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3)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3화(34/668)
세종섬은 다양한 구역으로 나뉘어져있다.
섬 자체가 하나의 도시인만큼 행정구역도 나뉘어져있으나, 내게 다행이라면 이 행정구역은 국제표준 비슷한 걸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장영실로, 황희동, 김종서구와 같이 역사 속 인물의 이름을 따서 행정구역을 나누지는 않았다.
-한쿡어 발음 너무 어렵씁니다! 외쿡인도 편하게 발음할 수 있는 도로명을 만들어주씹씨오!
-아,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발음하기 편한 순 우리말 중에서 쓰도록 하지. 일단 여기는 나로동이라고 하세.
-장관님의 웅대한 결단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아니, 이 사람이…?
적당히 외국인도 발음하기 쉬운, 마치 태풍의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은 순우리말로 구역이 나뉘어 있다.
이곳은 ‘이든구’.
순우리말로 ‘착한, 어진’이라는 뜻을 가진 구역답게 전통문화와 현대식 감성이 잘 어우러진, 마치 전주한옥마을을 연상케하는 그런 구역이다.
외형은 전통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실내 구조는 모두 현대식이거나 서양식, 혹은 모더니즘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
‘여행으로 데이트 오기 딱 좋은 곳인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현재 이곳에서는 악마의 씨앗이 만들어지고 있다.
달의 위치로 봐서는 새벽 1시.
야밤에 늦게까지 뭔가를 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사실상 어느정도 다들 깊은 잠에 빠진 시각.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을 끄고 밤의 고요함에 잠긴 가운데, 나는 수상할 정도로 고요한 건물의 위에 착지했다.
‘주모가 확실히 능력은 있네.’
이미 자료를 통해 파악한 건물의 외형과 내가 지금 전각 지붕에 올라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춘추각(春秋閣).
아무리 국뽕 세계관이라도 저런 건물 이름을 한자로 짓는 건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건지, 아니면 한글로 현판을 박아넣은 점에서 한자 문화권이지만 우리말을 강조하겠다고 하는 건지.
그런 곳에서 서양식 악마를 제조하는 악마의 씨앗을 양산한다는 게 참 어불성설이다.
‘거리 한복판에 저렇게 떡하니 자리를 잡다니. 어지간히 안 들킬 거라고 자신을 하나봐.’
보통 비밀 연구소 같은 건 사람들의 이목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짓기 마련이건만, 악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은 대놓고 사람들이 많이 사는 거리에 건물을 세워뒀다.
악의 조직이라고는 하지만 결사는 아니다.
결사는 악마의 씨앗 같은 걸 만들지 않고, 외부의 요인 없이 능력자 개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통해 강해지기를 바라는 곳이다.
즉, 악마의 씨앗을 만드는 조직은 결사와는 결이다른 순수한 빌런 집단.
레드 스카프를 대할 때나 악마 릴리스를 대할 때보다 좀 더 확실하게 ‘처형’을 해도 거리낌이 없는 적들이다.
‘일단 유령이 되어 진입해볼까.’
나는 도깨비 방망이로 가볍게 내 어깨를 건드렸다.
순식간에 세상이 무채색으로 물들고, 나는 내 의지에 따라 유령이 하늘을 떠다니듯 춘추각의 지붕으로 진입했다.
‘역시.’
건물 전체에 전자신호가 잡힌다.
그냥 전기선이 늘어진 게 아니라, 건물을 지을 때부터 전선이 촘촘히 배설되어 거미줄처럼 늘어져있다.
‘지독하다, 지독해.’
혹시나 누군가가 건물에 약간이라도 구멍을 뚫고 들어간다?
바로 전기 배선이 잘려서 신호가 아래로 향할 것이다.
그렇다고 잠겨있는 창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면 바로 들킬테지.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전기 배선과 신호를 통해 침입자를 알아차릴 수는 있어도.
‘마나 배선이 아니면 이건 눈치채지 못하지.’
신출귀몰한 도깨비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
‘동화.’
나는 지붕에 손을 올린 채 방망이를 지붕에 올렸다.
‘지나갈 수 있어.’
바람이 안으로 스며들듯, 열기가 건물 안으로 침투하듯, 내 몸은 서서히 지붕을 투과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사르르.
‘후.’
건물의 지붕을 통과하는데 제법 많은 양의 마나가 빠져나갔지만, 아직 영체화 상태를 함부로 해제할 수는 없다.
‘건물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
있어야 할 자들이 이곳에 없다.
침실에도 사람이 없고, 어디 거실 소파에 누워 자는 사람도 없다.
당연하다.
이 건물의 전기 배선을 훑었을 때, 지하실로 향하는 입구가 따로 있으니까.
주모의 조사에 따르면-
끼이익.
문이 열렸다.
나는 벽에 멈춘 채 그대로 숨을 죽였고, 문을 열고 나온 남자의 상태를 살폈다.
“흐아암.”
이능력자는 아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사람의 얼굴과 액면가 나이만 봐도 알 수 있다.
‘저 얼굴로 25세 이하라고 하면 미친 거지.’
누가봐도 30대, 아니 40대에 가까운 얼굴이다.
이능력으로 자신의 모습을 늙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면, 저 흰 가운을 입은 남자는 분명 이 시설의 연구원이다.
“흐아암.”
남자는 냉장고에 있던 물건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 나는 그가 확실히 빌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거기서 앗사히를?’
