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193)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193화(194/668)
사람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두렵다.
사람이 갑자기 행동이 변하면, 그것도 상당히 올바른 방향으로 변하면 ‘뭐지, 저거 곧 죽을 때가 되었나’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다들 미쳤어.”
히어로 협회 협회장, 정기조는 그래서 박은정을 위시한 협회 요원과 1:1 상담을 통해 그들의 본심을 파악하고자 했다.
“다들 선행에 미쳐버렸다고.”
그리고 깨달았다.
빌런 타락도 아니고 ‘정의 타락’이라는, 마치 강제로 마음이 개변된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재탄생했다는 것을.
“…어떤 방법인지 정말 궁금하군. 쯧. 설희 씨. 설희 씨는 어떻게 생각해?”
“히어로 협회 요원들이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린 거요?”
“하루아침은 아니고 납치된 동안이지만.”
“그런 거 따지면 머리 아파요, 협회장님.”
백설희는 협회장실의 벽, 방마다 연결된 CCTV를 훑었다.
“그래도 조금 무섭긴 하네요. 맨날 놀거나 하던 사람들이 건전한 방향으로 자기계발하는 모습이.”
“그래. 책 하나 안 보던 녀석들이 책을 읽지 않나, 임시로 머무는 공간을 청소하지를 않나, 방 안에서 각자 루틴에 맞춰서 운동하지 않나. 심지어 방 안에서 내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능력까지 자체적으로 연마하고 있다고. 거기에….”
“CCTV 24시간 라이브로 감시하는 것까지 동의한 거요?”
“그래! 개인정보라면서 자기 사진도 못 찍게 하던 녀석들이, 지금 ‘이해합니다’라면서 24시간 감시하는 것에 동의했다니까?!”
협회장은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이상해. 이상하다고. 저럴 애들이 아니잖아. 너도 알겠지만, 쟤들이 어지간히 막장이야?”
“갱생한 거죠.”
“1년이 지난 것도 아니야! 며칠 지났다고 갑자기 사람이 저렇게 바뀌어?”
“사람은 약간의 계기만 있어도 바뀔 수 있어요. 기계가 아니니까.”
“차라리 기계라서, 완전히 새로운 명령어가 입력된 거라고 해줘. 나 진짜 무섭다고.”
“뭔가요?”
“갑자기 옛날처럼 돌아가 버릴까 봐.”
협회장은 한 남자를 가리켰다.
“창식이 봐봐. 저놈이 저럴 애가 아니잖아. 지금 모습이 참 바람직하긴 한데, 옛날 같았으면 컴퓨터 최고 사양으로 가져오라고 한 다음 그걸로 CTA 하면서 사람 죽이고 다녔을 놈이라고.”
“게임 얘기죠?”
“그래. 게임. …하아. 진짜 뭐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어디 구타당하거나 고문당한 흔적은 하나도 없잖아요.”
“그래서 더 무서운 거야. 하아….”
협회장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한탄했다.
“정의로운 방향이든 뭐든, 인간을 한쪽으로 강제로 개조해버린 것만 같아서.”
“…….”
“내가 철학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개인의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채 사회와 정의를 위해 살아가는 걸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글쎄요. 그런 건…광익공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광익공은…쯧.”
협회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차라리 저들처럼 되었으면 좋겠군.”
“예?”
“…후. 아니다. 아니지. 설희 씨니까 이야기는 해야겠어. 설희 씨.”
협회장은 너무나도 진지한 얼굴로 백설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광익공은….”
“협회장 아재!!”
“……아 씨. 설희 씨.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밖에서 들려온 고함에 협회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재! 이능력소실자들, 만나게 해줘!”
“…태조. 태극워치로 동영상 녹화 켜서 들어오는 건 나 협박하는 거냐?”
“아니야! 나는 여러 사람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온 것뿐이야!”
“기밀이 가득한 곳에 카메라 들고 오는 것부터 일단 보안 유지 의무 위반인데.”
“앗!”
