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456)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456화(454/668)
나는 궁기와 함께 어둠을 틈타, 넓은 공장의 지하로 내려왔다.
겉으로 보이는 건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어있는 공단.
하지만 그 내부에서 쓰이는 ‘연료’는 단순히 현대 과학 기술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인간이 어떻게든 돈을 아끼기 위한 욕망으로 빚어진 새로운 시대의 기술력으로 가득하다.
[그럼 소개할게. 여기가 바로 그 어리고 순수한 여자애를 속여서 후려친 다음, 그 아이의 따뜻한 마음씨를 불태워서 기계를 돌리는 곳이랍니다?]빈정거림 가득한 궁기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어르신들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라고 연탄보일러에 대신 태울 불꽃을 어떻게 이능력으로 만들어 담아뒀더니, 짜잔. 어이구, 보일러 태우는 게 아니라 보일러를 제작하는 공장 설비를 돌리고 있었네.] [보일러뿐만은 아니지.]우리의 앞에는 원통으로 된 거대한 설비가 하나 놓여있었다.
공장에서 몇 번 봤을 것 같은, 발전기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에너지 전환 장치라고 해야 할지는 상당히 애매했지만, 어딘가 상당히 이질적으로 생긴 기구의 안에는 전기 에너지가 아닌 다른 에너지가 들끓고 있었다.
[예전에 말이야, 내가 현역일 때, 어떻게 불꽃이 꺼지지 않냐고 그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어. 그래서 이야기했지. 이 안에 들어있는 불꽃은 누군가가 마나만 불어 넣어주면 다시 타오르게 해뒀다고.]‘마나’라고 하는 에너지가.
[이건 마력발전소라고 해야 하는 걸까?] [엄밀히 따지면 다르겠지만, 원리는 같으니까 큰 차이는 없을 거다.]나와 윤혜라는 거대 장치 속, 석유 연료를 태우든 전기 에너지를 태우든 해야 할 곳에 놓여있는 유리 원통을 훑었다.
[되게 오랜만이네. 이거. 이걸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정보는 알고 있었잖나.] [마지막 기대였지. 알고 있는 거랑 눈으로 직접 보는 건 또 얘기가 다르잖아.]원통에는 윤혜라의 머리카락 색과 비슷한 불꽃이 성냥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미약하게 타오르지만, 누군가가 마나만 불어넣는다면 다시 타오를 것 같은 희미한 불꽃이.
마치 죽어가는 이를 강제로 목숨만 남겨둔 채 계속 살려두면서 피를 뽑아내는 것처럼, 윤혜라가 죽기 전에 일으켰던 불꽃은 전부 꺼질 듯 말듯 타오르고 있었다.
[E급이나 D급 이능력자들, 여기저기 순찰하면서 어르신들 집 보일러에다가 손만 올리면 바로 마나를 흡수해서 열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했었지. …하하, 그게 여기에 이렇게 활활 타고 있네. 해그늘 공장의 기계를 돌리기 위해서.]왜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경제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에너지자원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
그런데 석유로 공장을 굴리는 대신, 기름을 불태워 화력발전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나를 불태워 그걸로 공장을 돌릴 수만 있다면?
-앗, 이능력자! 석유보다 싸다!
와 같은 상황이 될 수 있다.
해그늘은 그런 설비를 만들었다.
[도 과장님. 이거 막 망가지면 여기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공장이 망가지면 노동자는 당연히 일할 곳이 사라지겠지.]일터가 사라지면 결국 피를 보는 건 회사도 회사지만, 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지.]어느 영화에서 나온 말이다.
[좆되는 건 내가 아니라, 회사라고.]노동자가 다른 걸로 먹고 살 방법이 있으면, 그 노동자들이 다른 곳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해그늘 공장 하나 문을 닫는다고 세상 무너지는 건 아니지.] [그렇지?]딸칵.
[그럼 유품 좀 챙겨갈까? 호의로 주기는 했지만, 이런데 쓰라고 준 건 아니니까.]궁기는 생전에 남긴 불꽃이 담긴 유리관을 깨뜨리며 손을 집어넣었다.
와장창!
[…내가 이런 곳에 쓰라고 호의를 베푼 건 아니었다고.]그리고 궁기는 불꽃들을 손으로 움켜쥐며, 완전히 꺼뜨려 버렸다.
[공장이 멈추든 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니까.]도지환이 백설희의 집에서 계속 머무른다고 해서, 항상 내가 백설희 집에만 있는 건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그렇지만, 도지환이라는 사람이 밖에 있다는 것만 걸리지 않는다면 나는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세종섬으로 돌아간 윤이선의 방에 있는 것처럼.
[…해그늘 구미 공단 전체가 셧다운되었으나, 아직 해그늘에서는 그 뚜렷한 원인을 밝히지 않고 있으며, 이 상황이 지속될 때 피해 규모는….]“기하급수적.”
나는 앵커의 말을 끊고, 손가락 끝에 마력을 담아 허공에 선을 그어 올렸다.
