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475)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475화(473/668)
“인류애라.”
꽈아악.
손에 움켜쥔 하얀 가면은 손아귀 힘만으로 산산이 조각났다.
“분명 모두가 같은 인간일 텐데, 왜 같은 인간끼리도 이렇게….”
플라스틱도 아닌 하얗게 칠해진 나무 가면이었으나, 그런 나뭇조각을 손아귀 힘만으로 부쉈으면서도 청년의 손은 멀쩡했다.
“죄송합니다. 선생. 전쟁을 누구보다도 싫어해서, 전쟁의 참혹함을 전하고자 한 당신의 이념이 담긴 것을…저는 지금 전쟁에 쓰고 있습니다.”
청년은 소파의 옆, 자신이 손으로 박살 낸 가면과 똑같이 생긴 가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저는 이 길을 걷겠습니다.”
휘릭.
“오라, 나이팅게일.”
허공에서 무언가가 새처럼 날아갔다.
“움직여라, 판넬.”
길쭉한 송곳과도 같은, 키위새와도 같은 형태의 물체는 하얀 나무 가면을 부리 끝으로 잡고 청년에게로 튕겼다.
“연방의 히어로라.”
탁.
청년은 가면을 움켜쥐었다.
“하얀 악마. 당신은 틀렸어.”
청년은 소파에서 일어나, 스스로 가면을 머리에 쓰며 창가로 향했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애가 아니야. 인간의 따스한 마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스륵.
“운석이다.”
청년이 손을 하늘로 뻗자, 그 손 위에는 하얗게 빛나는 보름달이 올라가 있었다.
“인류의 절반…아니 그냥 인류 모두가 함께 공멸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인류…아니지.”
청년은 가면의 정중앙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이 나라가 그대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진정한 구원.”
가면 속, 청년의 푸른 눈동자는 몹시 진지했다.
“사라져라, 추악한 좆간들과 함께.”
청년, 푸른 혜성은 서서히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고.
“일본을 제물로 바쳐, 전 세계에 경각심을.”
그의 눈에는, 하얗게 반짝이는 보름달이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음?”
털썩.
저 아래.
골목길 사이, 길거리에 무언가가 던져진다.
더플백처럼 보이는 것으로부터 삐져나온 건, 자글자글 주름진 사람의 손.
“…….”
하얀 가면 아래, 푸르게 빛나는 청년의 눈동자는 늦은 밤에도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히어로 협회’라는 글자가 담겨 있다.
일본을 공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부분의 현대 판타지 소설에서 국뽕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 일본을 공격하는 건 일종의 클리셰와도 같은 그런 느낌이 되었다.
-S급 괴수가 나타났습니다! 저희 힘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크윽, 칙쇼! 조선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는 말인가!
-안 그러면 저희 모두 다 죽습니다!
-젠장…!
일본에서 크게 위험이 생겨난 걸 오직 주인공만이 해결 가능하다거나.
-와타시는 기무성덕 군에게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에엣, 난데에에에!!
아니면 일본계 히로인이 한국인 주인공에게 반해서 집착한다거나.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일본 본토 역습이다!! 뭣?! 명나라 놈들이 배신을 해?!
-조선의 힘을 보여주마! 전부 다 박살 내버려!!
대체 역사물-특히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서는 조선의 반격이 이루어진다거나.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그 방향성이 상당히 무섭다.
국뽕 라노벨과 환의 의지가 하나로 모인 이 세상.
그런 것들이 모두 하나로 모여 새로운 모습을 보이거나, 아니면 그보다도 더 악랄한 형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일본의 자의적 멸망.”
바로, 일본 스스로 멸망의 지옥문을 열고 달려 나가는 것.
다른 국가의 공격이나 자연재해가 아니라, 일본 스스로 자국의 멸망을 당겨오는 걸로 일본은 공격당하고 있다.
“노인들이 안락사당하는 걸로 사회적으로 살해당하면, 그다음은 누구겠어? 장애인? 성불구자? 이능력자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 그도 아니면 세금도 못 내는 사람들?”
지금이 그러하다.
“지금 당장 교수대에 올라간 약자가 노인들이라서 그렇지, 그다음 사람은 누가 될지 몰라. 결국 남는 건 정부 측 인사라거나, 사회적으로 강자만이 남게 되겠지.”
“…….”
“한국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해야 하나?”
“딱히, 다를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유미르는 백설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캐나다에서 온 제가 봤을 때는,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약자를 멸시하고 그런 건 비슷하지 않아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인을 사회적으로 죽이려고 하지는 않지.”
“왜요?”
“그건 정치적인 문제가 있는데….”
“현 정부와 여당 지지층이 어르신들이니까.”
“아!”
백설희의 말에 유미르는 눈을 크게 뜨며 손뼉을 쳤다.
“젊은 세대들도 과반수 이상이 현 정부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어르신들은 거의 7할 이상이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을 지지해.”
“지지층을 상대로 안락사 허가법 같은 걸 통과시킬 리는 없으니까…. 어, 그러면 일본은…?”
“그 반대야.”
나데시코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귤껍질을 한 줄로 깐 뒤, 그걸 마치 뱀처럼 길게 늘어뜨렸다.
“80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알고 있는 세대들이야. 그리고 현 정부는 젊은 세대, 대격변 전후로 태어난 이들의 격렬한 지지를 받고 있지.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어르신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고.”
“즉, 지지층이 아니니까….”
