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9)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9화(40/668)
아침이 되었다.
나는 밤동안 주모와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혹시나 이곳을 누군가가 염탐하고 있다면, 남녀가 간밤에 함께 밤을 지새우고 난 뒤에 일어날만한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났어? 치킨 먹을래?”
“아침부터 무슨 치킨이야.”
“원래 양념치킨은 아침에 식은 걸 먹는 게 국룰이라니까.”
“됐다. 라면이나 끓여.”
“도깨비께서 되게 소박하네. 일요일 아침에 그냥 라면이라니.”
“그럼 국밥 좀 뜨끈하게 말아주든가.”
“그거라면 내가 잘 하지.”
주모는 냉장고에서 레토르트 국밥팩을 두 개 꺼냈다.
“어머, 봐버렸네. 내 국밥의 비결을. 혹시 막 사골을 끓인 육수 아니면 안 먹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나 그런 거 안 가려. 도와줄 건 없어?”
“없어. 그냥 앉아있어. 밥은 내가 다 알아서 차려줄테니까.”
“부탁하지.”
나는 부엌에 있는 식탁에 앉은 다음, 태극워치를 통해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쭉 훑었다.
별 일은 없다.
전 세계 곳곳에서 빌런이 날뛰는 건 일상이고, 히어로들이 사건 사고에 동원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오늘도 이능력자와 비능력자가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기 위해 인류가 어떻게 힘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만 가득할 뿐이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간밤에 연구실 하나가 침수되었는데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는 것.
물론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언론에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모두가 알 법한 일이었다면, 애초에 세종섬 지하 수십 미터-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100m 가량은 될 깊은 곳에 지하실을 만들어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 찾았다.”
“뭘?”
“이든 구에서 물 넘쳤다고 하는 소식.”
뉴스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일상을 올리는 SNS에는 간밤에 이든구 하수구에서 바닷물이 잠깐 역류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새벽에 이미 해결되어서 다들 신경도 안 쓰고 있군.”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네? 앞으로 영원히?”
“글쎄. 건물 쪽으로 잠수복 입고 내려가서 내부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능력자를 동원해서 바닷물을 다른곳으로 빼버리고 지하를 탐색할 수 있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고, 인간은 언제나 난관의 앞에서 답을 찾아낼 것이다.
“여기 드나드는 사람들 나중에 조사 좀 해줘. 아, 물론 걸리겠다 싶으면 그냥 조사하지 말고.”
“그거라면 당연하지. 내가 결사 내부의 배신자에게 물리는 것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걸리지 않을 수 있어.”
탕.
뚝배기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일제시대 때 수많은 주모들이 사실은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거나 밥 한 끼 먹여주면서 안 걸리게 도와줬다고. 나도 지금 그런 주모다, 이 말씀.”
“외국인이 그런 말을.”
“너무하네. 한국에 살면서 한국말을 하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 한국인 아니야?”
“외형에서 일단 한국인이 아니니까 위화감이 든다는 말이었지.”
외국인의 모습을 한 사람이 자신이 한국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걸 볼 때마다, 이 세상이 정말 이세계-라노벨 속 세상이라는 걸 항상 느끼고는 한다.
외국인이 술 마시고 난 다음 날, 레토르트라고는 해도 뚝배기에다가 국밥을 뜨끈하게 끓여서 대령한다?
“아, 깍두기 내가 담근 건데 한 번 먹어볼래?”
“…….”
“왜?”
“아니, 깍두기도 할 줄 알아?”
“당연하지.”
주모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한 얼굴로 깍두기를 그릇에 각각 담아 가져왔다.
“왜 두 개?”
“국물 붓기 편하게 두 개 따로 담았어.”
주모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국밥에 깍두기 국물을 쭉 부어버렸다.
“…….”
“왜?”
“아니. 그게.”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들깨가루도 있나?”
“들깨가루 넣으면 술이 덜 깨는데.”
“……..”
“재미없었나…? 이상하네. 다들 깔깔 웃는 건데.”
“그거 아나? 들깨가루 넣어서 먹으면 진짜로 술이 덜 깬다는 거.”
“…정말?”
“그래. 그래서, 들깨가루는 있나?”
“있지.”
탕.
마치 당연하다는 듯, 식탁에서 옹기그릇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
“…….”
빨강 머리 외국인이 뚝배기에 국밥을 끓여먹고 깍두기를 직접 담그는 걸로도 모자라 식탁에 들깨가루 그릇까지 있는 세상?
‘나는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는 들깨가루를 국밥에 부으며, 주모가 차려주는 국밥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 * *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다.
만 하루를 생각했던 것이 불과 하룻밤 사이에 끝난 만큼, 지금부터 나는 진정한 주말을 맞이하여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유미르한테 조금 미안할지도?’
이렇게 일찍 일이 끝날 줄 알았으면 그냥 주말에 밥을 먹자고 약속을 하는 건데.
물론 약속을 미리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한다고 본래 임무에 집중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이 술술 풀리니 막상 조금 후회스럽다.