협회장실에 불쑥 들어온 태조는 태극워치를 손으로 눌러 영상 촬영을 멈췄다.
“…그, 그래도 만나게 해줄 거지? 영상 껐어!”
“함부로 만나게 해줄 수는 없다. 왜 만나고 싶은지 이유가 타당하지 않으면.”
“궁금하니까!”
“궁금해서 이렇게 냅다 들이닥친 거라고?”
“어!”
태조는 당당했다.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협회장은 표정 없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릴 뿐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말이야, 내가 어렸을 때 어른 앞에 와서는 공손하게….”
“궁금한 이유를 말하면 만나게 해줄 거야?”
“뇌제? 너까지?”
방 안으로 다른 S급, 뇌제까지 들어와 태조의 옆에 섰다.
“설마 태조를 미끼로?”
“막내잖아. 이런 건 막내가 나서서 해야지. 안 그래, 오빠?”
“……투신까지?”
S급이 무려 셋이나 찾아와서 협회장의 앞에 섰다.
“설희 씨. 뭐라고 말 좀 해봐. 지금 얘들 나한테 협박하는데?”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설희 씨?”
“이능력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뭐겠어요. 이능력을 잃는 거지. 그런데 이능력을 되찾은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궁금할 수밖에 없죠.”
백설희는 담담한 얼굴로 세 S급의 옆에 섰다.
“어차피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식 공개할 거잖아요. 그들의 이능력은 어떻게 되었는가. 완전히 새로운 이능력을 각성한 건지, 아니면 또다른 이능력이 생긴 건지.”
“…….”
“협회장. 요원들이 갑자기 정의의 아군이 된 것보다, 지금 그게 더 중요한 게 아니겠어요?”
악한 자가 갑자기 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젠로스가 다시 이능력자가 되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전 국민이, 아니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어요. 지금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젠로스들이 어떤 이능력을 가졌는지.”
“…그게. 태조야. 게임적으로 이야기하면, 너 바로 알아들을 수 있겠냐?”
“게임적으로?”
“어. 협회장 공식 발언 아니다. 그냥 사석에서 말하는 거다.”
협회장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레벨 초기화 전생 시스템 같은 거, 혹시 들어본 적 있냐?”
* * *
[협회장 “강하게 뉴게임”, E급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능력자 생활.]“요즘 신문기사는 라노벨처럼 헤드라인을 뽑아내네.”
마력을 조금 소모하고 난 뒤.
나는 울릉도 펜션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며, 세상의 정보를 파악했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자기 몸이긴 하지만, 부캐 새로 키우는 느낌인걸. 그렇지?”
한복 차림으로 나선 궁기는 내 앞에 녹차를 내어놓으며 옆에 데리고 온 한 소녀를 가리켰다.
그녀 또한 궁기와 마찬가지로 한복 차림이었다.
아래를 원피스처럼 입은 윤혜라와 달리, 붕대를 가슴에 칭칭 감은 형태였지만.
“어때? 지금 느낌.”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너무 그렇게 저자세로 있지 않아도 돼. 알겠지, 도은아?”
“네…!”
유도은. C급. 전 아카데미 중학생. 현 젠로스.
궁기가 바꿔치기했던 소녀이며, 악마였던 자신을 억누르다가 내게 발견되어 제압당한 소녀였다.
“도깨비도 막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봐봐. 이런 얼굴이 막 나쁜 사람처럼 보여?”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나쁜 남자인 건 맞는 것 같아요.”
“역시. 여자들 다 보는 눈 똑같다니까.”
“…….”
악마일 때는 몰랐다.
그냥 보이는 족족 봉인하고 부적 속에 가둔 다음, 그 부적을 저기 대전으로 보낸 다음 냅다 원래 형태로 되돌려서 그들이 소년인지 소녀인지 일일이 구분하지 못했다.
“도은 학생. 한 가지 물어볼게. 지금이라도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어. 어떻게 할래?”
“…저는 지금이 더 좋아요. 제가 있을 곳은 여기, 결사니까.”
