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294)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294화(295/668)
무협지를 보면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다.
이 깨달음은 다양한 것으로부터 얻는데, 이 ‘다양한 것’은 정말 말 그대로 다양하다.
길을 가다가 만난 거지로부터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자연의 이치로부터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남녀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얻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S급으로서 깨달음을 얻은 남자가 있다.
“그게 새로운 이능력입니까?”
“예. 다른 이들에게는 처음 선보이는 겁니다.”
태조는 자신의 몸 곳곳에 달라붙어있는 강철의 손들을 가리켰다.
“아직 멀티태스킹으로는 네 개까지 각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죠.”
태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깨에 달려있는 원래 신체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이 진짜 사람이 움직이는 것과 똑같아, 나는 태조가 새롭게 개발한 이능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훌륭합니다. 더 강해지셨군요.”
“이래봐야 아직은…그런데, 여자친구분 기운이…?”
“아. 어제 혼을 좀 냈거든요.”
유미르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정확히는 피로에 찌들어,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 채 새근새근 자고 있다.
변신한 상태지만, 몸에는 그 흔한 붉은 자국이나 상처 하나 없지만, 육체적 피로로 아침부터 조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
어제 기차 특실에서 애국을 하느니 마니 이야기를 했던 것에 대해 나는 밤새 설교를 했고, 유미르는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에 좀 기가 허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그냥 새로운 자극을 원했던 건지. 조금 선을 넘은 것 같아서, 혼 좀 냈습니다.”
“그, 폭력은….”
“그냥 가볍게 몽둥이질 좀 했습니다.”
“아하.”
역시 남자라서 그런지, 태조는 바로 이해했다.
“큰일 날 뻔 했군요. 제가 괜히 초대 운운해서 크게 실수를 할 뻔 했습니다.”
“네 사람, 오늘 아침에 보니 다들 천국에 다녀왔던 것 같더군요.”
“예. 나름, 넷을 상대로 ‘마사지’를 해주느라 고생 좀 했죠. 덕분에 이능력 컨트롤도 더 정교해졌지만.”
“마사지입니까?”
“마사지입니다. 근육 풀어주고, 꾹꾹 눌러주고, 긴장 풀어주고.”
태조의 몸에 다시 달라붙은 네 개의 강철손이 끈적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얘도 S급은 S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조 더 핑거링 마스터.
손이 여섯 개가 된 만큼, 앞으로 이 손을 이용해 온갖 응용이 가능하리라.
각각의 손에 무기를 들고 진짜 아수라와 같은 전투를 펼칠 수도 있을테고.
일단 손마다 권총을 들고 쏘면 여섯 발이 동시에 날아가기도 하며.
철사를 이용해 네 개의 손을 원격조작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하며 움직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저 ‘네 개’라는 기준은 각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일 뿐, 모든 손들을 똑같이 사용한다고 하면 그 수는 수십 개에 이를 것이다.
“현철수 씨.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뭡니까?”
“이거, 나중에 정식으로 공개를 하고 싶습니다.”
“음….”
이미 금속조작이라는 능력을 내게 보여준 이상, 태조는 자신이 태조라는 걸 숨길 생각이 없다는 것.
“고민이라는 건, 아마 그걸 깨닫게 된 ‘계기’에 대해서 포장을 좀 하고 싶다는 겁니까?”
“예.”
태조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내가 바로 그의 고민을 알아채자, 뭔가 답이 있는 게 아닐까하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무래도 애국으로부터 이 능력을 얻었다고 하면,사람들이 되게 우습게 생각할 것 같아서요.”
글쎄.
만능애국설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는 게 이 세상인데, 애국으로부터 이능력을 개발했다고 해도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할까.
히어로 위키에는 좀 그렇게 적히는 게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김태식 씨. 당신의 걱정은 알겠지만, 일단 한 가지 분명한 게 있습니다.”
“뭐죠?”
“애국심으로 이능력을 깨닫는 거야말로, 애국을 위해 이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능력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미 두 가지 케이스를 확인했다.
하나는 남들의 눈을 피해 애국하기 위해서 남자의 방에 처들어오겠다는 일념으로 공간이동을 배운 여자가 하나 있고.
하나는 그런 여자를 질투해서 자신도 내 방에 항상 있겠다는 일념으로 분신의 이능력을 자력으로 개발한 여자가 있다.
“직접적으로 그 경우를 말씀드리기는 조금 그렇지만, 애국을 위해 이능력을 만들어낸 케이스는 이 세상에 제법 많을 겁니다. 단지 모두에게 진실을 숨기고 있어서 그렇지.”
나는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일단 그 네 명에게는 함구해달라고 하세요. 대신 주기적으로 아마 입막음용 주사를 놓아줘야 할 겁니다.”
“그거야 뭐….”
“…….”
생각해보니, 이 남자 약혼녀도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알아서 하겠지.
이걸로 만약 악마가 될 여자였으면, 유전자 도둑 페이그린 사태에서 이미 악마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다른 변명 거리를 만들어내야겠죠.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적당한 제안은 두 가지 입니다.”
“두 가지?”
“예. 하나는 원본이 되는 걸 밝히는 것. 영화든 소설이든 만화든, 어떤 매체를 통해 이걸 보고 이 이능력을 개발했다고 하는 겁니다.”
