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20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200화(201/668)
저녁.
“선생님, 저 왔어요. 저녁은 뭐로 드실래요? 국밥? 백금태양? 유미르? 아니면 셋 다?”
“떡볶이.”
“에. 오늘은 해봤자 크림떡볶이일텐데…? 그것도 넣어주셔야, 아얏!”
“이상한 말 하지 말고, 그냥 주는대로 먹어. 오늘은 내가 만들어줄테니까.”
“아, 정말요? 사이드 뭐 만들까요?”
“아니.”
퇴근하자마자 내 방에 들이닥친 유미르와 저녁을 준비하고 먹으며, 나는 낮에 있었던 일과 대운동회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선 학생이 도깨비가 나왔으면 좋겠다더라.”
“선생님이 굳이? 17세 여고생 상대하기 위해서 나오기에는 너무 급이 안 맞지 않아요?”
“급이라기보다는, 이선 학생은 도깨비의 신념에 대해 이야기하더군. 악마를 물리치러 오는 것도 아닌데, 도깨비가 나오는 건 의미가 없지 않냐고.”
“그건 또 그렇네요.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도깨비한테 물어보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 거라고 했다. 주변에 물어볼 수단이 있다면. 아, 그래.”
윤이선에게 도깨비에게 한 번 정도 물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며, 나는 한 가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미르. 윤이선이 아무래도 내 정체를 눈치챈 것 같더라.”
“어머, 그래요? 선생님, 이선이가 눈치챌 이유가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너 때문에.”
“네?”
어쩌면 윤이선은 내가 도깨비라는 걸 알고 있고, 그 정체가 탄로난 건 아마 유미르 때문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저 때문에 선생님이 도깨비라는 게 들켰다고요? 이선이가 저만큼 눈치가 빠를 것 같지는 않던데….”
“눈치의 문제가 아니라, 너 때문이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고서야 실습 이후, 도깨비에 관한 고민을 하면서 굳이 내게 접근한 이유가 그것 말고는 없다.
“아니, 왜 저 때문에 선생님이 걸렸다는 거예요?”
“그야, 너 친구 없잖아.”
“…….”
유미르의 표정이 굳었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실습도 망했고, 아무도 안 사귀는데,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이 접점이 있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제가 교우관계가 너무 협소해서 생긴 문제다?”
“그래.”
예전부터 걱정은 했다.
유미르와 친해질수록 유미르와의 접점은 늘어날 것이며, 유미르를 의심하는 자는 자연스레 나를 의심하게 될 거라고.
1. 유미르는 백금태양이다.
2. 유미르는 도지환과 제법 깊은 관계다.
3. 백금태양은 도깨비와 제법 깊은 관계다.
4. 그렇다면?
“도지환이 도깨비라는 걸 추론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 가운데 유미르라는 사람을 넣기만 한다면.”
“흥. 그런 식으로 저를 압박하려고 해도 소용없네요.”
내가 쏘아붙이기 무섭게, 유미르는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 때문에 선생님이 정체가 드러난다고 말은 하셔도, 그건 선생님도 어느정도 각오한 부분 아닌가요?”
“각오?”
“이선이에게도 도깨비로서의 정체를 어느정도 드러낼 생각. 아니, 설희 언니도 그렇고, 점점 한두 명씩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퍼뜨리려고 하려던 거 아니었어요? 저를 통해서든, 설희 언니를 통해서든.”
“……눈치챌 줄은 몰랐는 걸.”
아무리 눈치가 좋다고 하지만, 이 계획을 맞출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맞아. 이선 학생이 두억시니 처리하는데 도움을 준 순간부터, 나는 이선 학생에게 내 정체를 어느 정도 드러낼 생각이었어.”
“이선이를 믿어요?”
“믿지.”
원작 히로인이기도 하고, 원작 히로인이면서 주인공의 비밀을 알고 있어도 입을 꾹 다물기도 했고, 그 행보를 나는 직접 확인했다.
윤이선은 두억시니 사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도깨비와 함께 싸웠다는 것, 그리고 유미르가 백금태양이라는 것도 주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만약 입이 싼 여자였으면, 지금쯤 나는 윤이선을 저기 어디 다른 곳으로 보내버릴 생각도 했을 것이다.
죽이는 건 아니고, 그냥 세종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 1년 정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뭐야, 그러면 왜 저를 탓하는 것처럼 말하시는 거예요?”
“그냥.”
“저 친구 없다고 놀리려고 하신 말이죠?”
“내가 그렇게까지 악한 사람은 아니야.”
한 마디 해봤을 뿐이다.
“농담이야. 아무튼 내일이나 한 번, 이선이한테 슬쩍 언질을 던져봐. 네가 먼저 이선이한테 이야기를 해야 이선이가 도깨비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이선이가 저를 통해서 도깨비에게 부탁하는 식으로? 그러면 선생님께 바로 물어보든가 하지, 왜 저를 또 경유하게 되는 거죠?”
“확실한 루트가 네 쪽이잖아. 나는 그냥 의심할 뿐이지, 진짜로 도깨비인지는 잘 모를테니까.”
