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226)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226화(227/668)
이 세계에 오고 난 뒤, 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것 세 가지를 꼽자면 단연 이능력을 우선으로 꼽을 것이다.
초능력의 시대.
내가 무능력자였다면 모를까, 초능력을 각성한 사람이 되니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능력이 있는 세상에 올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생각 한 번 정도는 할걸.’
그것도 도깨비방망이라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나는 마력만 충분하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있다면, 나는 결사의 도깨비로서의 삶을 꼽을 것이다.
빌런의 삶이라는 것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긴 하지만.
악인을 처형하는 것도 현실에서는 해보지 못한 거긴 하지만.
삼류 악당 도깨비가 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좋은 건 도깨비로서 여러 여인과 사귀게 되었다는 것.
‘현실에서 문어발 걸치면 칼에 찔리지만, 여기는 그나마 좀 낫지.’
그간 내가 열심히 노력해온 것도 있지만, 그 노력의 결과 총수를 비롯하여 이매망량의 간부들, 그리고 아카데미에 있는 여러 히로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인연을 쌓은 것이 두 번째다.
그렇다면 세 번째는?
단연, 해외로 나가는 것.
구체적으로는 현실보다 훨씬 더 부유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부유함을 자유롭게 만끽하는 것.
출장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태국으로 향하는 국제선 여객기 일등석에 오르는 것도 빙의 전의 내 기준으로는 생경한 경험이다.
‘이렇게 해외에 자주 가는 것도 다 경험이라고.’
비행기라고는 제주도로 가는 국내선만 타본 내가 전용기나 여객기 일등석의 서비스를 마음껏 누리니 매번 새롭다.
물론 이게 실제 세상의 부유한 자들이 누리는 서비스와 비슷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다른 방향으로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을 터.
부유층이 누리는 특권은 비슷하지만, 그 특권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내 세상의 부유층과는 완전히 다르겠지.
“한국어 잡지가 있네.”
“요즘 비행기에 한국 잡지가 없으면 안 되지 않을까?”
동전에 양면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디스플레이도 여전히 한국어가 기본이고.”
“뭐 영어로 설정 바꿀 것도 아니잖아. 공용어가 한국어인걸.”
“…….”
다른 이들은 이걸 어둠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로서는 매번 눈앞에 나타날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속이 뒤틀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실례합니다. 음료는 어떤 걸로 준비해드릴까요?”
“……..”
“손님?”
“그거, 스튜어디스 제복인가요? 디자인, 되게 괜찮네요.”
“예, 저희 나라항공의 제복입니다. 한국의 유명 디자이너, 박도식 명인께서 직접 도안하신 제복이죠.”
당장 스튜어디스만 하더라도 색깔은 항공사의 컬러링을 갖추고 있지만, 무슨 게임 속 캐릭터의 한복 스킨처럼 입고 있는 게 나로서는 조금 오한이 들 뿐.
패션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스튜어디스 제복이 한복 스타일인 건 나로서는 참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음료는 뭐가 있죠?”
“수정과, 식혜, 숭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손님? 혹시 뭔가 불편하신 거라도…?”
“……수정과로. 혜라는?”
“저는 식혜로 주세요. 쌀 걸러내고.”
“네.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보통 영화에서 보면 일등석에 탄 손님에게는 와인이 레드인지 화이트인지 묻던데, 여기는 숭늉까지 준비되어 있다.
한국에서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라고 하지만, 그래도 숭늉은 좀 너무한 게 아닐까.
‘조선이 세계를 정복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아니겠다.’
가만히 숨만 쉬고 돌아다닐 때마다 주변에서 국뽕스멜이 풍겨올 때마다, 나는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야말로 게슈탈트 붕괴가 아닐까.
“혜라야.”
“응, 오빠.”
궁기-이제는 확실하게 윤혜라라고 불러야 할 여인은 잡지를 넘기다 선글라스를 내리며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
“매번 느끼는 거지만, 국내선도 아니고 해외로 나가는데 수정과나 식혜가 맞는 걸까.”
“오빠. 일등석 손님이 그런 이야기 하면 스튜어디스들이 기함하면서 놀라.”
윤혜라는 내게 눈을 찡긋거리며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일등석에서 그런 소리 하면 서비스 품질 나쁘다고 뭐라고 하는 걸로 들린단 말이야. 아, 혹시 와인 마시고 싶었던 거야? 내가 주문해줘?”
“아니. 괜찮아. 그냥 느낌이 이상해서 그래. 매번 가는 곳마다 한국의 정취가 느껴진다는 게.”
세상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K-문화의 영향력에 전신이 떨리고 복장이 뒤집힐 것만 같다.
마치 이국의 문화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강제로 한국의 정취를 덮어씌워 놓은 것만 같아서.
“식혜랑 수정과가 일등석 서비스 음료로 나오는 게 어때서? 공장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전통 음료 명인들이 만들어낸 음료를 받아와서 제공하는 건데.”
윤혜라의 말대로다.
“이거 저기 밖에 나가면 딱 이 정도 한 잔에 3만 원은 할걸?”
“…….”
이 세상은 식혜와 수정과가 고급 음료가 되었다.
내 세상에서는 저기 프랑스 포도밭에서 100년 넘게 숙성한 와인이 당연히 더 고급이고 먹어줘야 하는데, 이 세상은 저기 충청도에서 50년 넘게 식혜를 연구해온 장인의 식혜가 먹어주는 세상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가만 보면 오빠는 은근히 국까기질이 있더라. 아니다. 미안. 국까기질은 아니고, 그냥 한국 문화가 이렇게까지 퍼져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타입?”