“전통적인 방식이군요.”
“그렇습니다.”
매체를 통한 이능력의 개발.
이는 이능력 사용자가 공식적으로 ‘여기에서 모티프를 따왔습니다’라고 말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저작권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지만, 현재 이 세계는 저작권보다는 이능력자의 이능력 활용에 관한 부분을 더 중시하고 있으니까.
물론 이능력자가 매체에서 나오는 공상 속 이능력을 똑같이, 혹은 99% 비슷하게 따라해놓고 아니라고 한다면 욕을 먹게 되겠지만.
“그럼 그런 적절한 예시가 있습니까?”
“있죠. 닥터 문어. 가제트 경사. 아수라맨.”
“…그게 다들 뭐죠?”
” ”
태조.
올해 나이 17세.
이 세상에는 없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에 태어난 소년.
“김태식 씨. 저를 무슨 ‘그게 뭔데 틀딱아’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대격변 이전의 매체들을 연구하고, 그 자료를 머릿속에 많이 넣어둔 사람일 뿐입니다.”
“아, 예.”
“제가 결코 나이가 엄청 많다거나, 늙었다거나, 그런 건 결코 아닙니다. 저도 이능력자고, 대격변 이후 출생자입니다.”
도창남은.
나는 그저 고전파일 뿐, 실제 연령까지 그 고전을 따라가는 사람은 아니다.
“그냥 옛 자료를 언급했을 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고전을 보고 모티프를 따왔다고 말하라고요?”
“그런 방법도 있기는 합니다만, 가장 쉬운 방법이 하나 있지요.”
나는 옆으로 쭉 손을 뻗었다.
“위기 속에서 각성했다고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어디 다리 위에서 떨어질 때, 본능적으로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무엇부터 내밀까요?”
“…손?”
“그겁니다.”
“아하. 위기를 연출하고 그 위기 속에서 이능력을 각성한 것처럼 꾸미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태조는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태조는 나를 향해 이능력으로 만들어낸 아수라의 손을 뻗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왠지, 당신과는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아서.”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일부러 마력을 두르지 않은 평범한 손으로 아수라의 손을 맞잡았다.
강철처럼 딱딱하고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악수를 하며 느껴지는 손끝에는 당황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
“김태식 씨. 이능력자가 제일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하나 이야기를 하자면.”
꽈아악.
내 등 뒤에서 손을 뻗은 유미르로부터 따스한 기운이 흘러들어와 내 손을 향했고, 나는 최대한 유미르의 색이 드러나지 않게 손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새로운 이능력을 배웠다고 해서, 그걸 함부로 힘자랑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
“이능력은 그저 이능력일 뿐. 아무리 신기술이라고 해도, 그게 언제든지 파훼될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당신은…제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사람인 것 같군요.”
그렇겠지.
S급이 악수를 했는데 그걸 그대로 받아쳤으니까.
“누굽니까? 도대체. 당신같은 사람이 있다고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들어본 적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존재일 뿐.”
“…….”
“저는 그저 당신이 신의주로 가는 길에 초대를 받은 남자, 그리고 이쪽은 제 여자친구일 뿐입니다.”
“…….”
자세한 건 물어봐야 어차피 대답도 해주지 않을 거다.
무언의 압박을 보내자, 그제야 태조는 아수라의 손에 힘을 빼고 한탄했다.
“하아. 세상에는 S급이 너무 많군요.”
“…….”
저거, 타락할 것 같은 대사인데.
“좋습니다. 세상에 제가 모르는 S급이 있든 말든,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 제가 중국이랑 러시아 S급 미녀들이랑 싸울 때, 혹시 제가 당할 것 같으면 당신에게 배턴을 넘기겠습니다.”
“그러다가 옆에서 구경만 하게 될지도 모를텐데요.”
“설령 그렇다고 한들, 중요한 건 제 자존심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자원이니까요.”
태조는 태극무늬가 새겨진 콜라캔을 만지작거리며 캔뚜껑을 열었다.
“제 자존심이 꺾이는 건 상관없습니다. 더 중요한 건, 이 나라의 자존심이니.”
“…….”
어떻게.
민지영이라는 그 악녀로부터 이런 반듯한 존재가 태어난 걸까.
“오늘 저녁, 신의주로 출발할 겁니다. 기차가 아니라 차량으로 따로 움직일 예정이고, 두분을 위한 차량은 따로 수배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예. 아마 이르면 오늘 밤…아니면 내일, 그들이 국경을 넘을 거라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파악한 것과 일치한다.
확실히, 블랙 요원으로서의 태조는 마냥 푼수는 아닌 모양이다.
“신의주로 가기 전까지 몇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형님.”
“…형님?”
“저보다 더 애국자이신 분이고, 더 자세히 알고 계신 분이니 여쭙는 거지요.”
“……뭘 물어보고 싶어서.”
“그.”
태조는 입맛을 다시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자친구 분께 다른 여자와 하는 걸 허락받는 거, 어떻게 허락 받은 겁니까?”
“…….”
이후.
“약혼녀가 있는 남자인데, 혹시 허락을 받고 다른 여자를 상대로 하는 방법에 대해서-”
신의주로 향하는 시간 동안, 나는 남녀관계에 대한 부분에 관해 이런 저런 조언 아닌 조언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