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407)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407화(408/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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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약자를 지키기 위한 말이나, 약자보다 강자를 더 지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능력의 시대, 대격변 이후에 비능력자로 태어난 이들은 인권이 없다.
히어로에게 지켜져야 할 대상이며, 히어로들이 받는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납세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 경매장 내부에는 도지환의 하룻밤을 두고 다들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낙하산 사서일 뿐인 남자의 하룻밤을 억 단위를 주고 사주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이건 영광이다.
도지환이라는 남자가 얼마나 잘하든 말든, 하룻밤의 가치가 수십 억에 이르는 건 분명 도지환에게 크나큰 영광이리라.
어떤 이능력자에게 팔려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다시 팔아도 엄청난 값을 치르겠지.
“하, 하하….”
그저 피닉스의 깃털을 본격적으로 경매에 올리기 전에 연습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분위기는 너무 과열되었다.
이제와서 ‘이거, 실제로 판매하냐 안 하냐는 도지환 씨의 의사를 물어봐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백설희를 통해 ‘이러이러한 경매를 진행하려고 합니다’라고 의사는 전했고, 백설희를 통해서 당사자가 조금 쑥쓰럽기는 하지만 허락은 했다고 통보를 받았다.
즉, 이건 도지환 본인의 허락 하에 이루어지는 경매.
애초에 원래 시나리오 자체가 백설희가 적당한 가격에 사들이는 것이었으나, 백설희와 다른 여자 이능력자들이 서로 경쟁이 붙는 바람에 너무 과열되고 말았다.
그 탓이 누구에게 있냐고 따진다면, 저기 능구렁이처럼 계속 호가를 올리고 있는 해그늘의 회장 때문이겠지.
“큰일이네….”
협회장은 호가를 계속 불러대는 사람들을 훑으며, 제발 누가 이 치킨 레이스를 끝내주기를 바랐다.
이러다 다 죽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황은 개판이었다.
“100억.”
그리고 그 난리를 종결시킨 당사자의 목소리는 협회장의 바로 옆에서 나왔다.
“데스몬드 회장님?”
“허허허, 아무래도 전초전이 너무 길었던 것 같습니다. 메인디쉬가 식어가고 있는데, 애피타이저부터 벌써 이렇게 힘을 다 빼서야 되겠습니까?”
데스몬드가 마이크를 잡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도지환 씨의 하룻밤은 제가 사들이고 나중에 따로 조치를 취하도록 할 테니, 이 경매를 종료하고 어서 피닉스의 깃털 경매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아, 아아….”
100억이라는 돈을 한국 남자에게 사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경매를 빨리 진행하고 싶다.
약간 불만이 가득해보이는 데스몬드의 표정에 다들 침을 꿀꺽 삼키며 서서히 피켓을 내리기 시작했다.
“120억.”
하지만 여기, 유일하게 오히려 따라붙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해그늘 회장께서는 왜 자꾸 도지환 씨의 밤에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돈이 될 것 같으니까.”
“돈이 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접근하면 상할 수 있습니다. 150억.”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이제와서 경매를 무를 것도 아니지 않나? 허허허. 200억.”
자존심 강한 두 부자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피닉스의 깃털을 빨리 사고 싶은 이들은 자꾸만 따라 붙으려는 최호정에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으나, 최호정은 계속 웃기만 하며 피켓을 흔들었다.
“돈으로 팔리는 거, 돈으로 사겠다는 건데 무슨 문제라도?”
“그렇다면 이쪽도 돈으로 사죠. 220억.”
윤혜라가 백설희와 함께 피켓을 들었다.
“호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으나, 두 여인이 함께 피켓을 들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하나 뿐이었다.
“동맹인가?”
“같이 사서 나누기로 했어요. 1/n. 서로 공평하게 시간을 사용하기로.”
“그만한 체력이 되는 존재인가?”
“이미 경험해봐서 알죠. 그럼 슬슬 포기해주시는 건 어때요?”
“음….”