세종섬 춘추각 냉장고에서 앗사히 맥주를 꺼낸다?
딱히 국가에 대한 반감을 가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몹시 정체가 수상한 건 분명하다.
“흐아암.”
남자는 캔맥주를 가지고 다시 부엌을 나서려고 했고, 나는 남자가 문을 닫기 전에 먼저 문을 빠져나왔다.
벽을 일일이 넘어가는 건 그만큼 마나 손실이 일어나는 법.
아낄 수 있을 때는 아끼는 게 제일 좋다.
파ㅡ앙.
캔의 뚜껑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평범한 침실로 보이는 곳의 장롱으로 향했다.
그것도 그냥 장롱도 아닌 ‘자개 옷장’.
시골 할머니 집에 가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건이 은백색 자개로 반짝이는 옷장의 문을 열었다.
‘역시.’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옷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닫기 전, 나는 옷장 뒤에 또다른 공간이 있는 걸 확인하고 바로 남자의 뒤를 쫓았다.
“어으.”
남자는 몸서리를 쳤다.
딱히 신체적으로 접촉을 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마나 덩어리가 등 뒤에 있으니 등골이 서늘했을테지.
끼이익.
옷장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남자는 태극워치를 어둠 속에 문질렀다.
위이잉.
엘레베이터였다.
“흐아암.”
나는 숨을 죽인 채 남자가 엘레베이터를 움직이는 걸 예의주시했고, 엘레베이터는 제법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덜커덩, 덜커덩.
10m? 20m?
정확히 가늠조차 하기 애매할 정도로 깊게 내려온 엘레베이터가 멈추자, 남자는 나른해하던 표정을 바꾸고 문을 열었다.
‘와.’
색이라고는 온통 하얀색밖에 없는 연구시설.
나는 남자의 뒤에서 떨어져나온 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주변에 이능력자가 있을지 한 번 쭉 훑었다.
‘없네.’
이능력자는 없다.
그리고 이능력자를 감지하는 마나 감지기 같은 것도 없다.
아직은.
‘전형적인 연구시설이긴 한데, 너무 깨끗해서 소름이 돋는 걸.’
악마의 씨앗을 연구하는 시설이라기보다는, 그냥 어딘가 반도체 연구시설에 들어온 기분이다.
괜히 내가 실체를 갖췄다가는 ‘누구냐!’가 아니라 ‘먼지 털고 들어와!’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이었으면 차라리 좋았을텐데.
‘쯧.’
아니나 다를까, 안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니 내부 상황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키아아아악!!]온통 하얀색으로 물든 공간.
학교 체육관 같은 넓은 공간의 한 가운데, 기둥에 묶인 한 ‘악마’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고 있다.
서큐버스가.
[팀장님도 왔으니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제 3412회, ‘추출’시도.]끼이익.
장 내에 마이크 소리가 울려퍼지며, 서큐버스를 향해 온갖 기계들이 다가가고 있다.
서큐버스는 전력을 다해 몸부림을 치지만, 나는 저 서큐버스를 구속하고 있는 밧줄 비슷한 것이 이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구속구라는 걸 바로 직감했다.
히어로든 빌런이든 이능력이 더 강한 자가, 마력이 더 높은 자가 이기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싫어어어!!
비명이 울려퍼진다.
기계팔이 서큐버스를 향해 다가가며, 마치 드릴처럼 뭔가를 파낼 기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설마.
악마의 씨앗이라는 건-
“이번에도 적출하는데 실패하면 예산 삭감 될까요?”
“모르지. 아예 시설을 폐쇄하라고 할 지도.”
연구원들은 비명에도 대수롭지 않게 캔맥주를 홀짝이며 하품했다.
“선배. 또 왜 앗사히 마시는 거예요. 낙동강이 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국산보다는 외국 게 더 좋더라.”
“그럼 마셔도 저기 유럽 걸 마시지 왜 일본 걸.”
“개인 취향일 뿐이잖아.”
시덥잖은 이야기까지 하며 실실 웃기까지 한다.
“이번에 연구 끝나면 어떻게 할 거야?”
“응?”
“너도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뭐 다른 거 할 거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 혹시 나랑 같이 프로젝트 하나 할래?”
“선배….”
겉으로 보면 뭔가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아아아악!!!
서큐버스의 복부를 향해 기계드릴이 파고드는 게 보이는 와중에 저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봐봐야, 아무런 감동도 여흥도 없다.
“내가 얘기했지?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너한테 꼭 할 말이 있다고.”
남자는 맥주를 전부 들이킨 뒤, 가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자.”
“…여기서 이런 식으로 프로포즈 해도 되는 거야?”
“지금이 아니면 못 할 것 같아서.”
저 멀리.
하복부를 향해 기계드릴이 들어가려고 한다.
비명으로 유리벽이 흔들릴 정도였으나, 연구원이라는 자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잘 됐군.’
빌런행동이 무엇인지, 보여줄 때가 되었다.
“김 주임, 나랑-”
퍼ㅡㅡㅡ억!!
나는 실체화로 모습을 드러낸 뒤, 남자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며 남자는 공동 안으로 날아갔고, 나는 바닥에 떨어진 반지 케이스를 발로 차올렸다.
[너희같은 자들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게 참 역겹군.]“아, 아아….”
[지금부터.]나는 야구배트로 만든 방망이를 움켜쥐었다.
[부정한 자, 모두 처형하리라.]인간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