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463)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463화(461/668)
사장은 불꽃이 타오르는 불빛 속, 태극워치 액정 속에 비친 자기 모습에 시선이 절로 갔다.
하얗게 새어가는 머리칼.
주름지기는 했지만, 보톡스로 관리받는 얼굴.
그 모든 것은, 그가 젊어서부터 쌓아온 부와 권력으로 얻어낸 것.
“젠장, 젠장…!”
하지만 그에게는 이능력이 없었다.
“이능력자들, 이 거지 같은…!”
자신에게 이능력이 있었다면 도깨비를 막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자식이라도 이능력자였다면, 도깨비를 막을 강자였다면 이 화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으아아아!!”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다면 이능력자를 돈으로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지금도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돈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왜, 왜 하필!!”
이제는 사회의 뒤편으로 사라져야 할 중년, 아니 노인이 되어가는 그에게는 아예 상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능력으로 몰래 공장 들어와서 테러하는 게 어디 있어, 이 거지 같은!!”
[그러길래 영체화로 몰래 드나드는 사람까지 커버할 수 있게 대응책을 마련했어야지.]아니꼬우면 미리미리 대비했어야지.
나중에 자기 전에 몰래 찾아가서 자는 중에 그렇게 이야기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내 역할이 아니라 다른 이의 역할이다.
[진짜 활활 불타서 망가지는 건 에어컨이 아니라, 사람들 화딱지인 것을. 쯧쯧.]해그늘 전자 사장은 괴성을 지르며 죄수 빌런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미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원래 늦었다고 생각될 때라도 움직여야 한다.
불타는 에어컨은 이미 망가졌으니, 나머지는 사람들의 원성을 달랠 차례.
[노동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아무리 범죄자라고는 해도, 어린 나이 애들을 약점을 잡아서 돈값을 후려치는 건 이능력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분노하니까 말이야.]솔직히 에어컨 좀 태운다고 해그늘 전체가 경제적으로 크게 타격이 올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진짜로 큰 타격은 사람들이 해그늘을 볼 때 ‘약점이나 잡아서 인간답지 않게 대하는 자들’이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
‘아직까지는 해그늘 불매 운동 같은 건 일어나지 않겠지만, 원래 댐이 무너지는 건 작은 균열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유감스럽게도 지금 이 불꽃은 군불에 가깝다.
하지만 이 군불은 시작을 알리는 봉화다.
도깨비가 해그늘의 더러운 부분을 모두 까발리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셈.
나는 그 선전포고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라디오를 통해 확인했다.
-해그늘 그렇게 안 봤는데.
-뭘 그렇게 안 봐. 지금까지 겉으로는 말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 저런 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거 누가 모르냐.
-내일 되면 이 댓글도 다 썰릴 예정인데 뭐 하러 불탐?
-해그늘 전문가분들이 나와서 이야기하실 예정이니까, 다들 다시 자러 가시면 됩니다~
[다들 일종의 패배주의에 절여져 있단 말이지.]한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해그늘이라는 산이 너무나도 크다.
악질인 건 알고 있지만, 빌런 그 자체라는 건 알고 있지만, 해그늘이라는 대상이 한 개인이 맞서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다.
[뭘 그렇게 혼자서 상념에 잠겨있으신가?]휘이잉.
바람과 함께, 도올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교도소 쪽은?] [잘 해결했어. 아무 문제 없이 깔끔하게. 렌트카는 인근에 있는 주모한테 부탁해서 무인텔에 넣었고, 교도소장으로부터 장부도 얻어왔다고.]도올은 가슴골 사이로 손을 집어넣더니, 손바닥 안에 들어갈 작은 수첩을 꺼냈다.
