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53)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53화(354/668)
그 시각, 서울 여의도 H 호텔 최상층 펜트하우스.
“하아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적발의 여인, 궁기 윤혜라는 가볍게 하품을 하며 상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언제 오려나.”
윤혜라는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한 채,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불꽃을 허공에 피우고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마력 컨트롤을 연습했다.
본래 그녀는 울릉도에서 좀 더 마력을 회복해야만 했다.
지금도 완전히 마력이 회복된 건 아니고, 약 7할가량 회복했을 뿐이다.
그간 회복에 전념한 덕분에 생각보다 일찍 전선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지만, 100% 회복하려면 적어도 실습이 절반 정도는 지나간 뒤에야 회복이 가능할 터.
그런 그녀가 굳이 서울까지 올라온 이유는 어느 한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기 때문.
똑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윤혜라는 가볍게 손을 튕겼고, 드레스는 금방 검은 정장이 되었다.
피부를 조금도 노출하지 않은, 마치 여의도 남자 샐러리맨들이 입고 다니는 모습.
여름이라 다소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펜트하우스 내부는 에어컨 바람으로 선선한 가을 날씨 정도로 서늘했다.
“실례합니다, 이사님.”
“들어오세요.”
끼이익.
문이 열리며, 회색 정장을 입은 백금발의 노신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노신사의 옆에는 정장을 입은 결사의 요원들-‘주모’들이 노신사를 지키듯 자리를 잡았고, 노신사는 윤혜라의 앞에 마주 앉으며 중절모를 벗었다.
“‘무역상’ 데스몬드 페이그린, 궁기 이사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 보게 된 건 강릉에서의 사건 이후로 처음이네요.”
“예. 벌써 3개월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요.”
페이그린 항공사의 회장, 데스몬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 허벅지에 올린 중절모를 쓰다듬었다.
“결사에서 잘 봐주신 덕분에 페이그린 그룹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사님.”
“이제는 결사의 자회사가 되었으니, 당연히 결사에서 케어를 해야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회장님. 다른 사람이 회장으로 올라오는 거, 그분께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데스몬드 페이그린.
“손녀딸은 지금 어디에서 요양 중이죠?”
“몬태나의 별장에 있습니다. 산 중턱 별장에서 자기 행동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전자 도둑’ 사건 이후, 그룹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손녀딸을 국제 이능력 범죄자 수용소에서 빼내기 위해 결사와 손을 잡았다.
“지금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머리를 밀고 매일 불경을 읊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미국인인데요?”
“믿음은 인종과 국적을 따지지 않지요.”
“정론이군요. 좋아요. 미혹도 없으신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중책을 맡길 수 있겠네요.”
윤혜라는 탁자에 놓인 태블릿을 데스몬드에게 건넸다.
“회장님은 제주도로 가서 ‘피닉스의 깃털’을 경매에 올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유는 그룹 내부의 지분을 확장하기 위해, 그리고 확장적 행보로 동아시아 전역에 이르는 항공권을 확보하기 위한 현금 조달을 위해서.”
“피닉스의 깃털이 팔릴 만큼의 막대한 현금이 필요한 명분을 내세우라는 거군요. 확인했습니다.”
“얼마 정도 될 것 같아요?”
“원화로 따지면, 일단 2천억부터 호가가 시작하겠지요. 말 그대로 ‘목숨값’이니까.”
데스몬드는 테이블 위에 반짝이고 있는 붉은색, 윤혜라가 마력의 불꽃으로 만들어낸 깃털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시간 역행의 이능. 미국에서 한창 유명세를 날렸던 S급 히어로, ‘피닉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유산.”
삐빅.
태블릿 화면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수상할 정도로 머리칼이 물빛처럼 맑은 여인은 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그 사진에는 위에 검은 띠가 사선으로 그어져 있다.
“모두가 그녀를 불사조라고 알았지만, 사실은 시간을 되돌리고 있었던 것이었죠. 죽지 않는 게 아니라, 육체의 시간을 되감았던 것. …수많은 죽음을 겪고, 아메리카를 구하고 죽은 영웅.”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해요. 같은 화염계 이능력자고, 컨셉도 겹치니까.”
“그렇습니까…? 궁기님은, 그 뭐냐, 호랑이 아니었나요?”
“날개 달린 화염 짐승이라는 점이요.”
“아, 그렇군요. 하긴.”
궁기 윤혜라. 피닉스.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존재다.
윤혜라는 한국인이지만, 피닉스는 미국인인 것처럼.
둘 다 죽었지만, 윤혜라는 총수 덕분에 영체로나마 살아있는 반면, 피닉스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2022년 6월 7일, 피닉스는 죽었다.
러시아의 빌런이 쏜 핵미사일이 미국 뉴욕에 떨어지기 전, 그녀는 핵미사일의 탄두를 아래에서 받치고 우주로 날아올랐다.
핵은 폭발했고, 피닉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아주 먼-어쩌면 조금 이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다가 돌아오는 데는 최소한 9개월은 걸릴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그리고 돌아왔을 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2025년 7월인 이 세상의 시간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데스몬드 회장님은 피닉스가 살아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 아메리카의 영웅이니까요. 그, 혹시나 해서 묻는 겁니다만, 그녀는 혹시 결사가 아니었는지…?”
“결사는 아니었어요.”
윤혜라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자라는 점에서 최우선 영입 대상이었지만, 총수님께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영입하려고 하지 않으셨으니까.”
“그건 혹시 피닉스의….”
