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2)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2화(53/668)
쇠뿔도 단 김에 빼라고, 나는 주모가 차려주는 저녁 국밥(…)을 먹고 바로 울릉도로 향하는 정기선에 올랐다.
-이 시간에 울릉도에 방문하는 목적은?
-내일 연차입니다! 오징어회 먹으러 갑니다.
-인정. 언제 돌아올 거지? 여행 계획은?
-아침에 구름 밝을 때 독도 한 번 보고, 호박엿 사서 오후나 저녁에 돌아오려고 합니다.
-음, 완벽한 관광객이군. 통과!
-네? 선배님, 그런 이유는 조금 그렇지 않아요? 울릉도에 입도하려고 하는 건데.
-세종섬 교직원이잖나. 이미 검증은 아카데미 차원에서 끝난 ‘내국인’이니, 굳이 빡시게 검증할 필요 없어. 세종섬에서 울릉도 가는 건데.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내가 출발지가 세종섬이 아니었다면, 울릉도로 드나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사는 섬이라고 해도, 세종섬과 가까운 만큼 울릉도는 출입이 세종섬에 준할 정도로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세종섬과 울릉도 사이에는 더욱더 그렇다.
아무래도 울릉도를 통해 세종섬으로 밀항하는 사람도 있는 만큼, 울릉도와 세종섬을 오가는 배는 단순한 여객선이 아니라 군용함을 방불케하는 외형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입도 심사는 세종섬과 마찬가지로 입국 심사를 방불케 할 정도.
-그래도 매뉴얼대로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세종섬 교직원이 울릉도 가는 거니까 괜찮아. 외국인이랑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아니다. 외국인 며느리 같이 데리고 가는 거면 바로 프리패스인가? 흐흐흐.
일요일 저녁이라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배를 타고 울릉도로 넘어올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심사가 조금만 더 늦어졌으면 이렇게 울릉도에 들어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끼이익.
배는 울릉항에 도착했다.
“정지. 한 명 한 명 줄을 서서 내리십시오. 신원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요원의 통제에 따라주셔야 합니다.”
부산국제항을 방불케하는 규모로 건축된 울릉항에 정박한 배에서 내린 뒤, 세종섬을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입도 심사를 거쳐 울릉항을 빠져나왔다.
‘여기가 이 세상의 울릉도.’
예전에 독도를 구경하겠다고 친구들과 같이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곳이다.
한 가지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게 울릉도야 괌이야?’
내가 알고 있던 그 울릉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온갖 해그늘 프랜차이즈가 있는 건 당연하고, 심지어 외국계 프랜차이즈도 즐비하다.
건물은 바닷바람을 먹었지만 서울의 건물보다 훨씬 세련된 디자인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강남의 밤거리와 같이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있다.
[기적의 섬, 울릉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 아래 온갖 외국어가 적혀있고, 마린룩 비슷한 제복을 입은 여인들이 곳곳에 관광안내원처럼 배치되어 외국인들을 상대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이 세계의 울릉도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휴양지라고 할 수 있다.
울릉도가 아니라 울릉괌, 울릉사이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울릉도는 제주도 이상가는 관광 명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나 때문에.
세종섬을 위시하여 동해라는 지역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마나를 흡수하기 위해 사람들은 동해를 찾으며, 그 중 세종섬과 가장 가까운 울릉도에 모두들 들어오고 싶어 한다.
섬에 들어온 이들은 어지간하면 이능력자들이다.
섬에 들어와서 어디 숙소를 잡은 뒤, 자기 나름의 마나 명상을 통해 마나를 쌓는다.
울진, 강릉보다 울릉이 더 마나가 많이 쌓이니까.
하지만 이능력자가 아닌 자들도 엄청 많이 울릉도를 방문하고는 한다.
누구냐고?
울릉도의 주민들?
아니다.
“자기야, 우리 진짜 성공할 수 있을까?”
