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77)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77화(378/668)
새애액.
파도가 몰아치는 제주도 해안가, 머리에 어두운 밤의 색과 같은 검은색 갓을 쓴 이들이 하나둘 모래사장 위로 걸어나왔다.
[환복.]가장 앞에 있는 이가 말을 하기 무섭게, 뒤따라 온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던 잠수복을 벗어던졌다.
잠수복 안의 옷은 누가봐도 시대착오적인, 혹은 컨셉에 충만한 닌자복이었다.
무슨 이능력의 시대에 닌자냐고 사람들이 말할 수 있겠지만, 신체강화형 이능력자가 닌자처럼 움직이겠다고 하면 닌자처럼 행동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닌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 은밀기동.
이 제주도에서 도대체 어떻게 은밀하게 움직일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그들은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대장. 슬슬 미캉레이더에 걸릴 것 같습니다.]닌자 부하 중 한 명이 전방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감귤나무의 잎사귀가 살랑거리고 있었고,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이 마치 CCTV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우회할까요?] [아니. 정면돌파한다. EMP를 터뜨리겠어.] [EMP…?] [잘 봐둬라, 신입. 이능력은 언제나 항상 파훼법이 있다는 것을.]닌자 대장은 등허리에 차고 있던 검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지퍼백 비닐 안에 들어있는 것은 형태가 다소 흐물흐물해진 주황색의 무언가였고, 닌자 대장은 지퍼백의 비닐을 열어 그 작은 구체를 귤나무 근처에 던졌다.
철푸덕.
뭔가 터지거나 하는 건 없었다.
터지는 게 있다면,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떨어져서 흐물해진 껍질에서 흘러나온 과즙과 알맹이 정도가 전부.
[미캉…입니까?] [지천향이 컨트롤 할 수 있는 귤은 제주도에서 나온 귤 뿐이지.]닌자 대장은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대장, 위험합니다!] [괜찮다. 전혀 위험하지 않아.]부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닌자 대장은 귤나무 근처까지 다가갔다.
귤나무의 귤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닌자 대장은 자신이 던진 귤을 가볍게 즈려밟으며 앞으로 툭 발로 차며 과즙을 흩뿌렸다.
[후쿠시마 산 미캉의 과즙과 향을 뿌려 이 근처의 귤나무를 무력화한 거다. 지천향의 의식이 이곳에 닿기 전에, 먼저 여기 있는 귤들에 마력이 닿기 전에 마력을 차단한 거지.] [그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했다면 당장 이 귤들이 폭발하면서 우리를 덮치지 않았겠나.]닌자 대장은 부하를 향해 바라보며,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렸다.
[상상력이 그렇게 빈곤해서야. 자네, 오타쿠 아니지?] [예, 예…?] [하여튼. 오타쿠라면 이 정도 응용력 정도는 있을텐데. 안타깝도다. 요즘 젊은 것들은 하나같이 다들 인싸들이라서, 오타쿠나 히키코모리들이 방구석에서 공상하고 상상하는 그런 게 부족하단 말이지…쯧쯧.]닌자 대장은 지퍼백에서 계속 귤을 던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부하들은 그대로 그 뒤를 따라 걸으며, 행여나 귤나무의 귤들이 날아오거나 폭발할까봐 노심초사했다.
[대장. 그 귤, 전부 다 닳거나 하면….] [해안에서 침입하고 난 뒤에는 찾기 어려울 거다. 제주도는 모든 치안을 귤에 의지하기에, 오히려 CCTV에 걸릴 가능성이 낮지. 지천향의 눈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평범하게 행동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거, 삶은 겁니까?] [미캉전골에서 미캉만 빼낸 거다. 효과는 확실하지.]파스스.
어느새 귤나무가 길게 이어진 해안도로를 지나니, 곧 그 뒤는 귤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반도로가 펼쳐져있었다.
[세상에. 귤리게이트를 이런 식으로 파훼하다니…!] [이능력연구소에서 찾아낸 신종 파훼법이다. 너희들도 앞으로 잘 알아뒀ㅡ]타ㅡㅡ앙.
멀리서 들려온 총 소리.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며 총성이 울린 방향을 향해 무기를 꺼내 겨눴으나, 이어지는 소리는 있어서는 안 될 소리였다.
퍽.
[세이지?!] [멍청아! 이름으로 부르지 마!]마탄에 맞은 닌자는 모래사장에 대자로 넘어졌고, 이마에는 붉은 자국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젠장…! 귤인가?!] [아닙니다! 귤이 아닌…마탄입니다!] [큭! 신입은?!] [살아는…있습니다!]닌자들은 쓰러진 동료의 상태를 급히 확인한 뒤, 하나둘 주변 엄폐물 뒤로 숨었다.
[큭, 한국은 이미 해안가마다 저격수를 배치한 건가…! 이런 강력한 이능력자를…?!] [말도 안 됩니다! 대장이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의 이능력자가 이런 해안가에서 계속 대기를 하거나 그럴 리가…!] [가능할 수 있다…!]대장은 이를 갈며 바위 너머로 슬쩍 작은 단검을 뻗었다.
[한국 정부가 몰래 키우고 있다고 하는, 빌런들을 잡아다가 정부의 개로 만들었다고 하는 그 사냥개들이라면-]타ㅡ앙.
또다시 한 발의 총성이 더 울리자, 또다른 닌자가 쓰러졌다.
