 악마로서 마음껏 난동을 부렸지만, 저 남자는 악마로서의 욕망을 이겨내고 악마가 된 자신을 모래사장에 뒹굴며 어떻게든 억누르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자가 지금 이능력을 잃고 여기까지 끌려왔다.
부모가 딱히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자에 가까운 것도 아닌 그저 ‘이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인 이들’.
즉.
‘실험체로 돌렸을 때, 뒤탈이 크게 없을 것 같은 이들.’
딱 봐도 그렇고, 조사된 자료 또한 그렇다.
높으신 분의 가족이나 지인이 사고가 생기면 골프장에서 전화 한두 번으로 해결되기 마련이지만, 이런 이들이 겪는 사고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테니.
구구구.
배가 크게 흔들린다.
모니터에는 스사노오와 뇌제, 천마와 투신이 각각 서로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어휴. 핵폭탄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하는 거 보니 진짜 무섭다니까.”
책임자로 보이는 자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어, 마침 왔네. 빨리 와. 늦었어.”
“죄송합니다. 데려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요원 하나가 수갑에 연결된 줄을 질질 끌고 있었다.
그 뒤로 사람 하나가 무슨 캐리어 짐짝처럼 딸려왔고, 그 모습에 젠로스 중 한 명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어, 어떻게 저런 식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어!”
“아아. 닥치시오. 악마에게는 인권이 없음.”
“악마 아니야! 우리는-”
“야. 쳐.”
퍼ㅡ억!
젠로스를 담당하던 요원은 젠로스를 그대로 뒤에서 목을 후려쳤다.
목덜미를 손날로 후려친다고 기절하는 건 아니지만, ‘이능력자가 일반인을’ 후려치는 경우는 많이 다르다.
“커헉.”
가벼운 뇌진탕까지 일어나며 젠로스가 고꾸라진다.
갑작스러운 폭력 사태에 젠로스들이 표정이 굳기 시작했고, 상관 요원은 기지개를 켜며 태극워치를 두드렸다.
“아아. 통신보안. 통신보안.”
파지직!
태극워치에서 무언가가 퍼지더니, 곧 우리가 모인 세미나실 내부의 불빛이 갑자기 사라졌다.
“작전 개시.”
상관이 말하기 무섭게, 요원들이 일제히 젠로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무-커헉…!”
기절시키는 게 목적인지 수도로 다들 목덜미를 쳤고, 나는 궁기를 향해 손을 들었다.
퍼ㅡㅡ억!
마력과 마력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궁기는 그대로 눈을 감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직접 때린 건 아니고 그냥 소리만 그렇게 냈을 뿐, 궁기는 자기 스스로 의식을 잃은 것처럼 연기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젠장.’
나나 궁기는 바로 눈치껏 행동했다.
유미르 쪽은-
“커헉!”
“…….”
배빵이었다.
유미르는 도올의 목덜미를 쳤다가 한 번 실패했고, 도올이 반항하듯 몸을 돌리자마자 바로 배에 주먹을 꽂아 넣으며 도올의 저항을 무력화했다.
“야, 야. 크게 다치게 하지 마. 뭘 그렇게까지 해.”
“죄송합니다. 저항이 심해서.”
“쯧. 하긴, B급이었으면 나름 저항할 법도 하지. 의식은?”
“없습니다. 기절했습니다.”
“그럼 됐어.”
당연히 공격은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마력만 폭발하는 소리만 들렸을 뿐.
“야, 슬슬 나와.”
“…….”
휴게실 너머, 창고처럼 보이는 곳의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대로 빠져나왔다.
그들은 전부 하얀 머리칼을 한 이들이었고, 어딘가 멍한 얼굴로 젠로스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즉시 수갑 풀고 교대한다.”
역시나.
유미르가 슬쩍 나를 보며 어떻게 할지 묻는듯했고, 나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갑에 손을 뻗었다.
철컥.
나도 유미르도 이미 확인할 건 다 확인했기에, 수갑을 푸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애초에 궁기와 도올을 바꿔치기하면서 우리는 수갑을 확인했으니까.
“요원들은 젠로스를 바꾼 다음, 컨테이너로 옮기도록.”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궁기와 도올이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디로 이송되는지는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없지만, 당장은 젠로스를 상대로 뭔가 수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진짜로 확인한 이상 답은 나왔다.
궁기와 도올이 보내지는 곳이 곧 악마의 연구소로 향하는 곳일 터.
이제 별다른 변수가 없으면ㅡ
끼익.
갑자기 세미나실의 문이 열렸다.
안에 있던 모두가 고개를 문으로 돌렸다.
“……어?”
철컥.
우리와 똑같은 요원 복장의 남자가 뒤에 젠로스를 데리고 나타났다.
품에서 담뱃갑과 담배 두 개비를 꺼낸 걸 보아하니, 아마도 젠로스가 담배라도 한 대 태우고 싶다고 해서 본인 재량껏 여기로 데려온 것일 터.
“그, 혹시 단체로 흡연하려는….”
저벅, 저벅.
상관 요원이 바로 입구로 다가갔다.
그 움직임은 전문가의 솜씨였고, 나는 바로 유미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할래.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뭔지 안다.
상관의 품에는 칼이 있고, 분명 불청객을 찌르려고 하겠지.
도깨비만 있었다면.
결사만 있었다면 나는 그걸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무고한 이가 찔려 죽더라도, 확실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여기서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미르는 죄송하다는듯 눈을 가볍게 감았다.
손을 가볍게 앞으로 찌르는 시늉을, 그리고 자신의 심장 부근을 엄지로 가리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호들갑을 떨지는 않겠지만.
-찔리면 움직이겠다.
-사람 죽는 걸 놔둘 수는 없으니까.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확고한 의지를 읽었고, 남들이 보지 못하게 그녀를 향해 엄지만 가볍게 척 들었다.
“안타깝네. 담배만 안 피우러 왔으면 그냥 조용히 살 수 있었을 텐데.”
“저기, 선배님? 갑자기 왜 그렇게 무섭게-”
푸ㅡㅡㅡ욱!
“선…배님…?”
“걱정하지 마라. 너도 같이 ‘코쿤’으로 보내줄 테니.”
상관 요원이 불청객의 심장에 칼을 찌른 순간.
유미르가 바닥에 튄 피를 본 순간.
사람이 죽는 걸 넘어갈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온 순간부터, 이미 내 계획은 어그러졌다.
“쯧.”
삼색의 마력이 휴게실 내부를 덮쳤다.
‘위정척사가 개입했다는 걸 확실히 확인했으니, 성과는 낸 셈이야.’
결사의 도깨비가 세운 작전은 망하겠지만, 지금은 도깨비가 아니니까.
‘가짜 영웅 놀이를 좀 해볼까.’
자.
깽판 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