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87)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87화(388/668)
“도지환을 상대로 임신을 하겠다고…?”
“그래, 뭘 그렇게 놀라? 이미 그러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아니, 그걸 임신영장 나왔다고 바로 공표하려고 할 줄은 몰랐지.”
솔직히 당황했다.
이미 나름 합의된 내용이라서 적당히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백설희는 이번 임신 영장 발부를 자기 좋을대로 제대로 이용해먹을 생각인 것 같다.
“어떻게 하려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당신을 픽하는 거야.”
“우리, 천천히 썸 타기로 하지 않았어?”
“임신 영장 나왔는데 지금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유전자 내놔.”
“이미 가져갔으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기정사실로 만들겠다는 거지.”
백설희는 계속 실실 웃기만 했고, 나는 막나가기로 작정한 이 여자를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설희야.”
“응.”
“일반인을 잡아다가 임신하겠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적어도 임신 영장 나온 것 때문에 혼란스러워 할 사람들 생각하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응?”
“지금 A급 이상 히어로들, 영장이 갑자기 추가로 나온 것 때문에 심란하거든. 이거, 새로 나온 영장이야.”
백설희는 태극워치를 두드려 사진 하나를 꺼냈다.
“올해 초에 왔던 영장이야. 1년에 한 번씩 보내주던데, 이번에 ‘요람파괴’ 사건이 일어나니까 한 번 더 보낸 거지.”
“요람이 파괴되기 전에 먼저 낳아라. 그런 의도로 보낸 경고장의 의미였죠.”
윤이선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게 처음에는 영장이지만, 그 뒤로는 선을 보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막 그래요. 일부러 다른 남자들과 자주 어울리는 자리에 부르고, 국가 행사라면서 잘생긴 연예인이나 나름 준수한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를 불러다가 같이 식사 자리를 만들게 하죠. 나라에서.”
“그 남자들 대부분이 정치권 권력자들이나 해그늘 관계자들이지. 그리고 그런 남자들 대부분 이게 상당히 이상한 놈들이고.”
백설희는 자기 관자놀이를 툭툭 두드렸다.
“유교 사상이 잘못 박혀도 아주 단단히 잘못박혀서, 무슨 여자 알기를 이능력자 낳는 아기 공장으로 취급하는 놈들이야.”
“잘 알고 있지.”
도지환은 몰라야하지만, 도깨비로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임신이 아니면 매국. 한 해에 아이를 낳으면 바로 다음 해에 아이를 낳도록 강요하는 게 그들이잖아.”
“그래. 또 영장을 보냈으니, 또 나는 국가 행사에 불려가겠지. 이선이도.”
“…이상하군. 대통령이 뭐라고 했을 텐데. 바리데기에게는 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나? 그녀만 특혜로 영장을 받지 않은 건가?”
“이봐요, 도지환 선생님. 한 가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있어.”
백설희는 한 손을 쫙 펼쳤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야. 아무리 대통령이 임기 기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5년이 지나면 그냥 일반인일 뿐이야. S급 이능력자 둘의 할아버지라는 타이틀은 있겠네.”
“대통령의 의지와는 관계 없는 정치 세력의 의지라는 건가?”
“그래.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해그늘 그룹과 관련이 있지.”
“…역시, 해그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건가.”
지금까지는 접근하기가 어려워서 사실상 방치해두다시피 했는데, 아무래도 세상을 어지럽히는 판데모니엄의 악마보다 먼저 처리를 해야 할 자들이 있는 모양이다.
“제주도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해그늘을 치울 본격적인 플랜을 짜야겠어.”
“그건 그거대로 알아서 하시고, 중요한 건 지금 내게 떨어진 영장이야. 현재 시점에서 그들의 뜻대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당신의 힘이 필요해.”
백설희는 내 두 손을 꼭 붙잡았다.
“다른 여자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내가 S급 히어로로서 모범을 보이겠어. 다른 여자 이능력자들에게 임신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또 이능력자들이 다른 나라로 출국하려고 시도하지 못하도록 내가 먼저 나설 거야.”
“…뭔가 계획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이군.”
“계획? 간단해. 우리가 제주도에서 계획했던 플랜을 한 장면으로 압축할 뿐이야.”
백설희는 신이 난 얼굴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걸로 한 번 이야기를 해볼까? 프로젝트 ‘걸크러쉬’. 어때?”
“…걸이라고 하기에는 네 나이가 올해로 반오십ㅡ”
퍼ㅡ억.
명치에 주먹이 꽂힌다.
마력은 들어있지 않고 힘도 딱히 없는 솜방망이 주먹이었지만, 주먹에 실린 의지는 내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
“뭐라고?”
“……계획, 한 번 말해봐. 적절한 계획이라면 그에 따르도록 하지.”
나는 백설희와 윤이선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짠 계획을 경청했다.
“……나쁘지 않군.”
이제.
엑스트라 도지환 사서도 무대 위로 올라가게 되었지만, 그걸로 임신을 강요받는 이능력자들의 멘탈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겠다.
“바람대로 되어주지.”
* * *
저녁이 되었다.
호텔의 뷔페 식당에는 아카데미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모두 모여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호화로운 뷔페식으로 얼마든지 먹고 마실 수 있는 자리였지만, 좀처럼 이능력자 학생들-특히 여학생들의 얼굴은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 선생. 다들 왜 저럴까…? 꼭 표정이 그런 느낌이야.”
나와 같은 자리에 앉은 교직원들은 목소리를 낮추며 여학생들의 언짢은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떤 느낌입니까?”
“내 아들이 군대 영장이 나왔을 때 표정이 딱 저랬는데.”
