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28)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28화(524/668)
“몰라요. 나중에 딸한테 아빠 빼앗기면, 그때 여기에 와서 막 따질 거예요. 그대로 돌려드리죠. 자기 혈육에 대한 사랑이 연인에 대한 사랑보다 더 커졌다고.”
“…….”
“답변하기 어렵죠? 흐흥.”
“…그렇네요.”
답변이 쉽지 않다.
“딸, 아니 애초에 자식을 가져본 적이 저도 처음이라.”
“후후후, 우리, 서로에게 정말 많은 게 처음이죠?”
총수가 내 어깨 뒤로 손을 뻗는다.
“슬슬 바깥도 정리될 것 같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어느 정도 한 것 같고…. 돌아가죠. 하계로.”
“벌써 돌아가는 겁니까? 좀 더-”
“어차피.”
총수는 내 입술 위로 검지를 올리며, 까치발을 들었다.
“석 달 안에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참아요. 알겠죠?”
“…뭐, 석 달이 아니라 그보다 더 이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총수를 품에 안았다.
“지금은 이걸로, 조금 참도록 하죠. 명심하세요. 당신의 사랑이 다른 이를 향하는 순간….”
“알고 있어요. 당신도 명심해요. 다른 사람들은 도깨비와 도지환을 사랑하겠지만….”
총수가 내게, 따스한 숨결을 토해내며 가까이 다가온다.
“빙의자인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오직 나뿐이라는 걸.”
세계의 틈에서,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그 누구도 올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음….”
“왜 그러세요?”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것 같은데.”
“중요한 거지만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그건 또 그렇군요.”
뭐, 당장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겠지.
괜히 말실수하는 것보다, 생각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처럼, 그냥 생각을 안 하는 게 좋은 때가 많으니까.
“여기, 마력 있어요.”
총수가 내게 금빛의 구슬을 건넸다.
두 손으로 꼭 움켜쥔 구슬은 야구공만큼 커다란 마력의 구체였다.
“이 정도로 많이 주셔도 됩니까?”
“네. 일본에서 괜히 문제 생기면, 이 마력을 쓰도록 해요. 외장노심 두 개 다 지금 간부들에게 넘겨줬잖아요.”
“어차피 다시 마나골드 찾으러 가는 건데, 굳이 이렇게까지 많은 양은.”
일단 총수가 넘겨주는 거니까 받기는 받는데, 양심에 조금 찔린다.
“아메리카에서 얻을 수 있는 마력, 그 쥐꼬리만도 못한 양을 쥐어짜내는 걸 이렇게 저한테 주셔도 되는 겁니까?”
“괜찮아요. 그만큼 당신이 노력해주면 되는 일이니까.”
아메리카의 사람들에게 상당히 미안하게 됐다.
이곳에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마나가 닿고 있는데, 그걸 총수가 모두 이곳 피닉스 시티로 가져와 모으고 있으니.
그리고 그 모은 마력 중 일부를 이렇게 내게 건네주고 있으니, 나로서는 아메리카 사람들을 뭐라고 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 갈 마나를 전부 결사, 그리고 그중 내가 다 빼앗아 쓰고 있는 느낌이니까.
“그럼, 나갈까요?”
총수가 내 손을 잡고 문을 열었다.
다시 우리는 우리가 있던 공간으로 돌아왔고, 우리의 앞에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거실에 앉아있는 세 여인이 있었다.
“아, 총수님.”
“도철, 혼돈. 결과는?”
“…확실히, 강하긴 강하더군요.”
“졌어요. 완전히.”
유미르는 사과를 베어먹으며, 작게 손가락으로 V를 그렸다.
“음, 그러면 유미르 씨에게 포상을 줘야 할 것 같은데. 무슨 포상이 좋을까….”
“둘이 방금 하고 온 거면 안 돼요?”
유미르가 두 손을 모으며 눈을 반짝인다.
“두 분, 찐하게 한 번하고 오신 거 같은데.”
“…….”
“어, 아닌가요?”
“미르야. 너는 내가 오랜만에 총수님이랑 만났다고 해서, 그렇게 막 마구 애국하고 그럴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부부 사이인데.”
“음….”
총수가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빛에는 다소 부끄러워하는, 나를 향해 ‘이해’를 바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
“우리, 그냥 안에서….”
어쩔 수 없지.
“부부끼리, 진하게 께임 한번 하고 나왔어.”
하여튼.
도철 천주연과 혼돈 성지은은 부활했다.
아직 산적한 문제가 많지만, 피닉스 시티에 잠깐 들러서 마나보급을 받고 떠나려던 것치고는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이 일은 제가 직접 궁기랑 도올에게 전하도록 하죠. 도철과 혼돈은 여기에서 대기. 일본으로 돌아가는 건 도깨비랑 백금태양, 둘뿐입니다.”
총수는 순식간에 상황을 교통정리를 하고 지시를 내렸다.
“예? 총수님, 지은 언니는 몰라도, 저는 일단 일본에서….”
