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392)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392화(393/668)
임신 영장을 발부한 자가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임신 영장 발부를 막지 못한 것에 심심한 사과를 표했다.
그런데도 백설희는 기자회견을 멈추지 않았다.
슬슬 들어가서 쉬어도 되겠다고 말해도 될텐데, 아예 자신을 향한 모든 의혹이 뿌리를 내리기는커녕 싹조차 자라지 않게 하겠다는듯 기자들의 모든 질문을 답했다.
기자들은 직감했다.
아, 제대로 꽂혔구나.
단순히 임신 영장 발부에 대해서 여성 이능력자의 대표로서 정치적 행동을 보인 게 아니구나.
그간 임신해라, 임신해라 성인이 되고 햇수로 약 6년 가량을 돌림노래 듣듯이 이야기를 들은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폭발해서 홧김에 저지르고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게 아니구나.
“혹시 백설희 님은 도지환 씨를 이성적으로 좋아하십니까?”
“얼굴을 보고 호감을 느꼈으니까 그 자리에서 선택을 한 거겠죠? 그 때는 그랬고,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잘 모른다?”
“첫 눈에 반했다는 표현보다는, 첫 밤에 반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에 기자들은 직감했다.
정면 돌파 수준이 아니라, 불도저로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모두 밀어버릴 기세라고.
만약 이능력 전투가 펼쳐지고 있다면, 눈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향해 얼음전차를 만들어 장애물을 전부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누가 뭐라고 하든, 이미 콩깍지가 씌여 제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것 같다.
만약 첫 날 밤이 자정을 넘은 시각에도-진짜로 새벽까지 했다면, 현재 백설희는 첫 날의 감정을 지금까지도 느끼면서 여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까.
즉.
“아, 아프지는 않았습니까?”
“전혀요.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행복하기만 하던 걸요.”
“…도지환 씨가 주로 했습니까?”
“그건, 음, 네. 제가 이런 걸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도지환 씨에게 전부 맡기고 부탁드렸어요.”
“세상에.”
기자들은 확신했다.
백설희가 이렇게 모두의 앞에서 당당히 ‘나 임신할게요’라고 선언한 배경과 원인에는, S급 이능력자도 속된 말로 뿅 가버리게 만든 누군가의 피지컬과 테크닉 덕분이라고.
“도지환 씨가 그렇게 잘 하던가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 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예?”
“제가 잘하는 남자라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거든요. 저는 남자를 처음 경험해봐서.”
까드득.
남자 기자들 일부가 이를 갈았다.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만약 저 이야기를 한 게 자신의 여자친구나 아내 될 사람이었다면 가슴이 뭉클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백설희는 그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어머, 어머….”
일부 나이가 좀 찬, 특히 손에 반지를 끼고 있는 중년의 여기자들은 얼굴을 붉히며 웃다가 다시 표정을 관리해야만 했다.
이 자리는 일단은 ‘공식석상’이고,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었으니.
차라리 생중계를 접고 대놓고 성인 전용 영상으로 돌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제의 수위가 간당간당한 상황으로 다가가고 있었지만, 이들은 방송심의위원회의 규정을 누구보다도 잘 준수하는 ‘프로’다.
“백설희 님.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도지환 씨는 주소가 서울로 되어있는데요, 만약 도지환 씨와 같이 지내고자 한다면 서울로 거처를 옮기실 생각도 있으신가요?”
“예.”
“도지환 씨가 서울에 자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은 했습니다만, 백설희 씨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면 여러모로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요?”
“아직 직접 제안을 드린 건 아니지만, 서울에 따로 단독주택을 사서 함께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도 있어요.”
“유부남인데요?”
“아내분의 허락을 받는다면, 셋이서 같이 사는 것도…?”
이 여자가 얼마나 남자에게 꽂혔는가.
백설희가 선을 넘지 않는다면, 기자들은 얼마든지 전연령-까지는 아니더라도 15세 이용가 수위에서도 백설희의 호감에 관한 이런 저런 심도있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언어의 마술사들이다.
“그러니까 그 남자 분과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서울로 거처를 옮기는 것도, 아내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사는 것도 각오할 수 있다? 한 침대에 셋이서 자게 될 수도 있는데요?”
“그 또한, 각오하는 바입니다.”
백설희의 각오에 기자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좋다.
현대 사회.
이미 대격변 이전의 윤리관은 어느정도 ‘이능력우선주의’ 앞에 무너진 이상, 현대적 윤리와 감성으로는 백설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백설희 님께 또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결혼 문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미혼모 여성 분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설희 님은 S급이시잖습니까.”
“S급이라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게 있나요? 제가 좋아서 그러는 건데. 법적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딱히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처음 만난 건데,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말씀하시는 건…?”
“로미오와 줄리엣도 하룻 밤 사이에 사랑에 빠졌죠.”
사랑.
필로폰이나 마나파우더 같은 약보다도 더 중독성이 강한 마약에 빠진 이 백설희라는 여자를 이성적으로 설득할 방법은 당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콩깍지가 살짝 벗겨진다면 모를까,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있는 듯한 백설희로부터 도지환이라는 남자가 남겨둔 색이 바래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럼 도지환이라는 남자분이 백설희 씨에게 어떻게 한 건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뭐라고요?”
