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72)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72화(373/668)
이능력자는 공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
약 한 명 정도 그게 가능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불가능하다.
S급들도 그렇다.
아무리 S급이라고 해도, 서귀포에서 제주도로 단 3초 만에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함부로 마나를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
제주시로 옮겨진 S급 이능력자, 그랜드 캐년-이하 ‘하르방 1호’가 깨어난 뒤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르방 1호를 제압할 수 있는 전력이 필요하다.
하르방 1호만큼이나 강하며.
하르방 1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 사람이 앞에 있으면 꼼짝도 못 하겠군’이라는 생각이 들며.
궁극적으로 만약 하르방을 깨뜨리고 나와 그랜드 캐년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하르방 1호를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지금 제주도에는 필요했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존재는 제주도에 오직 단 한 명.
“스노우화이트. 혹시 뭐 불편한 것 있습니까…?”
그 존재를 차에 태우고 이동하는 히어로 협회의 요원-김요원은 뒷좌석에서 가만히 눈만 감고 있는 스노우화이트-백설희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는 여름.
아무리 제주도가 섬이라고 해도, 7월 초라고는 해도 바깥 온도가 28도 정도 이르면 당연히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어컨은 켜지 않는다.
오히려 히터를 켜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차 내부 온도는 차가웠고, 요원은 백설희 몰래 핸들에 열이 들어오도록 열선 버튼을 눌러 핸들을 데워야만 했다.
백설희로부터 흘러나오는 마력이, 차 내부 온도를 낮추고 있었기 때문에.
“불편한 것 없습니다.”
대놓고 ‘나 지금 불편한데 계속 불편하냐고 묻지 마라’라고 말하는 목소리라, 요원은 그저 앞만 보고 계속 차를 몰 수밖에 없었다.
백설희를 데리고 차를 달리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지금 당사자가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 건지 의아할 따름.
혹시 개인의 시간을 빼앗긴 것 때문에 화가 난 걸까?
이능력자라면, S급 히어로라면 응당 국가의 위기 상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히어로라면, 국가의 위기에 다른 일을 제쳐두고 나서야 하는데, 왜 히어로 스노우화이트는 짜증이 난 걸까.
아, 그렇구나.
요원은 직감했다.
제주도에 몰래 들어온 S급 이능력자라는 존재 자체가 불쾌하고.
그 S급이 다른 나라의 히어로라는 게 더 불쾌하고.
무엇보다도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해 교육에 힘을 써야 하는 교수가 이 귀중한 시간을 빌런 같은 행동을 저지른 히어로를 억제하기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이 불쾌하리라.
“그 참, 돌하르방으로 만든 이능력자가 직접 나서서 말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앞으로 제주도에 몰래 들어오는 이능력자는 자기가 전부 돌하르방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그러게요.”
옳거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던 백설희가 응답을 하는 걸 보니 맞는 것 같다.
“그랜드 캐년이 이상한 행동을 하지만 않았으면 스노우화이트께서 이렇게 제주시까지 또 이동하실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러니까요.”
역시나.
스노우화이트의 짜증은 이 저녁 시간을 빼앗긴 것에 대한 불쾌감이 근간이었다.
‘학생들 상대로 야간수업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하르방 1호에게 생겼으니.’
아아.
국가의 인재를 길러야 할 금쪽같은 시간을 금발서양남 따위에게 써야 한다니.
“조금, 빨리 밟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사고 안 나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차의 속도가 점점 더 올라간다.
속도계의 바늘이 점차 130, 140을 넘어선다.
요원은 엄청 빠른 속도에도 안정적으로 차를 움직이며 달렸고,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 예정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다.
부우웅ㅡㅡㅡ!
“어이쿠.”
도로 맞은편에서 달려가는 검은 세단 승용차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요원도 나름 차를 세게 밟고 있었지만, 맞은 편에서 달려온 차는 아득히 빠른 속도로 쌩 지나가고 말았다.
“렌트한 차를 저렇게 세게 밟다니. 음주운전은 아닌 것 같은데….”
“제주도에 젊은 친구들끼리 놀러 와서 폭주하는 거겠죠.”
“잡으러 가는 건….”
“저 차를 잡으러 갔다가 괜히 그랜드 캐년이 폭주해버리는 거에 늦게 도착하거나 하면 곤란하니, 보고만 하고 서귀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죠. 보고하세요.”
“아, 네. 보고하겠습니다. 아아, 여기는 김요원. 방금….”
요원은 스쳐 지나가면서 확인했던 차량의 번호를 협회에 전달했다.
아마 곧 폭주하는 차의 앞에 거대한 귤 풍선이 놓여 차가 더는 달리지 못하게 막겠지.
과속을 하는 건 자유지만, 그로 인해 다른 차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명백한 공공질서 위반이니까.
“부디 다른 거에 치이기 전에 먼저 귤풍선에 치여야 할 텐데.”
“…다른 거요? 치는 게 아니라, 치인다니요?”
“아, 제주도가 그렇습니다. 과속하는 차량이 있으면, 지천향님께서 인근에 있는 귤을 모아다가 바리케이드를 미리 설치하시지요. 차는 귤이 모여 만들어진 귤풍선에 박히게 되고요.”
“……그럼 차 못 쓰는 거 아니게 되는 건가요?”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과속하는 차가 없습니다. 보닛이 귤 범벅이 될 테니까요.”