최호정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 눈빛은 높아진 호가를 따라붙는 걸 망설이는 표정이 아닌, 어디까지 올려버릴까 하는 악의에 찬 얼굴이었다.
“그럼….”
“240억.”
“……?”
최호정은 자신의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시선이 바로 돌아갔다.
“다린…?”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양다린은 피켓을 흔들며 담담히 앞을 바라봤다.
“아니, 다린. 이게 무슨 짓이야?”
“저도 돈은 많으니까, 제 돈으로 제가 사고 싶은 거 사는 거예요.”
“아니, 네가 왜? 지금 불륜을 하려는 건가?”
“불륜이라뇨? 그냥 순수하게 궁금할 뿐이에요. 이능력자를 상대로 어떻게 하면 밤에 살아남을 수 있는지.”
양다린의 담담한 태도에 최호정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제가 뭐 제 또래의 남자를 사가지고 뭐 바람이라도 피울까봐 그러세요?”
“그, 그 목적이 아니라면 남자를 왜 사는 건데?”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사는 거죠.”
“이…!”
최호정은 주먹을 불끈 쥐었으나, 해그늘의 임원들에게 하듯이 그 주먹을 함부로 휘두르지는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애초에 양다린과 1:1로 순수하게 싸우면 비능력자인 최호정은 그냥 바로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양다린이 참는 건 최호정의 아내라는 위치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런 양다린이 깃털이 아닌 도지환의 하룻밤에 입찰했다는 건, 최호정의 눈앞에서 ‘나 불륜하겠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멈춰. 망신을 줄 셈이냐?”
“회장님이 그만두시면 저도 그만둘 게요.”
“뭐라?”
“회장님이 쓸데 없이 호가 올리는 거 그만두시면, 저도 굳이 입찰하려고 나서지 않을 게요.”
펄럭펄럭.
양다린은 피켓을 크게 흔들며 다시 경매가를 불렀고, 마이크를 잡은 협회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양다린 님께서 240억 부르셨습니다. 240억, 또 없습니까?”
“이, 이…!”
“더 높이시려고요? 저, 살 수 있는 금액까지 한 번 올려볼게요.”
“도대체 불만이 뭐야?”
최호정은 결국 피켓을 내리며 양다린을 채근했다.
“무슨 생각이지?”
“별 생각 없어요. 그냥, 해보고 싶어서 그랬다니까요?”
“끙….”
“더 높일 거 아니면, 제 이름 세 번 호명하고 끝내도록 하죠?”
“그건….”
“280억.”
백설희와 윤혜라의 옆으로, 나데시코까지 달라붙었다.
그 모습을 본 양다린은 그제야 피켓을 내렸다.
“…S급 이능력자들이 저렇게까지 바라는 남자들이라니.”
“너, 너…. 일부러 구설수를 만들려고 하는 거야? 응? 네가 아랫도리말고는 쓸 거 없는 남자는 왜 얻으려고 하는 건데?”
최호정은 대놓고 짜증을 부렸으나, 양다린은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입찰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스캔들로 엮을 건데, 왜 했냐고.”
“……빨리 집에 가고 싶으니까.”
양다린은 짜증이 가득담긴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최호정에게 답했다.
“집에 가서 애 봐야 하는데, 빨리 빨리 끝내고 갔으면 해서요.”
“…….”
연회장.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이곳에 어린 아이는 없다.
“회장님이 직접 아이 돌보시는 게 아니라면, 저라도 지금 가서 기저귀 갈아주고 돌봐야 하니까요. 제 자식이니까.”
양다린은.
그저, 빨리 아이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최종낙찰. 백설희.
경제적 부유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끼리 자존심 대결을 펼치는 바람에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뻔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꼼짝없이 최호정이 지시하는 상대와 관계를 맺을 뻔 했다.
그 대상 올해로 나이가 환갑을 넘어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 백발 성성한 노인이라고 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이 세상에서의 활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도지환으로서는.
