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55)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55화(356/668)
그 시각, 서귀포시 세종아카데미 숙소 H호텔 스위트룸.
“언니, 교직원분들이 탄 비행기 있잖아요. 그거 신원미상의 인간이 비행기에 부딪혀서 몇 바퀴 빙 돌다가 결국 늦게 도착했다고 하네요.”
윤이선은 히어로 협회의 요원이 전한 정보를 그대로 백설희에게 전했다.
“언니?”
“그거, 나야.”
“네?”
“창밖으로 분신을 만들어서 던졌어.”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채, 흰 티셔츠와 긴바지만 입은 백설희는 소파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쪼르르 마시며 여유를 부렸다.
“부딪친 건 예상 밖이었지만, 원래 비행기라는 게 날다 보면 새랑도 부딪치고 막 그러는 거잖아.”
“보통 그렇게 되다가 잘못되면 메이데이 그러는 건데요….”
“괜찮아. 그냥 쿵 부딪친 것뿐이야. 비행기에 몰래 잠입하느라 그런 것뿐이라고.”
“왜요? 선생님이랑 같이 있으려고요? 분신으로라도?”
“그래.”
“둘만 있다고 아주 막 나가시네요.”
“그래서 언니가 임신 은퇴 좀 하겠다는데, 문제라도 있니?”
“…….”
윤이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20대 중반에 아이를 낳는 것과 20대 후반에 아이를 낳는 건 천지차이니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빨리 결혼해서 애 낳아라’라고 하는 말을 따를 뿐이야. 조금 늦기는 했지만.”
“네…. 상대가 결혼한 유부남이라는 게 문제지만요.”
“꼭 그것만 문제는 아니긴 한데, 후후훗. 사소한 문제일 뿐이야. 괜찮아. 그 남자.”
그 사소한 문제가 도깨비라는 거잖아요,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윤이선은 애써 그 말을 억눌렀다.
“네, 네. 잘 되기를 바랄게요. 그러면 분신은 선생님이랑 합류한 건가요?”‘
“몰라.”
“네?”
“나니까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걸 내가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백설희는 양손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붙이며 눈을 감았다.
“중간에 한라산이라는 큰 장애물이 있어서 그런지 텔레파시가 잘 통하지 않네. 내 마력 영역 안에 있으면 내가 멀티태스킹으로 내 의식으로 만들 수 있는데, 지금은 멀어서 힘들어.”
“그러면 지금 어떤 상태예요?”
“비행기에 탄 시점으로부터 분화된 또다른 나라고 할 수 있지. 서귀포 숙소로 온 본체 백설희. 그리고 그 남자 옆에서 24시간 감시를 하는 분신 백설희. 아마 보면 깜짝 놀랄걸? 마치 인격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일 거야. 후후후.”
“굉장하네요. 그 정도 분신을 다루는 이능력이라면, 나중에 임신해서도 큰 무리 없이 활동이 가능하실 거예요.”
“…그래, 나중에 임신이지.”
백설희는 조금 뜸을 들이며 답했고, 윤이선은 그 미묘한 말의 공백을 눈치챘다.
“언니, 설마 지금 임….”
“쉿.”
“저희밖에 없고, 언니가 마력 차단을 했고, 대화가 어디 녹음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언니, 임신했어요?”
“……이선아.”
백설희는 진지한 얼굴로 윤이선을 바라보며, 자기 복부를 만지작거렸다.
“언니가 제주도에 온 이유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야. 그 남자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
“언제 임신했어요? 제주도에서 7월에 만났다고 하면, 시기가 좀 안 맞을 텐데…?”
“어, 음, 한 달…좀 더 됐나? 그리고 팔삭둥이라고 하면 돼.”
시기상 10달을 채우지 못하고 아이가 나올 텐데, 그걸 조산이라고 거짓말하겠다고 말한다.
윤이선은 백설희가 짜놓은 허술하면서도 완벽한 청사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언니는 다 계획이 있군요.”
“그럼. 중요한 건 공식적으로 그 남자를 만났다는 거지.”
“제주도에서.”
“여름학기 실습하면서. 세종섬에서는 만날 껀덕지가 없었으니까….”
“도서관 가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직접 가면, 나 따라다니는 인간들이 그 남자를 귀찮게 할 것 같아서 그랬어. 그리고 그 남자가 사서로 일할 때는 내가 강의로 바빴으니까. 하여튼, 이제 만사 오케이야.”
백설희는 다리까지 꼬며 소파에 몸을 뉘었다.
“분신이 옆에서 달라붙어서 그 남자 옆에 다가오는 불여우들을 처리하고, 나중에 분신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면 분신의 기억이 모두 내게 흡수되지.”
“불여우는 저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죠?”
“이선아, 언니 농담하는 거 아니야. 네가 이명이 불여우기는 하지만, 그 남자 상대로 불여우…여시 짓을 하면 언니랑은 이제 적이야.”
“저는 그 선생님이랑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윤이선은 확신했다.
자신이 도깨비 팬이라는 걸 언급했다가는, 방 온도가 최소한 3도는 마력 때문에 더 내려갈 거라는 걸.
“분신이 어디서 뭘 하는지 알면 좋을 텐데.”
“괜찮아. 내 분신이니까, 분명 잘할 거야. 나는 믿어.”
백설희는 자신이 만들어낸 또다른 자아를 향해,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나니까.”
* * *
“일단, 백설희라고 부르지 마.”
[하랑이라는 건 뭔가 이명 같은 건가?]“아니. 그냥 울림이 좋아서. 이름 같기도 하고.”
