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22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220화(221/668)
하나. 백설희는 내가 도깨비라는 걸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다.
내가 백설희에게 사실상 ‘내가 도깨비요’라고 돌려서 말한 것도 있고, 이런저런 떡밥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백설희가 나를 가만히 놔두는 이유는 그녀가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기 때문.
나도 그녀를 좋아한다고 했고, 백설희는 지금 나름의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럼 내 집에 네 인형이 있는 거야?”
“응. 마음 같아서는 어디 멀리 갈 때 캐리어에 넣어 다닐 수 있도록 접을 수 있는 사양으로 만들고 싶어. 지금은 이게 한계지만.”
백설희는 다시 앞으로 손을 뻗어 분신을 만들어냈다.
“소형화는 안 되고, 1:1로만 만들어낼 수 있어. 분신이니까.”
얼음으로 이루어진 분신에 금방 생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또다시 내 뒤에서 나를 안으며 몸을 비비적거렸다.
“대신 이렇게 달라붙을 수는 있지. 어떤 느낌이야?”
“조금 차가운 것 같은데. 얼음이라서 그런가?”
“그래도 속은 따뜻할걸?”
“확인을 또 해본 거야?”
“……예, 예. 확인해봤습니다. 혹시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미리 다 온도계로 측정하고 왔습니다. 되었나요?”
볼을 부풀리는 백설희의 볼에 가볍게 키스하자, 백설희는 금방 표정을 풀었다.
대신 등 뒤에 있던 백설희가 나를 계속 끈덕지게 만지작거렸고, 몸에 땀 대신 녹아내린 물이 진득하게 달라붙는 것 같았다.
“설희야. 분신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지금 분신 컨트롤이 잘 안되어서 그래.”
“왜?”
“…이렇게 옆에 있으니까, 분신에게도 주기 아까워서.”
파캉.
분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자마자 백설희는 나를 덮치듯 내 위에 올라타며 안겼다.
“지금은 내 시간이야. 누구한테도 줄 수 없어.”
“설희, 독점욕이 상당하네. 분신한테 조금도 주기 싫다는 거야?”
“응. 지금은, 내 시간에는 내 거야. 내가 만족할 만큼 시간 채우면 그 뒤에 다른 사람보고 쓰라고 해.”
“나 물건 아닌데.”
“네 물건 쓰는 건 다들 똑같은 거 아냐.”
“설희, 점점 더 말이 과격해지고 있는 거 알지?”
나는 백설희의 볼을 가볍게 손으로 쓰다듬었다.
백설희는 내 손길에 마치 고양이처럼 얼굴을 비볐고, 나는 최대한 그녀의 응석을 받아줬다.
“그래, 우리 설희. 많이 피곤했어?”
“응. 너무 피곤했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때려치우면 뭐 하려고?”
“몰라. 뭐든 하겠지. 가진 재산 불리면서 살면 뭐든 나오지 않겠어. 아, 혹시 당신이 나 먹여 살려줄래? 아내 허락받으면.”
“너 먹여 살리려면 돈 많이 벌어야 할 텐데.”
“나 가성비 좋은 여자야. 그냥 둘이서 같이 영화 보고 드라마 보고 그러기만 하면 돼. 어때?”
“아내도 같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럼 옆에서 셋이서 보면 되지.”
부모 없이 자란 여자다.
언제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응석을 부려봤겠는가.
“유미르까지 포함하면 넷…. 뭐, 거기서 더 늘어난다고 하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둘이 있을 시간은 있을 거 아냐. 그렇지?”
“당연하지. 내가 설마 설희를 위해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못 내겠어?”
“언제는 마구 시간을 내줄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이제는 잡은 물고기라 이거야?”
“그럴 리가. 내가 무슨 어장 관리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럴 일 없어.”
나는 백설희의 등을 두드리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우리 설희, 이렇게 걱정이 많아서 어떻게 하지? 설희야. 그만두고 싶다고 했지? 그러면 내 옆에서 같이 일하는 건 어때?”
“…….”
“설희가 나랑 같이 일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나, 일 때문에 어디 출장 나가는 것만 아니라면 너랑 같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안 돼.”
백설희는 내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렸다.
푸르게 빛나기 시작하는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단호하면서도 투명했다.
