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445)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445화(443/668)
“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얘, 아까 얘기했잖니. 이미 먹었다고.”
현세린은 길쭉한 혀로 아랫입술을 한 번 훑으며, 자기 아랫배를 가볍게 쓸었다.
“맛있더라. 언제나 그렇지만, 굉장히 안정적인 맛이었지.”
“당신….”
“하지만 당신들은 몰라. 이제 막 입맛을 들인 당신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
“그래서, 우리가 알려주겠다는 말씀.”
윤혜라는 앞으로 손을 뻗으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우리가 영상이라도 찍어서 보내줄 테니까, 당신들은 저기 히어로들 숙소인 호텔로 돌아가서 얌전히 패배자들끼리 서로 위로나 하고 있으라는 거야. 알겠어?”
“영…상…?”
“어머, 태이린 씨? 보고 싶은 거야? 미성년자 관람 불가일 텐데? 아, 잔인한 의미로 말이지.”
“…….”
윤혜라의 경고에 태이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리고는.
“결사의 간부들까지 인정한 맛집…. 과연. 알겠어요.”
그대로 몸을 돌려, 펜션 안으로 향했다.
“이린아…?”
“지금부터는 어른들 시간인 것 같으니까, 저는 머리 아픈 일은 빠질게요. 전용 무기를 뭐로 할지 아직 답이 안 나와서.”
“어…?”
“언니, 죄송해요. 저, 선생님이 주신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새 시대의 착한 어린이라서.”
꾸벅.
“어른들 사랑싸움에 끼기에는 좀 그러니까, 나중에 영상만 보내주세요.”
태이린은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누구도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노천탕에서 대치하고 있던 이들이 서로 눈치를 봤지만, 누구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신고하는 건 아니겠지.”
“눈빛이 뭔가 딱 그런 느낌 아니었어? 계집애들끼리 서로 기 싸움 하는 걸 보는 반장 느낌 있잖아.”
“아, 뭔지 알 것 같아. 자기는 끼어서 같이 싸울 생각 없다면서 공부하는 그런 타입 애들.”
“……하아.”
백설희는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래. 어디 한 번, 붙어보자고.”
자신의 몸 위로, 서서히 얼음결정을 흩뿌리며 하얀 한복과도 같은 드레스를 만들어냈다.
“내가 이기면 당신들, 이번 주는 그 남자랑 어떻게 할 생각도 하지 마. 알겠어?”
“이번 주? 어머, 생각보다 배려심 넘치는걸?”
“7일이나 가겠어? 어차피 사흘 정도만 지나도 혼자서는 더 못 견디겠다면서 울 건데.”
“하, 뒤에서 손가락만 빨면서 애타게 울 거면서. 너희가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 3:2야.”
“그거.”
순간.
“3:3이에요.”
“뭣…!”
바닥에서 번쩍이는 금빛의 원이 생겨남과 동시에, 순식간에 원이 하늘로 솟구쳤다.
파ㅡ앗.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 순간, 주변은 아무것도 없는 넓은 건물의 내부였다.
마치 사람이 전부 사라진 지하 주차장과도 같은 곳.
“안녕하세요, 언니.”
“너…!”
“맛집이라는 소식을 듣고, 등장.”
평소와 같은 복면을 쓴 금발의 여인이 윤혜라와 현세린의 사이에 선 채 모습을 드러냈다.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복강ㅡ감단의 리더, 백태양.”
“…….”
“미안하지만, 도지환을 넘겨줄 수는 없어요. 제가 먹을 거라서.”
“너…배신한 거야?”
“배신이요? 설희 언니. 배신은 언니가 먼저 했죠.”
스스로를 백태양이라고 밝힌 금발의 여인은, 복면을 당기며 차갑게 가라앉는 눈으로 백설희를 노려봤다.
“제주도에서의 일 끝나고 저랑 셋이서 같이 먹기로 해놓고는, 이렇게 몰래 울릉도로 납치해요?”
“……너는.”
“그래서 손을 잡았어요. ‘이번만’.”
백태양은 양옆으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도지환을 먹는다. 목적은, 일치하니까…!”
간부 둘과 인턴 하나에게 발 묶기를 부탁하고 난 뒤, 나는 성지은과 둘이서 울릉도의 야간도로를 산책하며 바람을 쐬었다.