[짜잔. 빌런들 해그늘로 보낸 운행 일지. 소장도 나중에 자기가 어떻게 될까 봐 준비는 하고 있었더라? 불경 책 사이에 홈을 파서 그 안에다가 이걸 넣어놨더라고.] [그 홈, 혹시 망치 모양인가?] [응? 무슨 소리야. 사전 같은 두꺼운 불경에다가 이 수첩만큼 구멍을 뚫어놨던데.] [그냥 해본 소리다.]도올은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
[…아니군. 혹시 죄수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한 교도소장의 결말을 알고 있나?] [경찰에 잡혀가는 거?] [권총 자살.] […나 스포일러 당한 것 같은데, 맞지?]스포일러라고 하기에는 엄청 오래된 거니까 딱히 상관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뭐, 아무튼 우리는 이제 어디까지 ‘팽’당하는지만 느긋하게 보기만 하면 돼.] [회장까지 갈까?] [꼬리 자르기 당하겠지.]못해도 부사장, 혹은 잘하면 사장까지는.
[계열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꼬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 다 잘리고 나면 남는 건 머리뿐이라고.]그리스 로마 신화 속 괴물, 히드라가 결국 모든 머리가 헤라클레스에게 잘려 죽은 것처럼.
[옛날 사람 방식으로는 이제 이능력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지.]구시대, 격동의 7080을 살아오면서 힘들게 나라를 발전시킨 것?
[자기 때는 애들 데려다가 크림빵 주고 일 시키고 그런 방식이 통했을지 몰라도, 신세대에게는 안 통하지. 절대.]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현대, 이능력의 시대에까지 통용될 거라는 건 오산이다.
[이제 더 이상, ‘나 때는’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고.]라떼는 말이야, 라고 하는 자들을 위한 세상은 이제 없다.
화르르르.
여전히 공장은 불타오른다.
소방관들이 열심히 물을 뿌리지만, 화마가 워낙 크게 나는 바람에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젠장…!”
“버텨!! 저기 다른 공장까지 번지면 그때는 진짜 난리 나는 거야!”
“알고 있어! 하지만…크윽!!”
불꽃의 열기가 너무나도 강하다.
방화복을 입고 있음에도, 방화복을 타고 넘어오는 열기가 너무나도 뜨겁다.
멀리서 물을 뿌리고 있는데도,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화상을 입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젠장…! 천벌받은 건 해그늘인데, 왜 고생은 우리가!!”
그냥 단순한 화재라거나, 합선으로 인한 사고라거나 그러면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천벌이다.
저기 누군가는 도깨비에 의한 테러라면서 길길이 날뛰고 사라졌지만, 나쁜 짓을 벌인 해그늘에게 하늘이 내리는 벌이다.
“애들 고생시키니까 한 여름에 이렇게 불이 나지!!”
아동 착취.
감옥에 갇혀있는 경범죄자라는 점을 이용하여, 해그늘이라는 강력한 사회적 입지를 이용하여 이능력자를 본래 투입되어야 할 노동 교화소에 보내지 않고 기업에서 사적으로 운용한 죄.
나이가 적으면 중학생이고, 많아 봐야 20대 초반.
그런 이들에게 제대로 돈도 지급하지 않고, 심지어 밥도 제대로 먹이지 않고 일을 시켰다는 것만으로 이미 해그늘은 지탄받아 마땅했다.
소방관들 또한 당장이라도 저기 농성 중인 피해 빌런들에게 달려가 그들을 응원할 마음이 한가득하였다.
하지만 당장은 화마를 제압하는 게 급선무.
가만히 있다가는 창고뿐만 아니라 공단 전체로 불이 붙을 수 있기에, 소방관들은 최선을 다해서 불을 꺼야만 했다.
“저희 왔습니다!!”
화마가 커지기 전, 지원군이 도착했다.
방화복이 아닌 평범한 정장을 입고 있는 이들로, 그들의 나이 또한 많아 봐야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아카데미 제복을 입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저기 노동착취의 현장에서 해그늘의 악행을 고발하는 이들과 연령대가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서 와라, 히어로들!! 오자마자 미안한데, 불 좀 꺼줄래!!”
“물론입니다!!”
히어로다.
“휘몰아쳐라, 바람이야!”
