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22)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22화(323/668)
그 시각, 세종섬 아카데미 총장실.
“젠장, 젠장….”
아카데미의 총장 김석대는 갱지 종합장에 붉은 글씨를 계속 끄적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야해라, 하야해라, 아니, 탄핵 당해라….”
그가 빈 종이에 이름을 쓰고 있던 자는 다름아닌 태채진.
안 그래도 특이한 성씨에 이름까지 특이한 사람이니, 김석대가 누구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지는 굳이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감히 세계교육기관의 총장인 내게…!”
붉은색으로 이름을 쓴 태채진이라는 글씨의 위로 또다른 태채진이 채워지며 종이의 빈곳보다 붉은 잉크가 더 많아진 순간.
똑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김석대 총장은 볼펜을 내려놓은 뒤, 갱지 종합장을 서랍 안에 집어넣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들어오시게.”
“실례합니다, 총장님.”
끼이익.
문이 열리자, 진한 커피향기가 방 안에 풍겨오기 시작했다.
“한 잔 하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시죠.”
“리사라 교수. 어서 들어오시게.”
제법 늦은 시간에 커피가 무슨 말이냐 싶지만, 커피와 함께 일생을 살아온 김석대에게 커피는 그저 음료일 뿐.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제주도 여름캠프의 건으로 왔습니다.”
커피향에 이끌려 손님 맞이용 의자에 앉은 그는 늦은 시간에 방문한 미인 여교수, 리사라의 용건에 떫은 얼굴로 머그컵을 집어들었다.
“자네도 내가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습니다. 총장님의 교육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정치가들의 해석이 잘못되었을 뿐입니다.”
“그렇지? 역시 같은 교육자라서 그런지 말이 통하는구만.”
총장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커피를 홀짝였다.
“대통령이 교육에 대해 뭘 알겠는가? 자식 새끼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애들 마구 싸지르지를 않나, 나라 팔아먹는 며느리를 들이질 않나, 그 손주 놈은 문란하기 이를 데 없이 아이돌 넷이랑 덜컥 놀아나지를 않나.”
점차 어느 가정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워졌지만, 총장은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자가 이 교육원의, 전 세계 모든 교육의 선두에 있는 세종-아카데미의 총장에게 그런 식으로 망발을 지껄이다니. 쯧, 하여튼 빨리 독립해야 해. 이곳이 한국 정부기관이 아니라, 세계로부터 독립된 기관이 되어야 정부 놈들도 정신을 차리지.”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그러려면 역시, 한국이 아닌 세종 아카데미에 뼈를 묻을 수 있는 ‘S급 교수’가 필요한 법이지요.”
리사라는 옆에 놓아둔 태블릿을 꺼내 자료 하나를 열어 총장에게 건넸다.
“백설희 말고, 다른 S급 이능력자 중에 교수의 자질을 가진 이들을 찾아봤습니다. 일단 학생회장 윤이선이 가장 적절하며, 그 다음으로 바리데기 태이린 등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아예 가능성이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 소속이 있으며, 그나마 히어로 협회 소속이라고 할 수 있는 한 명은…지금 설득 중입니다.”
리사라는 태극워치를 손으로 쓸었다.
“비록 교육 전공은 아니지만, 나이가 아직 20대 초반이니 지금부터라도 교육학을 배우면 될 겁니다. 총장님께서 계시는 동안, 제가 부교수로 옆에서 사수가 되어 키우면서 정교수, 나아가서는 부총장의 자리까지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싸움박질만 해대는 게 전부인 놈인데, 잘 할 수 있겠나?”
테이블에 올려진 태블릿 속, 8명의 프로필 사진 중 순박하게 보이는 한 청년의 사진이 크게 확대되어있다.
“전투 스타일이 박투술이어서 그렇지, S급은 기본적으로 다들 석박사 정도는 그냥 할 수 있는 두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르치기만 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남자입니다.”
“뭐, 자네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겠지. 나는 자네의 결정, 전폭적으로 지지하네. 그래. 잘 물어서 나중에 잔치국수 좀 먹여주시게나. 껄껄.”
“물론입니다.”
리사라는 옅게 웃으며 태블릿의 화면을 넘겼다.
“저는 그러면 세종섬에서 이 남자를 초대하여 어떻게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볼테니, 총장님은 이번 여름캠프를 부디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하여주십시오. 교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에 따라가는 것 같은 게 짜증나지만,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무엇이?”
“학생들이 제주도에 가서 눈이 맞아, 아카데미에서 임산부학생이 되어 계속 다니게 될지도.”
“…그렇지.”
총장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비릿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여름학기든 여름캠프든 뭐든, 젊은 남녀를 한 곳에 모아두고 며칠을 계속 있는데 정분이 나지 않을 리가 없지.”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위하여.
“섬에 갇혀있는다? 아니지, 아니야. 제주도가 얼마나 넓은 섬인데. 주중에 강의만 제대로 마치면, 저녁과 주말에는 사실상 자유가 아닌가? 그동안 뭘 하겠어. 응?”
“당연히 제주도를 여기저기 둘러보러 다니겠지요.”