백설희 분신, 아니 하랑은 호칭부터 확실하게 박고 들어갔다.
“그리고 백설희라고 생각도 하지 마. 괜히 나를 백설희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눈동자 색은 미묘하게 달라도, 머리칼도 조금 탁한 백발이라고 해도, 생긴 게 백설희인데.]“얼굴 보고 ‘앗, 백설희다!’라고 생각하다가, 아래로 고개를 내리면 ‘와, 백설희 닮았네’라고 생각하겠지. 그렇지 않아?”
하랑은 자신의 흉부에 두 손을 올리며 어깨를 쭉 폈다.
“당신이라면 더 잘 알지 않아? 아니면 어떻게, 직접 만져보고 비교해볼래? 백설희 그립감이랑 나랑 다르다는걸.”
[굳이 안 잡아봐도 눈으로 봐도 알겠는데 무슨.]“역시, 남자는 큰 게 좋지?”
[작은 건 작은 거 대로 매력이 있는 법이지. 빈말이 아니다.]총수를 통해 배웠다.
[계속 작은 상태가 아니라, 작은 것과 큰 것을 동시에 겸비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거 아니겠어.]“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뭐, 몇 가지 제약은 많지만, 같이 다니는 데에는 큰 문제 없을 거야. 나름 본체가 마력을 넣어주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스륵.
하랑이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고, 하랑은 가면을 쓴 내 앞까지 걸어왔다.
“당신이 나한테 마나를 넘겨주면, 활동 시간도 연장될 수 있고 말이야.”
[마력을 넣어달라고?]“어디로 넣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지?”
[분신인 너는 왠지, 본체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군.]본인이 구분을 지은 것도 있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자를 백설희와 완전히 같은 존재라고 여기기에는 애매한 감이 너무 많았다.
[하랑이라고 했나. 정말로 네가 백설희의 분신인가?]“전화해볼래? 어디 묶어도 돼. 아니면 백설희만 아는 당신의 비밀을 말해볼까?”
[내 비밀이 뭐지?]“도깨비는….”
하랑은 내 옷깃에 손을 올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도지환이다.”
[아직 내가 밝히지는 않았는데.]“내가 알아챈 거라고 하지 뭐.”
[…후. 잠깐.]나는 가면에 손을 올린 뒤, 가면만 마력을 해제했다.
“…이렇게 마력을 쓰는 상태에서 얼굴을 마주하니 엄청 이상하군. 오히려 내가 발가벗겨진 기분이야. 듣고 있나, 백설희?”
“괜찮아. 백설희 지금 안 들려.”
“…뭐?”
“백설희 마력과 능력으로는 제주도랑 서귀포 거리까지 분신을 연동할 수 없어. 그러니까 이렇게 자아가 확실한 분신을 만든 거야. 조종이 안 되니까.”
“과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다. 아예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분신의 자율성과 에고를 확 늘려버렸군.”
분신이 생성되기 전까지의 둘은 같은 백설희였지만, 분신으로 나누어지고 난 뒤의 백설희와 하랑은 별개의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비록 시간은 많이 흐르지 않았지만 한 명은 S급 이능력자로서 서귀포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직행했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하랑이라는 여자는 잘 쳐봐야 D급 정도의 마력을 가진 이능력자일 뿐이니까.
“나중에 본체한테는 어떻게 이야기하려고? 정기 보고라도 하나?”
“나중에 본체한테 들어가면 그 기억과 경험이 본체에게로 들어갈 거야.”
“…그러면 분신으로 사는 동안은 인생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사는 셈이군.”
“나이를 두 배로 먹는 거지.”
하랑은 신랄한 어조로 입꼬리를 비틀었다.
“여자가 나이를 두 배로 먹는데도, 그걸 각오하고 분신을 만들어서 당신에게 보냈어. 이게 무슨 의미인 것 같아?”
“…나 감시하려고 하는 건가?”
“정답이야. 당신 옆에 꼬리치는 여자들 있으면 나보고 쫓아보내라고 하더라고.”
“뭔가 말하는 투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이 아니다.
내 감이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다.
“본체를 따르지 않는 분신이라니.”
“따르지 않는 게 아니라, 당신 옆에 있는 백설희로서 판단을 내려보니 꼭 감시하고 꼬리치는 여자들 쳐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어째서?”
“세상에 어떤 남자가, 여자가 자기 감시하고 구속하는 걸 좋아하겠어. 변태도 아니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백설희가 아니라 아예 다른 존재처럼 느껴지는걸. 완전 백설희의 여동생이나 사촌 동생 같은 그런 기분이야.”
“그럼, 백설희 동생인 백하랑이라고 하지 뭐.”
“백하랑인 건가.”
“응. 뭐, 성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하랑이라고 불러. 아니면 아예 다른 성으로 붙여버릴까? 백하랑이나, 설하랑이나, 아니면….”
“그냥 하랑이라고 하지.”
나는 하랑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냈다.
“그래서 너는 내게 바라는 게 뭐지? 나를 불러낸 이유가 뭐야?”
“내가 불러낸 거야?”
“계속 시선을 주면서 나를 불러내고자 했잖아. 이렇게 대화를 하고, 뭔가 목적이 있어서 불렀어. 내가 틀렸나?”
“아니, 정확해. 내가 바라는 건 말이야.”
하랑은 나의 옆으로 슬그머니 몸을 돌리며, 내 손을 슬며시 붙잡았다.
“그냥, 너랑 같이 이야기하면서 걷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