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58)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58화(359/668)
이능력자는 멘탈이 무너지면 악마가 된다.
무언가를 강하게 얻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면,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내던질 정도로 망가지면 악마가 된다.
여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는 욕구가 ‘사랑’이다.
“그거 알아? 이능력자가 악마가 된 케이스 2위가 사랑 때문이라는 걸.”
하랑은 내 가슴에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며 슬며시 운을 띄웠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하지. 가족에 대한 사랑이든, 국가에 대한 사랑이든.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사랑은 역시 ‘이성에 대한 사랑’아니겠어?”
“네가 나한테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그걸 대놓고 이야기하니까 조금 짜증나기는 한데, 틀린 말은 아니라서 뭐라고 말은 못하겠네. 저기, 당신.”
하랑은 내 멱살을 가볍게 움켜쥐며 내게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나 사랑하는 거 맞지?”
“물론. 어떻게 증명해줄까?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줄까?”
“그런 거 말고, 나는 좀 더 직접적인 증명을 원해.”
하랑의 손이 내 위로, 내 가슴 위로 천천히 올라왔다.
“사랑한다고 한 번 말해볼래?”
“사랑해. 잠깐만.”
“왜?”
“설희라고 불러야 할지, 하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해서.”
“풋.”
하랑은 살짝 풀린 눈으로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하랑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곧 백설희를 사랑한다는 거니까, 그런 건 전혀신경쓰지 않아도 돼. 후후, 본체에게는 좀 미안한 걸.”
“뭐가?”
“지금쯤 혼자서 ‘분신은 도깨비랑 뭘 하고 있으려나?’라고 생각하면서, 상상으로 지금 당신과의 데이트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지금쯤 우리 둘이 이런 호텔 들어와서 한 침대에 누워있는 거, 상상도 못할 걸?”
“상상은 하겠지.”
나는 하랑의 머리칼을 손으로 정돈했다.
하랑은 얌전히 내 손길에 머리를 맡겼고, 나는 천장을 눈으로 가리켰다.
“백설희 머리 속에는 애국밖에 없어서. 안 그래?”
“그건 인정. 그런데 백설희를 그렇게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다?”
“냅다 노천탕에 수영복 차림으로 온 여자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당신, 혹시 그런 말 믿어? 첫눈에 반했다는 거.”
“믿기는 하지.”
내가 그랬으니까.
총수를 보자마자,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 감정은 그 어떤 논리로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랑이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이 여자, 도대체 나한테 왜 반한 거지?”
“얼굴이 취향에 스트라이크라서? 그도 아니면…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에 이끌려서?”
“어떤 점에서?”
“이미 이전부터 신경이 쓰이던 도깨비라는 남자의 본모습을 발견했다는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는 하랑과 눈을 마주했다.
“백설희가 나한테 접근한 게, 내가 도깨비라는 걸 알고 접근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말했잖아. 무의식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고 있던 거지.”
“…….”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건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네. 안 그래?”
“운명이라. 나는 운명론자는 아닌데.”
“백설희는 당신을 만난 걸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 그게 도지환이든, 도깨비든. 둘을 따로 두고보든, 하나로 통합해서 생각하든, 당신을 만나서 깊은 관계가 되었다는 건 변함이 없어.”
하랑은 내 가슴에 엄지를 꾹 눌렀다.
“만약 당신이 백설희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백설희는 지금쯤 악마가 되었을지도?”
“무슨 그런 위험한 발언을.”
“왜? 사랑에 빠진 여자가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당신이 모를 리가 없을텐데?”
“아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애초에 백설희한테는 내가 먼저 접근했는 걸.”
백설희가 나를 만난 게 운명이라고 생각을 한다고 해도, 백설희와 접점을 만들어 나를 사랑하게 만든 건 내 의도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한테 빠지게 만든 건 내가 한 게 맞아.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해야 할 게, 그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접근해서 어떻게 해보려고 한 건 너였어.”
“S급 2위라서 접근한 게 아니고?”
“호감을 가진 미인이 S급 2위에, 취미까지 비슷해서 그런 거지.”
“흐으응.”
하랑은 눈을 반쯤 가늘게 뜬 채, 계속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이거, 좋은데.”
“뭐가?”
“본체는 네 본심을 모르고 있잖아. 네 마음을.”
“어차피 본체한테 돌아간다며.”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나의 경험이니까, 본체는 모르는 지금이 왠지 모르게 계속 기분이 좋네. 후후. 다른 여자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은 도깨비께서 굳이 나한테 먼저 접근을 했다…. 마음만 먹으면 이선이처럼 S급도 만들어줄 수 있는데, 굳이 백설희라는 여자에게 접근을 했다. 음, 그걸로 충분해.”
하랑은 좀 더 내게 달라붙었다.
“나중에 본체한테 직접 말해주면, 본체가 더 좋아할 거야. 꼭 말해줘.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선택을 한 건 백설희라는 여자라고.”
“너무 남자 중심적인 말 아닌가?”
“여자가 남자보다 위에 있는 상황이라면 말도 안 되는 자뻑이겠지만, 당신은 도깨비잖아? 도밑스인 걸.”
“도깨비 밑에 스노우화이트?”