“야, 바람 밀어 넣으면 안 되지! 아카데미에서 뭘 배운 거야!!”
“수둔, 수룡탄!”
“물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물을?!”
히어로들은 저마다 이능력을 사용하며 불을 끄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바람을 일으키는 이들은 불씨가 튀어 날아오기 전에 상승기류를 만들어 불똥을 하늘로 올리고.
물을 조종하는 이들은 살수차 내부의 물탱크에 직접 올라가 이능력으로 물을 끼얹었다.
푸쉬이이ㅡㅡㅡ
점차 불꽃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창고 겉을 검게 그을리게 하는 불꽃의 기운은 마치 이 정도면 다 됐다는 듯,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해치웠나?”
“확인 작업 개시!! 제발 불이 꺼지길…역시나!!”
부활의 주문이 아니다.
완전히 죽지 않은 불씨가 공장 전체를 집어삼키며 더 큰 불씨를 만들어냈다.
“젠장, 누구 이능력자 있는 거 아니야?!”
“에어컨 불태우면서 나오는 가스들이다! 저거 다 유독가스야!”
“쳇…! 차라리 이능력자라면 화염 술사를 제거하면 될 텐데!!”
이능력자들의 마력이 서서히 닳기 시작하고, 소방차들의 물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안 돼, 이대로 가면….”
“포기하지 마!!”
쏴아아.
거대한 물줄기가 불타는 공장을 뒤덮었다.
“뭐, 뭣…?! 이런 마력은…?!”
“포기하면 지는 거라고 했어!!”
“너희들은…!!”
공단의 사무실 방향에서 달려온 한 무리의 이능력자들은 제복이 아닌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너희들이 여기에는 어떻게…!”
“아무리 우리가 억울한 일이 있어도, 화재가 일어났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크윽, 너…!”
“자세한 건 나중이다! 지금은 불 끄는 데 집중해!!”
촤르륵!
아래에서 치솟은 얼음기둥이 화마를 막는 바리케이드가 된다.
이전에는 청송에서 구미까지 달려오는 버스에서 자신들을 쫓는 누군가를 물리치기 위해 사용하던 이능력이, 이제는 공장의 불을 끄기 위한 힘으로 사용된다.
“우리가 잘못하기는 했지만, 이런 난리가 났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이걸로 죄를 용서받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우리는,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하려고 여기에 왔다!”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사람을 죽이거나 한 건 아니다.
마나 파우더를 복용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타인의 기술을 훔치거나.
이능력으로 누군가를 과도하게 폭행하거나.
이능력을 사용하다가 그만 재물을 망가뜨리거나.
외제차는 한국 도로에서 돌아다닐 수 없다는 사상에 물들어 외제차에 마력을 두르고 들이받는 바람에 사람을 다치게 했거나.
소위 누군가에게 ‘처형당하지 않을 정도’의 죄를 지은 이들.
“너희가 일으킨 불이…아니야?”
“아니야!!”
그런 이들이 불을 끄러 왔다고 해도, 누가 어디서 너희 따위가 불을 끄러 왔냐고 할 사람은 없을 터.
[아아, 아이 해브 컨트롤!!]공단, 아니 ‘전장’에 울려 퍼지는 한 남자의 목소리.
[지금부터 협회장의 지시에 모든 ‘히어로’는 따른다! 공중에서 대규모 강우를 준비 중이니, 연기가 퍼지지 않게 모두 벽을 세워!! 최소 높이, 약 3m!!]협회장의 지시에 히어로들은 의문을 가지면서도 벽을 만들었다.
형형색색의 벽이 높게 펼쳐지는 가운데, 공단 상공으로 헬기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구구구.
“아앗, 저 사람은?!”
“아머드 태조!!”
헬기에 타고 있는 청년-아머드 태조는 평소와는 다른 ‘검은 정장’에 ‘검은 머리칼’을 한 채 무언가 하늘에 떠 있는 걸 와이어로 움켜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