“그냥 둘러보기만 하겠나? 사람 만나러 다니지. 흐흐흐.”
총장은 제주도의 지도를 띄웠다.
그리고 간단한 검색을 통해, 키워드 하나를 입력했다.
삐비빅.
바로 키워드에 해당하는 온갖 가게들이 해안선을 따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주막, 주점, 주가…. 술 파는 곳이 이리 많은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나. 끌끌.”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모든 곳에 술집이 있다.
돌담을 따라 걸어간 둘레길의 끝에, 마치 기루와도 같은 모습의 디자인을 한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인테리어는 저기 한옥마을과 비슷하게 세련된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각은 함부로 밖에 나가서 말하기 어려울 정도.
“리사라 교수. 내가 예전에 신촌에 있었을 때는 말이야, 서울 대학가 근처에 학생들로 가득했어. 대학생들 상대로 술장사만 하더라도 서울에 아파트를 사고 그랬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신촌이 아니라 해운대가 되었지만.”
“그래. 하지만 서울이 망하고, 부산은 이미 과포화되었고, 결국 물장사 하던 이들이 어디로 갔겠는가? 사람들 놀러오는 곳에 장사꾼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한 이치. 흐흐흐, 제주도에 이렇게 숙박업소와 주점이 많은데, 어디 고삐 풀린 학생들이 가만히 있겠나?”
총장은 머그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향해 섰다.
“들어갈 때는 혼자였지만, 나올 때는 둘이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제주지.”
“…셋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 그건 너무 과속한 거고.”
만일.
“제주도에 남녀가 각각 들어가서 눈 맞은 걸로 모자라, 땅으로 돌아왔더니 셋이었다?”
절레절레.
“이능력자 둘이 눈 맞고 배 맞춘 게 아니면, 아까워서 어떻게 하겠나? 쯧쯧. 배는 맞춰도 좋다 이거야. 하지만 이왕 애 낳을 거라면.”
총장은 창문 너머, 북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울릉도가서 해야지. 암.”
* * *
“……만남의 메카.”
백설희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계속 마우스를 딸칵거렸다.
“A급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아마도 이 A급들이 사람 만나고 다니도록 하겠지. 분명 그럴 거야. 그러면….”
위키 속 사진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또 악마가 될 수 있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는 판데모니엄에 관한 자료와 함께,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악마등장 사건들이 정리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악마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그냥 건설적이고 자연스럽게 모든 일이 끝난다면?”
백설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여름학기에 참가하는 학생들도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데, 나라고 하지 말라는 법이 있어? 그렇잖아.”
백설희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태극워치를 이용해 다른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명분이 필요해. 명분이.”
백설희는 모든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교육 프로그램에 대하여, 일부에 대해서는 제안을 할 정도의 권한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합법적으로.”
교육 프로그램 중에 ‘사서’의 도움이 필요한 교과나 과목이 있다면, 아무런 의심없이 그를 불러낼 수 있다.
“아. 일 때문에 제주도 오라고 하는 건 좀 그럴까…?”
백설희는 태극워치를 만지작거리며, 바로 전화를 걸려던 손을 멈췄다.
“…아니지. 지금은 좀 그래. 시간이 너무 늦었어.”
어느덧, 시간은 새벽 3시.
자신이야 교육 프로그램을 짜느라 한창 새벽까지 눈을 뜨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는 조용히 잠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내일 아침에 물어봐야지.”
백설희는 싱글벙글 웃으며, 명분을 찾아냈다.
“…빙고.”
제주도서관.
“명분이라는 건, 어떻게든 끼워맞추기만 하면 그만이야.”
백설희는 눈에 불을 켜며 태극워치를 조작했다.
“허락만 떨어진다면….”
히죽.
“제주도에서 바로 공인한 다음, 은퇴 각 잡아야지.”
그의 허락만 떨어진다면.
“…나라를 뒤엎어버릴 스캔들을 일으켜야겠어.”
* * *
밤이 되었다.
여자 넷 모두 침실에서 곤히 잠을 자는 동안,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와 노천탕에 들어왔다.
몸을 담그지는 않고, 바닥에 두 발을 디디고 선 채, 도깨비방망이를 앞으로 뻗어 마력을 일으킨다.
첨벙.
물 속에서 빠져나온 금구슬들이 도깨비방망이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력은 충분한가.”
여의주에는 충분한 마력이 깃들었다.
불과 몇 시간만에 이렇게 마력이 채워진 걸 보면, 앞으로도 이렇게 여의주를 양산할 수 있을 터.
“…….”
전부 다 사용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곳에서 쓰게 된다면, 이 금구슬들은 분명 큰 도움이 되리라.
“안 쓰는 게 다행이지만….”
첨벙.
나는 적당한 크기의 금구슬 두 개를 챙겼다.
나머지는 전부 다시 노천탕에 떨어졌고, 나는 도깨비방망이의 옆에 금구슬 두 개를 붙였다.
강화, 튜닝 완료.
‘마나가 부족하면 다른 곳에서 빌려오면 돼.’
그리고.
이 금구슬, 여의주 두 개를 바탕으로, 새로운 내가 된다.
“변신.”
휘이잉.
바람이, 남쪽을 향해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