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6)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6화(37/668)
그 시각, 세종섬 모 처.
“팀장님. 내부 마력 반응 소실. 습격자는 사라진 것 같습니다.”
어둠 속, 푸른 모니터 스크린의 빛 만이 가득한 밀실.
하얀 제복을 입은 이들이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가운데,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하얀 제복의 흑발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젠장….”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인데도 표정까지 찌푸리고 있으니, 감히 누가 말을 걸기도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의 명찰에 걸려있는 이름은 ‘풍백’.
“습격자의 정체는?”
“그, 그게.”
“아직도 확인하지 못했단 말인가? 마력 패턴 분석은? 하다못해 CCTV는?”
“전송 직전에 전부 몰살당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자료가 넘어오기 전에 시설을 폐쇄시키는 바람에….”
“그럼 지금 우리는 눈 뜨고 코 베인 격이라는 말인가?”
풍백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악마실험체가 있는 곳이 습격을 당했어! 안에 있던 직원들은 전부 생명 반응이 끊어졌고! 그런데도 지금 나오는 대답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정보가 부족합니다’, ‘확인 중입니다’인가?”
풍백은 아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언제부터 이런 무능력한 자들이 ‘관(館)’의 사람들이 된 거지? 응?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가지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월 3천씩 받아먹고 있냔 말이야! 침입자 하나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면서!”
“풍백 어르신. 그, 이건 가정입니다만.”
“뭔데?”
“…도깨비가 아닐까요?”
“……호오?”
부하의 말에 열을 내던 풍백은 눈을 반짝였다.
“이렇게 정보가 흘러나오는 걸 원천차단할 수 있는 사람은 도깨비 뿐이다?”
“예. 이 정도로 철저하게 정체를 숨길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도깨비 뿐입니다.”
“근거는?”
“침입자 반응도 없는데 갑자기 습격이 이루어졌다거나, 연구원들이 긴급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전부 몰살당한 거라거나, 수석 연구원이 시설 파괴 프로토콜과 침수 프로토콜만 간신히 발동시킨 것이 근거입니다.”
“흐음….”
풍백은 턱을 손으로 쓸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도 영 이상한데. 내가 아는 그 도깨비라면 아예 시설 붕괴조차 일어나지 않게 했어야 하는데. 도깨비는 빌런들을 모조리 몰살시켜도, 이렇게 언스마트하게 행동하지 않아.”
풍백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아는 그 놈이면 자폭 스위치를 누르기 전에 우리 연구원들을 죽여버렸을 놈이다. 그 놈이 순수하게 연구시설을 습격했다면, 연구시설이 자괴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만 생체반응이 끊어져있어야 해.”
“다른 누군가가 침입한 게 아닐까요?”
“다른 누군가…?”
“예. 그 최근에 저희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그….”
“아, 그 활빈당 놈들?”
풍백은 심각한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활빈당의 침입자와 도깨비의 침입이 겹쳤다? 세상에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그래도 그게 아니면 지금 상황이 설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너무 상황에 맞게 끼워맞추기가 아닌가 싶지만…쯧.”
풍백은 두 손을 높이 들어버렸다.
“젠장. 될 대로 되라지. 일단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모니터링 시작해. 악마에 관한 내용이 있다면 바로 신고 먹이고 블락 걸고, 활빈당이 악마를 이용해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알겠습니다!”
부하들은 일제히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기 시작했고, 풍백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능력도 없는 자들이 이런 거라도 도움이 되어야지. 쯧.”
그 누구도 듣지 못하는 작은 목소리로.
“하아. 각성도 하지 못한 자들을 빨리 ‘계몽’해야 하거늘.”
그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 * *
기나긴 해저통로 비슷한 비상탈출구를 따라 지하를 빠져나왔다.
철푸덕.
기절한 말뚝이를 해변가에 내려놓은 뒤, 나는 말뚝이가 혹시 익사한 게 아닐까 상태를 확인했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을 할 필요는 없겠네.’
S급 이능력자 정도되면 물 속에서 호흡을 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마력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30분 가량 산소통 없이도 버틸 수 있을 정도다.
아무렴 초능력자인데 물에 완전히 가라앉아서 평생 나오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잠깐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건데 그 정도도 불가능할까.
‘태극워치가 없어서 위치는 모르겠지만, 일단 세종섬인 건 맞아.’
지형의 모습, 주변에 느껴지는 마력의 잔향, 거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군인들까지.
아마 높은 확률로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된 통제구역으로 빠져나온 게 틀림없다.
즉, 말뚝이는 바다를 통해 침입한 게 틀림없다.
‘나랑 타이밍이 겹친 게 우연일까?’
정말 우연히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악마의 씨앗 실험실을 습격했다고?
뭔가 있다.
뭔가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그걸 알아내려면 말뚝이를 깨워야 하는데-
[음.]나는 물에 젖은 말뚝이의 몸을 위아래로 확인했다.
아무래도 바닷물에 옷이 젖은 만큼 축축하게 늘어져있지만, 체격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왜소한 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생각했던 그런 건 아니었나보다.
‘남자네.’
순간적으로 어깨에 들쳐멨을 때 느낀 감촉이 상당히 보드라워서 여자인 줄 알았지만, 물에 젖은 상반신의 상태를 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다.
‘불쌍한 녀석.’
