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27)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27화(28/668)
입학식 나흘 뒤, 목요일.
나는 내 맡은 직업에 맞게 도서관의 사서 노릇을 하며 근무 중에는 위층에서 빌려온 소설책을 읽고, 퇴근 후에는 만화책을 보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주어진 임무에 기한은 없으니까.
일단 표면적으로는.
총수가 내게 준 임무는 능력있는 여자를 꼬시라는 거였고, 보통 그런 임무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수행하는 임무다.
세종 아카데미에 들어온지 고작 한 달도 안 지났는데 그 사이에 여자를 낚아서 결사로 들어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적어도 1년을 차분하게 관찰하며 싹수가 있는-소위 ‘히로인’들을 결사로 들어오게 만들면 된다.
히로인이 아니더라도 유미르와 같이 엑스트라-혹은 미래의 조연 중에서 제법 미래가 밝은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도 괜찮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도서관의 서책 대여 프로그램을 통해 신입생들의 명단을 천천히 확인하는 중이다.
그런데.
‘뭐지.’
나는 데이터 베이스에 등록된 학생 명단을 계속 확인했다.
처음 확인했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두 번째 확인을 할 때는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인공이 없다.
신입생인 남학생 중에서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자가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주인공의 이름이 없다!!
혹시나 이름을 바꿨거나 가명을 썼나 싶어서 도서관 대출 프로그램에 나온 이름을 하나하나 수기로 옮겨 적은 뒤, 그걸 집에서 히어로 협회와 인터넷 사설 히어로 위키에 등록된 히어로 정보를 검색하는 초과근무까지 하면서 조사를 했는데도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자는 없었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 적당히 E급 이능력을 가진 남자놈인데 왜 없냐고!’
내가 조사한 이들은 대부분 깔끔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고, 주인공의 배경설정과 부합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미치겠네.’
혹시 원작 설정이 바뀐 걸까?
외국에서 들어온 한국계라는 설정이 내가 알던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바뀐 걸까?
아니면 올해가 아닌 내년에 입학하는 걸까?
그도 아니면 아예 올해는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은 게 아닐까?
있어야 할 타깃이 아예 시작부터 없으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세계의 운명이 걸린 암살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대상이 올 곳에 잠입했더니, 정작 대상이 아예 와야 할 장소에 나타나지도 않은 셈.
‘진짜 미치겠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카데미 라노벨에서 아카데미 주인공이 안 나타나는 게 말이나 되냐고!’
울고 싶었다.
환상으로 만들어낸 치킨이 식어버릴 정도로 나는 주인공에 대해 조사하고 또 조사했지만, 결국 성과는 없었다.
남자 놈들을 일일이 다 확인하고 다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수를 헤아려보니 그 수가 상당했다.
올해 아카데미에 신입생으로 들어온 남자 대학생의 수는 약 100명.
원래는 이보다 더 숫자가 적었어야 하지만, 어떤 여인의 등장으로 입학자의 수가 평년보다 더 늘어나게 되었다.
-스노우 화이트님을 보기 위해 아카데미에 들어왔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스노우 화이트를 위해 입학한 건 여자들만 그런 게 아니다.
남자들 중에도 스노우 화이트 한 명을 보기 위해 입학을 선택한 자들이 많았고, 실제로 세종섬 내부 커뮤니티 중에는 벌써 스노우 화이트 비밀 팬클럽 비슷한 게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미 회원 수는 1000명이 넘었고, 그곳에는 스노우 화이트의 온갖 사진과 영상들이 ‘덕질’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님들 백설공주님 숙사 나오는 모습 존예ㅠㅠ
-강단에서 분필 잡으시는데 뒷태 보이시나요? 골반 라인이 어우야….
ㄴ세븐드워프가 주시 중입니다^^
-스노우 화이트님 오늘 저녁에 여기 레스토랑에서 회식 하시는 듯? 교수들 전체 회식ㄷㄷ
덕분에 나는 스노우 화이트의 일거수일투족을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인공을 이렇게 알고 싶단 말이지.’
스노우 화이트처럼 주인공도 누군가가 이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행동하는 일거수 일투족을 내게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암살이라는 게 어디 쉬운 일도 아니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암살을 시도해도 어려운 게 암살이더라.
그런데 나는 암살의 첫 단계인 암살 대상의 확인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침착하자.’
아직 3월 첫 학기가 시작한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중간 편입이든 아니면 계절학기 입학이든, 아니면 어떠한 형태로든 놈은 아카데미에 나타날 것이다.
-너는 아카데미에 온 목적이 뭐야?
-그건 말할 수 없어.
-왜? 그냥 공부를 하러 온 건 아니잖아. 표면적인 이유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줘.
-그건…언젠가 때가 오면 말해줄게. 내가 이곳 세종섬에 온 이유를.
놈에게는 아카데미에서 반드시 뭔가를 이루어야 하는 목적이 있으니까.
‘근데 그게 안 밝혀진 상태에서 소설이 급완결 되어버렸단 말이지.’