“과감히 잘라내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권 빼앗길 일은 없으니까 과감히 시도하자는 거지.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하고.”
첫 번째 약자가 교수대에 올라 사라진다.
그 약자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나면, 인간들은 또 다른 약자를 찾게 되겠지.
그리고 그렇게 하나둘 죽고 사라지면, 결국 인간은 교수대에 올랐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약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사회적 약자라는 것은, 결국 상대적인 문제니까.
“이대로 가면, 라이더 같은 히어로는 더 이상 나올 수 없겠지. 약자를 지키는 게 히어로인데, 정부에서 약자들을 하나둘 죽여나가고 있으니까.”
“오히려 빌런이 늘어나겠는걸요. 특히 국가에 의해 제거되는 약자가 자기 가족이 된다면 더더욱.”
“그렇게 평범한 세상에서는 히어로로서 활약할 사람들이, 정부에 의해 빌런이 되는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는 거지.”
빌런을 규정하는 것은 사회다.
“예를 들어, 조실부모하고 80세 어르신과 함께 시골에서 자란 A급 이능력자가 있다고 쳐. 그런데 주변에서 안락사법으로 어르신을 죽이려고 해. 그러면 그 이능력자는 어떻게 하겠어?”
“…당연히 구하려고 하겠죠.”
“그래. 그리고 보통 소년만화든 애니메이션을 보면….”
“보통은, 그 어르신의 죽음이 이능력자의 각성을 불러오더라고. 그러면 빌런이 되는 거지.”
나데시코가 내 말을 정확히 받아냈다.
“복수귀라거나, 뭐 그런 식으로.
“…….”
“그게 수도 없이 반복되면, 뭐 일본은 멸망하겠네. 자연적으로. …그리고 그건 정부만 그런 게 아니야.”
나데시코는 미리 준비한 종이 자료를 우리의 앞에 건넸다.
“정부는 정부대로 노인들을 도태시키려고 하고 있고, 히어로는 히어로대로 정신이 나가버리는 거지. 나도 그렇고, 다른 히어로들도 그렇고.”
“국가에서 이런 걸 저지르는 걸 눈 뜨고 보고 있어야만 하는…. 그런 경우요?”
“그래.”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왜 히어로들은 가만히 있는가.
왜 히어로들은 이런 썩어빠진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가.
‘그야, 어리니까.’
아무리 나이가 많은 이들도 고작 25살.
‘어른에 대한 불신도 있고.’
이능력자라고 해도 정치에 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많이 어려워하는 것도 있지만, 이미 그런 세상을 만든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태에서 다른 어른들을 쉽게 믿기는 어려운 일.
결국 이능력자답게 해결하는 방법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하기 마련이더라.
“유미르. 이런 거 봤을 때, 두 가지 해결 방법이 있다면 뭘 고를 거야?”
“뭔데요?”
“하나는 네가 대통령이 되기. 또 하나는 그냥 이런 세상, 지워버리기.”
“음….”
유미르가 잠시 고민을 했다.
“역시, 고민되지?”
“선택은 하나인데, 방법이 고민이어서요.”
“방법?”
“…어떻게 지워버리는 게 가장 깔끔할까요? 빙하기? 소행성 충돌?”
“…….”
지구를 지워버릴 방법을.
“선생님. 지금 이런 생각을 저 말고 다른 사람이 한다는 건가요?”
“그래. 나데시코?”
“이 사람이 그 생각을 하고 있어.”
펄럭.
종이 자료에, 한 청년이 나타났다.
“이 사람, 푸른 혜성 아닌가요?”
“맞아. 아주 위험한 S급이지.”
프린트된 종이 자료에는 푸른 머리칼의 한 청년에 관한 자료가 가득했다.
“백설희 씨. 당신, 푸른 혜성이랑 붙으면 누가 이겨?”
“내가 이기지.”
“그럼 그 밑에 있는 애들이랑 비교하면 어때?”
“…애매하네.”
푸른 혜성-이하 ‘청혜성’은 백설희 선에서 정리된다.
“투신, 질 것 같아.”
하지만 그 선 아래에 있는 이들은 푸른 혜성이 전부 이길 수 있다.
“청혜성이 한국으로 넘어온다면, 아마 바로 S급 3위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그래. 다른 S급들이 아머드 태조랑 비슷한 수준이거나 한 단계 위라고 한다면, 청혜성은 딱 그 위치지.”
언터쳐블인 광익공의 아래, 천상계 최상인 백설희.
그리고 그 바로 아래에 있는 게 청혜성.
“그런 사람이 작정하고 일본을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과연 일본은 어떻게 될까?”
“히어로가 왜 국가를, 그것도 자기 나라를 침몰시키려고 해요?”
“그야 당연히 이런 짓을 저지르니까.”
청혜성의 자료 옆, 또다른 종이 자료에는 ’80세 이상 안락사 허가법’에 관한 자료가 담겨있다.
“자국의 노인들을 상대로 이런 짓을 정부가 벌이는데, 히어로라고 멘탈 나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히어로인데….”
“히어로니까 더 이런 행동을 벌이는 거지.”
어떤 심정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지, 나는 이해한다.
“히어로가 항상 국가의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건 아니야. 자기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게 정의라고 생각하면 소위 ‘신념을 가진 또라이’가 될 수도 있는 거지.”
“그거, 엄청 무서운 말인 것 같은데요?”
“일본을 침몰시킨다는 행위를 스스로 ‘정의’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