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20화(21/668)
그냥 농담으로 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일까.
어느 쪽이든 기분은 좋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나는 유미르의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고마워요, 유미르 학생. 어디가서 잘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네? 정말요? 농담도 참.”
“진짜입니다.”
결사에서는 도깨비 가면을 쓰고 다녀서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총수밖에 없다.
그러고보니 변신을 풀고 만난 이후로 총수가 나를 좀 더 총애하게 된 것 같기도.
그래도 잘생겼다고 말은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니, 그냥 방금 유미르가 한 말은 의례상 한 말일 것이다.
귀담아두지 말….
“유미르 학생도 되게 예뻐요. 분명 유미르 학생 상대로 고백하려는 사람들 많을 겁니다. 고등부 학생들 조심하세요. 동급생이라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있을테니까.”
“네? 저 고등부 아닌데요. 대학부 신입생이에요.”
“…고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성인이랍니다. 올해로 대학생이 된 따끈따끈한 20살이에요.”
유미를 손으로 브이자를 만들며 턱 아래에 받쳤고, 나는 태양처럼 밝은 에너지에 절로 나까지 활력을 얻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원작 주인공도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었는데.
“유미르 학생. 그래도 특히 남자는 조심해야 합니다. 남자는 모두 늑대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여자를 꼬시려고 몸부림치는 짐승이랍니다.”
“선생님은요?”
“저는 늑대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의 늑대가 아니라 한 마리의 고고한 외로운 늑대죠.”
이 세계에 떨어진 외부인.
양들의 세계에서 결코 어울릴 수 없는 한 마리의 늑대다.
“아는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는 그런 늑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럼 저도 조심하세요. 저 뿐만 아니라 모든 남자들을 조심하세요. 여동생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오빠소리 듣고 싶어 한다면서 막 꼬시려고 한다고 하던데.”
“그런 거 아닙니다. 순수한 의도에서 하는 말이에요.”
“순수한 의도로 꼬시려고 하는 거라던데.”
“유미르 학생은 장난기가 조금 심하군요.”
“히힛.”
유미르는 눈을 찡긋이며 콜라잔을 들었다.
“알았어요. 선생님 말씀대로 남자들 조심하겠습니다. 선생님도요.”
“다행이군요. 제 말을 조금은 이해한 것 같아서.”
나조차도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한 소리였는데, 다행히 유미르는 잘 이해한 것 같다.
‘나중에 주인공에게 빠져서 내 앞을 가로막으면 곤란해.’
유미르가 만약 주인공에게 빠진다?
내가 암살을 하려고 하는 순간, ‘안 돼!!’하면서 주인공에게 몸을 던져 막는다!
-나의 사랑, 유미르! 으아아, 이딴 세상, 멸망해버려어어어!!
라고 하면서 운석이 날아올 가능성이 있다.
다른 히로인들도 다 마찬가지지만, 히로인이 아닌 존재가 주인공의 1픽이 될 수도 있다.
이 세상의 배경은 라노벨이지만, 이 세상은 현실이니까.
막말로 주인공이 갑자기 깊고 어두운 세상에 눈을 떠서 남자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는 거고, 메카닉에 눈을 떠서 기계와 사랑에 빠지게 될 수도 있는 법.
이 세계의 엔딩은 몹시 위험하다.
운석엔딩이 위험하다는 것도 위험한 거지만, 주인공이 운석을 떨어뜨리며 ‘흑화’하는 과정 자체도 위험하다.
스포일러라서 리뷰에는 적지 않았지만.
작가는 작가가 해서는 안 될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치사량급 국뽕을 매일매일 때려박아도 괜찮다면서 더 하라고 하던 독자들이 순식간에 5700자 성명문을 댓글에 써내려가면서 불타던, 소위 ‘염상’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멘탈에 타격을 입었는지 운석으로 급완결을 지어버렸지만, 나는 주인공이 미쳐버린 과정을 쓴 작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공이 미친 것도 솔직히 이해는 가지 않지만, 애초에 그런 전개를 쓴 작가가 제일 미친 놈이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주인공의 히로인들이 소위 ‘NTR’ 당하지 않도록.
히로인이 빌런 도깨비에게 납치세뇌당하고 목 뒤에 기생벌레 같은 게 심어져 ‘도깨비님께 몸과 마음을 바친다’면서 주인공을 공격하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작 결사에서는 히로인 격의 여자들을 꼬셔서 결사로 회유하라고 말하는 게 우스운 일이지만.
그러니까 주인공을 죽여야 한다.
내가 만약 히로인 중에 누구를, 혹은 히로인이 아닌 여자를 꼬셨는데 ‘내 여자를 NTR 당했어! 흐콰한다! 크아앙!’이라면서 지구를 폭파시키지 않도록.
‘그게 나한테 제일 편해.’
남자 놈 우쭈쭈 해주면서 케어하는 것보다, 그냥 깔끔하게 모가지 치는 게 훨씬 빠르다.
그러니까 빌런이지.
놈을 설득하고 케어할 생각이었다면 나는 히어로가 되었을 것이다.