떡밥이 밝혀지지 않은 채 완결이 나면 사람들이 맥거핀이라고 추앙을 하지만, 맥거핀은 명작이 되었을 때나 맥거핀이다.
이런 식으로 급완결을 치게 되었을 때의 떡밥은 그냥 미회수 떡밥일 뿐.
지금의 내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인공 놈이 굳이 그 능력을 가지고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일까.
낮은 능력, 무능력에 가까운 능력자로 입학해놓고 힘숨찐을 하려고?
아카데미에 있는 여자 중 아무나 꼬셔서 기둥서방 노릇을 하려고?
그도 아니면 아카데미에서 진짜로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대외적으로 떠들고 다니는 면피용 목적이 아닌, 진짜 목적이 있는 이상 주인공은 아카데미에 분명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 목적마저도 아카데미가 아닌 곳에서 이룰 수 있는, 아카데미에서는 굳이 이룰 필요가 없는 거라면?
“……하.”
머리가 복잡해진다.
있어야 할 놈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생각해야 할 요소가 많아진다.
변수라고 할만한 거라고 해봐야 내가 지난 반 년 동안 도깨비로 활동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 활동 때문에 주인공이 아카데미로 오는 걸 포기했다?
말도 안 되는 나비효과다.
차라리 내가 빌런으로 활동하는 사이에 주인공이 사고에 휘말려 죽었거나, 내 빌런 활동의 스노우볼로 자결했다는 게 더 그럴싸하다.
이대로 계속 가면 주인공 놈이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냥 총수한테 다 말하고 도와달라고 말할까?’
오히려 불안한 요소를 키우는 게 아닐까 싶지만, 총수라면 분명 나를 도와줄 것이다.
대신 그렇게 되면 총수에게 인생이 저당잡힌다.
이미 거의 반쯤은 총수에게 잡혀있는 인생이지만, 내가 빙의자라는 걸 말하면 총수는 분명 나를 잡아다가 ‘작가’로 만들 것이다.
-그 쪽 세상에 있는 모든 창작물을 토해내세요. 어서!
-전생에 독자였다고요? 모든 독자는 잠재적 작가라는 말도 모르시나요?!
-시놉시스든 플롯이든 뭐든 당장 뱉어내세요! 이쪽 세상에는 없는, 이능력자가 없는 세상에서 펼쳐지는 온갖 이야기들을!
-소설 작법서를 가져왔어요. 당신은 지금부터 하루에 3만자씩 소설을 쓰면 되는 거예요. 예? 어떻게 3만자를 쓰냐고요? 에잇, 1분에 300타를 쓰는 속도면 하루에 100분이면 3만자를 쓰겠네요! 왜 해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일단 해보란 말이에요!
라고, 나를 원래 지구의 온갖 창작물을 뱉어내게 할 것이다.
천일야화로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말해야 하는 세헤라자드처럼, 나는 총수를 위해 내 원래 세계의 이야기들을 그녀를 위해 읊어줘야 할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최소한 여름까지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때는 도와달라고 해야지.’
데드라인은 2학기.
도깨비가 본격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하고 결사의 4천왕이 본격적으로 공략당하기 시작하는 ‘여름합숙’이 끝나는 2학기 시점까지 주인공을 찾지 못한다?
나는 순순히 나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총수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어디서 주인공 안 나타나나.’
그냥 갑자기 뿅하고 ‘내가 주인공이요’라고 나타나면 정말 좋을텐-
“…응?”
“안녕하세요?”
데스크 너머,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나를 향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고 계셨네요, 도 선생님.”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이야기는 했는데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 유미르 학생.”
유미르가 왔다.
남정네에 대한 복잡한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나는 사서로서 유미르를 향해 인자한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책 빌리러 왔어요?”
“아뇨. 선생님 보러 왔는데요?”
“…나?”
“네. 레스토랑 돈 대신 계산하셨다면서요.”
부채감 때문에 온 건가.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아무리 그 난리가 났다고 해도,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거나 하면 누군가는 그 사람을 찾아나서려고 하기 마련이랍니다?”
“……아.”
유미르는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아마도 내가 도깨비로서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이해했겠지.
-정체를 감춘 히어로가 현장에서 변신했다가 갑자기 나타나고 사라지면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유미르가 똑똑하다면 이런 일상생활 같은 대화 속에서도 내 말을 바로 이해할 것이다.
“…명심할게요, 선생님.”
“뭘 명심까지야.”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그래서 진짜로 저 만나러 온 겁니까?”
“넹.”
유미르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저 공강인데.”
편의점 커피였지만.
……유리병에 든 별다방 라떼커피(500ml)라고?
‘무슨 속셈이지?’
호의치고는 너무 과한데.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그리고 가게 계산한 거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그, 안 바쁘시면 뭐 좀 물어보고 싶은데요.”
“뭡니까?”
“……혹시 의류에 관한 책이 있을까요?”
“의류?”
“네.”
유미르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 히어로 코스튬에 관한 내용이면 더 좋고요.”
아무래도.
백금 여기사 컨셉은 버리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