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29)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29화(330/668)
그 시각, 부산 히어로 협회-협회장실.
“저게 S급의 품격이지.”
협회장 정기조는 정면의 TV 화면에 반짝이는 번개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뇌제는 믿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
“그 말씀은 다른 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다른 히어로들이 아니라는 거지.”
부협회장의 말에 혀를 차며 단서를 단 정기조는 홍차티백이 들어있는 머그컵을 들며, 화면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렇게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빌런들을 정확히 번개 떨어뜨리는 사람말고 또 수성전에 적합한 사람이 또 누가 있나?”
“얼음벽을 세우는 분이랑, 강철벽을 세우는 분이 있지요.”
“얼음벽 세우는 분은 은퇴각 잡고 계시고, 강철벽 세우는 분은 더 강한 사람한테 자주 뚫리잖나. …저렇게 전격의 벽을 세우고 있으면, 다들 꼼짝도 못하지.”
홍차를 가볍게 홀짝인 협회장은 머그컵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정수리를 가리켰다.
“머리 위에 번개가 떨어지는데 어떻게 막겠어?”
“그러다가 죽으면….”
“사람마다 다 적절하게 안 죽을만큼 번개를 떨어뜨리니까 괜찮네. 자연의 번개를 맞아도 E급만 되어도 살아남는데, 마력으로 만들어진 번개를 이능력자들이 설마 버티지 못하겠는가?”
자연의 번개와 이능의 번개.
어느 쪽이 더 강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전자.
이능의 번개는 결국 번개의 성질을 가진 마력 공격일 뿐, 마력만 충분하면 그 공격을 상쇄하거나 버텨낼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막 백만볼트에 매일매일 지져지는 악당들도 있었다고.”
“그거, 요즘도 합니다.”
“…오, 그래? 어떻게 안 죽고 아직까지 지져지고 있나보군.”
“전체 이용가나 7세 이용가 만화에 사람이 전격에 지져진 채로 죽으면 그게 아동용 만화입니까?”
“그건 그렇지. 하아, 요즘도 나올 줄이야.”
협회장은 과거를 추억하듯 생각에 잠긴 채, 한참 머그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어렸을 때는 그냥 세상 모든 게 다 잘 흘러갈 줄 알았단 말이지. 학교가 변신을 하든, 땅에서 로봇이 솟아오르든, 그도 아니면 기차가 변신을 하든, 슈퍼로봇이 나타나서 악당들을 물리쳐주고 그런 줄 알았어.”
“…죄송합니다. 제가 거기까지는 잘.”
“공감을 원하고 한 이야기는 아닐세. 신경 쓰지 말게.”
“하지만 알아주시기를 바라면서 말씀하시는 게-”
“크흠. 그보다, 지금 너츠 크래셔의 시신은 안전한가?”
협회장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혹시 건물 안으로 침투한 자는 없겠지?”
“없습니다. A급 요원 여섯이 따로 현장에 잠복해있습니다. 아직 병원 내부로 진입에 성공한 자들은 없습니다.”
“다행이군. 생각보다 수가 더 적어서.”
“…그들 덕분 아니겠습니까.”
부협회장은 굳은 얼굴로 태블릿에 자료를 열어 협회장에게 건넸다.
“각지에서 들어온 첩보입니다. 가차없는 행동을 저지르는 걸 봐서는, 그들이 틀림없습니다.”
“…….”
“협회장, 역시 이들 덕분에 해외에서 오는 도둑들을 제거했으니, 이들에 대한 건-”
“빌런은 빌런일세.”
협회장은 태블릿 속 영상을 화면에 띄웠다.
-으아악! 사, 살려줘!
-살려주지 않는다. 그게, 나니까.
-네가 뭔데!
-한국의 자원을 빼앗으려는 자를 전부 없애는 자.
서걱.
CCTV 화면 속, 저승사자같은 존재는 거칠게 칼을 휘두르며 저항하는 이능력자를 베어버렸다.
-본인은, 율도왕이니라.
칼날에는 마력이 반짝이고 있었고, 마력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갓과 도포보다도 검게 물들어있었다.
“…저런 자들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자고?”
“하하, 협회장님. 그래도 저들 덕분에 저희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귀찮은 일이 있더라도, 설령 위험했더라도 저렇게 사람 죽이는 자들을 인정해주고 풀어주자는 건가?”
협회장의 날 선 목소리에 부협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거, 좋아. 이미 국가에서도 그렇게 부대를 운용하고 있으니까, 아예 하지 말자고는 할 수 없지. 하지만 자네는…저들을 히어로 협회의 무력으로 쓰자는 거 아닌가?”
“그렇습니다.”
부협회장은 자세를 고쳐앉은 뒤, 목소리를 낮췄다.
“회장님. 히어로 협회는 정부와는 별개의 독립된 기관으로….”
“그 이야기만 벌써 수십 번도 넘게 들었네.”
“한 번 더 들어주십시오. 히어로 협회는 국제기구입니다. 아무리 한국이지만, 한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S급 히어로들 모두 히어로 협회 소속이 아닙니까.”
“국가랑 국제협회랑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S급들이 잘도 협회를 선택하겠군.”
“그러니, 협회를 선택하는 이들을 미리미리 우리 편으로 만들자는 겁니다. 언젠가 정부에서 계엄이라도 내리는 날이 온다면….”
“헛소리.”
협회장은 단칼에 부협회장의 말을 잘라버렸다.