남자들 중에서도 간혹 남자라기보다는 ‘이게 왜 남자’라는 그런 몸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말뚝이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
아마도 여장 사진을 찍어서 올리거나, 혹은 그냥 사진만 올려도 저기 위험한 분들이 좋아할 것 같은 그런 체형이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고 옷의 태를 보고 판단한 거지만, 분명 아닐 것이다.
‘목소리도 그렇고, 하는 행동이나 말투도 그렇고, 일단 머리카락도 짧은 편이잖아.’
혹시 이게 요즘 유행한다는 톰보이인가 뭔가 하는 그걸까.
물론, 남자든 여자든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성별은 우리 결사에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건 능력과 인성.
그리고 결사가 세계정복을 하는데 있어 상부의 지시를 제대로 따를 수 있는가.
[나중에 결사에 들어올 생각이 있으면 연락 하라고.]나는 명함을 꺼낸 다음, 명함에 대고 속삭이듯 작게 이야기를 했다.
[결사에 들어오고 싶으면 거기 명함에 있는 주소로 메일을 보내라. 그러면 결사에서 알아서 사람이 찾아갈 거다.]이매망량, 특별간부, 도깨비.
정식 메일이 아니라고 해도 결사와의 창구를 두고 가는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결사는 명함 속 접선 메일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것에 당할 만큼 호락호락한 조직이 아니다.
[활빈당에서 명함 속 메일 주소 가지고 장난을 친다면, 그 때는 내가 활빈당을 부수러가겠다.]아직 기절해있지만, 이제 슬슬 정신을 차릴 것 같으니 물러날 때다.
[명심하라. 활빈당이든 무엇이든, 세계의 평화에 위해를 가하는 빌런은 내가 전부 죽일 것이라는 걸.]나는 말뚝이의 옆에 명함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럼 결사는?
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결사의 목표는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세계의 정복이니까.’
아 다르고 어 다르지만, 이는 엄연히 다른 일이다.
-세상에 너무 악한 사람들이 많아.
총수는 결사를 그냥 서투른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니다.
-내가 지구의 왕이 되어, 이 지구에 더는 전쟁이 없도록 하겠어.
만약 활빈당이 총수가 만드는 세상에 방해가 되는 자들이다?
다음에 박살나는 건 악마연구소가 아닌, 활빈당이 될 것이다.
[그럼.]“콜록, 콜록…!”
나는 기침을 하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는 말뚝이로부터 벗어나 자리를 이탈했다.
* * *
잠시 뒤.
“……콜록.”
간신히 정신을 차린 말뚝이는 손으로 얼굴을 눌렀다.
“…?!”
가면은 씌워져있다.
그리고 자신은 별이 보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이, 이게 무슨…?”
말뚝이는 기절하기 전에 있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자신이 침입했던 통로를 통해 바닷물이 스며들고, 곧 뒤에서 뭔가 강한 충격이 다가오는 바람에 기절하고 말았다.
그 뒤의 기억은 전혀 없다.
지금 자신에게 놓여진 정황으로만 파악할 뿐.
“이건…?”
자신의 옆에 놓인 검은색 명함 하나.
금박으로 글자가 박혀있는 그것은 분명 도깨비의 것이었다.
[나중에….]“힉…?”
도깨비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명함에 목소리를 음성을 마력으로 남겨둔 건지, 도깨비는 진지한 목소리로 제안과 경고를 남겼다.
결사로 들어오라는 제안.
그리고 다음 번에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
“…그럴 수는 없지.”
말뚝이는 몸을 일으키며 옷매무새를 단정히 정돈했다.
“…….”
딸칵.
가면과 함께 모자를 벗으며, 말뚝이는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털어내며 크게 심호흡했다.
“…으으.”
가면을 벗으며 드러난 말뚝이는 상당히 여린 모습의-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여인이었다.
삐비빅.
말뚝이의 손목에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말뚝이는 빠르게 손목을 손으로 우켜쥔 다음, 조심스럽게 손목의 태극워치-와 비슷한 스마트워치를 조작했다.
[괜찮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아, 대장.”
스마트워치의 작은 화면 너머, 선글라스를 낀 짙은 갈색 피부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표는 놓쳤어. 도깨비가 먼저 나타났어.”
[뭐? 도깨비?]“응. 상황은….”
말뚝이는 남자에게 빠르게 자신이 겪은 일을 밝혔다.
[그렇군.]선글라스의 남자는 머리칼 하나 없는 머리를 손으로 쓸었다.
[위치로 귀환해라. 그리고 지시가 있을 때까지, 당분간은 ‘학생’의 본분을 다하도록.]“알겠어. 그런데…괜찮아?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는데.”
대머리의 검은 남자는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우리의 목적은 도깨비와 접선하는 일이었으니까.]“…뭐? 잠깐만, 대장, 내가 알던 거랑 다른데?”
[미안하다. 너를 속였다.]“…….”
[도깨비야말로 우리 활빈당에 어울리는 자. 네게 진짜 임무를 가르쳐주겠다. 너는 지금부터 도깨비를 어떻게든 우리 활빈당의 사람으로 끌고 들어와라. 도깨비가 우리의 편에 선다면.]남자, ‘홍길동’은 하얀 건치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피부가 검다고 겉모습에 차별받지 않는 나라, 혼혈도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나라, 율도국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