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27)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27화(523/668)
“혹시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한 건 아니죠? 당신이 빙의자라는 거.”
“전혀.”
이야기할 이유도 생각도 없다.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알고 있던 사람이 냅다 사람을 덮쳤는데, 그걸 이야기했다가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빙의자라고 누구에게도 밝힐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총수도 내가 밝힌 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냈을 뿐이다.
“안 그래도 도철에게 다른 세계의 애니메이션에 관해 살짝만 이야기했다가, 그거 어떤 창작물이냐고 트집 잡혀서 고생을 했는데 제가 뭐 하러 이야기하겠습니까.”
나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는.
“후후후. 하긴. 백설희라거나 유미르가 알았다면, 저보다 더 심한 짓을 하겠죠? 막 영혼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결계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영영 감금시켜놓고 직접 밥도 떠먹여 주면서 다른 사람들 만나지 못하게 한다거나.”
총수는 괜찮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어떨까.
-이 세상이 소설 속이라고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정의감이, 누군가가 만들어낸 감정이라고? 하하, 그럼 나는 지금까지 뭘 위해서…? 이런 거짓된 세상 따위, 전부 지워버리겠어…!
자신의 정의감에 대한 불신으로 운석을 날린다거나.
-여태까지 다 알고 접근했던 거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그런 걸 다 알고 있던 거야? 나를 기만한 거네? 배신자. 전부, 전부 다 거짓이야…! 아아악…!!
나라는 존재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끼고 빙하기를 일으킨다거나.
-어차피 운석으로 멸망할 세상이라면, 일단 유미르부터 죽이고 보시죠? 남자가 아닌 여자라고 한들, 유미르가 운석 날릴 수 있는 건 맞잖아요. 그러니까 죽이죠. 아, 결코 제가 선생님을 독점하려고 하는 건 아녜요. 지구의…평화를 위해서 그런 거죠.
정해진 운명을 피하려고 발버둥 치려는 정의감이 폭주하게 된다거나.
물론 그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스스로 내가 빙의자라는 걸 밝히지 않기로.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그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런 말은 삼가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도 그런 기질을 보이는데.”
“알아요. 후후후. 그래도, 좋죠?”
총수는 두 팔을 벌리며, 마치 난간 위를 걷듯 위태롭고 장난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정실이 빙의자인 것도 숨겨주고, 돈도 챙겨주고, 막 다른 여자들이랑 불륜하는 것도 허락하게 해주고. 이런 정실 또 없어요?”
“불륜을 허락하는 거, 본인이 감당 못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비겁한 팩트 폭력은 사양입니다.”
“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칫.”
총수가 불평을 해도 변하는 건 없다.
총수가 이 몸을 상대로 버틸 수 없다는 건.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예쁜 미녀를 취하고 임신시킨 건데, 좋지 않아요?”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나 저를 기만한 건 빼고 말씀하십니까?”
“와, 너무한다. 산삼보다 더 귀한-”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한소리를 하려고 했는데, 잘 됐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이야기를 꺼냈으니, 나는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지금 사람들이 자꾸 저를 페도로 몰고 있는데, 언제까지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겁니까? 자칭 17세님.”
“……저는 17세-”
“17세 뒤에 다른 걸 붙여드릴까요, 아니면 앞에 단위를 새로 더 붙여드릴까요?”
“……아내의 치부를 까발리려고 하는 건가요?”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빙의자다.
하지만 내가 빙의자인 건 총수의 실체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사소한 문제다.
“아무리 여자가 어린 게 좋다고 한들, 연령사기도 적당히 치셔야죠.”
“저기, 아무리 여기에 우리끼리만 있다고 해도, 부부 사이에도 직접 하면 안 될 말이 있어요?”
“할 말은 해야죠. 그것 때문에 제가 지금 페도깨비라고, 제가 진짜로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생겨서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어, 으음….”
총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총수님.”
“예.”
“올해로 ‘몇 번 째’ 17세입니까?”
“…….”
총수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미르까지 저를 보고 범죄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외형만 보고 판단하는 게 편견과 선입견인 건 알지만, 그걸로 문제가 생긴다면 해명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몇 번이고 이야기하지만.
“총수님 취향 때문에 제가 미성년자 추행범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총수님의 그 뒤틀린 취향 덕분에, 제가 지금 전자발찌 철컹철컹하게 생겼다는 말입니다.”
페도가 아니다.
나는 오로지 진실 만을 말했다.
믿지 않은 건 이 세상일 뿐.
“어떻게, 젊은 20대 이세계남을 먹어서 좋으셨습니까?”
“그. 일단 둘 다 성인은 성인이고….”
“비율로 따져보시겠습니까?”
“저기, 그, 그건 좀. 아니, 그러니까….”
총수는 내 눈치를 보며, 엄지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당신이 내 처음이었으니까, 그걸로 퉁칠까요…?”
총수와 나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조금 많이 복잡해진다.
복잡하게 생각하자면, 그녀는 내가 빙의자라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언급할 수 없는 것이, 총수가 내게 금제를 걸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 아시죠?”
그녀는 내게 자신의 정체를 생각하지 않도록 금제를 걸었다.
정확히는 ‘연령’에 관해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금제를.
“그렇게 본인의 실제 나이가 밝혀지는 게 부끄러우십니까?”
