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35)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35화(531/668)
“어서 올라가세. 그나마 해그늘 회장 부인이 옆에 있어서 사람 물릴 수 있었지, 지금처럼 그냥 잘생긴 경호원 같은 청년이 옆에 있으면-”
“미스터 페이그린ㅡㅡ!”
“…Fuck.”
본토의 찰진 발음을 짧게 내뱉으며, 데스몬드는 사람 좋은 얼굴로 활짝 웃었다.
“이런. 미스터…후지무라.”
“미스터라고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페이그린 회장님.”
“…….”
나는 데스몬드를 부른 존재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었다.
여자다.
흑발의 미녀다.
AI 그림을 찍어내면 디폴트로 나올 것 같은 여자다.
“그쪽은….”
“제 경호원입니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 그건.”
“이능력자입니다.”
파앗.
나는 빠르게 영체화를 한 뒤, 바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오, 오오…! 투명인간의 이능력?! 굉장하군요. 역시 미스터 페이그린. 투명화 이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를 경호원으로 두다니. 부럽습니다. 그….”
후지무라라는 여성은, 입맛을 다시며 데스몬드에게 뭔가를 강렬히 바라는 시선을 보냈다.
“혹시, 여자를 남자로 되돌려주는 이능력자를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
이 여자, 오사카 코믹 마켓 1일차까지만 하더라도 ‘남자’였던 존재.
[선생님. 검색 끝났어요. 오사카 구의원 중 한 명인데, 중년 대머리 아저씨예요.]‘중년 대머리 아저씨가 슬랜더 미소녀가 되었다면, 그건 축복일까.’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의원’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의미가 다르겠지.
“하하. 거기까지는…. 그래서 저를 찾아오신 건?”
“아, 그게.”
후지무라(女)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스터 페이그린이 경매에서 사들인 그 ‘반가사유상’에 관하여, 사기 매물이라는 제보가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
“그게, 미스터 페이그린은 그게 한국 문화재라고 사들이셨잖습니까? 그게.”
“사실은 그게 저희 일본에서 온 문화재인지라.”
문제.
다음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물건을 고르시오.
보기 1. 환의 의지가 일본 본토, 오사카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물건.
보기 2. 환의 의지 덕분에 금속이든 무엇이든 마나가 깃들 수 있는 물건.
보기 3. 비록 청혜성과 엮여서 ‘온 김에 일본을 공격한다’라고 난리가 났지만, 한국의 것이 해외로 유출되는 걸 막으려고 난리를 치는 활빈당의 단원이 무려 S급 둘이 오게 만든 물건.
보기 4. 데스몬드 페이그린이라는 미국인이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
그리고 마지막, 보기 5.
마나골드인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일본의 정치인이 자신이 여자가 되었음에도 데스몬드를 찾아와 내놓으라고 반쯤 협박하는 물건.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정답이 내 눈앞, 데스몬드의 스위트룸 응접실의 탁자에 놓여있다.
“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비롯한 유물들 말입니다.”
테이블 위에는 온갖 귀금속이 놓여있다.
하나의 커다란 조각상을 제외하면, 낡디낡은 귀금속뿐.
전부 유물이다.
문화재이며, 박물관에서 볼 법한 장신구들이다.
“미스터 페이그린. 당신께서는 이 물건들을 전부 한국의 것으로 알고 사셨습니다. 맞지요?”
“물론입니다. 미스터 후지무라.”
데스몬드는 노골적으로 후지무라 의원에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제가 한 개에 무려 수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유물이죠. 일본에서 ‘보관’ 중이라고 하던 한국의 전통 유물.”
“하하. 그렇습니다. 판매자는 그렇게 사기를 쳤죠.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죄송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숙이지만, 데스몬드도 나도 영체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유미르도 다 알고 있다.
저건 가식이라는 걸.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끌어내기 위한 가식이라는 걸.
“정말,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심지어는 소위 ‘도게자’까지 하더라도,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한 저자세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미스터 페이그린에게 장물을 판 자는 지금 추적 중입니다. 원래라면 금방 잡아들였겠지만, 아시다시피 워낙 큰일도 있었고…하하하….”
“흐음.”
오사카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히어로 인력의 공백은 당연한 일이지만, 과연 이 경우에 한정하면 잡지 못한 걸까, 아니면 안 잡은 걸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이걸 전부 일본 정부에 위탁한 다음, 그 실체를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달라?”
“아이고, 그런 건 아닙니다. 실체를 확인할 것도 없이, 저희는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실관계?”
“이 유물들이 백제의 것이 아니라, 우리 일본의 것이라는 걸.”
후지무라 의원의 눈이 가늘어진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죄송하다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명백히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와 같다.
‘겉모습이 여자애라고 속까지 여자애는 아니지.’
아무리 암타의 악마가 그 더러운 손으로 한 번 건드렸다고 해도, 정치인으로 살아온 역사와 경험까지 쉽게 바꿀 수는 없다.
‘오히려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을 통해 남성성을 사수하고 있는 인간이야.’