“유미르 학생. 연애 관련해서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와! 재미있는 주제네요. 뭐예요?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상담은 해드릴게요!”
“이건 제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만.”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보통 본인 이야기던데.”
“…진짜로 아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여자를 빼앗기는 주인공 입장이 아니라, 여자를 빼앗는 도태양 컨셉으로 말해야 겠다.
“남자 A와 여자 A가 있습니다. 둘은 서로 썸 비슷한 걸 타던 사이입니다. 남자 A에게는 여자 A 말고도 B, C, D…대충 F까지 있다고 하죠.”
“와, 바람둥이네요. 그 남자가 혹시 선생님이신가요?”
“그랬으면 정말 좋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그리고 남자 B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혹시 그게 선생님?!”
“…아닙니다. 남자 B는 여자 A를 꼬셨습니다. 그리고 여자 A는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남자 A에게 실망하고, 남자 B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죠.”
“오….”
유미르의 눈이 반짝인다.
“그렇게 남자 B와 여자 A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여기서 남자 A가 나타납니다. 여자 A는 나를 사랑하는데, 왜 네가 내 여자를 빼앗냐고 남자 B에게 따집니다. 이 남자 A에 대해 B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미친 새끼네요? …앗차. 험한 말 해서 죄송해요. 남자 A, 너무 좀 그런데요. 흉해요.”
유미르는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반응을 보였다.
“자기는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 바람둥이면서, 정작 그 썸녀가 다른 남자랑 눈 맞았다고 시비를 걸다니. 그건 너무 정신이상자 사이코패스 같아요.”
“그 정도까지?”
“당연하죠. 아, 근데 그건 좀 있겠다.”
유미르는 파스타용 포크를 움켜쥐며 씩 웃었다.
“남자 A가 남자 B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는 경우라면요?”
“……?”
“그러니까, 남자 A가 S급 이능력자인데 남자 B는 그냥 이능력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인 거죠. 그도 아니면 남자 A가 건물주 카페 사장이고, 남자 B는 그 카페에 배달하는 라이더고요.”
뭔가 비교가 상당히 구체적인 건 어째서일까.
“만약에 선생님이 남자 A의 경우라고 생각해보세요. 나한테 푹 빠져있던 여자애가 나보다 한 참 못나고 못생긴 남자한테 사랑에 빠졌다면, 그 때는 어떤 느낌이 들겠어요?”
“그야.”
당연히.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우와.”
유미르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랐다.
“그런 대답이 나올 줄은.”
“무슨 대답을 기대한 겁니까?”
“어떻게 저런 못 생긴 남자한테 반할 수 있냐고, 내가 저 놈보다 못하냐고 따지겠다고 할 줄 알았어요.”
“실제로 저한테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렇게 따지고 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정식으로 사귀던 여자를 빼앗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썸녀면 조금.”
“즉, 선생님은 지금 남자B로서 선생님보다 조금 잘난 남자의 여자를 빼앗게 된 셈이다?”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뭐 좋습니다. 남자 A의 경우보다는 낫네요. 바람둥이 찌질남이 될 바에는 그냥 못났지만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되고 싶습니다.”
“후후. 역시 재미있는 분이네요. 선생님은.”
“역시?”
“그냥 보자마자 뭔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유미르는 나를 향해 콜라가 담긴 유리잔을 들었다.
“정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뭐지.
이 여자.
“…세계적 아싸라는 걸 돌려말하는 겁니까? 학생?”
“아. 들켰다.”
“학생은 혹시 유교의 예절과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저는 캐나다인인데요.”
“하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
놀랍다.
이세계.
나를 개꼰대로 만들 줄이야.
“저도 친구 있습니다. 비록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 있습니다.”
“하지만 세종섬에서 같이 밥 먹을 친구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학생. 혹시 싸가지없다는 말을 알고 있습니까?”
“후흥.”
유미르는 다시 손으로 브이를 만들며 내게 손을 뻗었다.
“동지네요! 저도 범 세계적 아싸거든요.”
“진짜 아싸는 자기가 아싸라고 말하지 않는데.”
“친구 없어서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걸요.”
“그거야 앞으로 사귀어나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오늘 사귀었잖아요? 친구.”
팔랑팔랑.
유미르의 손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렸고, 나는 손을 뻗어 그녀와 악수했다.
어렵다.
이게 인싸인가.
아니면 내가 이 세계의 이방인인 걸 알아낸 이능력자?
마인드 리더? 사이코메트리? 방금 악수로 내 실체를 알아낸 건가? 아닌데? 마나를 사용하는 게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도 선생님. 앞으로 제가-”
실실 웃으며 뭔가를 말하려던 유미르의 고개가 갑자기 훽 돌아갔다.
그리고.
“조심해요!”
유미르는 식탁에서 일어나 나를 덮쳤다.
나는 그대로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갔고-
물컹.
얼굴에 뭔가가 닿는 감촉과 함께.
와장창ㅡㅡㅡㅡ!!
강력한 폭음이 울리며, 레스토랑의 벽이 파괴되었다.
에에에엥—–
세종섬에 ‘폭주’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