“그럼. 백설희가 나은 점이 뭐가 있어? 도깨비에 비하면…아니, 도깨비 말고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뭐 장점이 있는 거, 딱히 없잖아.”
하랑은 내 앞으로 한손을 쭉 뻗었다.
“윤이선보다 나이도 많지, 유미르랑 비교하면 이능력 사용할 수 있는 풀도 적지, S급 히어로라서 도깨비랑 명목적으로는 적이지, 자주 만날 수도 없지. 아, 장점 하나 있다. 나이가 제일 많다는 거.”
“그거, 장점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나…?”
“그래. 그런데 왜 백설희를 선택한 거야? 이런 단점 투성이인 여자를. 가슴 때문인 건가? 아닌데? 가슴은 유미르가 조금 더 큰데.”
“이런 거 때문에?”
나는 리모컨을 들어, 우리의 바로 맞은 편에 있는 TV를 켰다.
“남녀 사이가 꼭 몸이나 이능력만으로 교류를 할 필요는 없지. 만약에 결혼을 한다고 하면, 부부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게 제일 좋지 않겠어?”
“…흐응. 취미 때문에?”
“정확히는, 이런 거 같이 보면서 나랑 이야기 나누는 게 좋아서.”
도깨비도, 도지환도 아닌, 이 세계에 빙의하기 전 한 명의 ‘독자로서의 나’와 가장 맞는 사람이 누구인가.
한 명은 총수고, 다른 한 명은 백설희다.
“하랑아. 애국할래, 아니면 영화볼래?”
“음…. 내가 선택하는 거야?”
“물론. 나는 네가 원하는대로 할 거야. 이 밤은 너를 위한 밤이니까.”
“그럼, 나는 이걸로 할래.”
하랑은 내 옆에 고개를 딱 붙이며 미소를 지었다.
“너.”
“…….”
“너랑 같이 시간 보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걸.”
“그럼, 이거 같이 보자.”
나는 TV 채널을 돌리며, 영화를 하나 재생했다.
“시간에 관한 영화인데, 제법 재미있을 거야.”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네.”
“본 적 있어?”
“아니, 이건 못봤어.”
허.
이 명작을 못 보다니.
“오늘, 새벽까지 달리자고.”
대격변 이전에 완결 난 시리즈만큼 또 좋은 영화가 없으니까.
“분신이랑 사랑, 그리고 시간에 관한 영화. 재미있을 거야, 정말.”
나는 그렇게, 하랑과 영화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 * *
-S급 빌런이 더 사회에 문제가 되는가, S급 악마가 더 사회에 문제가 되는가?
치직, 치직.
백설희는 홀로 침대에 앉아, 도깨비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빌런과 악마라.”
둘 다 사회에, 지구 평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똑같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이며, 백설희는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더 위협이 되는 걸 ‘악마’라고 생각해왔다.
-악마가 왜 태어나겠습니까? 나쁜 마음을 먹은 자들이 나쁜 짓을 하니까, 그 피해를 입은 이들이 악마가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악마를 만들어내는 건 빌런입니다. 우리는 빌런부터 먼저 타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판데모니엄이라는 자들이 있는데, 우리가 그래도 대화가 가능한 자들과 싸워야 할까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마들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설왕설래가 오가며, 패널들이 서로 자기 의견이 맞다고 격렬히 주장하고 있다.
둘 다 나쁜 건 맞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따지는 것도 아니다.
-태국에서 있었던 일을 보셨잖습니까? 두억시니가 저질렀던 참사를 잊으셨습니까? 벌써?
그래도 여론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냐고 묻는다면, 악마를 먼저 제압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우세하다.
-우리는 악마를 먼저 대처해야 합니다. 빌런보다, 악마를 먼저 처리하기 위해서 악마를 전문적으로 대처하는 부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엑소시스트 부대 같은 거요.
-누가요? 그럴 인력이 있습니까? 우리 나라에 지금 그럴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건….
결국, 고질적인 문제가 대두된다.
-한국에 있는 이능력자 중에 정말로 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까, 아니면 이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이능력을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이능력자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능력자가 늘어나고, 그냥 이능력자가 아니라 ‘히어로’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아카데미에서 키우는 이능력자도 마찬가지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이능력자를….
만성적인 인력부족.
한국에서 히어로가 부족하다는 말을 하는 게 참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게 현실이다.
-한국이 히어로가 많습니까, 빌런이 더 많습니까? 우리는 히어로를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응, 맞아. 맞는데….”
백설희는 패널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복부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식으로, 강요를 하지 않았, 아.”
그리고는 깜짝 놀라며,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아이를 낳으면, 세상은 이 아이를 태어날 때부터 히어로라고 생각하겠구나.”
이전에 생각했지만, 다시금 떠오른 문제.
히어로의 자식은 히어로여야 한다.
만약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역시, 내 자식 말고 더 많은 이능력자가 생겨나야겠네.”
백설희의 아이에게 히어로가 되기를 강요하지 않아도 될 환경을 만드는 것.
“좋아. 이번 여름학기….”
히죽.
“어떻게해서든, 판독기 넘어갈 수 있게 S급으로 죄다 만들어버려야겠어.”
결코.
사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