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14)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14화(510/668)
그건 남자의 순정이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겠지.
“하여튼 유미르 씨. 아무리 잘난 남자가 가지고 싶다고 해도, 혼자서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는 거야.”
“…….”
“그러니까 우리, 이능력의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상식답게 행동하자.”
“상식?”
“그래.”
총수가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곧 천장에 마나가 물결처럼 흩뿌려지며, 마나가 홀로그램처럼 반짝이며 무언가를 화상처럼 보여주기 시작했다.
“저건…한반도?”
“나는 컴퍼니의 수장이자, 히어로 협회에서 규정한 ‘국제빌런연합 [결사] 이매망량’으로서, 한 가지 목표가 있어. 그건 바로 한국을 우리 결사가 지배한 다음, 한국이 절대 물러서지 않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거야.”
“그게….”
유미르는 잠시 말을 잇는 걸 머뭇거렸다.
“…결사의 총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다면 분명 그건 제게 너무나도 달콤한 제안이겠죠. 백금태양으로서의 신념을 꺾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비전일 거예요.”
“잘 아네. 계속 들을래? 아니면 그만둘래?”
“…듣겠어요.”
유미르는 밝게 빛나는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악당이 그 어떤 비전을 제시해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게 히어로니까.”
“유미르 너….”
“선생님이 가르쳐주셨잖아요. 히어로의 마음가짐.”
유미르는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올리더니, 다시 총수와 눈을 마주했다.
“당신이 한국을 점령해서 이루고자 하는 건 뭐죠?”
“중혼금지 철폐와 일부다처제.”
“…….”
유미르는 대답을 듣자마자 그대로 몸이 굳었다.
“나는 저 남자를 한국의 왕으로 만들 생각이야.”
“어, 으음….”
“그걸 위해 프로젝트 제주도 승인했고, 도지환을 사서로 한국에 투입했지. 그 덕분에 지금 한국에서는 도지환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어.”
저벅, 저벅.
총수가 홀의 중앙으로 걸어온다.
“백설희도,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한 명 한 명 아이를 낳을 때마다 S급 이능력자가 태어나겠지.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람? 그냥 S급 여자들을 홀리게 만든 카사노바 한량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S급 메이커’였다고?”
“…씨만 뿌리면 최소 S급이 나온다는 말씀이시죠?”
“정확해. 그런데 세상이 알면 도지환을 가만히 놔두겠어? 그걸 도깨비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겠어?”
“선생님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죠.”
유미르가 총수의 앞으로 다시 다가왔다.
“선생님은 자기 자식들이 다른 이들의 강요로 희생당하기를 바라지 않으세요.”
“맞아. 그러니까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미리 환경을 만들어두는 거야. 도깨비가 한국의 왕이 되는 세상을.”
왕정으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이른바, 밤의 대통령이 되는 거지. 그 어떤 누구도 감히 도깨비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한국에 있는 그 어떤 조직도 도깨비와 그 자식들을 상대로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선생님께서는 ‘환의 의지’라고 표현하셨죠.”
유미르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환의 의지가 해그늘도 다른 이들도 아닌, 한국을 가장 위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도지환과 도깨비라는 남자를 지지하게 만들려고 하는 거군요.”
“그래. 뭐, 여론이라고도 하고, 국민정서라고도 하고, 애국심이라고도 하고…. 다양하게 부를 수 있겠지만, 일단 중요한 건 도깨비의 적을 물리는 일 아니겠어.”
“…좋아요. 협력하죠.”
“잠깐만. 유미르 너.”
말이 다르지 않은가.
“히어로는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며.”
“제가 그랬긴 했죠.”
유미르가 씩 웃는다.
마치 악당이 된 것만 같이, 타락한 것만 같이.
“너…!”
“어머, 잊으셨어요? 저는 세종아카데미에 다니는 대학생일 뿐, 아직 정식으로 히어로 협회에 등록된 히어로가 아니라는 걸.”
“마음만은…!”
“선생님이 연쇄살인마가 아닌데 한국 협회에서 선생님을 살인귀 빌런으로 정의하는 것처럼, 저도 사람들을 구하는 히어로가 되고 싶지만 아직 협회에서는 저를 히어로로 인정하지 않아서요. 그러니까, 히어로는 아녜요.”
이 망할 협회.
하여튼 협회라는 것들은 어째 도움이 되는 꼴이-
“협력하죠. 그 대신, 당신의 ‘진짜’를 보여주세요.”
“흐응…?”
“지금 그 모습이 가짜라는 거, 설마 제가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요? 분신이죠?”
“…헤에. 역시, 눈치 빠른걸.”
총수가 미소와 함께 안개처럼 사라졌다.
