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4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40화(536/668)
“그럼 그 설정을 안고, 조용히 혼자 사라져라.”
“단호하시네요. 같이 그렇고 그런 것도 한 사이인데.”
“이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빌런이라면 얘기는 다르지. 그리고 빌런은 처형한다.”
“저를 죽이실 건가요?”
“물론.”
나는 여전히 가만히 서 있는 유미르를 향해, 방망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기억하마. 세상 모두가 너를 빌런으로 기억해도, 나만은 네가 히어로로 살고자 했던 때를 기억하마.”
“…제가 왜 인류를 멸망시키고 싶은지 아시나요?”
저벅, 저벅.
“이 세계가 사실은 소설이고, 그 소설 속 주인공이 저라는 걸 알아서?”
유미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온다.
“세계는 엉성하게 짜인 무대고, 제가 지금까지 봐온 모든 사람이 전부 그런 고통을 받기 위해 살아온 운명이라는 걸 알아서? 거기에서 모두를 해방하기 위해서?”
느긋하면서도 무방비한 발걸음.
뒷짐까지 지며 나를 향해 다가오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방망이를 휘두를 수 없었다.
“그것도 아니면, 진심으로 인류는 답이 없다고 생각해서?”
“…난가?”
그녀의 눈은, 명백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요. 당신 때문이에요.”
자신이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이유로, 나라는 존재를 지목했다.
“당신 때문에 저는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빙의자라서?”
“아니요.”
유미르는 숨결이 닿을 정도까지 다가와, 내 명치에 손가락을 올렸다.
“당신이, 하렘충이라서 그래요.”
“…뭐?”
뭐라고?
“당신이 한 사람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여러 여자 밝히는 쓰레기라서 그래요.”
“아니, 잠깐만.”
“왜요?”
유미르는 여전히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뭐가 잘못되었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면서, 만나는 여자마다 전부 아이 낳고 그러는데, 이런 엔딩이 날 거라고 설마 예상하지 못한 건가요?”
“미친 건가?”
“네. 미쳤어요. 너무 사랑해서 미쳐버린 거죠. 그런 이야기 보셨을 텐데? 막….”
유미르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너무나 사랑해서, 당신과 나 말고는 이 세상에 아무도 남기지 않기로 했답니다.”
“…….”
“당신은 더 이상 도지환도 도깨비도 아니에요. 나도 유미르가 아니에요. 나는 이브. 당신은 아담. 이제…우리 둘이서 신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거예요.”
“미쳤군.”
제대로 미쳤다.
“어떤 논리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이런 과정에 이르게 된 거지?”
“그야 당연히….”
“야.”
나는 유미르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너만큼 나랑 관계를 많이 맺은 여자가 없는데, 그런 이유로 지금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한다고?”
“…….”
“솔직히 말해서, 차라리 너 말고 백설희가 내 앞에 나타나서 운석이 아니라 초거대 빙하 떨어뜨리면 그건 차라리 인정해.”
백설희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런데 너는 그것도 아니잖아.”
“…….”
“애초에 그런 이유로 지구를 멸망시키고 세상의 아담과 이브가 되자고 한다면, 내가 순순히 그걸 따를 것 같아?”
나는 위로 들어 올린 방망이를.
“엿이나 먹으라지.”
나 자신을 향해 내리쳤다.
“내가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원흉이 된다면, 나 자신을 죽이겠다.”
“흐으음….”
“그리고 한 가지, 네가 명심할 게 있어.”
설령 유미르가 폭주하더라도, 세상에 운석이 떨어지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 하나 있다.
“유미르는 너처럼 나한테 그렇게 집착하는 여자가 아니야.”
“뭐라고요?”
“유미르는 나를 독점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는 서서히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하늘을 가리켰다.
“나랑 애국하는 걸 독점하고 싶은 거다.”
“…….”
“사라져라. 내 머릿속의 망령.”
그 이름은, 원작의 그림자.
“원작이 죽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나타나서 운석으로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하다니. 어리석군.”
“뭐라고요?”
“운석 소환해서 지구 폭발시킬 필요 없이, 그냥 지구 내핵에다가 마나 포격만 날리면 지구 터지는데 뭐 하러 운석을 소환해서 터뜨린다고. 그리고.”
운석 엔딩이라고 하는, 작가가 독자에게 남긴 ‘트라우마’.
“유미르는 그런 말 안 해.”
“…아, 형광등 누가 켰어.”
개꿈이었다.
“해그늘 죽인다.”
“맞는 말이지만 갑자기 아침부터 무슨 소리야?”
“해그늘이 나한테 개꿈을 줬어.”
홈 IOT 서비스.
인공지능으로 집 내부의 전자기기를 관리하는 서비스로, 백설희의 집에도 ‘해그늘홈케어’라는 사물인터넷 서비스가 적용되고 있다.
그게 에러를 일으켰다.