“유미르를 믿지 못하는 건, 혹시 외국인이라서 그런 거야?”
“외국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야. 알잖아. 나는 걔처럼 ‘정의덕후’같은 애들, 싫어하는 거.”
성지은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 두 종류 있어. 하나는 자기 이득을 위해서라면 남을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자들이고, 또 하나가….”
“광익공과 같이, 오직 ‘정의감’만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하는 이들이지.”
한 줄로 요약하자면, 성지은은 ‘정의로운 히어로’를 싫어한다.
“정의감? 좋지. 하지만 그 정의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고, 누나 같은 경우에는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았지.”
“…막 그런 사람들에게 왜 정의롭냐고 따지는 건 아니야. 그냥, 가까이하기 싫다는 의미에서 싫다는 거지.”
성지은도 선을 넘을 생각은 없다.
단지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을 곁에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일 뿐이다.
“나는 말이야. 이 나라가 싫어.”
모처럼 둘이 나온 덕분일까, 아니면 제주도에 이어 울릉도까지 와서 그런 걸까.
“항상 정의롭기를 강요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강요하고, 개인의 사생활보다 국익만을 신경 쓰라고 강요하고, 마지막에는 아이 낳기를 강요했지.”
이전의 이 나라, 그러니까 2020년쯤의 이 세계 이 나라는 그랬다.
“그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뭔지 알아?”
“광익공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너는 그렇게 자꾸 빼려고 하냐.”
“맞아. 나는 그게 제일 싫었어.”
원래, 그런 게 있다.
내가 딱히 나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반에 너무 모범이 되고 성실한 아이가 있으면 그걸 이용해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내가 막 세 살 때부터,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부산의 도로 가지고 손장난을 칠 때부터 나를 이용했잖아. 그거 말고도 어디 한둘이야? 저기 세종섬으로 가는 다리도 내가 만들었어. 그러면 적어도 점점 성장하면서, 나에게 좀 자유를 줘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왜 그 자유를…계속 광익공이랑 비교를 하면서 억압하려고 드냐고.”
그리고 성지은은 살아생전, 광익공과 비교당하며 국가를 위해 일할 것을 강요받았다.
“이해는 해. 내 능력, 자기들이 써먹기 제일 좋은 능력이잖아. 그러니까 그 어린 아기한테 ‘놀이’라는 식으로 부산 도로 닦게 하고 다리 짓게 하고, 아파트 짓게 하고 그랬지. 에휴.”
땅을 조종하는 능력.
S급.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런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성지은은 어려서부터 그 재능을 일찌감치 모두에게 보이게 되었고, 국가에서는 성지은의 재능을 이용해 국토 개발에 목숨을 걸었다.
“지은아, 우리 이거 해볼까? 응, 맞아. 여기부터 저기까지, 쭈욱 평평하게 만들면 돼. 아니다, 저기 저거 보이지? 응, 우리 아저씨들이 만든 거. 저거랑 똑같이 한 번 만들어볼까? 잘했어요! 사탕 줄게. 젠장, 사탕 한 봉지에 부산 도로 다 닦아놨다니까.”
부산 도로 재개발의 시작은 사람이었어도, 그 중간과 끝은 성지은이 마무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이 나라를 위해 해준 게 수두룩한데, 이 나라는 나에게 똥을 줬어.”
“적나라한 표현이군.”
“그럼 그걸 뭐라고 말해? 잊었어? 내가 만약 그 똥 같은 놈이랑 아이 낳으라는 거 그대로 수용했으면, 나는 여기 있지도 못했어.”
“처녀 귀신이 아니라, 저기 양다린과 같은 입장이 되었겠지.”
“……후. 그래. 다행인 줄 알아, 너. 내가 그거 싫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덕분에, 너는 누나 처음을 가져간 거야.”
“그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부분인가?”
“결과적으로 좋게 된 게 좋은 거지. 흐흥.”
멘탈이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처녀 귀신이 되어 약 5년 동안 결사에서 지내면서 복수심이 그나마 줄어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유미르 정도면 정말 싫은 건 아니야.”
“누나가 싫어했다면, 아예 상종도 하지 않았겠지.”
“그래. 도깨비가 사이에 끼어있든 말든, 아예 상종도 하지 않았겠지. 만약 네가 유미르랑 우리랑 같이 애국한다고 했으면, 나는 아예 빠져버렸을 거야.”