“아아, 안 들린다. 안 들린다.”
“귀를 뚫어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글로 써서 눈앞에다가 보여드릴까요?”
“사람의 약점을 건드리다니. 당신에게는 양심도 없나요?”
총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향해 삿대질한다.
“당신은 지금 탈모인에게 대머리라고 한다거나, 키가 작은 사람에게 드워프라고 한다거나, 나이 많은 여자에게 아줌마라고 하는 것과 같단 말이에요!”
“저는 총수님을 아줌마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려고 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총수의 검지가 내 미간을 향한다.
“지금 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총수는 어려 보이고 싶기에, 실제 나이보다 더 적어 보이고 싶어서 경량화라는 이름으로 자기 모습을 작게 만들었다. 라고!”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까지라는 건, 그거랑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말 아닌가요?”
“생각은 제 힘의 원동력이고, 인간이 생각 자체를 안 할 수는 없죠. 특히.”
나는 가볍게 바닥을 두드렸다.
“모든 제약이 해방되는 이 공간에서라면, 더더욱.”
이곳은 하늘과 땅의 사이.
오직 나와 총수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
다른 이들은 들어올 수 없다.
왜냐하면 이곳은 지구로부터 유리된 공간으로, 비유를 하자면 0.5차원 위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사고의 인지가 ‘이세계’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이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세계와 세계의 사이.
딱히 정해진 명칭은 없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라고도 할 수 있고, 세계의 틈이라고도 부를 수 있고, 빙의자와 전지전능의 여신이 서로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진실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적어도 ‘하계’의 사람들이 이곳을 관측할 수는 없는 만큼, 이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하계의 이들에게 모두 비밀로 작용된다.
설령.
나라고 해도.
“그러니까 이제 나이 이야기는 금지. 자꾸 당신이 저보고 나이 많다고 이야기를 하면, 나중에 그걸 알게 된 사람들이 저보고 막 이상한 소리 할 거 아녜요.”
“알게 된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저기 외계에서 관측 중인 사람들이라거나, 아니면 이곳의 이야기조차 엿들을 수 있는 존재라거나.”
“그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뭐, 나이 많은 여자가 나오면 으레 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아줌마가 아니라, 할-”
“오케이. 알겠습니다.”
나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나의 관자놀이에 붙였다.
총수는 어리다.
총수는 젊다.
총수가 스스로 17세라고 하는 건, 마음이 17세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총수의 나이는 실제 나이는 20세지만, 다른 여자들에 비해 좀 더 어려 보이고 싶어서 나이 사기를 쳤다.
총수가 무슨 성인이 아니라느니 그런 건 어디까지나 총수가 나를 협박하기 위한 소재일 뿐이며, 나는 거기에 내가 현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중범죄를 저지른 것에 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자가세뇌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려요. 안 그러면 저, 진짜 막 그런 소리 들을 수 있으니까.”
“제 아내가 그런 소리 듣게 할 수는 없죠.”
그건 남편의 도리가 아니다.
“배려, 고마워요. 그 배려심, 제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죠?”
“그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제게 강력한 구속이 되는지 아십니까?”
“어머. 거기에 딱히 최면이나 세뇌는 안 걸었는데요?”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책임감이 제 행동을 결정하는 척도가 되니까요.”
나는 총수에게 다가가, 그녀를 내 품에 안았다.
“당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내게 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도 그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되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돼요. 누가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해요? 그건 남들이 멋대로 정한 사랑을 당신이 오해하는 것뿐이에요.”
“그럼 제가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은 걸로 하죠.”
“칫….”
총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분명 납치랑 감금이랑 구속이랑 착정은 내가 했는데, 왜 내가 조교를 당하는 것 같죠?”
“몰랐습니까?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총수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사랑한다고 말 해놓고 다른 사람한테 눈 돌리거나, 다른 남자에게 반한다거나, 그런 NTR 요소가 하나라도 보이기만 해보세요. 그 순간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걸 모두 망가뜨려 버릴 테니까.”
“그거, 왠지 제가 해야 할 소리 같지 않아요?”
“왜요. 사랑이 조금 무겁습니까?”
“음…. 아뇨.”
총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조금 버거울 수 있지만, 여럿이서 나누면 그래도 같이 들 수는 있겠다 싶어서.”
“오히려 더 불안하지 않으십니까? 그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도 그런 기질을 보인다면-”
“제가 쳐낼 거니까, 안심하세요.”
총수가 까치발을 들며 내 얼굴을 붙잡았다.
“혼자서는 버겁다고 한 거지, 감당 못할 정도라는 건 아니라고요?”
“말은.”
“그리고 또 모르죠. 딸이 태어난다면, 딸바보가 되어서 그 사랑이 조금 정도는 딸에게로 갈지도.”
“어머니가 되어서 딸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건 조금 추하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흥. 모든 아버지는 아내보다 딸을 더 사랑하게 되어있거든요?”
“그건 자기 혈육에 대한 사랑이지, 연인에 대한 사랑이 아니지 않습니까.”
“모르죠. 당신의 용어를 빌리자면, ‘합스’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니.”
나를 알고 있다는 것이, 때때로 이럴 때 조금 불편해진다.
“돌려 말해도 하필이면 그런 말을. 애초에 그런 주제를 안 꺼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