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31)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31화(527/668)
망각.
“이 모든 계획은 해그늘을 엿 먹이는 데 있어. 해그늘 전략팀이 아무리 전략을 세우고 정보를 찾고 조사하려고 해도, 그 어떤 계획도 전부 물거품이 되겠지.”
“그러니까, 그냥 열받게 하려고 상황을 꼬고 또 꼬는 것이다?”
“정답이야.”
“세상 사람들이 겪게 될 혼란은요?”
“그 혼란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삼류고, 그 혼란을 분석하고 풀어내는 건 이류고, 그 혼란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 일류지.”
어려울 거 하나 없다.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이거 하나만 생각해. 아메리카의 히어로 도블린은 도깨비일지도 모른다. 떡밥은 세상 사람들이 알아서 굴릴 거고,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지.”
“할 일이 뭔데요?”
“애국.”
유미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본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행위라고 하면서 저를 속이시려는 거죠? 안 속아요.”
“내가 방금 말한 애국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하나는 한국을 위해 일본에 가서 물건을 찾는 것.”
우리가 일본으로 가는 목적에도 포함되는 일 하나.
“다른 하나는.”
나는 셔츠의 단추를 풀며 유미르에게 다가갔다.
“네가 생각하는 그 애국이 맞지.”
“어, 으음, 확실하게 되기 전까지는 믿지 않-”
나는 유미르를 소파에 그대로 눕히며,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러다 탈모 와. 다른 거 다 생각하지 말고.”
나는 유미르와 이마를 맞대며, 시선을 마주했다.
“오빠만 생각해. 알겠지?”
“…….”
“머리 아프게 생각하면 지는 거야. 혹시 머리 아프고 복잡해? 그럼.”
유미르는 입맛을 다시며, 나를 기대감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른 거 생각 안 나게, 아주 그냥 머리가 하얗게 만들어줄게.”
“안 믿, 우읍…!!”
오사카 국제공항.
전용기 하나가 공항의 활주로로 들어온다.
깃발을 흔들며 기장을 향해 수신호를 보내던 기무라 우나기는 덜컹거리는 비행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기류인가?”
바람은 세지 않으나, 비행기는 유독 크게 들썩거렸다.
페이그린 사의 전용기에 도대체 누가 타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저 정도면 혹시 비행기가 떨어지는 게 아닐까.
“…에이, 설마.”
기무라 우나기는 괜한 생각을 했다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고, 곧 비행기는 아주 천천히 착지하여 정해진 위치에 멈추어 섰다.
비행기의 문이 열렸다.
“어어?!”
아직 계단이 닿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비행기 끝에 서 있었다.
흑발의 남자와 금발의 여자였고, 흑발의 남자는 팔짱을 낀 여자를 붙잡고 가볍게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이런 미-”
사락.
너무나도 가볍게 뛰어내려, 괜히 소리를 지른 기무라는 스스로가 무안해질 지경이었다.
저벅, 저벅.
남자는 상쾌한 걸음으로 여인을 데리고 떠났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여인이 무슨 기절하기 직전처럼 남자에게 이끌려 간신히 걷고 있었다는 것.
다리를 저는 듯 움직이는 여인의 얼굴을 본 순간, 기무라는 완전히 녹초가 된 여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능력자한테 잘못 걸렸네. 쯧쯧.”
이능력자와 일반인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기무라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금발의 여인에게 그저 애도를 표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깨비가 누구인가.
도깨비의 이능력은 무엇인가.
도깨비는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가.
도깨비가 만일 살아있다면,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TV에서 열심히 패널들이 침을 튀겨가며 떠든다거나, 위키에서 사람들이 서로 열심히 경쟁하듯 편집하고 토론하는 건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유미르?”
“생각하지 않는 게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미르는 담담히 페트병에 든 이온 음료를 마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깨비 닮은 사람이 나타난다거나, 도깨비 정체라거나, 수상할 정도로 도깨비의 이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을 어느 나라의 히어로라고 한다거나, 그런 건 전ㅡ혀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 좋은 생각이야.”
복잡한 건 생각하지 않는 게 상책.
이성과 논리로 접근할수록 더욱더 머리가 아파지고, 남는 건 바닥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구멍이 뻥 뚫린 정수리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사람들만큼 현명한 사람들이 또 없지.”
나는 거리에 가득한, 검은색 옷을 입은 채 하얀 꽃을 들고 걸어가는 이들을 가리켰다.
“그냥 감사하고, 고맙고, 안타깝다는 생각만 하면 되니까.”
“추모….”
기나긴 추모 행렬이 도로에 길게 이어지고 있다.
본래라면 행사든 뭐든 축제를 즐기기 위한 인파로 가득했어야 할 거리에는 엄숙한 애도의 물결만이 가득할 뿐이다.
“유미르. 캐나다에서 일본까지 오는 데 며칠이나 걸렸지?”
“나흘이요.”
“그 나흘 동안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도깨비는 어떻게 된 걸까?”
“최소한 결사에서 도깨비를 확보했다면, ‘도깨비는 살아있다’라고 공표했겠죠?”
“그래.”
결사는 묵묵부답이다.
도깨비의 생존에 대해 ‘확인 중’이라는 공식 입장만 밝힌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조금 성급하기는 하지만, 다들 도깨비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당연하지. 후지산이 대폭발하는 것보다 더 큰 폭발이 일어났는데, 거기에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니까.”