유도은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저를 구해주신 결사를 위해서 일하겠어요. 설령 제 자리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들어가더라도. 더 이상 유도은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삑.
마침 TV에 유도은의 모습이 나타났다.
유도은과 똑 닮은 백발의 소녀가 히어로 협회의 훈련장에서 이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보시는 바와 같이, 유도은 양도 마찬가지로 E급의 마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사용했던 ‘마탄포격’을 사용할 수 없으나, 신체능력은 E급과 마찬가지로….
“조금 그렇겠다. 유도은이 아닌 존재가 유도은으로 살게 된 거.”
“…어쩔 수 없죠.”
유도은은 자기 모습을 한 소녀를 보며 쓰게 웃었다.
“결사의 요원이 되기로 했으니까.”
“힘들 텐데.”
“괜찮아요.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서, 다시 원래 능력만큼 되찾으면 돼요. 궁기님 말씀대로, 커리큘럼 따라서 잘 따라가면 최소한 2년 안에 C급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부모님도 같이 미국에 따라오기로 하셨고.”
“…졸지에 딸 버린 부모가 된 거, 미안하다고 말씀드려줘.”
“괜찮아요. 후후.”
복잡할 건 없다.
우리가 바꿔치기했던 소녀 유도은은 결사에 들어오기를 원하고.
유도은이라는 소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판데모니엄에서 준비했던 ‘실험체’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으니까.
유전자는 다르지만, 악마가 되면서 유전자가 변형되었다고 대충 둘러대면 끝이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고 해도, 유도은이 특이 케이스라고 하면 끝일 뿐.
“제가 걱정하는 건 저 여자애, 자기가 나중에 ‘나는 유도은이 아니다!’라고 막 하는 건 아니겠죠?”
“결사에서 계속 관리할 거야. 자기도 비능력자가 이능력자가 되었으니, 그 축복을 잃기 싫으면 최선을 다해 유도은으로 살아가겠지.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렇죠.”
유도은은 한복의 윗부분을 살짝 들어 올렸다.
붕대 안쪽, 가슴골로 들어가는 부근에 궁기의 마력과 같은 색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문장은 마치 불꽃의 새가 날개를 펼치는 듯한 것이었으나, 은은하게 빛날 뿐이었다.
-한 편, 젠로스들의 몸에 새겨진 이 정체불명의 문장에 대해….
그건 저기 가짜 유도은도 마찬가지.
다른 게 있다면 이쪽 유도은의 가슴골에 새겨진 문장은 동양적인 형태가 강하다면, 저쪽 유도은이나 다른 젠로스의 가슴에 새겨진 문장은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것.
레벨 1로 초기화된 젠로스들.
그들이 새롭게 받은 이능력의 상징은 곧 궁기와 도올로부터 전해진 마력으로, 질서와 정의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계약’을 통해 새롭게 각성한 이능력이다.
세피로트 동맹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세피로트 기사단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애매하지만.
뭐,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자들이라고 하면 대충 의미는 맞으니까.
“색만 비슷하지 문장 모양도 아예 다르니까, 결사랑은 아무런 관계없잖아. 그럼 됐지, 뭐.”
“저기, 도 과장님. 하나 질문.”
궁기가 나를 뒤에서 쿡쿡 찔렀다.
“저기, 이거 진짜로 별 의미 없는 거지? 나 분란 싫어해. 나 괜히 ‘퀸에 스페이드’인 거, 진짜 별 의미 없는 거 맞지?”
“딱히 순서나 서열에 의미가 있는 건 아니야. 리더 한 명 빼고.”
“…근데 왜 리더가 킹에 하트인 건데.”
“그야.”
당연히, 모티프가 그거니까.
“질서의 수호자가 가진 문장들이 트럼프 컨셉이고, 리더가 당연히 킹 오브 하트인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러니까 왜 에이스도 아니고 스페이드도 아니고 킹 오브 하트냐고.”
“그야.”
당연히.
“킹 오브 하트니까.”
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