“당신이 내 옆에서 일하게 할 거야. 내가 당신 곁으로 가는 게 아니라.”
“마음은 이렇게 서로 가까이 있는데, 직업은 서로 가까이 가기 힘든 게 참 아이러니네.”
“서로 포기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잖아. 인터넷 보니까 원거리 연애 비슷하게 되었지만, 어차피 우리가 보통 사이도 아니잖아. 그렇지?”
백설희가 내 양어깨를 잡으며 천천히 몸을 내게로 맡기기 시작했다.
“불륜으로 맺어진 관계인걸. 상간녀가 자꾸 집착하고 그래서 싫어?”
“아니. 오히려 좋아.”
나는 그녀가 내게 달라붙는 것처럼, 두 손을 그녀의 허리 뒤로 넘기며 꽉 끌어안았다.
“백설희라는 여자가 나한테 푹 빠져서, 내 아이 낳아주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싫을 수가 있겠어.”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백설희는 뚱한 얼굴로 내 어깨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내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건지, 아니면 뭔가 모종의 장치가 되어있는 건지. 우리 본격적으로 애국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아직 아무 신호도 없는 건 어떻게 된 거야?”
“신호가 없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 호텔 지배인이 자꾸 성질낸다고.”
백설희는 내 뺨을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예약 잘해놨는데 자꾸 손님이 노쇼한다고. 문 앞까지 와서 노크는 골백번도 넘게 하는데, 정작 손님이 한 명도 안 들어온다고 화를 내는 거야. 그거 때문에 매번 호텔에 피 분수가 터진다고. 어떻게 된 거야?”
“…사실대로 말해도 돼?”
“말해봐. 유미르한테는 비밀로 할게.”
“호텔 지배인이 착각한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흐흐.”
나는 백설희를 안은 채로 그대로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백설희가 아래로 내려가고, 나는 백설희의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손을 그녀의 하복부로 옮겼다.
“있잖아. 나는 사실 이능력자야.”
“…뭘 새삼스럽게.”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나는 애국과 울릉에 있어, 한 가지 아주 특별한 마법을 가지고 있어.”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 백설희의 배꼽 근처를 둥글게 간질인다.
“손님은 들어갔어. 단지 호텔 방에서 멈춰있을 뿐.”
“……무슨 소리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해 봐.”
“씨는 뿌렸는데, 씨가 밭에 뿌려져서 이제 새싹이 껍데기를 깨고 나오기만 하면 되는데, 아직 싹이 나오지 않는 거지. 마법의 힘으로.”
“…….”
“간단히 말하자면 그런 거지. 네 뱃속에서 만난 정자와 난자가 수정은 되었는데 착상은 되지 않았다. 세포분열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정자랑 난자랑 손잡고 곤히 자는 거라고. 내 아주 특별한 마법에 의해.”
나는 백설희가 움직이지 못하게 위에서 그녀를 눌렀다.
“너는 내가 원하면, 진짜로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럼, 지금까지 한 건? 가짜야?”
“아니, 아니. 자라고 있어. 잘 자라고 있지. 단지 방안에 들어있지 않을 뿐.”
나는 노크를 하듯, 그녀의 배꼽 아래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시간이 엄청 느리게 흘러가고 있을 거야. 아무렴, 네가 확실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배가 불러오는 건 조금 난감하지 않겠어?”
“…많이 먹어서 살쪘다고 하면 되지.”
“너라면 돼지가 되는 게 아니라 배만 볼록하게 나올걸?”
“……복부비만이라고 하면 되지 않아?”
“굳이 그렇게까지는 할 필요는 없어. 그냥, 네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내가?”
백설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그날 너한테 이야기했잖아. 나는 너랑….”
“히어로와 인간 백설희. 둘 다 선택하려고 한다면, 이 안에 들어있는 결실은 명백히 ‘걸림돌’이야.”
“!!”
표정이 굳기 시작하고, 입술이 말라붙기 시작한다.
“너는 지금 양쪽을 가지고 싶어 해. 히어로로서의 자신을. 그리고 여자로서의, 한 남자의 아이를 가져 그 아이의 어머니가,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신을. 문제는 아이를 가지면서 점차 히어로 활동에 큰 지장이 생기게 될 거고, 그러면 너는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엄청 받게 되겠지. 지금도 그렇잖아?”