원 샷 원 킬.
죽지는 않았지만, 살해당하지는 않았지만, 기도비닉과 은밀기동으로 움직여야 할 닌자부대가 저격수에 의해 한 명 한 명 의식을 잃고 기절하는 것은 곧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
“젠장…!”
대장은 복면을 내리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지천향만 넘어가면 되는 거 아니었냐고!”
타ㅡ앙.
다시금 들린 총성.
대장은 총성이 울린 방향으로 눈을 돌렸고, 곧 말도 안 되는 광경을 그만 보고 말았다.
“미친…?”
부관이 쓰러지고 있다.
엄폐물로 몸을 숨기고 있는데, 엄폐물의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듯한 마탄이 부관의 정수리를 때리며 기절시킨다.
“어, 어떻게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닌자대장은 서서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능력을 본 나머지 그는 겁에 질리고 말았다.
이길 수 없다.
총 소리는 분명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데, 거리가 떨어진 걸 생각하면 수 km 너머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마탄은 엄폐물을 뚫고 대상을 저격하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날아온다?
“어떻게 이런 이능력을 가진 자가 있단 말인가…!”
타ㅡ앙.
총성이 울렸다.
이제 남은 닌자는 자신 혼자.
그 마탄이 자신을 노리는 것을 알기에, 닌자대장은 전방과 위를 한 번에 훑으며 단검을 휘둘렀다.
“마탄 따위, 날아오면 튕겨내면ㅡㅡㅡ”
빠ㅡㅡㅡㅡ악!
무언가가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그 충격은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 지경이었고, 닌자대장은 그대로 전신에 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서서히 의식을 잃었다.
“이런, 비상식적인….”
마지막 순간.
그가 의식을 잃기 전에 본 것은, 어딘가 허공에서 안개처럼 바스라지는 금빛의 별가루였다.
아마도.
별빛이겠지.
* * *
[…이제는 닌자까지 바다를 헤엄쳐 오는 건가.]대물저격총의 방아쇠에 걸어둔 손가락에 힘을 빼며, 나는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화상 스크린을 훑었다.
화상 스크린은 CCTV 화면처럼 여러 곳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몇몇 스크린은 검게 물들어 더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이 보이지 않으면 그 위치를 향해 저 멀리 위치한 다른 곳의 CCTV가 그곳의 화면을 비추면 된다.
CCTV라고 쓰고 귤이라고 읽기는 하지만.
[굉장하네요. 저기, 오빠. 저런 식으로 울타리를 넘어올 줄은 몰랐어요.]유미르는 CCTV 속, 바닥에 흩뿌려진 삶아진 귤을 보며 질색했다.
[일본산 귤을 뿌려서 지천향의 마나가 귤에 닿지 못하도록 하다니. 이거, 맞는 거예요?] [맞지. 실제로 성공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이능력이다.]공상이 실패했다면 그건 그냥 망상이지만, 공상이 현실에 실제로 작용했다면 그건 ‘이능력’이자 ‘법칙’이 된다.
[역시 오타쿠의 나라. 이능력 상상 기술 만큼은 다른 나라가 따라갈 수 없어.] [그게 무슨…?] [한국에는 세종 아카데미가 있다면, 일본에는 이능력 연구소 같은 게 있는 거지. 국가 단위로 자캐 연구소를 운영하고, 그 자캐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이능력자의 이미지를 실제 이능력자로 기른다. 그게 일본의 이능력자 교육 방식 중 하나다.]저 닌자들도 그렇다.
자신의 이능력을 바탕으로 컨셉을 잡아나가는 게 아니라, 이능력과 비슷한 컨셉의 존재에게 자신을 맞춰나가는 방식.
세피로트 기사단의 기사를 선정하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대격변으로 분화된 세상에서의 문화 컨텐츠를 기반으로 삼지만, 일본 이능력 연구소는 오타쿠의 공상을 힘으로 삼고, 이능력의 컨셉으로 만들어낸다.
[유미르. 명심해. 이능력은 어떠한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상대도 그 이능력의 핵심을 파악하면 얼마든지 파훼할 수 있다는 걸.] [저들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지천향의 귤을 무력화 한 것 처럼요?] [알 수 없는 방법이 아니야. 이능력의 발현 조건을 노린, 완벽하고 정확한 약점 공략이다.]지천향은 ‘제주도에서 생산된 귤’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 밖에서 생산된 귤을 가져온다면, 그 귤은 조종할 수 없다.
하물며 그게 일본에서 자라서 전골탕으로 한 번 삶아지고 끓여진 미캉이라면, 그 향기가 진해서 주변에 있는 생귤의 향을 뒤덮어버린다면 지천향의 마나가 해안선까지 닿지 못하겠지.
[이능력은 결국 응용 싸움이야. 어떻게 이능력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적을 쉽게 제압할 수 있지. 유미르. 아직 닌자 하나가 남아있다.] [문, 열게요.]유미르는 느긋한 손길로 한 손을 내 대물저격총 앞에 뻗었고, CCTV 화상 스크린를 주시하며-
[준비하시고.]내 총구 앞에, 차원문을 열었다.
[쏘세요.]타ㅡ앙.
마탄은, 차원문을 넘어 엄폐물 뒤에 숨어있던 닌자의 정수리에 꽂혔다.
마탄의 사수.
현재까지 명중률 100%.
[이게 저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