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87)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87화(188/668)
내 계획의 골자, 그러니까 최소 목표는 달성했다.
-위정척사 스파이들의 확보.
최선은 세종섬 안에 있는 연구소 위치를 확인하는 거지만, 최악이라고 해도 여객선 안에서 젠로스를 노릴 이들의 정보를 확인하는 것.
최선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최악이라고 볼 수 없는 성과를 얻었다.
나머지는 궁기의 아래에 있는 요원들이 히어로 협회에 잠입한-혹은 배신한 위정척사의 첩자들을 상대로 정보를 빼내면 되는 일 뿐.
유미르의 계획은 우리가 ‘깽판을 친다’라는, 그러니까 무력적으로 나서야 할 때를 가정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예를 들어 우리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담배를 피러 휴게실로 들어왔던 이가 살해당하는 것처럼,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이 살해당할 경우 유미르는 즉각 난동을 부리자고 제안했다.
그래.
잼민퍼프걸이 활약할 상황이 나와버렸다.
-그건 안 돼요.
나는 안도하며 잼민퍼프걸이 나설 것을 기대했지만, 예상 외의 곳에서 태클이 걸렸다.
-잼민퍼프걸 같은 걸 하는 것보다, 도 과장님이 하는 게 제일 확실하게 효과를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회장님?
-도 과장님? 잼민퍼프걸은 좀 더 ‘빌런을 퇴치하는’ 상황에 동원하기로 하죠. 정의로운 히어로라면, 이런 일에 나서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유미르는 단순히 정체를 바꾸는 것으로 계획했지만, 총수는 거기에 한 가지 더 설정을 불어넣었다.
-나중에 거대한 악마가 나타났을 때 잼민퍼프걸이 등판하는 걸로 하고, 이번처럼 위정척사를 노리는 상황이라면 아예 제 3의 세력이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아니.
-결사가 아닌 척 한다. 그렇다고 위정척사인 척 할 수도 없다. 아예 완전히 다른 조직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역시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내는 게 답이죠.
회장은 말했다.
결사가 나서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이 결사가 나선 건지 아예 모르게 하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여 사람들의 앞에 섰다.
그 누구도 내가 도깨비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도록.
“흥.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군.”
“…소속과 정체를 밝혀라.”
이준영은 당황을 애써 감추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말했을텐데? 본인은 ‘어둠의 카리스마’.”
“소속은?”
“나는 소속이 없다. 나는 애국의 수호자요, 초능력의 각성자이며,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키는 존재이며, 평화의 사자이며, 지나가던 나그네라고 할 수 있지.”
대충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하지만 굳이 어느 조직을 지칭하라고 한다면, 그래, ‘검은 세피로트’라고 하마.”
“검은…세피로트…?”
그게 뭐야, 라고 하는 눈빛이다.
어지간히 복잡한 설정이나 어딘가 감성을 자극하는 설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세피로트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는 사람들은 ‘왜 하필 그 이름을 쓰는 조직이지’라고 생각하겠지.
상관없다.
이름에, 의미는 없으니.
-대충 사람들 혼란스럽게 만드는 게 목적이니까, 별 신경은 쓰지 마요. 후후후.
총수가 직접 지은 조직명이다.
조직원은 나 어둠의 카리스마 한 명.
이외에는 아무도 없음.
“네놈들의 목적은 뭐냐!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간 거지?!”
“흥! 나약한 자들을 구제하러 왔을 뿐!”
떡밥을 물었다.
지금부터, 나는 미리 계획된 시나리오 중 하나를 머리속에서 꺼내 대사를 읊어야 한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나약한 자들의 갱생! 이능력소실? 으하하하! 웃기지 마라!!”
펄럭.
한 번, 쓸데없이 망토를 휘날려주며 손도 크게 움직여준다.
“한 번 이능력자는 영원히 이능력자! 젠로스? 이능력소실?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형태일 뿐!”
어떤 존재든, 사람들의 앞에서 뭔가 이야기를 펼치려면 그 행동에 대한 목적과 행동 원리가 있어야 한다.
“그들이 이능력을 잃은 건 백금태양이라는 자의 영향이 아니다! 본인들의 의지가 나약하기 때문! 나는 그런 나약한 자를 나와 같은 이능력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
국가에서 군함 30척을 동원하여 이능력소실자라는 죄수를 호송하는 과정에 나타나서 깽판을 친다면, 그런 존재가 내세울 수 있는 논리는 뭐가 있을까.
“내가 직접 그들의 썩어빠진 정신을 교정하겠다! 진정한 이능력자로서 다시 정신을 무장하여, 이능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 전력으로!”
“네가…너 혼자서 그들의 이능력을 부활시키겠다고…?”
“내가 그들의 이능력을 부활시키는 게 아니다! 죽은 이능력의 부활! 그것은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 남이 시켜준다고 가능한 게 아니지!”
바로, 신념있는 미친 놈의 사상과 논리다.
“재미있는 의견이네. 의지만 있으면 다시 이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하늘에 떠있는 나를 향해, 천마가 스리슬쩍 다가왔다.
“정말 의지만으로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흥! 이능력자의 의지야말로 이능력자의 강함을 드러내는 척도! 의지가 약해빠진 자 따위, 강해질 수도 없는 법!”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세계구급 설정 스포를 저지르지만, 과연 이 말을 듣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감화될 지는 모르겠다.
“전 세계의 이능력자들이여! 강철과도 같은 의지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저 패배견에 불과한 법!”
참고로.
도깨비는 이런 말 따위는 아예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악마를 때려죽이지.