중년에 대머리에 배 나온 인간이라고 해도 남자였던 정치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여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본능을 정신력으로 억누르고 있다.
“저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습니다. 이 물건을 판 자가 ‘한국 프리미엄’으로 덤터기를 씌우려고 한 건 같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진실은 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문화재가 한국의 문화재로 알려지는 건 싫다?”
“예. 다른 건 없고, 그저 확인만 하면 됩니다. 전문가들을 불러, 이것이 일본의 문화재라는 것만 확인하면요.”
“흐음….”
데스몬드는 다리를 꼬며 생각에 잠겼다.
그건 딱히 상념에 잠긴 게 아니라, 내게 판단을 유보하고자 하는 무언의 제스쳐였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니나 다를까, 데스몬드는 내게로 눈을 돌렸다.
“내가 언제까지 회사로 돌아가야 하지?”
“출국을 미루려면 미룰 수는 있지만, 원격으로 업무를 처리하시기에는 쌓여있는 문제가 조금 많습니다.”
“내가 직접 가야 한다는 건가?”
“예.”
나와 데스몬드가 동시에 의원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아무리 의원이라고 해도, 외국 대기업 회장의 행보를 막을 법적 근거는 없으니까.
하물며 그게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면, 명백한 민폐다.
“하하, 그렇다면 저희에게 맡기시지요.”
그러나 의원은 물러나지 않았다.
“저희에게 맡겨주신다면, 확실한 증명을 거친 후에 미국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면 후에 일본으로 오실 때 직접 보시겠습니까?”
“흐음….”
일리는 있다.
문화재를 조사하는데 굳이 데스몬드가 남을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질척거리며 이걸 확인하고자 하는 이유도 없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이걸 조사하려고 하는 건가?”
“…크흠.”
“내가 뭐 알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나? 그게 아니라면, 나는 이걸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의원을 대하는 태도도 날 선 태도를 보이며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좋네. 정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내 개인 컬렉션에 넣고 외부 공개를 하지 않도록 하지. 전문가들은 나중에 내가 미국으로 초청을 할 테니, 미국 여행한다 생각하고 오면 내 크게 환영하겠네.”
“아, 아니. 회장님.”
“뭘? 내가 억 소리 나는 돈을 주고 산 물건을 그냥 일본에 두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일본을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일본 상황이 뒤숭숭하니 불안해져서 말이야.”
“크, 크흠…!”
상황이 역전되었다.
결국 저 유물을 강제로 압류할 명분이 없으므로 협상은 데스몬드가 유리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애초에 협상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이건 저 후지무라 의원의 억지니까.
‘이해는 해.’
저들도 촉이라는 게 있다.
단순히 유물이라고 생각했다면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후우. 알겠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후지무라 의원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미스터 페이그린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 지금, 협박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저희가 아니라, 빌런에 의해 위협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대외비로….”
의원은 나를 향해 눈을 흘겼으나, 데스몬드는 그 시선을 손으로 차단하며 손을 휘저었다.
“괜찮소. 내가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자이니.”
“…알겠습니다. 크흠. 그럼…. 이 유물, 지금 빌런 조직이 노리고 있습니다.”
“빌런?”
“예. 이게 참 빌런 조직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말을 하기 애매하지만, 이 모든 건 진실입니다. 사실.”
의원은 잠시 말을 머뭇거리더니.
“이 유물들을 ‘이매망량’에서 노리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
이매망량?
“그런 조직, 내가 알기로는….”
“예. 결사입니다.”
의원의 입에서, 진실이 튀어나왔다.
“비록 도깨비는 사라졌지만, 도깨비가 오사카에 있었던 건 이 유물들을 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 도깨비가 이걸 노리고 있다니.”
“활빈당입니다.”
“…….”
“활빈당의 당수, ‘흑길동’이 정보를 전했습니다. 비록 빌런으로부터 온 정보이기는 하지만, 신뢰할만한 채널로부터 온 정보입니다.”
“흑길동….”
데스몬드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내가 알기로는 그자의 이명, 공식적으로는 ‘암길동’인 걸로 알고 있는데?”
“공식 명칭과 널리 쓰이는 이명의 사소한 차이일 뿐입니다.”
“활빈당에서….”
데스몬드는 눈을 감았다.
뭔가 내게 알려달라는 듯, 팔을 소파 뒤로 넘기며 손가락을 두드렸다.
유미르 또한 나를 바라보며 어떤 상황인지 눈으로 묻고 있다.
그리고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자폭이네.’
가질 수 없다면 엿을 먹여버리겠어.
활빈당에서 이 유물을 손에 넣기 위해 두 명을 보냈다가, 한 놈은 악마가 되고 한 명은 행방불명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도깨비가 나타났으니, 분명 결사에서 움직였다고 과잉 해석을 했겠지.
유감인 건 그게 사실이라는 것.
활빈당의 단원인 십선비가 연락이 두절되었다.
비비라는 놈은 암타의 악마가 된 미친놈이니 일단 논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