“첫날의 피해는 10억 정도겠지만, 날이 지나갈수록 그 피해는 배, 아니 곱절이 훨씬 넘겠지.”
“…전문가들 예상으로, 피해가 1주일 이상 지속되면 천억은 훌쩍 넘을 거라고 하던데요. 복구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되어버리면.”
“아무렴. 그래도 그게 훨씬 낫지. 원인을 밝히는 것보다.”
나는 윤이선이 타온 차로 목을 축이며, 윤이선이 방 안에 걸어둔 화이트보드에 끄적인 자료를 가리켰다.
“네 예상이 맞아.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안 될 방법으로 공장을 돌렸지.”
“이능력이죠?”
“그래. 그 답은…’궁기’다.”
윤이선의 표정이 바로 진지해졌다.
“혜라 언니요?”
“정확히는 윤혜라 생전에 그녀가 호의로 남기고 갔던 불꽃들을 말하는 거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녀가 독거노인들에게 호의로 건넨 보일러용 불꽃을 모두 확보한 다음, 그걸로 지열을 일으켜 화력발전으로 에너지를 확보한 셈이지.”
중간 공정을 여러 차례 걸치는 바람에 효율은 딱히 높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지열을 이용해 공장을 돌리는 기술은 해그늘이 이미 가지고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산업용 전기 발전으로 공장을 돌렸다고 그랬겠지. 하지만 정작 그 전기는 또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공장 돌리는 화력은 마나로 대체한 거야.”
“그럼….”
“다시 전기 설비로 돌리는 게 아니라면 복구하기 힘들지. 이미 설비를 철거했거나, 보수를 하지 않고 노후화되었다면 말이야.”
공장을 돌리는 발전기가 고장 났을 뿐인데 새로 고치지 않는다.
고칠 수가 없다.
애초에 고장이 난 건 발전기 쪽이 아니라, 이능력 지열 발전기 쪽이니까.
그리고 수리조차 할 수 없는 게, 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다시 만들 수 있는 모 이능력자는 죽었다.
S급 히어로였지만 국가에 의해 팽당하고 죽은 화염계이능력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마력 발전은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
“당장 고치지 못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그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욕을 한 바가지로 얻어먹을 거 아녜요.”
“욕만 얻어먹게? 주가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걸.”
단순히 공장에서 문제가 생기기만 해도 주가는 내려가기 마련.
그런데 그 설비를 복구하지도 못하고 뾰족한 수단도 찾지 못하게 된다면, 아예 공장이 한 달가량 멈춰버린다면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은 대공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가전제품 쪽으로 당분간 문제가 많이 생기겠어. 계절가전은 몰라도, 주방가전은 요즘 수요가 많은데 말이지.”
“주방가전은 왜요?”
“백설희가 불륜녀지만 사랑만 있으면 어떠냐고 하는 덕분에, 요즘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거든.”
“어, 으음…. 무슨 연관성이 있죠?”
“불륜이 일어나기 전에 결혼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나이 25살짜리 여자애도 나이에 쫓겨 결혼한다고 하니까 다급해진 여자들도 있고, 내 여자가 불륜남이랑 불륜 나기 전에 결혼으로 쐐기 박으려는 남자들도 있고. 뭐 그런 거지.”
백설희와 도지환의 관계는 전 세계적으로도 스캔들이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화끈하게 달군 스캔들이다.
유부남을 상대로 불륜을 저질렀음에도 ‘성공’한 케이스라고 하는 것도 웃기기는 하지만, 백설희가 25살에 마치 ‘급하게라도’ 남자를 찾아 임신하려고 하는 게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다.
“S급 이능력자도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불륜남을 상대로도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 혹시 나이가 들면 이능력자가 태어나지 않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분들이 있다, 이 말씀.”
“그런 생각을 한다니….”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너한테 이능력 사용을 강요하게 될 거다, 이 말씀.”
“네? 저요?”
“물론이지.”
나는 윤이선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등에 불꽃 모양을 마력으로 그렸다.
“지금 가장 화력이 좋은 S급 이능력자가 누구겠어.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불여우 컨셉이지만 점차 어느 ‘주작’의 이능력을 닮아가는 후배라고 한다면?”
“…제 불꽃을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아직 너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깨우치지 못했지만, 너보고 그런 기술을 한 번 익혀보라거나 써보라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을걸? 왜냐하면….”
“설희 언니가 하늘에 뿌린 빙정처럼, 겨울에는 제 불꽃을 이용하려는 생각이겠군요.”
“그렇지.”
인간은 더위도 견디지 못하지만, 추위도 견디지 못한다.
특히 더운 건 어떻게 물을 덮어쓰거나 피서를 가거나 그런 방법으로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추위는 열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면 방법이 없다.
“처음에는 독거노인 영상을 주변에 깔면서,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들 떡밥을 뿌릴 거야. 그러다가 무슨 무슨 재단에서 사람이 나와서 인터뷰를 요청하고, 제발 한 번 만나달라고 이야기하겠지. 그리고 부산이든 서울이든 어디 달동네에서 쪽방에서 노인 분들 추워서 덜덜 떠시는 거 보여주면? 끝나는 거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이능력자일수록, 자신과는 전혀 다른 열악한 환경을 봤을 때의 정신적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죠.”