“…….”
“정부에서는 너를 자꾸 국가의 얼굴로 동원하려고 하는데, 네가 갑자기 육아휴직을 낸다고 생각해봐. 너, 그거 견디기 힘들걸. 지난 25년 동안 이 나라의 히어로로 살아온 영웅 스노우화이트의 성정으로는.”
“나는….”
“나는 내 아이를 낳는 여자가 스트레스로 유산하게 만들 수 없어.”
“……!!”
“농담하는 거 아니야.”
나는 백설희의 볼을 한 손으로 쓸며,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네가 임신했다는 게 세간에 퍼지게 되면 온 세상이 너를 상대로 음해를 펼칠 거야. 욕하는 자들도 있을 거고, 각혈하고 흑화하는 유니콘도 있을 테지. 너는 아직 몰라. 악마보다도 더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자들의 끊임없는 악의를.”
그 이름은, ‘인간’이라고 한다.
악마가 아닌데도, 평범한 사람을 악마보다도 더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악의에 가득 찬 자들.
다른 이의 불행을 자기 행복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탄보다 더 사탄 같은 자들.
“너, 정말 감당할 수 있겠어? 그 어떤 억까에도, 그 어떤 음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위해 살 수 있어? 임신했다는 게 알려지는 순간부터 너는 더 이상 히어로로 나설 수 없어. 너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나서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들 테고, 히어로로서 살아왔던 삶과 비교하며 자책하겠지.”
“…….”
“네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거야. 네 편이었던 사람 중에서도 너를 향해 칼을 겨누는 자들이 있겠지. 막 이럴걸? 그러게 누가 임신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고.”
“그건….”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지? 너도 네가 지금까지 봐온 사람들의 본심을 짐작할 테니. 임신하라고 주변에서 아무리 말해도, 그건 빈말일 뿐이라는걸. 평범한 도지환 사서의 아이를 가졌다고 하면, 바로 세상이 너를 왜 그런 무능력한 남자랑 애국했냐고 조리돌림 할 거야. 분명.”
“…….”
백설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을 유지하며, 한참을 가만히 나만 바라봤다.
“그렇다면.”
백설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마음의 준비를 위해서, 나는 뭘 하면 되는 거야?”
“…마침, 좋은 방법이 있지.”
나는 백설희가 분신을 없앴던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설희야.”
“응.”
“마침 분신 배웠으니까, 분신보고 스노우화이트하라고 해. 여자 백설희는 내 옆에 계속 있으면서 얌전히 태교하고.”
“……어.”
백설희의 착 가라앉아있던 눈동자에 서서히 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거 완전 방학 숙제 로봇 같은….”
“그래. 간단하지? 본체는 집에서 나랑 애국하고, 분신은 국가행사에 나가서 얼굴 비추고.”
“일석이조네.”
“그냥 일석이조만은 아니지.”
나는 몸을 일으켜 아래로 내려간 다음, 백설희의 셔츠를 위로 살짝 당겨 그녀의 배꼽 아래에 입을 맞췄다.
“임신해서 아이 기르고 낳는 동안, 내가 계속 옆에 있어 줄 수 있잖아.”
백설희가 나를 어디 지하에 가두려고 했다면.
“내 아이 낳을 여자가 남들한테 욕먹어서 유산하는 꼴, 절대 못 봐.”
이제는 입장이 반대다.
내가 백설희를 가둘 것이다.
“분신, 확실하게 다룰 수 있겠어? 나랑 애국하는 동안에도 분신이 밖을 확실하게 돌아다니게 할 수 있냐고.”
“…왜 애국하는 동안이야?”
“그야 애국할 때 네 집중력이 제일 흐트러지니까.”
나는 좀 더 아래로 내려갔다.
“분신 꺼내. 아침까지 애국해서 분신 계속 유지하면, 그때부터는 호텔 방에 손님이 장기 투숙하는 거야.”
“…얼마나?”
“지금부터, 10개월.”
“……”
배팅은.
“…손해 본 1개월 어쩔 거야.”
“네가 이기면 그것도 복구해줄게.”
“좋아. 그럼…. 들어와.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도박판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그럼.”
나는 백설희의 셔츠 안을 가리켰다.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한 번 확인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