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2)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92화(193/668)
이능력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것.
하지만 그런 이능력자 중에서, 그런 이능력자가 있지 않을까?
모든 이능력을 알고 있는 존재.
모든 이능력을 쓸 수 있는 존재.
그리고 그런 이능력을 다른 이에게 부여할 수 있는 존재.
이능력자가 아닌, 00년대 이전에 태어난 이들에게도 이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존재.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를 전 세계 사람들이 원할 것이다.
이능력자가 아닌 자들은 이능력자가 되고 싶어서.
이능력자인 이들은 더 강한 이능력자가 되고 싶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이능력을 독점하고 싶어서.
소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가진 이능력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이는지.
남들은 그저 평범한 E급 이능력자인 줄 알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소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능력을 이용해 빠르게 세상으로부터 독립했다.
그리고 결사를, ‘이매망량’을 만들어냈다.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룹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킨 그녀는 소소하지만 확장적인 행보를 통해 어느새 미국을, 재계를 집어삼켰다.
그녀의 목표는 세계정복.
우선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여, 모두를 이능력자로 만드는 게 일차적 목표다.
사회적 혼란?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총수는 이능력을 부여하는 자야. 나는 이능력을 소멸시키는 자지. 그리고 너는 이능력을 강탈하는 자.”
최종보스.
진최종보스(연중크리).
주인공.
“아마도 전 세계에 나와 너, 그리고 총수 말고는 이능력 자체에 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신기하네요. 그럼 왜 지금까지 결사에서는 저를 특정하지 못한 거죠?”
“못 찾은 거지. 찾고 있었지만, 설마 그게 너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미국은 총수의 주 무대라고 할 수 있지만,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사의 인력을 동원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만일, 나라는 존재가 없었으면 너를 계속 찾아다녔을 거야. 주는 자가 있으면 거두는 자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아하. 선생님의 존재 때문에 저를 굳이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
이능력을 강탈하는 것.
이능력을 삭제하는 것.
“결국 이능력자를 비능력자로 만든다는 결과는 같고, 굳이 이능력을 빼앗아봐야 그거 재활용할 필요도 없다고 판단을 내렸던 거지.”
“이미 더럽혀진 이능력이라서?”
“더럽혀진 중고보다는 신상이 더 좋지 않겠어?”
나는 유미르와 함께 태블릿 속, 녹화 영상을 다시 훑었다.
[이름.] [박은정입니다.]취조실.
도깨비방망이에 머리를 얻어맞은 박은정은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반듯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이.] [21살입니다.] [지금까지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지?] [히어로 협회의 정보요원으로서 죽인 이가 셋입니다.] [남자친구는?] [없습니다.]마치 무협지에서 섭혼술에 걸린 사람처럼, 대기업 면접관 앞에 앉은 입사지원자처럼 그녀는 묻는 말에 곧이곧대로 다 대답했다.
[이능력을 각성하고 난 뒤에 든 생각은?] [이능력자는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능력을 각성하지 못한 자들은?] [대격변 이전이든 이후든, 이능력을 각성하지 않은 자들은 모두 도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이능력 우월주의자였네요.”
“한국이든 어디든 저런 사상을 가진 사람은 한둘이 아니니까.”
[이능력을 써야 하는 곳은 어디지?] [저를 방해하는 걸 제거하는 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판데모니엄, 위정척사와 결탁한 이유는?] [더 강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힘을 이용해서라도.]박은정은 내 질문에 술술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냈다.
기억을 잃기 전, 어쩌면 ‘인격이 삭제’되기 전의 박은정은 전형적인 이능력 우월주의자였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존재였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이능력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총수는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나는 본격적인 정신교육이 끝난 뒤의 박은정을 상대로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꺼냈다.
“모든 이능력자가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이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최소한 공무원만큼 사회를 위해 일하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
“뭔가 공무원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느낌이 이상해지는데요?”
“음, 그럼 이렇게 정정하자.”
모든 이능력자가 슈퍼 히어로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능력자들이 모두 소방관이나 흉부외과 의사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거야.”
내가 가진 이능력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비능력자를 도우며 이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일종의 재사회화지.”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고, 강제로 바꿔버린다…. 윤리적으로 말이 나오겠는데요.”
“알아. 그러니까 우리가 빌런 조직인 거야.”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과정이 과격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거 봐봐.”
나는 마지막 영상의 끝을 가리켰다.
[박은정. 앞으로 네 인생의 목표는?] [저는….]5월 2일.
다른 사람들의 앞에 나서기 전, 새롭게 태어난 ‘네오 박은정’은 기계와도 같은 자세로 답했다.
* * *
“국가와 인류를 위해 공헌하고, 보편타당한 사회 정의를 실현한다. 그것이 제가 다시금 깨달은 히어로 협회 요원으로서의 마음가짐입니다.”
“…….”
히어로 협회장, ‘정기조’는 눈앞에 있는 박은정이라는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은정 씨.”