그 바람에 천장에 있던 형광등이 켜졌고, 나는 잠을 잘 자다가 개꿈을 꾸고 말았다.
유미르가 나 빼고 모두를 죽이려는 세계 멸망의 꿈.
인류 종말의 꿈은 개꿈이라고 하지만, 그 꿈 속에서 내게 운석 지구 멸망의 직전 상황을 보여준 ‘그녀’는 촌철살인으로 나를 공격했다.
다른 말로는 팩트 폭격.
혹은 나의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트라우마.
행여나 유미르라는 존재가 실제로 그런 걸 생각하기라도 하면 어쩌지하는 트라우마가 악몽으로 나타나고 말았다.
“유미르.”
“네, 선생님.”
“너, 혹시 나를 독점하겠다고 나만 남기고 이 세상의 모든 여자를 죽이겠다거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니?”
“…….”
유미르는 컵을 든 채로 그대로 굳었다.
순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눈만 깜빡이더니, 점차 그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뭐. 왜. 왜 거기서 나를 봐?”
“아, 아뇨. 그냥….”
“너 왜 눈을 나한테 돌려?”
다소 딱딱한 목소리로, 백설희가 차갑게 유미르를 쏘아붙였다.
“나 죽이고 얘 가지려고?”
“아뇨. 그게 아니라….”
“그럼?”
“…음, 왠지 그럴 사람이라고 하면 언니가 제일, 아얏!”
백설희가 바로 마력을 일으켜 유미르의 정수리에 얼음 방망이를 때렸다.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얼음 방망이는 유미르의 머리를 콩콩콩 두드렸고, 유미르는 그걸 손으로 붙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히잉, 아까 머리 말렸는데….”
“사람을 무슨 얀데레 집착녀로 만든 벌이야.”
“그런 벌이라면 제가 아니라, 선생님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어본 쟤도 잘못이지만, 거기에서 나를 바라본 네 잘못이지. 뭐야, 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설마.”
지금은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각을 했었을 뿐.
“네가 나를 독점하려고 했다면 다른 여자들 다 죽이는 게 아니라, 남들 찾지 못하는 곳에 나를 숨긴 채 둘이서 조용히 살아가려고 하겠지.”
“…잘 아네.”
백설희라는 여자는 그렇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본 거야?”
“꿈에서 그런 내용이 나왔거든.”
“정말?”
“어. 유미르가 나를 상대로 운석 들고 협박하더라고.”
“네?”
유미르의 눈이 순식간에 커진다.
“제, 제가요?”
“응. 도시 위에 반짝이는 백금태양을 띄워놓고, 나랑 같이 신세계의 아담과 이브가 되자면서 모두를 죽이려고 했어.”
“…….”
유미르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아무리 타인의 꿈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꿈에서 나타난 자신이 그런 행동을 저지르려고 했다는 것이 불쾌하긴 불쾌하겠지.
“굳이…?”
“뭐라고?”
“운석으로 도시를 협박할 게 아니라, 지구를 가지고 협박해야 더 효과적인 거 아녜요?”
“…….”
“왜요?”
“아니. 내가 사람 파악은 정말 잘한다 싶어서.”
보아라.
원작 주인공이여.
남자였다가 여자가 된 TS 회귀 사기꾼인 너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된 적이 한 번도 없는 우리 진짜 유미르는 운석 같은 장난질은 치지 않는다.
“유미르. 너 만약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어떤 방법을 쓸 것 같아?”
“음….”
“뭐든지 좋아. 네가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말해봐.”
“단번에 멸망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 같고, 천천히 멸망으로 몰아가는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
나나 백설희의 눈치를 보고 있어서 막연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렇지, 유미르의 머릿속에는 분명 구체적인 방법이 착착 정리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가 지구를 멸망시킬 일이 없으니까 그다지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렇지?”
“꿈은 꿈일 뿐이에요. 악몽을 꾸신 것뿐이에요. 만일 제가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면, 그때는 모두가 인정할만한 상황이어야만 그런 거겠죠.”
“또 나를 보네. 나는 뭐 내 개인적인 목적으로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한다는 거야?”
백설희가 왼손을 위로 들었다.
그녀의 왼손에는 금색의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고, 그 반지에서 하얀빛이 서서히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너, 나랑 한 번 또 붙어볼래?”
“아, 아뇨. 진정하세요, 언니. 제가 설마 언니가 개인 목적으로 지구를 멸망시킬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겠어요? 언니도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말을 한 거죠.”
“변명은.”
백설희의 반지에서 뿜어져 나오던 하얀 기운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걸려있다는 특징을 빼면,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금반지라는 걸 빼면, 저 금반지에는 단 하나의 특징만 남는다.
마나골드.
골든 메카 티라노 광익공을 만들고 남은 마나골드를 나누어 S급 히어로들에게 분배된 것으로, 백설희는 반지의 형태로 마나골드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