아직 가보지 못한 맛집이 남아있는데.
그것도 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이.
‘아무리 세종섬이라고 해도, 일식집도 있고 중식집도 있고 인도 요리 전문점도 있단 말이지.’
대한민국이 세계의 으뜸인 나라가 되면서, 많은 한식당들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문제는 한식당들이 세계 뿐만 아니라 한국 곳곳에서 퍼져버렸다는 것.
-오우, 코리안 파스타집! 보기 좋아요! 하지만 우리는 국밥을 먹으러 왔습니다.
-이곳이 한쿡 어디서든 한식을 맛볼 수 있다는 곳, 김천국밥입니까? 굉장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메뉴의 한식을 10달러보다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다니.
-한국에 여행 왔는데 누가 피자랑 파스타 먹냐. 그 돈으로 기사식당가서 불백에 쌈싸먹고 뜨끈하게 후식으로 믹스커피 하나 뽑아 먹지.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수도 없이 찾아오며 전국 각지를 돌기 시작했다.
실상은 한국에 몰래 터를 잡을 곳을 찾는다거나, 불법 체류를 하기 위함이라거나, 혹은 한국인과 어떻게든 결혼을 해서 결혼이민을 하여 한국에서 살려고 하는 자들이었다.
-목적이 뭐든 자영업자는 손님을 일단 가리지는 않는다!
-아아. 여러분. 외국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우지는 맙시다. 한철 장사를 하겠다고 바가지 씌우기보다는,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여기를 찾아오도록 좋은 기억을 남기게 하는 겁니다. 우리, 품격있는 세계 최고 나라, 대한민국인 아닙니까?
-뭣?! 낙지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걸로도 모자라 코다리강정까지 씹어먹는다고? 네놈, 코쟁이 주제에 이미 혀는 한국사람이로구나!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 찾아왔든, 한국의 수많은 요식업계 사장들은 대부분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국인들을 맞이했다.
대부분은.
-프랑스까지가서 유학을 하고 왔는데….
-스테이크 먹을 바에는 삼겹살에 소주라고? 아니, 알아! 나도 아는데, 나는 스테이크를 팔고 싶단 말이야!
-버거퀸 매장 수보다 밥버거 매장이 더 많은 게 실화냐.
한식을 제외한 양식, 일식 업계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길을 모색했지만, 어느 한 쌈밥집에서 외국인들이 자주 찾아와 하루 매출 5천만원을 3개월 연속으로 찍었다는 이야기가 퍼진 뒤로 너도 나도 한식당을 열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지난 반 년 동안 조금 슬픈 일을 겪어야만 했다.
“빵집보다 떡집이 더 많다니.”
런던바게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떡집이 자리를 잡고 있고, 따우스레스쥬레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한과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반 년 동안 내가 빌런 생활을 하면서, 접대 비슷하게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중식집이나 일식집이 아닌 한정식을 먹어야만 했다.
가장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결사의 간부진, 그리고 총수와 함께 6명이서 함께 갔던 여행.
-능이백숙 먹어보자!
-예? 회장님, 저기, 진심이십니까?
-한방능이백숙! 찬성하는 사람 손!
-도 과장님은 닭이 싫으신 가봐요.
-뭐? 지금 나 디스하는 거야?
-과장님. 혹시 능이백숙이 싫으신가요? 어떻게 하죠? 회장님?
-아, 아닙니다. 먹겠습니다.
…살면서 여자 5명과 함께 계곡으로 워크샵을 갔는데 거기서 능이백숙을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식도 한두 번이지, 매일 먹으면 다른 것도 먹어보고 싶고 그런다고.’
맨날 김치랑 나물에 고기 먹을 수도 없는 노릇.
그나마 남아있는 식당들을 찾는 건 저기 반도에서는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 세종섬은 다르다.
‘여기가 세계화의 거리인가.’
세종섬의 식당가 중 한 구역, 세종섬에 오는 외국인들을 위해 형성된 식당가는 각 음식점마다 각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마치 만국기의 국기를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전 세계의 국기를 보고 있자니,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무엇을 먹을까 절로 고민이 된다.
이건 마치 명작 소설 여러 개를 두고 무엇부터 볼까하는 그런 기분.
모든 음식점의 사장들이 최소한 그 나라에서는 일류, 스타 쉐프급인 사람들이기에 음식의 퀄리티도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
‘일주일 동안 김치랑 비빔밥 먹었으면, 주말 하루 정도는 외식 할 수 있잖아.’
말 그대로의 외식.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던 찰나,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정확히 다가오고 있었다.
“……?”
“여기서 뭐하세요, 선생님?”
“…이선 학생?”
가벼운 외출복 차림의 분홍 머리 소녀, 윤이선을 만났다.
“혹시, 점심 드시러 오셨어요? …혼자서?”
앗.
“흐음. 그러면…저랑 같이 드실래요?”
윤이선은 장난기어린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밥 사주세요, 오빠.”
“……선생이 학생 부탁을 안 들어줄 수는 없지.”
결코.
오빠 소리 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