“죽은 사람의 성적 자아 정체성 문제에 관해서는 넘어가죠. 중요한 건 그녀가 가지고 있던 세 가지 이능력 중 하나니까.”
윤혜라는 헛기침을 한 뒤, 손가락을 세 개 펼쳤다.
“푸른 화염, 마나 번, 그리고 시간 역행. 우리는 이 중 마지막 이능력, 그녀가 마나가 가득 찰 때마다 자신의 이능을 담아 남겨둔 시간 역행의 깃털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이제는 전 세계에 단 7개만 남은 피닉스의 유산을.”
“…그걸 제가 확보한 개연성은 무엇입니까?”
“선물 받았던 걸 3년 동안 숨겨왔다가 이제 꺼냈다고 하시죠? 어차피 사람들은 회장님이 어떻게 얻었냐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누가 낙찰받을 것인가’에 더 신경을 쓸 테니까요.”
“끙.”
데스몬드는 붉은 깃털을 만지작거리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미 제 개인 SNS로 경매 전에 사들이겠다고 연락이 계속 오고 있습니다. 대통령부터 저보다 더 규모가 큰 그룹의 회장, 심지어 S급 이능력자들까지.”
“10초 안에만 쓰면 여분의 목숨이 생기는 거니까요. 본인이 안 써도, 남이 써주면 되니까.”
“…굉장한 영웅이었습니다. 피닉스는.”
데스몬드는 아련한 얼굴로 피닉스의 사진을 쓸었다.
“저는 언젠가, 반드시 그녀가 돌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제게 주어진 임무를 반드시 성공으로 끌어내겠습니다.”
쿵.
데스몬드는 주먹을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젠가 이 땅에, 다시 푸른 화염이 타오르는 날이 오기를!”
* * *
“데스몬드 회장이 어떻게 피닉스의 깃털을 손에 넣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렌지주스로 젖은 셔츠를 다시 되돌릴 수는 없겠죠.”
나는 리사라 교수의 셔츠 앞을 가리켰다.
“스튜어디스분에게 부탁해서 어디 조용한 곳에서 갈아입고 오시길 추천드립니다. 셔츠, 오렌지주스 같은 거 묻으면 나중에 잘 안 지워질 겁니다.”
“오렌지 향수를 뿌렸다고 생각하죠, 뭐.”
리사라 교수는 자기 셔츠에 묻은 주스를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이야기하다가 10초, 골든타임이 지나버린걸요. 하여튼 그 깃털, 정말 많은 사람이 노리고 있을 거예요. 해그늘의 회장님도 노리고 계신다나 뭐라나.”
“그렇겠죠. 공식적으로는 가지고 계시지 않으니까. 설령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분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쁜 건 아니죠.”
결사에서 가지고 있는 물량은 단 하나.
그 하나의 깃털을 지금 나는 경매에 내어놓았고, 총수는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사자 소생의 비책에 관하여, 피닉스의 깃털은 이미 연구가 끝났으니까.
결사는 다른 방식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고, 굳이 따지자면 피닉스의 깃털은 계륵 같은 존재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하지만 결사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가 원하는 물건.
나는 그걸로 떡밥을 던졌고, 전 세계의 모두가 제주도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학생들이 여름학기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상황이 참 곤란하죠? 피닉스의 깃털 때문에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제주도로 몰려들 테니까.”
“사람이 많이 몰려든다고 해서, 교육을 내던질 수는 없습니다. 여름학기 프로그램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슬슬, 도착할 것 같네요.”
어느덧, 창밖으로 제주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화, 재미있었어요. 덕분에 시간 잘 갔네요.”
“고생하십시오. 손수건은 굳이 안 돌려주셔도 됩니다.”
“어머. 손수건 돌려주면서 애프터 신청하려고 했는데.”
“그건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철벽이네요. 후후.”
리사라는 옅게 웃으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너무 그렇게 사람을 밀어내면, 밀리는 사람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이 남자는 나한테 관심이 없겠구나, 생각하겠죠.”
“…가차 없네, 정말. 혹시 나중에 피닉스의 깃털 보고 싶으면 연락해요. 저, 경매 구경하러 갈 생각이어서.”
“살 생각입니까?”
“예. 저, 나름 억만장자랍니다?”
오.
갑자기 사람이 달라 보인다.
그렇다고 거리를 가까이하지는 않을 거지만.
‘오히려 거리를 벌려야지.’
만약 리사라 교수가 피닉스의 깃털을 수천억, 아니 조 단위 돈을 주고 산다?
‘조금 미안할지도.’
그녀가 산 푸른 깃털은.
‘짝퉁인데.’
도깨비방망이의 ‘물질 창조’로 만들어낸, 기능 하나만 빠진, 마력으로 이루어진 푸른 깃털일 뿐.
‘쓰기 전까지는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유산을 남기고 간 당사자가 우주에서 돌아와서 ‘이건 가짜인 거시야’라고 증명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판데모니엄의 악마들에게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빌런 손에 들어가면 곤란하니까.’
죽여 마땅한 악인이 사면 돈을 먹고 처형한다.
착한 사람이 사면 그 돈을 연구 자금으로 유용하여 사자 소생의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결과적으로, 죽을 위기에서 살려주기만 하면 올라잇.
중간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모두 좋은 것.
‘어쨌든 죽으면 살려주기만 하면 될 거 아니야.’
사자마자 7월이 채 가기도 전에 죽을 것도 아닐 테고.
깃털을 사용하기 전까지 사자 소생의 기술이 개발 완료되면, 그 첫 민간임상시험자로 써먹으면 될 터.
아.
빠진 기능이 뭐냐고?
…
시간 역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