“해야지. 하와이 3박 5일 갈 돈으로 울릉도 1박 2일온 거잖아. 내가 무조건 성공하게 해줄게.”
“자기, 우리 나중에 진짜 ‘그 아이’ 낳으면 행복하게 키우는 거다?”
“그래. 빌런 만드는 일 없이, 애국자로 키우는 거야.”
주로 20대, 혹은 30대 ‘신혼부부’들이 많이 방문한다.
어린 아이는 거의 찾아볼 수도 없다.
’15세 이하 이능력자’는 이 섬에 입도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어린이가 울릉도, 이 ‘어른을 위한 꿈의 섬’에 들어올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곳은 어린이를 만들어가는 섬이니까.
“이보시오, 거기 총각. 혼자왔수?”
이제 환갑 정도 되어보이는 회색 정장의 노인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예전에 울릉도에 친구들과 놀러왔을 때 픽업으로 나온 노인은 저기 시장에서 입고 파는 낚시 조끼를 입고 있었지만, 이곳의 노인은 입고 있는 옷부터 다르다.
당장 태극워치의 위에 함께 착용한 놀렉스부터 노인의 플렉스를 증명하고 있다.
이 노인은 나이들고 늙었지만, 엄청난 부자다.
그리고 이런 노인이 한둘이 아니다.
“아가씨는?”
“혼자왔습니다. 세종아카데미 소속 교직원입니다.”
“아, 그려? 그것 참 아쉽구만. 나는 또 ‘이능력자 잉태 코스’로 온 신혼부부인 줄 알았더니.”
“하하하….”
부모 마음이라는 게 참 그렇다.
내 자식이 남들보다 뛰어나기를 바라고, 이 세상은 이제 무식하거나 재능이 없어도 ‘이능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씹어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자네도 알겠지만, 나 같이 대격변 이전에 태어난 사람도 이능력의 시대에 나라에 기여하는 방법이 있지. 바로 이능력을 가진 아이를 낳는 것.”
“혹시 손자 손녀 분 중에 이능력자가 있습니까?”
“얘기, 이 사람아. 내 아들놈이 지금 B급 이능력자여. 나이 마흔에 아이를 낳는 게 노산이라고 해도, 출산은 출산이야.”
“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
그래서 그 아이는 그 수저를 휘게 만들 수 있는가?
초능력 수저 앞에서는 금수저도 고개를 숙여야 했고, 부모들은 자식에게 막대한 돈은 물려줄 수는 없어도 초능력을 각성할 수 있게 해주려고 했다.
“울릉도 토착민들 살펴보면 가족이나 친척 한 명은 이능력자 가족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었지. 울릉도에 들어오는 처녀총각들도 그래. 우리가 1박에 500만원씩 받아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이유가 뭐겠나? 다 내 새끼들 초능력자로 만들어주고 싶어서 오는 거지.”
“‘펌프킨 허니문’.”
“꼬부랑말 쓰지 말어. 아니, 그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먹고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말 써.”
“그게 뭡니까?”
“애국여행.”
“…….”
내 자식은 어떻게든 이능력자로.
그런 풍토 속에서 만들어진 게 이능력자 잉태를 위한 울릉도 신혼여행이었다.
실제로 유의미한 통계적 자료가 나오기도 했고, 실제로 울릉도에서 허니문을 보내고 출산한 아이들이 이능력자로 태어나는 확률이 상당히 높았으니까.
울릉도에서 1년 동안 사는 건 수 억 단위의 돈이 깨지니까 어렵다고 해도, 수정이 이루어지는 하룻밤 만큼은 울릉도의 정기를 받기 위해 올 수 있는 거니까.
2025년에 이른 지금, 울릉도를 찾는 커플들은 대부분 ‘길일’을 택해서 온 커플들이다.
한국인 커플 뿐만 아니라, 외국인 커플들도 전부다 같은 목적이다.
이곳은 임신 명소다.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임신을 위해 오는 곳이다.