“…그래. 국까기질이 있는 게 아니라, 나는 해외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싶은 거라고.”
“하지만 오빠 해외 나갈 때마다 한국적인 거 있으면 기함하잖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한국적인 건 한국 내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왜 해외에 나가서까지 한국 걸 봐야 하냐는 거지.”
전통문화의 융성?
그야 좋다.
하지만 스페인 발렌시아의 투우장에서 청도 소싸움이 일어난다거나, 올림픽 경기장에 사람들이 양궁 컴파운드 보우 대신 국궁을 들고 화살을 쏘는 걸 보면 차마 참지 못할 때가 많다.
“뭐든지 적당히가 좋은데,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한국적인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닐 텐데.”
“그야 당연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니까?”
“그 말, 뭔가 되게 심금을 울리면서도 나한테는 슬프네.”
보고 계십니까, 미스터 봉.
당신의 말은 이 세상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전 세계의 조선화.
‘이게 해외여행이냐.’
증오한다.
작가.
전 세계에 한국적인 것을 뿌린 건 좋지만, 이 세계의 문화는 너무 한국적이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일본 메이드 카페에는 메이드 대신 기생이 나온다거나.
유럽에서 밀리터리 코스프레를 하면 광화문을 지키는 의장대들이 나온다거나.
브라질 사탕수수 농장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소복만 입히고 일을 시킨다거나.
뭔가 EDM이 울려 퍼져야 할 공연장에서는 비트 소리 대신 꽹과리가 쨍쨍거린다거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감사합….”
일등석 음료에 따라오는 디저트로, 마카다미아나 마카롱이 아니라 한입 크기의 떡과 약과가 나오는 세상.
저주한다.
작가.
“…….”
“호, 혹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제가 약과랑 떡을 많이 먹어서요. 혹시 초콜릿이나 간단한 쿠키 있습니까?”
“아, 네! 금방 바꿔드리겠습니다! 손님께서는….”
“저는 좋아해요.”
스튜어디스는 사색이 된 채로 허겁지겁 약과를 챙기며 자리를 떠났다.
“혜라야. 나 진상 같았어?”
“일등석 서비스 바꿔 달라고 하는 게 무슨.”
“하긴. 내가 뭐 라면 끓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 라면 정도면 해줘야 하는 거 아냐?”
“…….”
그런가.
라면은 진상도 아닌 건가.
일등석이라고 해도 라면은 좀 아닌 거 아닌가 싶은데, 의외로 라면은 제법 인기가 있는 품목인 모양이다.
“진짜 진상은 따로 있지.”
윤혜라는 키득거리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곧 도착할 거야. 도착하고 나면 오빠, 나한테서 멀리 떨어지지 마. 알았지?”
“…그거야 내가 할 소리인데.”
“나보다는 오빠가 더 위험해.”
“손님? 초콜릿 드리겠습니다. 까드릴까요?”
“아뇨. 거기까지는 안 해주셔도 됩니다. 고마워요.”
“아, 네!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불러주세요!”
“…흐응.”
윤혜라는 스튜어디스를 향해 살짝 살기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러더니 곧 내가 껍질을 까려던 초콜릿의 종이 포장을 펼쳤다.
“이것 봐라.”
“…….”
“어디서 개수작을.”
화륵.
기내에서 화기는 엄금이지만, 윤혜라는 남들에게 걸리지 않게 작은 불꽃을 일으키며 종이를 소멸시켰다.
“오빠. 푸켓에 한국인 신혼부부가 와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게 뭔지 알아?”
“……인신매매?”
“그냥 인신매매가 아니야. 인신매매로 장기 털리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다른 게 털리는 게 제일 무서운 세상이잖아.”
윤혜라는 아래로 손가락을 내렸다.
“씨 털어가는 거.”
“…….”
“한국 밖으로 나가서 한국인이 제일 많이 당하는 범죄가 바로 그쪽 범죄 아니겠어. 특히, 남자들.”
그렇다.
이 세계.
해외여행을 하는 한국인 한정으로, 여자보다 남자가 더 위험한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왜냐고?
그야 당연히, 한국인의 씨는 이능력자를 낳을 수 있는 확률이 높으니까.
* * *
푸켓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윤혜라는 잠시 결사로서의 업무 처리를 위해 자리를 비웠고, 나는 그동안 가만히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며 윤혜라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까는 나 어디 멀리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하려더니.
-여자 화장실까지 따라올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기다릴게. 핸드백이랑 짐은 내가 밖에 들고 있을 테니까, 다녀와.
윤혜라는 화장실로 향했지만, 용변을 본다거나 화장을 고친다거나 하는 목적은 아니다.
그녀가 화장실로 간 목적은 변장을 하기 위함인….
“…응?”
“저기요.”
누군가가 내게로 다가왔다.
“혹시, 혼자 여행 오셨어요?”
익숙한 한국어.
하지만 억양이 조금 낯선 게, 영락없이 외국인의 발음이다.
“…누구시죠?”
내 앞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두 명 다 한국인처럼 생긴, 아니 반 정도 한국인처럼 생긴 여자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카데미 제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는 것.
“저희는 여행 가이드예요, 오빠.”
“한국에서 오신 분들의 여행을 도와드리고 있답니다.”
코시안(Kosian)이다.
한국인과 여러 아시아 인종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어글리 코리안에 의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에 의해 태어난 대격변 이후 출생 ‘혼혈자’들.
예외는 있겠지만, 분류의 9할이 그렇다면 대부분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겠지.
현재.
전 세계, 00년 이후.
25년 동안 태어난 한국인 혼혈아의 수.
공식 집계, 약 5천’만’ 명에 이른다고 알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