“그런데 본 모습을 보면 조금 마음이 꺾일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어차피 예상하고 있던 건 있으니까, 괜찮아요. 설령 임신한 모습으로 나온다고 해도-”
[짠.]천장.
[모처럼 우리 자기 온다고 해서 선물을 준비했으니까, 침실로 올래요?]다른 곳을 비추는 영상이 나타났다.
[선물은, 저예요.]하늘을 올려다 본 유미르는 한참 멍하니 영상 속에 나타난 산타걸을 보더니.
“…와, 진짜.”
나를 향해, 정말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저런 취향이셨어요?”
정의는 죽었다.
홀에서 총수의 방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길게만 느껴졌다.
“…….”
무거운 침묵만 복도에 가득하다.
관공서의 통로처럼 만들어져 소리가 날 법도 한데, 발소리만 울릴 뿐이다.
나는 가운데, 내 뒤에 천주연.
그리고 우리의 앞 두 걸음 정도 먼저 앞서나가는 유미르.
그녀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거칠었으며, 나는 그녀에게 좀처럼 뭐라고 말을 붙일 수 없었다.
기운이라는 게 있다.
여자들에게는 때때로, 먼저 말을 하기 전까지 함부로 말을 붙여서는 안 될 순간이 있다.
지금의 유미르가 그렇다.
“하아암.”
천주연은 그저 하품만 하며 옅게 키득거릴 뿐, 딱히 오해를 해결해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내가 지금 곤란해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싶은 거겠지.
왜 곤란해졌을까.
총수와는 크게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던 유미르가 왜 화가 났을까.
무언가가 폭발해서?
아니다.
한 가지 이유를 추측하자면, 당연히 총수의 모습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을.
즉, 그녀가-
“선생님.”
저벅.
유미르가 앞으로 먼저 걸어가던 걸음을 멈췄다.
“앞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하나 확실하게 하고 가도록 하죠.”
유미르는 몸을 돌려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거짓말하면 진짜로 화낼 거예요.”
“진실만을 말하도록 하지. 뭔데?”
“선생님, 페도신가요?”
“절대 아니다.”
나는 페도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소아성애자도 로리콘도 페도필리아도 아니다.
“그런데 총수님의 그 모습은 뭐죠?”
“변신한 모습이지. 예전에 봤잖아.”
과거.
총수가 직접 전 세계에 실루엣이나마 모습을 드러내 세상에 판데모니엄과의 전쟁을 선포할 때, 총수는 현재의 모습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걸 경량화 상태라고 불러.”
“그러니까 총수님의 본모습은 아니다?”
“그래. 오히려 본모습은 아까 네가 봤던 그 성인 여성에 가깝지.”
그보다도 좀 더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모습이 원래의 총수다.
나를 덮쳤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기에, 나는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
“정말로 그런 취향은 아닌 거죠?”
“물론. 나는 큰 걸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정말이죠?”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작은 걸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야.”
“라고는 하지만, 주절먹인 도깨비였다.”
뒤에서 천주연이 마치 나레이션처럼 읊으며 나를 뒤에서 쿡 쑤셨다.
“주절먹…?”
“주면 절하면서 먹는다는 거지.”
“아.”
“백설희 씨가 변형한 백하랑 씨랑도 그렇게 열심히 한 거로 알고 있는데, 총수님이 변한 모습이라고 어디 안 했겠어?”
“이보세요, 천주연 씨.”
“페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경량화된 모습을 싫어하는 건 아니잖아.”
천주연은 유미르에게 다가가며, 두 손목을 붙였다.
“철컹철컹. 안 그래?”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아동 성애자가 아니야. 미성년자를 상대로 그렇고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그럼 질문할게요, 선생님. 20세 이상의 성인 여성이 확실한데 저런 모습이라고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거죠?”
“스스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다르지.”
유미르는 나를 반쯤 가라앉은 눈으로 노려봤다.
“그러면 막 17살이지만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가서, 막 연예인 여신 포스 뿜어내는 여자를 상대로는 그렇고 그런 행위를 할 생각이신가요?”
“나는 한국인이고, 애국자고, 대한민국 법을 지키는 사람이지.”
나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 있다.
“아동청소년은 성인이 될 때까지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게 나의 지론이다.”
“음….”
“왜?”
“아뇨. 꼭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그런 느낌이 강해서요.”
“어떤 느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
역시, 유미르다.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게 있다는 건데….”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할 뿐이다. 만약 빠진 게 있다면,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허물이라는 거겠지.”
“그 허물이 항상 핵심이거나, 지금까지의 말을 전부 뒤엎어버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거나 하는 것도 선생님 화법의 특징이죠?”
너무 많은 걸 알려준 걸까.
아니면 주인공 특유의 눈치인 걸까.
“선생님. 만약에 제가 총수님처럼 작아진 상태로 선생님을 유혹한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