윤이선은 딱딱한 목소리로 내 말에 자기 생각을 덧붙였다.
“저, 유니세프가 캠페인으로 보여주는 영상도 제주도에서 처음 봤었으니까요.”
제3 세계 난민들이 헐벗고 굶주려, 기아에 걸려 죽어가는 이들이 나오는 영상도 함부로 이능력자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걸 보고 생겨난 ‘자비심’이 외국이 아니라 ‘자국’을 향하도록 방향을 유도하니까.
“이제 화살이 제게로 돌아오겠군요.”
“당연하지. S급이잖아. 불 속성 이능력자고. 마음씨도 곱고.”
“딱히 마음씨가 고운 건 아닌데….”
“백 명이 보면 백 명 다 너보고 곱다고 할걸?”
“…으으.”
윤이선은 나를 게슴츠레 노려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할게요.”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 건데? 해그늘을 도와줄 생각은 없어도, 그런 사람들 도우려고 하는 건 맞잖아. 보일러 뗄 돈도 없는 분들.”
“…….”
“돕는 건 좋아. 그걸 두고 사람들이 자비심이든 동정이든 악어의 눈물이든 뭐라고 지껄이는 건 신경도 쓰지 말고, 네가 그 사람들을 왜 ‘돕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나는 윤이선이 화이트보드에 큼지막하게 써둔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는 단어를 가리켰다.
“왜 너는 윤혜라가 생전에 사용한 이 기술을 사용하고 싶은 거지? 빌런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형 기술도 아니고, 안에 들어온 마력을 열기로 전환해서 정해진 위치를 빙글빙글 돌게 만드는 게 전부일 뿐인 이능력인데.”
“…남는 마력으로 얼어 죽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맞아. 그 마음가짐이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히어로에게는 이능력을 깨우치는 길이지.”
히어로니까 가능한 길이다.
“나처럼 뼛속까지 빌런인 녀석들은 타인을 이용하기 위해서 이능력을 깨우치는 타입이고.”
“저도 선생님처럼 빌런인데요?”
“너는 빌런이라기보다는 이 나라에서 빌런으로 취급하는 조직의 일원인 거지, 빌런이라고 할 수는 없어.”
나는 윤이선에게 다가가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진짜 빌런이라면 꺼지지 않는 불꽃 같은 걸 연구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저기 해그늘에서 메일 날아온 거에다가 ‘꼴 좋다, 엿이나 먹어라.’라고 답했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해그늘에다가 그런 소리는 조금.”
“틀린 건 아니잖아?”
마력 발전기가 망가지는 바람에, 그걸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윤이선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다.
응?
해그늘에서 저기 미국의 S급 이능력자인 ‘레드 라이더’에게 복구를 요청하면 어떻게 되냐고?
-복구 비용 이백조. 에누리 없이.
-…잘못 들었습니다?
-어머, S급 이능력자를 움직이게 하는데 설마 그 정도 돈도 못 주겠다는 건가요?
-아니, 어떻게 200조를….
-달러예요.
-…….
-싫으면 말든가.
누군가의 순수한 호의를 자기네 이익으로 돌린 것에 대한 분노를 사그라들게 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겠지.
“누가 그러더라. 진짜 열받고 짜증 나는 건 맞지만, 자기네 전 재산에 준하는 정도를 가지고 와서 무릎 꿇고 제발 어떻게 해달라고 빌면, 사람이 그래도 인정이 있어서 생각 한 번은 하게 될 거라고.”
“음….”
“빌런의 길을 걷고 있어도, 영혼까지 빌런이 된 건 아니라는 거지.”
뭐, 발전기 하나 고쳐주는데 200조 달러를 불렀고, 그 돈을 전부 주겠다고 하면 나도 일단 혹하기는 혹할 것 같다.
물론 200조 달러 같은 막대한 돈을 구해다가 줄 인간들이었다면, 애초에 죽은 사람의 이능력을 이용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겠지만.
“이선아.”
“네, 선생님.”
“기술은 돈이 된다. 그리고 그 기술을 네가 익히기만 한다면, 너는 그 기술을 이용해서 해그늘에게 막대한 돈을 뜯어낼 수 있는 거야.”
“인정으로 협박하고 그럴 텐데.”
“그건 네가 이겨내야지. 그 어린 주작은 추잡한 어른들의 욕망을 몰랐지만, 너는 너를 향해 동정심을 베풀어달라고 하는 자들의 뒤에 감춰진 더러운 욕망을 알고 있잖아.”
“물론이죠.”
윤이선은.
“남의 기술을 쓰려면 그만한 돈을 내야죠. 어딜 싼값에 후려치려고.”
호구가 아니다.
“그래서 선생님. 제게 그 기술을 가르쳐주실 건가요? 혜라 언니로부터 배운 궁극의 기술…꺼지지 않는 불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