도깨비가 살았을 거라는 건 과한 기대다.
마음 한구석에 ‘혹시나’하는 마음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가, 죽은 건가’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이대로 살아 돌아오면 그것도 되게 무안하겠다. 그렇지?”
“그래도 나흘인데 이렇게 장례식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조금.”
“그렇게 해야지. 일본으로서는.”
추모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고자 하는 거지만,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일본 정부와 그 무리다.
“도깨비를 영웅으로 만들고 빨리 이슈를 환기해야 하거든.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고 치워버리자는 거지.”
“…도깨비 이슈가 계속된다면, 도깨비가 왜 죽었는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테니까요.”
“그래. 그런데 있잖아. 이건 비밀인데.”
나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유미르의 귀에 속삭였다.
“이렇게 추모하는 것도 결국 자기들 치부 까발리는 일인데, 왜 이런 대규모 추모를 벌인 걸까?”
“…더 큰 치부를 숨기려고?”
“정답이야.”
청혜성의 폭주는 끝났고, 청혜성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도깨비 덕분에.
“새삼스럽지만, 도깨비가 죽은 지 나흘이라는 건 말이지, 오사카에서 TS 악마에 의해 TS 당한 남자들도 그렇게 된 지 나흘이라는 이야기지.”
“앗….”
“그리고 그들 중에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 이들도 있을 거야. 아마도.”
“……헉.”
유미르는 창백해진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혹시, 사람들 앞에 나오거나 그러진….”
“못 나오겠지. 중년 대머리 아저씨가 하루아침에 시부야 거리에서 볼 법한 갸루 미소녀 여고생이 되었는데, 어떻게 함부로 밖에 나올 수 있겠어.”
본인 스스로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할 것이다.
“아마 지금쯤 해결 방법을 찾고 싶겠지.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TS 악마가 바라는 대로, 여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는데.”
“그거, 혹시 정보가 들어온 거예요?”
“응. 비행기에서 오는 동안, 결사의 정보원들이 자료를 확보했지.”
나는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게 사진을 하나 유미르에게 보여줬다.
“풉…!”
사진 속, 남자의 정장을 입은 여고생이 의원들을 향해 절박한 얼굴로 뭔가를 외치고 있다.
“뭐라고 하는 거예요?”
“도깨비는 살아있다. 반드시 도깨비를 찾아야 한다. 설령 도깨비가 죽어서 찾지 못한다면, 도깨비의 유해라도 찾아야 한다.”
“……갑자기 되게 인상 찌푸려지는 상황인 것 같은데.”
“맞아. 다시 남자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런 거지.”
TS의 악마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크흐흐, 얌전히 여자가 된 기쁨을 누리면 좋을 것을’이라면서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은 죽었다.
남동생을 여동생으로 만든 것에 분노한 누나에 의해, 그 어떤 남자도 더 이상 여자로 만들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유미르. 도깨비는 죽었잖아.”
“네.”
“그럼 지금부터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그걸 도깨비의 짓이라고 생각할까?”
“……선생님?”
그러나 그의 기술은 내게 이어졌다.
“의지는 이어지는 거야.”
“아니, 저기요?”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해?”
“……어, 음, 이유도 없이 갑자기 그러는 건 명백한 빌런 행위가-”
유미르는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빌런이시죠. 참.”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어떤 이유죠?”
“가령, 천주연을 죽이는데 일조한 정치인들이라거나.”
“…….”
유미르의 눈이 살짝 가늘어진다.
“이러려고 일부러 도깨비를 죽이신 거예요?”
“딱히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추모해주는데 얼굴을 드러낼 수는 없잖아.”
“하지만 살인 멸구가 아니라면 정체가 들킬 텐데. 아무리 주연 언니한테 나쁜 짓을 했다고 해도….”
“죽이는 건 좀 그렇다?”
“음, 그런 것도 있기는 한데, 선생님이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죽이는 것보다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도깨비의 방식은 아니긴 하지.”
도깨비는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깔끔하게 죽이는 걸 선호한다.
“그런데 도깨비가 죽었네.”
도깨비가 아니라면,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도 괜찮다는 것.
“영 좋지 않은 일이 시작되는 거지.”
“음…. 뭔가 그런 식으로 꾸러기 표정을 짓는 거, 되게 신선하네요. 일본이라서 그런가?”
“마구 저질러도 내 책임이 아닌 게 되잖아. 그리고 안 죽이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해그늘만큼, 아니 해그늘보다 못한 놈들만 골라서 저지를 예정인데.”
“……뭐, 그만큼 나쁜 사람들이라는 거니까, 여기 사람들 앞에서는 물어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으니, 일단 당장은 그러려니 하고 있을게요.”
이제 활력이 좀 되돌아온 걸까.
비행기 안에서 땀을 엄청 많이 흘려서 계속 이온 음료를 챙겨 마시던 유미르의 컨디션이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저희, 바로 움직이는 건가요?”
“응. 그리고 그 전에, 만날 사람이 있어.”
“여자요?”
“아니. 놀랍게도 남자.”
나는 결사워치를 두드려 그에게 문자를 보낸 다음, 유미르의 손을 잡고 인파 속에서 장사하는 이를 가리켰다.
“일단 저거 쓰고 갈까?”
“…와. 저걸로 장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