“제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혹시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민 거 아닙니까? 최면어플을 사용했다거나.”
“지금 도지환 씨가 저에게 최면어플을 사용했다고 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도무지 믿기가 어려워서요. 백설희 님이 그쪽으로 전혀 경험이 없다? 그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백설희 님을 하룻밤 만에 소위 ‘도지환바라기’로, 지금까지 쌓아온 순백의 이미지를 모두 내려놓고 한 명의 여자로 만들게 만든 그를 믿기 어렵습니다. 혹시 이능력자라도 되는 겁니까?”
“어, 음….”
처음으로 백설희가 당황했다.
“제가 잘은 어떻게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 엄청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고, 더군다나 실력도 굉장했어요.”
“최면어플을 다루는 실력이요?”
“아니, 아니요. 음, 제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백설희는 생각을 곱씹기 시작했다.
“그게….”
* * *
“낭패군. 화살이 도지환으로 향하니까 당황하기 시작했어.”
당당하게 정면돌파를 하던 백설희가 허를 찔리니 폭주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당황하며 대답을 우물쭈물 하는 건 좋지만, 내가 순수하게 도지환이었다면 상관은 없지만, 도지환의 이름 뒤에는 도깨비가 있다.
“어떻게 하지. 내가 나타나서 호텔이라도 습격을 해야 하는 건가.”
“누구를 습격하게요? 설희 언니? 죄목은 자칭 순애 유부남을 불륜하게 만든 죄? 그걸로 도깨비가 나서는 건 오히려 더 오해를 사게 만들지 않겠어요?”
“도지환이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도, 뭔가 도지환이 도깨비 관련자, 결사 관련자라고는 생각하게 되겠지. 진퇴양난이군.”
“그래도 오빠, 지금 웃고 계시는 건…?”
“귀엽긴 하잖아.”
나는 영상 속 우물쭈물하는 백설희를 가리켰다.
“자기가 유니콘 못 타는 사람이 됐다는 건 당당히 밝히면서, 화살이 내게로 돌아오니까 내가 괜히 피해를 볼까봐 걱정하는 것 좀 봐. 괜히 히어로가 아니라니까.”
“오빠, 은근히 저런 거 좋아하시나봐요?”
“저런 거라기보다는, 한 여자가 자신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가 곤경에 처할까봐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 싫어할 남자는 이 세상에 없지.”
그리고 그런 곤경에 계속 노출시킬 남자도 없다.
“만들어진 빌런이라도 투입해야겠군. 어디 악마 안 나타나나? 그럼 도깨비가 뛰쳐나갈 명분이 서는데.”
“설희 언니가 머리에 비녀 꽂았다고 악마가 될 사람이었다면 기자회견 시작과 동시에 악마가 나타났을 걸요. 아직 아무도 악마된 사람 없어요. 다들 지금 팝콘 씹으면서 보고 있지.”
“쳇…. 불장난으로 화재를 일으키지는 못할 망정, 불구경만 하다니.”
“흐흥. 어떻게, 제가 나설까요? 아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서 가짜 빌런 짓이라도?”
“기자들이 선을 넘으면, 최후의 방법이라도 써야지. 미르야, 지난 번에 이야기했던 컨셉 ‘SF-27’을 꺼낼 때가ㅡ”
[그럼 기자님이 지환 씨랑 해보시고 알려주실래요? 지환 씨가 잘하는 건지.]순간, 나는 백설희의 말에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뭐…라고….”
[저는 비교군이 없어서 어떻게 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다른 분들이라면 답을 해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어느새, 백설희는 반격을 시작했다.
[저는 도지환 씨가 상당히 잘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결혼을 했겠죠. 유부남이라는 건, 이성에게 충분히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검증된 남자라는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오히려 나를 이용해, 기자들을 상대로 나를 방패처럼 휘두르며 장판파를 펼치고 있다.
“유부남과 유부녀는 오히려 이성적으로 검증된 존재다. 와, 무슨 조조같은 발언.”
“너 삼국지도 봤어?”
“재미있던데요? 유부녀랑 한 번 해보겠다고 자식에 조카에 아끼던 부하를 잃고도, 그 뒤로도 계속 유부녀를 찾던 남자의 취향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다 저런 마인드였구나, 싶네요.”
“하, 하하….”
헛웃음이 나온다.
[네. 저는 도지환 씨의 절륜함에 반해버린 것 같아요. 이 기분, 틀림없는 사랑이겠죠.]폭주는 멈춘 게 아니었다.
그녀가 잠시 호흡을 고른 건, 더 큰 폭탄을 터뜨리기 위한 심호흡에 불과했다.
[다른 S급 여자분들 중에 혹시 내가 남자 좀 잘 안다 하는 사람 있으면 연락 주세요. 도지환 씨가 잘 하는 건지, 비교군이 있는 다른 분이라면 더 잘 알겠죠?]백설희는 궁극기를 시전했다.
[저는 평생 한 남자만 알고 살 거라서, 다른 남자에 비교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