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4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40화(41/668)
“의외네요. 이런 곳으로 오실 줄은 몰랐어요.”
“혹시 파스타 싫어해요?”
내가 고른 곳은 이태리 출신의 쉐프가 운영하는 파스타 레스토랑.
다행스럽게도 윤이선은 내 선택에 크게 불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뇨. 그, 남자분들은 이런 곳 싫어하지 않을까해서요. 아,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도 그게 편해서.”
“…그래?”
그럼 나야 좋지.
“싫어하는 건 아니야. 남자들끼리 오기 좀 그렇거나, 남자 혼자서 오기에는 좀 많이 그런 곳이라서 그렇지.”
“…하긴. 남자 혼자 파스타 먹으러 오는 건 보통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긴 하네요.”
“그렇지?”
남자 혼자 국밥집에 들어가서 국밥을 먹고 나오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파스타는 느낌이 다르다.
아무리 한식과 양식의 위상이 뒤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일식집이나 양식집이 차지하고 있는 문화적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아무리 한식이 세계적으로 유행이라고 해도, 데이트하는데 김칫국물 튀는 곳은 좀 그렇지.
일식집과 양식 전문점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배경이다.
더군다나 세종섬에 외국계 식당들이 많아진 배경처럼, 반도에 있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혹은 외국인들이 직접 연 가게들도 있다.
그렇다보니 파스타 레스토랑이 가진 문화적 요소-‘여자랑 같이 오는 곳’이라는 느낌은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이선 학생, 나랑 같이 이렇게 밥 먹으러 나온 거 소문나도 돼? 스캔들 나는 거 아니야?”
“스캔들요? 전혀요. 제가 학생회 하면서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대선 후보랑 독대로 밥 먹으면 그게 스캔들인가요?”
“…연애적 스캔들은 아니고 정치적 스캔들이겠지.”
“후후.”
윤이선은 똑똑한 여자다.
상당히 등급이 높은 이능력자인 것도 그렇지만, 그녀의 정치적인 수완도 상당한 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학생회를 지금까지 계속 이끌어왔고, 대학생인 지금도 학생회를 이끌어왔다.
앞으로도 계속 학생회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졸업을 하게 된 이후, 아마 ‘정치’ 쪽으로 나가려고 하겠지.
이능력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
‘하지만 물러.’
아직 윤이선은 세상의 어두운 면을 모두 아는 게 아니다.
악마라든가, 인체실험이라든가 그런 건 전혀 모르는 순백의 꽃밭에서 살아온 여인이다.
꽃밭의 지하에 피튀기는 진창이 펼쳐져있다는 걸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 진창이 얼마나 더럽고 악랄한 곳인지는 모른다.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고.
“혹시나 스캔들 일어나면 변명거리로 이거 어때? 학생회에서 도서관과 연계하여 하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프로젝트요?”
“그래. 도서 대출 프로젝트.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대상으로 ‘리뷰 대회’ 같은 걸 여는 거지.”
“그럼 선생님 일이 늘어나지 않겠어요?”
“내 섹션에 있는 책들 말고, 저기 800번대 문학 소설로 말이야.”
“하. 업무를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는 건가요? 아이디어는 제공해놓고?”
“당연하지. 나는 바쁘게 살기 싫어. 편하고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선생님은 뭔가 두껍고 길고 굵게 살 것 같은 분인데.”
“……?”
내가 지금 잘못들었나?
혹시 얘, 지금 나 상대로 일부러 저 소리를 한 건가?
그렇다면.
질 수 없다.
“물론 내가 두껍고 길고 굵게 살고는 있지만, 인생이란 게 항상 그럴 수는 없는 법이잖아. 정면을 향해 항상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다니며 일하고 있지만, 때로는 침대에 엎어져서 축 늘어지고 싶은 때도 있는 법이라고.”
“선생님은 지금 그렇게 계속 살고 싶다는 거잖아요.”
“고개를 들고 일어날 때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할 때면 충분해.”
“필요로 할 때…. 마치 히어로 같은 답변이라 재미있네요. 후후.”
윤이선은 자신의 앞에 놓인 마시멜로우를 초에 살짝 그을렸다.
“지난 번에 말씀해주셨던 거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봤어요.”
“뭐? 아, 악마와의 계약?”
“네. 그냥 말씀하신 걸 생각하면 빌런이 되라는 말처럼 들렸지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의 요지를 깨우쳤죠.”
윤이선은 마시멜로우를 한 입에 집어삼킨 뒤, 포크를 수직으로 테이블에 세웠다.
“악마의 힘을 가지더라도, 행동이 악마가 아니라면?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영웅답게 행동한다면? 그건 악마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영웅이라고 해야 할까요?”
“영웅이지.”
나는 마시멜로우를 불에 살짝 크게 태웠다.
“이렇게 겉모습이 흉해졌다고 해도, 영웅이 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영웅이 될 수 있어. 중요한 건 마음가짐과 행동이니까.”
“신념이 아니고요?”
“신념이 있다고 해서 항상 히어로는 아니지. 이것처럼.”
나는 마시멜로우를 단숨에 삼켰다.
“이건 마시멜로우야. 하지만 탔지. 맛은 어때? 안쪽은 여전히 달지만, 쓰고 텁텁한 부분이 있어. 나는 마시멜로우의 달콤함을 기대했는데, 실제로 먹은 건 그게 아니었단 말이지.”