침수만 되더라도 차 값이 똥값이 되는데, 그 침수가 과즙으로 인한 침수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
“귤이라….”
이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언짢음이 가득하던 백설희의 표정이 그나마 살짝 풀렸다.
“그런데, 다른 거에 치인다는 게 무슨 소리죠?”
“아, 그게.”
요원은 스쳐 지나가면서 확인했던, 렌터카와의 ‘차종’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미국산 차량, 외제차더라고요.”
“……?”
* * *
-…이에 협회에서는 이 정체불명의 존재를 ‘하르방메이커’라고…
[누군지 아직 특정하지 못했군. 하르방메이커라니.]직관적인 이름이기는 하지만, 협회에서 공식 명칭을 저런 식으로 지었다는 건 아직 하르방 1호를 만들어낸 자를 찾지 못했다는 것.
혼돈으로 특정되면 명칭이 ‘혼돈’으로 바뀌겠지만, 당분간은 협회 요원들이 골머리를 썩일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매화검수도 하르방 2호로 만드는 거였는데.]“매, 매화검수…? 중국의 S급 빌런 아닌가. 그도 제주도에 몰래 들어왔는가?”
[아아. 서쪽에서 도올이 대응했다. 검술 대결에서 지고 순순히 다시 바다로 헤엄을 쳐서 중국으로 갔다는군.]“……결사의 간부가 세 명이나 제주도에 있다는 건가? 세상에.”
데스몬드는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몸을 떨기 시작했다.
“혼돈, 궁기, 그리고 도올. 도깨비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간부 네 명이 제주도에 왔다니, 으으, 한라산 대폭발이라도 일어나는 게 아닐지.”
[사람 모인 면면만 보면 그렇긴 하지.]비공식적으로 이능력자들의 전투력 랭킹을 줄 세워봤을 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간단하게 TOP 10안에 들어가는 사람 네 명이 전부 제주도에 모여있다.
그것도 결사 사람들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
백설희도 있고, 유미르도 있고, 그 이외에 온갖 S급이 넘쳐난다.
이게 7월 초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S급은 점점 더 늘어날 터.
그만큼 하르방도 늘어날 것이며, 그럴수록 더 많은 S급이 제주도로 올 것이다.
피닉스의 깃털도 깃털이지만, 결사의 간부를 상대로 승부를 보고 싶어 하는 전투광들도 있으니까.
[결사의 간부를 쓰러뜨리려고 하는 혈기 넘치는 히어로들도 아마 하나둘 제주도로 오려고 할 거다. 사실상 10월에 있을 이능력자 월드컵의 전초전이라고 봐도 무방하지.]“세, 세상에….”
[스트리밍이라도 하겠나? 혹시 누군가가 하르방 1호처럼 공격을 하면, 생중계로 전 세계에 그 만행을 보여주는 거지.]“…시청률은 끝장나게 높을 것 같구려.”
데스몬드는 입맛을 다시며 눈을 반짝였다.
“나를 노리는 S급들끼리 싸우는 걸 중계해도 대박일 거고, 나를 노리는 S급이 멀리서 날아온 저격에 쓰러진다. 물론 그러려면….”
[데스몬드의 보디가드가 결사라는 걸 들키면 안 되겠지. 그냥 농담이다. S급들끼리 격돌하는 게 그만큼 잦을 거라는 이야기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두도록.]어쩌면.
S급 악마들도 그만큼 많이 나타날 수 있겠지.
[이미 욱일의 마녀 악령 부활 사태 때부터 그랬지만, 이제 제주도는 전장이 되는 거다.]실제로 죽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내가 처형할 대상이 나온다면.
[히어로들도 피닉스의 깃털에 빌런 행동을 하는데, 다른 이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지.]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어떤 목적이든, 빌런들은 아무 곳에서나 튀어나올 수 있다.
[당장 지금도, ‘벙커’를 향해 가는 중에도 빌런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 조심하도록.] […전방, 빌런 주의.] […….]혼돈이 조수석에서 앞으로 손을 뻗어 차에 마나를 불어넣었고, 나는 좀 더 강하게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콰ㅡㅡㅡㅡㅡ앙!!!
무언가 크게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천천히 차의 브레이크를 밟았다.
“허억…! 바, 방금 더 가속했…!!”
[나도 사람이라서. 이런.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그만 액셀을 밟아버리고 말았군.]실수였다.
[데스몬드 회장. 훈수 하나 하지. 혹시 나중에 한국에서 살려고 한다면 명심해. 외제차는 렌트로도 타면 안 된다는 걸.]철컹.
나와 혼돈이 안전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오자, 데스몬드 또한 불안한 눈으로 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왔다.
[완벽한 포즈군.]자폭충에 당한 인간 무투가처럼, 갓길에 처박힌 한 고라니 인간이 엎어져 있다.
“빼, 뺑소니…?!”
[아직 도망 안 갔으니까 뺑소니는 아니다. 그리고 저거, 빌런이니까 괜찮다.]마력은 D급 정도지만, 죽지는 않았다.
이능력자는 탱크에 치여도 죽지 않으니까.
죽지는.
“저, 저건 도대체….”
[빌런이다.]한국에만 사는 아주 특이한 빌런.
[우리는 저들을 ‘전고연’이라고 부르지.]전국고라니연합회.
[약한 외제차는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