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18)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18화(319/668)
경부고속도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검은색 고급 세단 한 대가 새벽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태조야.”
뒷좌석에 앉은 이는 대통령, 태채진.
그는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태조를 백미러로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극워치 껐다.”
“…….”
태조는 블랙박스를 향해 손을 뻗어 블랙박스를 끈 뒤, 차량 내부의 공조에 손을 올리며 마력을 일으켰다.
파지직.
“위급상황 발생, 위급상황 발생. 위급상황….”
뭔가 전기가 튀는 소리가 나자마자, 태조는 위급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은, 대통령 차량을 따르는 호위 차량들에는 특별한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빨리 안 켜시면 5분내로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할 겁니다.”
운전대를 잡은 태조의 말에 태채진은 피식 웃으며 앞으로 상체를 숙였다.
“그럼 5분 내로 할 말 다 하면 되겠지. 너, 어떻게 된 거냐?”
“그냥, 이번에 올라가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너로 사는 건 어떻겠냐고.”
“진심이냐?”
“고민 중입니다.”
“하.”
태채진은 대화 중에도 앞만 보며, 계기판과 정면만 바라보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태조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고민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구나. 나야 대환영이다. 아니, 진작에 그래야 했을지도 모르지.”
“이린이에게는 계속 비밀로 하겠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달라졌는데?”
“…철 좀 들었다고 하면, 뭐 대충 둘러댈 수 있겠죠.”
“하긴. 남자가 철 드는 게 뭐 정해진 시기가 있는 건 아니지. 그래도….”
태채진은 안쓰러운 얼굴로 태조를 바라봤다.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세상에는 평생 비밀로 해야 하는 비밀도 있지 않겠습니까.”
“평생 떠안고 살 셈이냐?”
“저 한 명만 안고 살아가면 되는 일입니다. 물론, 죄송하지만 조부님께서도 살아계신동안에는….”
“마음 같아서는 내가 다 떠안고 가고 싶을 지경이다. 쯧.”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았지만, 시간은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둘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네 자리, 많이 어려울 거다. 이전의 네가 워낙 사고를 많이 쳤어야지.”
“그건 괜찮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저는 저대로 새로운 컨셉을 잡으면 되니까요.”
“뭐 정해둔 거라도 있어?”
“그건 비밀입니다. 나중에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보다.”
삑, 삑, 삑.
과속신호가 울리기 무섭게, 태조는 속도를 늦추며 차를 정속으로 몰았다.
“부산으로 돌아가면 누님에게 고백할 겁니다. 제가 저로 살기로 했다고.”
“결혼, 할 거냐?”
“누님이 원한다면.”
“…진짜로 손자손녀를 보겠군.”
“증손자죠.”
“네 생물학적 아버지이면서 내 생물학적 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놈은 그냥 없던 놈이다. 네가 내 아들이고, 내가 네 아버지라고 생각해라.”
“…그럼.”
태조는 쓰게 웃으며 다시 페달에 발을 올렸다.
“손자가 될지 손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 이름은 조부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슬슬, 1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태조가 불안감을 보이며 창문을 흘끗거렸고, 태채진은 꺼진 태극워치에 다시 손을 올렸다.
“하여튼, 이 놈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켜시기 전에,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태조는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 애국하려고 합니다.”
“…응?”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다른 이들이 들어도 될 것 같으니…어, 크흠.”
태조는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점차 높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방금 전까지 조부님이라고 깍듯하게 말하던 청년이 사라지고, 밝아진 목소리의 청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이번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무슨 생각?”
“영웅은 삼처사첩이라는 말.”
“뭐?”
“한 명만 선택하는 건, 이 세상에 죄를 짓는 게 아닐까 싶어서. 이 나라에 매국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
목소리는 진중하고, 여전히 운전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점차 가벼워지고 경박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번에 개성에서 걸그룹 여자애들 넷이랑 같이 했거든?”
“…….”
“만약에 넷 다 일 년 안에 막 은퇴하고 산부인과 가야하고 그렇게 된다면, 그걸 내가 막 없던 일로 하고 그럴 수는 없잖아.”
“너….”
“책임진다면, 괜찮은 거지?”
태조는 잠시 백미러를 통해 태채진과 눈을 마주했다.
“무작정 낳아서 S급 아니면 버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태어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건 괜찮지 않겠어?”
“스노우화이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냐?”
“남자는 여자보다는 아무래도 좀 더 편하니까. 히어로 활동 부분에 있어서는.”
“그건 그렇…하아.”
태채진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삐비빅.
태극워치가 울렸다.
옆차선에 경호 차량이 바로 따라붙었고, 선팅이 짙게 되어있는 창문이 열리며 흑발의 중년 남성이 태극워치를 가리켰다.
[대통령님. 혹시 무슨 이상 있습니까?]“별 거 없다. 그냥 가족회의 잠깐 했어.”
[…알겠습니다. 큰 문제가 없다면, 태극워치는-]“알고 있네.”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내가 자네에게 거기까지 보고해야 하나? 젠장, 안 그래도…. 끊어!”