“나약한 정신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특히, 진실로부터 눈을 돌리고 자신의 에고를 세상에 강요하는 범골이라면 더더욱!”
나는 일부러 시선을 바다 쪽으로 돌렸다.
당연히 모두가 내 시선이 닿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고, 그곳에는 스사노오가 있었다.
“현실로부터 눈을 돌린 어리석은 이능력자! S급의 수치일 뿐이다!”
[뭐라고!!]스사노오가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뇌제가 그걸 막으려고 했지만, 스사노오의 기세에 스리슬쩍 옆으로 물러났다.
뇌제의 눈을 보니, 아마도 나라는 존재에 대해 태극워치를 통해 대충 파악한 것일 터.
그게 아니면 내가 얼마나 잘났길래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건지 궁금했겠지.
어떤 미친 놈이 S급 넷이 싸우는 자리에서 몰래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들겠는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스사노오를 통해 내 힘을 측정하려고 할 터.
[이상한 변태 가면 주제에!!]반응하지 않는다.
좀 더, 좀 더 가까이 왔을 때.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는 놈들은 또라이거나 변태밖에 없다고 그랬어!]“흥! 어리석은 녀석!”
나는 마력을 일으켰다.
평소의 도깨비가 가진 색과는 다른, 여러 가지 색이 뒤섞여 혼탁해진 것 같은 마력의 색을 내 몸 뒤로 방출했다.
“이능력자라면, 자신의 이능력과 힘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것!!”
[……!!]스사노오의 발이 잠시 멈칫했다.
“이미 나의 힘으로 나 자신을 증명하고 있거늘, 무엇을 더 감춘단 말이냐!”
내 외침을 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 말에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보여주마! 이능력의 정점! 지상 최강의 힘을! 그 무엇도 견줄 수 없는, 천지를 뒤흔드는 절대무적의 힘을!”
[이, 이…! 스사노오는, 결코 지지 않아!!]자신의 이능력을 3자화하며 내게로 달려온다.
주먹을 불끈 쥐고, 어깨 뒤로 넘기는 자세는 전혀 싸움꾼의 자세가 아니었다.
구구구.
내 뒤로 거대한 원이 펼쳐졌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도깨비 방망이를 이용해 궁기와 도올의 힘을 섞어, 거기에 유미르의 마력까지 섞어 찬란한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환수가 아니다!!”
약속의 대사와 함께.
“신이다!!”
번쩍!
황금빛 거인의 몸에 검은 선이 펼쳐진다.
원래라면 검은바탕에 노란선이 생겨야겠지만, 저 거인을 이루는 마력 대부분은 내 것이 아니라 유미르의 것.
“마나 에너지, 최대로!!”
그렇다.
저 마력, 전부 유미르와 궁기와 도올의 것이다.
-잼민퍼프걸 같은 것보다, 좀 더 확실하게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걸로 하죠. 막 빛의 거인 같은 건 어때요?
라는 총수의 의견이 더해진 최종병기.
“보여주마! 세피로트의 거신이 가진 힘을!! 의지의 힘을!!”
나는 한 팔을 앞으로 뻗는다.
이런 이능력을 사용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시전자와 마력으로 만들어진 이형의 움직임이 결코 연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구구구.
양손에 반짝이는 금빛을 두르며, 빛의 거신은 허리를 꺾으며 오른팔을 뒤로 넘긴다.
스사노오 잼민의 자세와는 확연히 다른, 격투기 좀 한 사람들이라면 영상을 녹화 떠서 자세를 연습할 정도로 완벽한 자세로.
“갓, 핸드 크러셔ㅡㅡㅡㅡ!”
스사노오를 향해, 거신이 빛의 주먹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세 S급의 마력을 극한까지 담아 휘두른 공격을 스사노오가 받아낼 수 있을 리는 만무.
퍼ㅡㅡㅡㅡ억!!
스사노오의 머리가 찌그러졌다.
거신의 주먹은 스사노오의 머리통을 으깨며, 가운데로 파고들어 스사노오의 머리를 오목하게 만들어버렸다.
푸스스스.
스사노오의 몸이 안개가 되며 사라진다.
명치 부근에 있던 스사노오의 본체, 소년은 멍한 얼굴로 바다를 향해 떨어졌다.
“이것이…의지…!”
풍덩!
스사노오는 바다를 향해 뒤로 떨어지며 안개처럼 바스라졌다.
“갈채하라! 강인, 무적!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을!”
빛의 거신 또한 빛무리가 되어 사그라든다.
머리가 으깨져 뒤로 넘어가며 부서지는 스사노오와 달리, 할 일을 다 했으니 아래에서부터 체계적으로 몸이 사라지며 주변을 밝게 비춘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의미불명의, 승리의 포효와 함께.
“흥.”
나는 승리를 만끽했다.
…어둠의 카리스마로서.
* * *
“…….”
백설희는 심각한 얼굴로, TV 속에서 광소를 터뜨리는 정체불명의 남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우, 언니. 미친 것 같아요. 저거 대체 뭐예요?”
“…몰라.”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지금까지 저런 이능력자가 이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는데.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환 씨는 저런 사람이 아니라서.’
도지환은 저런 짓을 안 하니까.
“언니. 저 사람, 약간 스트레스 푸는 것 같지 않아요?”
“몰라.”
저런 기행광인 따위, 백설희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궁금한 건 저 사람이 납치했다는 사람들이 안전하냐, 그 뿐이야. 뭐, 그래도.”
백설희는, 어딘가 괜히 안쓰러워졌다.
“…평소에 스트레스가 많았나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