“가고 싶다고 한다면, 분신체에서 나와서 영체 상태로 가도록 해요.”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확인해봐야죠. 가장 안전한 곳에서.”
총수는 유미르와 서쪽을 번갈아 가리켰다.
“분신체를 만들어낸 주인이 지구 반대편으로 갔을 때, 과연 따로 마나 패스를 연결하지 않아도 분신체는 유지될 것인가.”
“아.”
“혹시나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제가 바로 수습해야 하니까, 둘은 여기에 있도록 해요.”
총수는 두 간부가 나를 따라오는 것을 꺼리고 있다.
“선생님, 저는 괜찮은데, 둘이 같이….”
“유미르.”
나는 유미르의 어깨를 손으로 누르며 그녀의 다정함-혹은 오지랖-을 억제했다.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야.”
“음….”
유미르는 나를 향해 ‘그게 뭐죠’라고 의문을 던지고 있지만, 적어도 그 대답은 저 둘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같이 애국하면 좋을 텐데, 아쉽네요.”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죠. 유미르 씨, 감사했습니다.”
이능력자로서 인정한 건지, 아니면 순수하게 자신을 인간(97%)으로 살려준 것에 대한 감사인지, 성지은은 첫 만남 때와 달리 유미르를 향해 예의를 갖췄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이번처럼 지지 않을 겁니다.”
“아, 아하하….”
“무조건.”
딱히 성지은이 무인 기질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1:2로 싸웠는데 패배한 이상, 금이 간 자존심이 딱히 사라지거나 하는 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다음번에는 더 화려한 물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그건 천주연도 마찬가지.
“오사카에서 봤던 물난리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도록 해줄게. 기대해.”
“…저도 두 분이 만족하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겠습니다.”
“뭐야. 만족할 때까지 싸워주겠다는 거야?”
“…칫.”
“아, 그, 그게 아니라!”
유미르는 손을 흔들며 울상을 지었고, 나는 유미르의 목에 팔을 감고 그녀를 당겼다.
“우리는 이만 일본으로 떠나도록 하지. 혹시 일본이든 한국이든 어디든 만날 기회가 있으면 연락해. 바로 마중 나갈 테니까. 그럼 총수님, 다음에 또.”
“다음에 봐요. 후후후.”
나는 유미르를 데리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올라가는 통로였고, 나는 앞을 가리켰다.
“유미르, 아까 우리 들어왔던 곳으로 통하는 차원문 열어줄래?”
“그거야 쉽죠.”
위이잉.
차원문이 열렸다.
유미르와 함께 건너간 차원문은 로키산맥의 안쪽에 펼쳐진 황야로, 피닉스 시티로 들어오는 지하의 입구였다.
파ㅡ앗.
우리가 둘 다 빠져나오기 무섭게 차원문이 닫혔다.
“어?!”
곧 유미르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이, 이거…?!”
“아까 거기로 들어가는 차원문 한번 열어볼래?”
“……어어??”
유미르가 혼란에 빠졌다.
그 모습은 천재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난관에 봉착한 것과도 같았다.
심지어 그 난관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마주친 난제.
“이, 이게 왜 안 되지…?”
자신의 이능력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놓였을 때, 이능력자는 그 어떤 상황보다 심하게 당황하게 된다.
“이, 이상하다? 분명 좌표는 맞는데?”
“한번 연구해봐. 왜 차원문이 피닉스 시티, 그 안에서도 총수님으로 향하는 곳으로는 열리지 않는 건지.”
“……??”
유미르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계속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지만, 차원문은 미동도 없었다.
“이거 설마 이능봉인…? 혹시, 아닌데? 다른 곳으로 통하는 차원문은 잘 열리는데…? 선생님, 저….”
“힌트는 없다.”
“아…. 음, 알았어요. 이건 선생님이 제게 주신 숙제라고 생각하고, 한번 연구해보도록 할게요.”
유미르의 눈에 의지가 활활 타오른다.
자신이 그래도 이능력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렇게 ‘개발하지 못한 경우’의 이능력에 관해서는 총수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자각했으니까.
정답을 말하자면.
로키산맥 아래에는 피닉스 시티가 없다.
여기에 핵폭탄을 쏴도 그냥 로키산맥만 무너질 뿐, 지하에 있는 피닉스 시티는 무너지지 않는다.
“분명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갔는데…. 으음…. 좌표가 틀린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착각 하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고 해서, 그게 지하로 내려간 게 아니라는 것.
들어오는 순간부터 ‘공간이동’을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다른 걸 생각하게 되겠지.
나는 그냥 그 답을 찾아낼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그럼 선생님. 다른 거 답해주세요. 언니들을 왜 데려가면 안 된다는 거죠? 아, 혹시 이것도 제가 스스로?”
“그건 답할 수 있다. 일단, 저거 타고 난 다음에 이야기할까?”
구구구.
하늘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바람을 일으키며, 천천히 내려오는 그것은 분명 여객기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상당히 큰.
“저거 설마…!”
“결사의 전용기다.”
그 여객기의 꼬리에는 페이그린의 마크가 찍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