“이곳에 남자 혼자 올 이유가 없는데…. 혹시 울릉도 여자를 꼬셔보려고 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관두게. 판검사도 어떻게 넘볼 수 없는 게 울릉도 처녀란 말이야.”
“……하하.”
“뭔가, 그 반응은? 혹시 이능력자야?”
“이능력자는 아닙니다. 그냥,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울릉도의 모습이랑 좀 많이 다른 것 같아서요.”
노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어렸을 때? 허허, 이 친구. 자네 어렸을 때면 한창 울릉도가 제주도 제쳤을 때일텐데?”
“저희 부모님이 젊으셨을 때 울릉도에서 데이트 하셨던 때요. 그 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허허, 이 친구. 대격변 이전의 울릉도를 말하다니.”
노인은 먼 바다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있었다.
그의 뒤로 반짝이는 수많은 네온사인과 어울리지 않게.
“예전에는 다들 여기서 물질하고 배 타고 그랬지. 하지만 여기에 이제 어민은 없어. 나라에서 강제로 다 펜션이니 호텔이니 싹다 바꿔버렸으니까.”
“반발은 없었습니까?”
“반발? 내쫓았으면 바로 난리를 쳤겠지.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네. 허구한 날 햇빛 받아가면서 물질하는 것보다 관광객들 상대로 장사하는 게 백 배 천 배 벌 수 있는데, 누가 그걸 거절하겠나?”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수익이었다.
“자네 부모님의 추억이 담긴 울릉도는 이제 없네. 여기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는 곳이니.”
애국이라는 목적.
출산은, 곧 애국이다.
“그래서 진짜 남자 혼자 온 이유가 그거라고? 아무리 세종섬 교직원이라고 해도 좀 수상한데?”
“하하. 혼자 온 거 맞습니다. 제가 실은…이런 사람이라서요.”
나는 명함을 꺼냈다.
“세종섬 교직원이 무슨 이런 명함을…. 흡…?!”
“어르신.”
나는 노인에게 눈을 찡긋였고, 노인은 바로 명함을 내게 다시 건네며 혀를 내둘렀다.
“신출귀몰하신 양반이로구만…. 허허. 주 씨 아낙네가 연락 넣어서 누군가 싶었더니, 이거 엄청 큰 손님을 모시게 되었어.”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노인.
울릉도 현지인이면서, 동시에 결사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펜션의 관리인이기도 하다.
“기적과 애국의 섬, 울릉도에 온 걸 환영하네.”
노인은 주차장을 향해 차키를 눌렀고, 검은색 중대형 세단이 자신을 불렀냐는 듯 빛을 반짝였다.
위이잉.
차가 스스로 앞으로 튀어나왔고, 노인은 뒷좌석 문을 열었다.
“이렇게까지는.”
“서울 5성 호텔에 가서도 발렛파킹을 해주는데, 1박 500만원 펜션에서 이렇게까지 안 해서야 되겠나?”
“그건 또 그렇군요.”
나는 의자 뒤에 몸을 눕혔다.
“그럼…목적지까지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도 과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어르신.”
“예.”
이 노인은 알고 있을까.
본인의 땅에서 솟아난 온천과 그 주변에 지어진 펜션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곳이라는 걸.
모를 것이다.
그냥 본인은 겉으로는 평범한 펜션 관리인이며, 결사의 협력자 정도로만 알 테니까.
애초에 이 노인이 관리하는 곳의 온천이 그런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도 과장님. 노인네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만.”
“뭡니까?”
“…다음에 같이 데려오실 아가씨는 이사님들 중에 누굽니까? 혹시, 회장님?”
아무리 울릉도가 변했다고 해도.
“혹시 다섯 명 다…?”
“…….”
“아.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른 여자분 데려오셔도 입 꾹 닫고 있겠습니다. 껄껄.”
이 나라의 어른들은 여전했다.
울릉도.
해외에서는 이곳을 기적과 임신의 섬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