게임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도지환이라는 남자의 퀘스트란에 ‘해그늘 생명 사장 할머니와의 하룻밤 보내기’와 같은 퀘스트가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귀속으로 남게 되는 셈.
‘단체로 무슨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경매 호가를 높이고 그래. 이상하게.’
마치 일부러 도지환을 향한 악의를 보여주기 위해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그만큼 도지환이라는 남자를 향한 관심이 많다는 반증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됐든, 도지환의 하룻밤은 300억에 낙찰되었다.
이게 실제로 하냐 하지 않느냐 하는 건 나중에 경매가 끝나고 난 뒤에 논의를 한 번 더 해봐야겠지만, 사들인 사람이 백설희라면 그냥 말이 300억일 뿐이다.
‘실제로 그 금액을 지불하고 하룻밤을 산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겠지.’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제대로 속았을 것이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일에 300억을 태울까.
돈이 남아돌아서 지폐다발로 화전놀이를 하는 자가 아나리면.
[아쉽네. 오늘 도깨비가 해그늘 회장 건드리는 거 볼 수 있었는데.] [나도 아쉽게 생각한다.]해그늘 회장이 중간에 마음을 접지 않았다면, 양다린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호가를 높였을 것이다.
애처가도 공처가도 아니지만, 아내를 향한 집착이 상당한 편이다.
정작 자신의 아이-C급 재능의 아이에 관한 관심은 전혀 없지만.
[해그늘 회장은 자기 여자에 대한 애착은 있어도, 그 여자를 통해 낳은 C급 아이는 관심이 없더군.] […아이를 이용하면 적절히 양다린에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 아이를 신경 쓰다가 경매가 지지부진한 거에 본인은 그냥 짜증을 낸 거지만, 덕분에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으니 조금 정도는 도와줘야지.]양다린의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아이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새로운 남편을 찾아주는 걸로.]원작에서도, 그녀에게 접근하는 계기는 아이였으니까.
[애 딸린 유부녀라도 사랑해줄 수 있는 히어로로 말이야.]일단, 나는 아니다.
몸값이 300억이 되었다.
어지간한 스포츠 스타들보다도 더 많은 액수의 돈을 하루만에 벌게 되었다.
‘애초에 진짜로 들어올 돈은 아니지만 기분은 좋기는 해.’
본 경매 전에 이루어지는 연습 겸 경매라고는 하지만, 액수가 억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이래도 안팔아?’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하지만 뭐든지 적정 선이 있다.
단순히 천만 원이었거나 많으면 1억 정도였다면, 현실에서도 S급 연예인과의 하룻밤에 1억을 태우는 부자들도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경험해본 적은 없고 귀동냥으로 들은 게 전부지만, 이 세계에서 겪은 바로는 저기 유흥가에서는 하룻밤 술 값으로 자동차 한 대를 태운다고 하기도 하더라.
돔 페리뇽으로 골든벨을 울린다거나, 거기에 추가하여 온갖 술값과 약값이 곁들여지면 하룻밤 사이에 재산이 거덜나게 되겠지.
특히 그런 상대가 ‘이능력자’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아직 이능력자라는 게 밝혀지지 않은, 그저 ‘S급 이능력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피지컬과 테크닉의 소유자’라는 것만으로 300억의 몸값을 받게 된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제 도지환이랑 어떻게 자유롭게 못 하겠네. 한 번 할 때마다 300억씩 줘야하니까.]빌런들이 나타나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며, 여유가 생긴 혼돈이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농담을 건넸다.
[어떻게, 천억 받고 나랑 2박 3일 풀코스로 할래?] [천억 원이 아니라 천억 짐바브웨 달러라면.] [뭐야. 순식간에 가치가 나락으로 떨어졌는걸.] [이 세상 사람들의 금전적 감수성에 대해서 지탄한다는 의미지.]솔직히, 막말로, 세상 어느 미친 자들이 남자와의 하룻밤에 300억을 태우는가.
나의 상식으로서도, 이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념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