알면서 하는 소리든 몰랐는데 하필 그 소리를 한 것이든, 그 목소리를 아무리 낮춘다고 한들 이능력자의 청각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즉, 여기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건 결국 이능력자들의 귀에 다 들어가기 마련.
그나마 교직원들은 기분이 나쁜 이유에 대해 추측을 할 뿐이지만, 일부 남학생들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의미심장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야. 너, 파이어에그 깨지기 전에 빨리 애 낳아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낳냐? 여자가 낳지. 세상 어느 여자가 ‘내 아이 낳아주시오’라고 말하면 덜컥 낳아주겠어. 응?”
“하긴. 누가 칼 들고 임신하라고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아, 아니다. 악마들이 칼을 드는 건가? 아니면 빌런들이? 흐흐흐.”
일부 남학생들도 알고 있다.
여학생들이 받은 모종의 편지를.
당장 오늘 모인 이유도 그 편지에 관한 공동 대응 및 전체 경고를 위한 일이라, 아는 사람들은 좀처럼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 모이셨군요.”
사람들을 이 자리에 모은 당사자, 백설희가 마이크를 붙잡고 모두의 앞에 섰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을 모신 건, 두 가지 상황에 대응책을 마련함에 있어 여러분의 의견을 기탄없이 수용하기 위함입니다.”
모두가 백설희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빌런 도깨비에 의해 알게 된 ‘요람의 파괴’. 아직 요람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마땅찮은 지금, 요람을 지킬 수 있는 건 본인입니다. 학생들에게 경고합니다. 장난으로라도 상대의 요람을 친다면, 그건 장난이 아니라 ‘젠로스미수죄’가 적용된다는 걸 명심하시길.”
이능력자의 요람을 공격하는 자, 이능력자를 죽일 의지를 가지고 마력을 휘두르는 것이니.
“그리고 또 하나는 요람의 파괴에 관한 걱정으로 인해, 뭇 많은 사람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아이를 낳지도 않았는데 요람이 파괴된다면, 그 이능력자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그저 수명이 다 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도태되어 죽어야 하냐고.”
그 말에 실린 꼰대적 발상은 단 하나.
“그러니 요람이 망가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 이것이 국방부와 이능력대응부 등 국가기관에서 내린 선전포고입니다. 이곳에 있는 여자 이능력자들을 향해, 빨리 임신하라고 하는 겁니다. 어쩌면 여자를 임신시킬 남자들은, 국가에서 강제로 매칭을 할 지도 모르는 일이죠.”
여자 이능력자들이 하나둘 일어서려다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기도 하지만, 백설희가 손을 뻗어 그들을 제지했기 때문.
“진정하세요. 아직 확정된 일은 아닙니다. 그저 추측일 뿐이에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으니까 이렇게 모은 거 아니냐는 거죠? 예, 맞습니다. 아마 정부에서는 제주도 여름 학기를 중간에 비틀어버릴 확률이 높습니다.”
백설희는 너무나도 진지한 얼굴로, 한 손으로 고리를 만든 곳에 다른 쪽 손가락을 쑤셔박았다.
“여름 캠프가 애국 캠프가 될 겁니다. 정부의 제안을 따르고, 여론의 제안을 따른다면.”
“그건 억측….”
“억측일까요?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이능력자를 낳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곳이니까요.”
백설희는 잠시 쓰게 웃었다가, 곧 가운데로 나서며 모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예. 좋습니다. 이능력자, 낳아드리죠. 어떻게 매 해 한 명씩 낳아서 FC 백설희라도 만들어볼까 합니다.”
“스, 스노우화이트…!”
“이능력자 출산 과정에서 생기는 안보 공백이라거나 하는 문제는 그분들이 알아서 잘 고민하시겠죠.”
사람들이 당황한다.
“서, 설희 교수님? 정말로 임신…하실 건가요?”
“예. 할 겁니다. 단, 그렇게 임신하라고 임신하라고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이야기를 들어서 임신을 하는 게 아닙니다.”
막나가기 시작한 백설희의 불도저같은 추진력에 진심으로 당황하며 침을 삼킨다.
“제가 원해서 하는 임신입니다.”
“…원해서?”
“예. 이왕 임신할 거라면, 제가 원하는 남자를 제가 선택할 겁니다.”
백설희는 좌중을 한 번 쭉 훑더니, 손가락을 한 사람에게로 뻗었다.
“역으로 정부에 제안을 할 겁니다. 여자 이능력자가 임신을 하고 싶은 경우, 유전자 제공자로 선택된 남자는 거부권 없이 유전자를 제공해야 한다는 걸로.”
“그건….”
“일단 저부터 임신을 하도록 하죠. 음…아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랑 할까요?”
백설희의 연이어진 폭탄발언.
“그럼….”
백설희의 하얀 손가락이.
“당신.”
나를 정확히 가리키며, 그녀는 내게로 다가왔다.
“저랑, 아이만들기 하죠?”
“저, 저 말입니까…? 그, 그게-”
퍼ㅡ억!
“물어본 거 아니에요.”
백설희의 주먹이 내 명치에 꽂혔고, 나는 그대로 눈을 감으며 전신에 힘을 뺐다.
“스, 스노우화이트! 왜 그런 남자랑…?!”
“아, 그거.”
백설희는 나를 어깨에 짊어지며, 한 손가락을 위로 들었다.
“콜라 좋아하시는 척척박사님께 물어봤더니, 딱 이 남자가 걸리더라고요.”
“고작 그런…!”
“그럼, 이렇게 답하죠.”
백설희는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 처음을 가져갈 남자와 내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정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