“선생님은 뭔가 비유를 어렵게 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행동이 히어로가 아니면 히어로가 아니라는 거야.”
“음….”
윤이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깨비처럼요?”
“도깨비라.”
객관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대상이 튀어나왔다.
“도깨비는 빌런이잖아.”
“하지만 세간에서는 그를 ‘다크 히어로’라고 부르기도 해요.”
“뭐? 에이, 그건 진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다크 히어로라니.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도깨비는 그냥 빌런이면 다 죽이잖아. 얼마 전에 경부고속도로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고, 저기 레스토랑에서도 그렇고. 으휴, 그 때 얼마나 식겁을 했는지.”
“……?”
“아, 나 그 때 그 레스토랑에 있었어. 밥 먹다가 습격을 당했지.”
“정말요? 죄송해요. 알았으면 진작에 안부 물어봤을텐데.”
“아니야. 안전하게 살아나온 것만으로도 다행인 걸.”
실제로 사람이 죽은 사고였으니까.
“아무튼 도깨비는 다크 히어로든 뭐든 영웅이라고 할 수 없어. 그는 그냥 자기 목적에 따라 사람 죽이는 걸 망설이지 않는 빌런일 뿐이야.”
“상당히 평가가 박하시네요.”
“사실이니까.”
“음…저는 꽤 괜찮다고 생각을 하는데.”
“…응?”
지금, 뭐라고?
“도깨비가 괜찮다고? 지금 빌런을 옹호하는 거야?”
“빌런을 옹호하는 게 아니에요. 도깨비를 옹호하는 거지.”
“사람 죽이는 빌런을 옹호한다고? 큰일 날 소리를 하네.”
“그런가요? 저는 그가 하는 행동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
떠보는 걸까?
내가 도깨비라고 생각해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설마 진심으로 도깨비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고조선 8조법에 있는 내용이죠.”
“그건 고대의 율법이지,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하지만 죽이지 않고 계속 감금한다고 해서, 사회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요. 한 번 빌런은 영원한 빌런…같은 말 까지는 아니더라도, 악한 행동을 한 자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람의 죽음은 그 자의 죽음으로 대신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가차없네. 그러다가 나중에 자칫 잘못해서 빌런 죽여버리거나 그럴지도 모르겠어.”
“제가 죽이진 않죠.”
윤이선은 어깨를 으쓱이며 씩 웃었다.
“히어로는 빌런을 체포한다. 그리고 사형을 집행하는 건 법으로 심판한다. 물론 체포하는 과정에서 순순히 체포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현장에서 즉결 처분되어도 히어로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선 학생이랑 밥 먹으러 왔다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 걸.”
“선생님이 도깨비를 안 좋게 말했잖아요.”
아.
설마?
“너 혹시 도깨비 무슨 팬클럽이고 뭐 그런 거야?”
“…….”
윤이선은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뭔가 형언할 수 없는 화면을 보여줬다.
“저 도깨비 팬클럽 회원번호 38번이에요. 도깨비 C급일 때부터 활약하는 걸 본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도깨비가 나타났던 모든 행적을 다 알고 있다고요.”
앗.
큰일났다.
도깨비 오타쿠다.
“세상에. 학생회장이 빌런을 상대로 이래도 되는 거야?”
“네. 저 말고도 도깨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히어로들이 답답하게 미란다 원칙 고지하면서 빌런들 잡으려고 할 때, 시원하게 빌런들 뚝배기 깨는 걸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도깨비 덕분에 구원을 받은 사람도 있고요.”
“구원?”
“네. 도깨비가 죽인 빌런들, 그들에 의해 죽은 사람들의 유족들 말이에요. 대충 이런 거죠. 나 대신 죽여줘서 고마워.”
“…….”
뭔가 속이 텁텁해지는 그런 기분이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이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그건 폭주하는 이능력자가 아니라 악의를 가지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그 중에서도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라고.”
“이해라…. 점점더 복잡해지는 걸.”
“복잡해지더라도 해야죠. 그냥 마구잡이로 세계를 정복한다느니 하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낫잖아요?”
“……뭐?”
지금.
총수의 꿈을.
모욕한 건가?
“그건 그냥 두고 넘어갈 수는 없겠는 걸.”
“…어디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아시죠?”
“그래. 알지. 결사, 이매망량에 대한 걸 이야기하는 거잖아.”
“선생님은 악의 조직이 세계를 지배해서 하나의 거대한 국가로 만드는 게 정말 좋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지. 아니긴 한데. 형태는 어떨지 몰라도, 결국 행동과 결과로 보여준다면 되는 거 아니겠어?”
“역시 선생님은 재미있으시네요. 아. 혹시 4천왕이나 결사의총수 수호결사대세요?”
“……뭐, 비슷한 걸로 치지.”
결국.
윤이선도 나도 대상은 다르지만, 합의점은 같았다.
“겉이 악마더라도 속이 영웅이라면, 그건 영웅이라고 볼 수 있다라.”
“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몇 가지 스케치를 가져왔어요.”
“…스케치?”
“네.”
윤이선은 활짝 웃으며 스마트폰으로 갤러리를 열었다.
“제 새로운 코스튬으로 이거 하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
내가 할 말은 한 가지.
“핫핑크 도지라이더?”
이매망량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