“함부로 어디가서 그런 이야기하지 말게. 만약 정부에서 계엄을 내린다면, 그건 히어로 협회나 다른 조직이 S급 빌런들을 사유화하여 무력집단이 되고자 할 때야. 계엄의 대상이 히어로 협회가 되기를 바라는 건가?”
“하지만 언제까지 이 나라의 하위 기관처럼 종속된 채로 억눌려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능력의 시대입니다. 더 이상 정부의….”
“일이나 하지. 마침 뇌제 쪽에서 연락이 들어왔군.”
부협회장은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숙였고, 협회장은 태극워치를 조작해 뇌제와 통신을 연결했다.
“그래, 어떤가?”
[정리 끝났습니다. 나머지는 병원 내부에 들어가서 확인하겠습니다.]“괜찮겠나?”
[병원 인근 CCTV에 회로를 모두 연결했습니다. 신원불상의 이능력자가 나타나는 즉시, 실내에서 전격을 쏘아버릴 수 있습니다. 요새화 끝났습니다.]“그럼 답은 나왔군. 병원 지하에 긴급 발전기도 있다고 하니, 그것도 가져다 쓰시게.”
[알겠습니다. 이상 발생 시 연락드리겠습니다.]뚝.
딱딱한 뇌제의 보고가 끝나자, 협회장은 다시 부협회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니 다행 아닌가. 응? 자네의 걱정이 뭔지는 알아. S급이 줄어들 걸 걱정하는 거 아닌가.”
“…협회장님. 저는 불안합니다.”
부협회장은 겁에 질린 얼굴로 벽에 걸린 8개의 초상화를 가리켰다.
“백설희 양이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을 한 이후, 저는 갑자기 저 사진들이 하나둘 떨어질까 걱정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렇게 은퇴를 하겠나?”
“젊은이들 일이라는 게, 또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당장 뇌제만 하더라도, 갑자기 남자한테 홀려서 임신은퇴하겠다고 하면….”
“그건 걱정하지 말게.”
협회장은 안도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뇌제, 남친 없어.”
“……불륜남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누구처럼.”
“그런 것도 없어. 뇌제는 말일세.”
협회장은 정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모솔이야.”
* * *
“수고하셨습니다, 뇌제 양.”
“뭘요,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죠.”
뇌제, 김윤지는 병원 밖으로 쏘아지는 전격을 CCTV로 살피며, 병원장의 인사에 건성으로 답했다.
“이 정도면 시신을 노리는 자는 없을 겁니다. 그럼.”
“아, 혹시 휴식은….”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직원용 휴게실을 잠시 빌릴 수 있을까요?”
“아뇨, 아뇨. 뇌제께서 오셨는데 그럴 수 있겠습니까? 마침 VIP용 병실이 비어있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 김 닥터가 안내할 겁니다.”
“…닮으신 것 같은데.”
“하하, 아들입니다.”
병원장은 뇌제에게 아들을 소개하며, 사람좋은 미소로 아들의 어깨를 토닥였다.
“올해 나이가 딱 서른으로….”
“장소만 나중에 알려주세요. 혹시 침입자가 있을지 모르니, 시신을 살피러 지하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시지요.”
뇌제는 상황실로 꾸며진 병동을 빠져나와, 인파를 헤치며 지하로 향했다.
“와, 누나! 멋져요!”
“그래, 그래. 누나가 지금은 일하는 중이니까, 사인은 일 끝나고 해줄게.”
“사인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아, 그래.”
“그냥 웃어주시기만 하면 돼요! 누나 웃을 때 천사같아요!”
“아, 그래. 너는 참 사람을 들었다 내려놨다 하는 구나.”
머리에 털모자를 쓰고 휠체어를 탄 남자아이를 향해 웃어주며, 뇌제는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
주변에 사람은 없다.
애초에 지하는 현재 통제구역이고,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다.
저벅, 저벅.
뇌제는 복도를 따라 걸어, 시체안치실에 도착했다.
태극워치를 문에 대자마자 붉은 불빛이 반짝이던 문이 좌우로 열렸고, 뇌제는 안치실 안으로 들어와 가운데에 놓인 너츠 크래셔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르륵.
하얀 천이 거두어지며, 너츠 크래셔의 얼굴이 드러났다.
핏기가 완전히 가신 그의 머리는 한쪽이 크게 찌그러져있었다.
“…….”
끼이익.
문이 닫혔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 ‘파직’하는 소리와 함께 문에서 ‘딸칵’하는 소리가 났다.
“…….”
한 번 눈을 크게 감았다 뜬 뇌제는 앞으로 손을 뻗으며-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뭔가를 하려다, 뒤에서 나타난 이에 손을 거두었다.
“당신은 뭘 하려고 온 거죠? 확인사살? 이미 죽은 사람을 상대로 또 죽이려고요?”
[그걸 묻고 싶은 건 나다, 뇌제.]저벅, 저벅.
[굳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만들 필요가 있나 싶지만, 나는 어쨌든 그런 것보다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 말이지.]목소리의 주인은 너츠 크래셔의 시신 앞, 뇌제의 반대편에 서서 뇌제와 시선을 마주했다.
[시신을 전기분해해서 뭘 하려는 거냐.]“……!”
[시신을 훼손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뼛가루조차 남지 않게 태워버리려고?]“……당신.”
[그러시든지.]“……?”
도깨비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대신, 받아갈 건 받아가야겠는데.]“입막음 비용이라면….”
[이름값.]“…….”
뇌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깨비의 이름을 빌려서 사람을 죽였잖나.]“뭘로 값을 치르면 되죠?”
[그건.]도깨비는 손으로 뇌제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