“예, 협회장님.”
“예전이랑 많이 다르네. 당장 세종섬 임무 투입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완전 껄렁했는데.”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답을 할 여자가 아니다.
탁자에 다리를 떡하니 꼰 채로 빈정거리며 짜증을 내던 여자였다.
“무슨 고문이라도 받은 건가?”
“그런 적 없습니다. 그저 히어로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다시금 자각했을 뿐입니다.”
“뭐 그린캠프라도 다녀왔어?”
“그린캠프…. 제가 군대는 모르지만, 어쩌면 그와 같은, 아니 그보다도 더 확실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은정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어딘가 약물이라도 강제로 투여받았으면 말이라도 어눌했을 터.
하지만 박은정은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녀는 담담했다.
“은정 씨. 복귀하고 나서 미안한 말이지만, 은정 씨는 한 달 정도 저기 마산 쪽 연구소로 보내질 거야.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은정 씨를 비롯한 다른 요원들을 이런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 보낸 건지 확인할 거라고.”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 그걸로 저희의 ‘개심’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
개심.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한다?
“뭐, 마음속에 있던 ‘악’이라도 강제로 정화된 건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갱생의 여지가 있다면 반성하고 평생 뉘우치며 살아야겠지만, 그마저도 부족하다면 구제가 필요하겠죠.”
“그건 자기 스스로 강제로 뭐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세뇌를 받은 걸 인정하는 건가?”
“세뇌는 아닙니다. 단지 깨달음을 얻었을 뿐.”
박은정은 온화한 얼굴로 자기 가슴에 손을 올렸다.
“위대한 존재를 만나 영성을 깨닫는 것처럼, 저는 정의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제게 일깨워 주는 분을 만났을 뿐입니다.”
“어둠의 카리스마?”
“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부르고 계시지만, 저희에게는 진정한 ‘정의의 아군’입니다.”
“…….”
협회장은 손으로 잠시 얼굴을 덮었다.
“그래. 그들이 말한 정의가 뭐지? 빌런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
“사회의 보편타당한 이치와 관념에 따라, 그리고 자신이 가진 신념에 따라 행동하라.”
“은정 씨,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능력 우월주의 아니었어?”
“그랬습니다. …부끄럽군요.”
박은정은 수치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다리까지 오므리며 비비는 게 과거의 ‘흑역사’를 지적당한 것에 무안해지고 부끄러워진 것 같았다.
“인정합니다.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그만큼 이 능력을 나 자신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세뇌된 건가?”
“그게 세뇌라고 한다면, 저는 세뇌되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악으로 똘똘 뭉쳐있던 박은정은 사라지고, 진정한 히어로 협회의 요원이자 영웅이 되기를 바라는 박은정이 되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아.”
협회장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가 살다 살다 빌런으로 타락하는 히어로들은 많이 봤지만, 이건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정의 타락? 재사회화? 강제 세뇌? 뭐 마법의 빠빠가루라도 들이킨 건가? 아니면….”
순간, 협회장은 어렸을 때 본 특촬 만화영화가 생각났다.
“…뭐, ‘픽서빔’ 같은 거라도 맞은 건가?”
“예? 그게 뭡니까?”
“아니면 ‘마인드 크래시’라도 당한 건가?”
“예?? 회장님. 그, 혹시 모르는 이능력이라도 새로 생긴 겁니까?”
“……너무 옛날 건가.”
협회장은 잠시 씁쓸함에 컵을 들어 커피로 목을 축였다.
“나도 옛날 사람인 건가….”
블랙커피인데, 왠지 모르게 달게 느껴졌다.
“좋아. 은정 씨. 정의의 아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히어로의 길을 다시 걷게 된 건 축하해. 그런데.”
협회장은 사진 하나를 띄웠다.
“이건 안 하면 안 될까.”
“안 됩니다.”
사진 속.
박은정을 비롯한 히어로 협회의 요원들이 전부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듀얼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거야, 이게.”
“듀얼…뭐요?”
“…하아. 너는 모르겠지만, 그런 게 있다고오오….”
협회장은 차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남들은 자신을 틀딱이라고 부를지언정,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리움이 들지만 현실의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하는 걸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무튼, 그래. 하여튼, 고문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이해하면 되지?”
“예. …하나, 있었다고 한다면.”
“뭐지?”
협회장은 귀를 쫑긋 세웠다.
“무엇이 고문이었나?”
“삼시세끼가 한식이 아니라, 한 끼 정도는 양식이 섞여 나왔습니다.”
“…….”
“점심으로 빵과 스프, 스테이크, 구운 브로콜리 등이 나왔습니다. 한식으로 세 끼가 아니라, 양식이 섞여 있었습니다.”
“김치도 없이?”
“김치랑 피클을 같이 줬습니다.”
“……그럼 됐다.”
정기조(40세, 히어로 협회 협회장)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세탁기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