태채진은 성을 내며 태극워치를 덮었다.
옆 차가 뒤로 슬쩍 속도를 늦췄고, 동시에 태조는 페달을 살짝 누르며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화내시면 혈압에 안 좋다고 하던데.”
“내 혈압을 높이는 건…에휴, 너다, 이 녀석아.”
태채진은 일부러 분노를 삭히듯, 체념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지금까지는 열심히 매국박스 애용하다가, 이제 애국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뭐냐? 응?”
“애국이 곧 국력이니까요.”
“그냥 네가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런 건 아닙니다.”
태조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여자면 믿고 제 대를 잇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여자라면, 책임을 지고 싶다는 겁니다.”
“삼처사첩이라며.”
“그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고요.”
“이런….”
“책임만 지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태채진은 잠시 진심으로 쌍욕이 튀어나올뻔 했지만, 태조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계속 말했다.
“저는 책임없이, 목적을 위해 애를 싸지를 생각은 없습니다. 마음에 든 여자가 저를 다른 목적 없이 순수하게 마음에 들어서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의 결실이 생명으로 나온다면 키우고 싶을 뿐입니다.”
“그게 여자 한 명으로 끝나는 게 아니잖냐.”
“저기 미국 쪽에 보니까, 능력있는 알파 히어로 남자라면 여러 여자에게 유전자를 뿌려야 하는 게 태어난 의무라고 막 이야기를 하던데.”
“그건…! 하아, 아니다. 그래, 책임지겠다고 하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냐.”
태채진은 두 손을 들었다가, 태극워치를 다시 만지작거렸다.
덮개 부분을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듯 입꼬리를 비틀며 그는 조용히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뭐, 필요한 거 있냐?”
“예. 다른 건 없고…. 법 좀 하나 입법 가능할까요?”
“삼권분립으로 대통령은 입법을 못하는데.”
“그, 여야가 힘을 합쳐 뭣 좀 잘 하자고 맨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그게 국익과 관계가 있습니까, S급 히어로 아머드 태조?”
존대까지하며 껄껄 웃는 태채진, 대통령의 행동에 태조는 멋쩍게 웃으며 핸들을 꽉 붙잡았다.
“이능력자가 늘어나고, 손자손녀만으로 야구팀을 결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너 이 새끼, 도대체 몇 명이나…크흠.”
태채진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삼켰다.
“그래. 무슨 법이 필요하지?”
“S급 히어로에 한정하여, 중혼을 합법화 해주시죠.”
“…누구는 불륜출산을 인정해달라고 하더니, 누구는 또 중혼을 합법화해달라고 하네. 아니, 중혼하면 몇 명이나 아내로 들이려고?”
“음.”
태조는 한 번 손을 꽉 움켜쥔 뒤, 잠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만큼…?”
“하, 하하. 이러다가 S급들 전부 애국하게 되겠네.”
“이능력자의 성년 나이를 17세로 낮추기로 한 것도 통과되었잖습니까?”
“법적인 나이 이야기지, 그래도 사회의 윤리는 여전히 20세란다.”
“어쨌든, 성인이라는 거 아닙니까.”
태조는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검은 머리칼을 슬쩍 한 번 보며, 정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만약에 이린이가 애국을 한다면-”
“뭐 이 새끼야?!”
“…….”
“어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그 어린 것이 뭘 벌써부터 애국을 이야기하고 있어! 이린이가 넌 줄 알아?!”
“……그러니까, 이린이가 애국을 한다면, 그 상대로 S급 이능력자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이린이를 책임져 줄 수 있는 남자요.”
“그러니까 누구?”
“음….”
태조는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바로 입을 열었다.
“세피로트 기사단 같은 남자라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음.”
잠시 성이 났던 태채진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오빠니까 내가 뭐라고 먼저 직접 말하기는 그렇지만.”
태채진은 눈을 크게 뜨며 앞을 노려봤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린이가 직접 이 남자랑 같이 평생 살 거라고 데리고 오기 전까지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애국자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법.
* * *
한창 회의를 나누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 시간.
“후우.”
나는 셋과 함께 다시 온천에 들어왔다.
온천욕을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마력을 회복하기 위함.
그런데.
“언니. 그래서 선생님이 있잖아요, 막 태조한테 여럿을 상대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랬다니까요.”
“그렇겠지. 실제로도 상대했으니까.”
“그립긴 하네. 그 때처럼 다시 모이려면 연말파티 때나 가능하려나?”
유미르, 윤혜라, 현세린 셋은 다인전 대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내 귀를 아프게 했다.
“잠깐 여의주 마나 채우면서 마나 회복을 좀 하려고 했더니….”
“원래 쉬면서 이야기를 하는 거지. 안 그러니, 이선아?”
“…….”
아.
“저기.”
펜션에.
“애국파티라고 해서 왔더니, 이게 무슨….”
윤이선이 놀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