성지은은 그런 여자다.
본인이 원체 내성적인 것도 있지만,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과 굳이 같은 자리에 있는 여자는 아니다.
“그런데도 유미르랑 이야기하고 같이 차 마신 걸 보면, 유미르가 조금은 마음에 들었나 봐?”
“…….”
“애국한다고 하는 거 말고, 그냥 사람이 괜찮은 거지?”
“정말, 너, 짜증 나.”
갑자기 성지은이 나를 째려보며 이를 갈았다.
“그렇게 착한 애를 어떻게 애국애국거리는 애국무새로 만들 수 있어?”
“내 잘못이야?”
“잘못이지. 광익공만큼이나 정의감 넘치던 애를 무슨 머릿속에 그런 거 할 생각만 가득한 변태로 만들어놓았잖아. 너는 정말이지….”
히죽.
“그래서 마음에 들어.”
성지은은 씩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사람이 마냥 호구처럼 살게 놔두면 안 되는 거야. 적당히 타협도 할 줄 알고,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욕심도 부릴 줄 알아야지.”
성지은은 정의감 넘치는 ‘이전의 광익공이나 유미르’ 같은 부류의 인간을 싫어한다.
“걔, 한국에 왔을 때 나랑 만났으면 내가 진짜 극혐했을 걸. 어딜 악마 같은 거한테 기회를 주냐고.”
“그때는 정화라는 걸 몰랐으니까.”
“정화가 있었어도 마찬가지야. 악마가 되어서 사람 죽이거나 그런 놈들은 바로 죽여야지, 어딜 한 번 더 기회를 주냐고 따지고 들었을걸.”
그때의 유미르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유미르는 다르다.
“광익공만큼이나 정의감 넘치던 여자애를 결사의 인턴으로 들어오게 만들면서, 동시에 사실상 결사의 간부들이랑 비슷하게 행동하게 만든다? 흐흥, 그런 타락, 싫지 않아.”
“타락이라기보다는, 현실의 더러움과 추악함을 알아버린 거지.”
“그게 타락이지. 새하얗던 도화지를 도깨비의 색으로 물들여버린걸.”
“일단 그 색이라는 게, 분홍빛이라거나 붉은빛이 감도는 색은 아닐 거다. 내가 유미르에게 보여준 건 이 나라의 추악한 현실이니까.”
세상의 추악함도 그랬지만, 굳이 세상까지 안 넘어가더라도 이 나라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더러움만으로 충분했다.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광익공이 지금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유미르도 변했어. 그러니까 너무 싫어하지 마.”
“싫어하는 거 절대 아니야. 본인이 몸도 빌려주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어. 그냥….”
저벅.
“노선, 확실하게 정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성지은은 제자리에 멈춰 서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어쭙잖게 정의감 가득한 상황으로 빠지게 하느니, 차라리 아예 너한테 빠지게 만드는 게 더 좋을 수 있어.”
“지금보다 더 빠지게 만들라고?”
“아예 결사로 들어오게 만들라는 거야. 임시 협력 같은 게 아니라, ‘인턴’이라는 저항선을 허물어뜨리라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잖아?”
“…그래.”
유미르에게 인턴이라는 신분은 마지노선이다.
그녀가 결사라는 빌런 조직-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조직을 두고, 판데모니엄이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손을 잡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이다.
백설희처럼 결사의 사람인 걸 알면서 모른 체 한다거나.
윤이선처럼 아예 결사로 들어온다거나.
김윤지처럼 결사와 사실상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거나.
굳이 누구에게 가깝냐고 묻는다면, 윤이선 쪽에 가깝게 만들라는 말.
“네가 고생은 좀 하겠지만, 너도 걔 계속 달고 다닐 생각으로 데리고 다니는 거 아니야? 애초에 남한테 시간 빼앗기는 거 싫어하는 도깨비가 자기 방에 함부로 들어오게 만든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 있을 수 없는 일을 도깨비가 할 만큼 중요한 존재 아니겠어.”
“그래, 그래. 악마정화 능력부터 시작해서, 생전의 나와 비견될, 아니 그 이상의 마력까지. 하, 정말, 대단하긴 하네.”
성지은은 헛웃음을 흘렸다.
“도깨비가 책 읽는 것보다 여자 만나는 거에 시간을 더 투자하게 만든 여자라니.”
“질투하는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