“음, 그냥 결사의 협력자라거나, 도깨비와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군요. 알겠어요. 그거야 얼마든지 제가 중간에 다리 놓을 수 있는데….”
“있는데?”
“진짜 나가실 거예요?”
유미르는 영상을 하나 띄웠다.
[나와라, 도깨비! 진정한 라이더가 누구인지, 세종섬에서 자웅을 겨루어보자!]“하야부사가 던진 도전장, 진짜로 받아주실 건가요?”
S급 히어로, 하야부사가 직접 인터넷에 올린 선전포고였다.
[히어로와 빌런으로 싸우자는 게 아니다! 누가 진짜 라이더인지, 시시비비를 가릴 뿐! 만약 내가 이긴다면, 네가 다른 이들에 의해 붙잡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도록 하지!]“어그로 장난 아니긴 한데, 선생님이 굳이 이런 녀석의 선전포고에 나설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설 이유가 있어.”
“왜요?”
“지금, 세상이 이 문제를 ‘한일전’으로 바라보고 있으니까.”
나 스스로도 속으로 생각했지만, 이미 인터넷에서는 ‘어느 나라’의 라이더가 진짜인지 네티즌끼리 다투고 있었다.
“일단 엄밀히 따지면 라이더는 일본 게 맞아. 원조는 라이더 1호라고.”
“어머, 인정해버리시네요?”
“당연하지.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내가 이 라이더 변신의 모티프를 가져온 건 한국 특촬물이었지만, 그 한국 특촬물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냐고 하면 당연히 슈퍼레인져나 라이더지. 대신.”
나는 가면을 꺼내 얼굴 위에 올렸다.
“이게 일본에서 시작된 거라고 해도,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라이더가 되었다면 그건 또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어?”
대격변 이후의 라이더는 없다.
내가 변신한 라이더의 모티프는 대격변 이전의 라이더가 아니라, 대격변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의 라이더들이다.
“선생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여드리겠다?”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라기보다는, 저쪽에서 말하는 누가 ‘진짜’인가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이건 이능력도 마찬가지야.”
일단 ‘라이더’라는 이름으로 대표되고 있지만, 이 세상에서 사용되는 이능력에도 이 문제를 빗댈 수 있다.
“누군가의 이능력이 원류라고 한들, 그걸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가져온다면? 원조로부터 변화된 새로운 형태라면?”
“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요?”
“표절…까지는 아니고. 아니다. 편하게 이야기하려면 표절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
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영상 중, 다른 나라의 이능력자들이 새롭게 올린 영상을 가리켰다.
“도지라이더의 출현 이후, 라이더 스타일로 새롭게 코스튬을 만드는 사람들은 엄청 늘었어. 이거 봐봐. 외국에서는 아예 불타는 해골을 라이더처럼 만들었잖아.”
“…스켈레톤 라이더?”
“옛 콘텐츠로부터 기믹을 가져오는 거지. 이게 미국산 코믹스로부터 시작했지만, 정작 스켈레톤 라이더가 몸에 불을 붙이고 두개골처럼 생긴 헬멧을 쓰고 있는 게 지금 어느나라 사람이야?”
“프랑스네요?”
“그래. 문화라는 건 퍼지기 마련이야. 그리고 문화에는 특별히 국경이라는 게 없지. 이능력도 마찬가지. 누군가가 라이더 컨셉으로 이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누군가가 또 라이더 컨셉을 따라하기 마련이지.”
원조를 따지고자 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이 컨셉이 대격변 이전의 문화로부터 가져온 이상, 딱히 나는 누가 원조냐 진짜냐 따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보여주고 싶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대격변과 이능력의 등장으로 인해 문화가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능력이 없었다면 그들이 응당 누려야 했을 문화를 내가 직접 보여주고 싶다.
‘이 세계에 있는 이야기들을 감상하게 해준 보답이지.’
연중된 소설을 읽게 해줬으니,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문화의 모습을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보답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저들이 내 변신을 보고 조금이나마 다른 문화를 즐기고 향유할 수 있게.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야부사에게 보여줄 것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문화 컨텐츠라고 해도, 그걸 이능력으로 어떻게 승화하고 사용하는지는 별개의 이야기지. 그걸 두고 진짜와 가짜를 논한다? 의미가 없어. 도지라이더라는 게 기존의 라이더를 그대로 표절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즉,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거네요.”
유미르는 떫은 얼굴로 나를 가리켰다.
“도지라이더의 모습이 표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다?”
“뭐,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내가 변신했던 도깨비 라이더의 모습은 표절이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지나가던 도깨비 라이더가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저들에게 ‘도깨비는 세종섬에 있다’고 어필할 필요가 있어.”
“저들…? 판데모니엄이요?”
“그래.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어필함으로써, 판데모니엄 누군가는 세종섬에서 모습을 드러낼 거야. 내가 노리는 건 그 녀석이다.”
누가 될 지는 모르지만.
“판데모니엄에 보여줘야지. 도깨비는 건재하다는 걸.”
오히려 더 팔팔해졌다는 걸.
“새로운 폼도 보여줄 절호의 찬스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