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61화(663/668)
나는 그대로 뒤로 뛰어내렸다.
“…선생님. 퇴근할 때마다 제 차원문 쓰는 거,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에요?”
[사람들한테 들키기 전까지.]잠시 뒤, 강화도 인근. 히어로 협회 임시 상황실 인근 공중화장실.
“…….”
히어로 협회의 협회장, 정기조는 깨끗한 변기의 뚜껑을 덮은 채, 그 위에 앉아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정보의 교차.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상황과 정보를 조합하며,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며 그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프로파일링.
이능력은 아니다.
이능력 중에도 비슷한 이능력이 있지만,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는 것’ 정도는 일반인 중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마력은 없지만, 사고력이 이능력자만큼이나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런가.”
정기조 협회장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게 답이군.”
협회장은 손을 들어 허공에 글씨를 썼다.
결사의 장난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함부로 말했다가 괜히 다른 이에게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위치.
설령 진실을 알아냈다고 해도, 진리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걸 밝혀야 하는 자리가 있고 숨겨야 하는 자리가 있다.
한국 히어로 협회장이라는 자리는 상황에 맞게 취사선택해야 하는 자리다.
자신이 추론하여 도출해낸 진실을 모두에게 밝힐지.
아니면 일부 히어로 협회에만 좋게 흘러가도록 정보를 숨기고 취사선택하여 밝힐지.
후자는 세상 모든 조직이 하는 짓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는 은폐하고, 유리한 정보는 과장하듯 광고하여 널리 알리는 것이 조직의 순리이며 생리.
한국 히어로 협회의 우두머리를 맡은 그에게 있어, 인간 정기조로서의 호기심보다는 히어로 협회장으로서의 자리와 자세가 더 중요한바.
끼이익.
협회장은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다음번 차례를 기다리는 듯한 정장 남자들 셋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고, 협회장은 그들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하지 말게. 안 쌌으니.”
“아, 크흠.”
“나는 그저 조용히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장소가 필요했을 뿐이야. 부득이하게 가장 가까운 곳이 여기였을 뿐이지.”
쏴아아.
협회장은 한 번 손을 씻은 다음, 눈 주변을 차가운 물이 묻은 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럼, 모두에게 알려줄까. 사건의 실체를.”
소매로 눈가를 쓱쓱 문지른 뒤, 그는 옷을 가다듬고 밖으로 나갔다.
파바밧.
어두운 밤에도 카메라 플래시가 반짝인다.
화장실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의혹 가득한 얼굴로 태극워치와 마이크를 겨누고 있다.
“아아. 모두 궁금하신 게 많은 것 같습니다.”
협회장은 기자들의 앞에 선 다음, 담담히 포문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해그늘의 악행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충격, 피마저 팔아 돈을 벌어들인 추악한 실체.] [최 회장 “개인의 일탈, 그룹 차원의 쇄신을 약속”] [실종된 자가 모든 책임자? 해그늘 그룹은 묵묵부답.] [아머드 태조는 어디에 있었나? SNS 심층 분석.] [도깨비의 부활? 짝퉁 도깨비? 진실은.]“새벽인데도 이렇게 난리라니.”
나는 인터넷에 쏟아지는 기사에 헛웃음이 나왔다.
“사건이 밤에 일어나서 그런가, 협회에서 말을 했는데도 아직 다들 혼란스러워하네.”
“이제 일어난 사람들에게는 하루아침에 나라가 뒤집힌 꼴이니까.”
새벽, 나와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백설희는 유리창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S급들이 격돌했던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힘든 오늘을 준비하기 위해 잠들어야 했을 시간이야. 누가 그러더라. 꿀잼인 일은 전부 내가 자는 사이에 일어난다고.”
“딱히 꿀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사건이 생각보다 더 심각할 텐데.”
“해그늘 까는 사람에게는 꿀잼아니겠어?”
“정답이군.”
해그늘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음모론으로 퍼져있던 일들이 하나둘 실제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그늘이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몰래 해외로 팔아치우려던 것도 그렇고, 해그늘 아래에 몰래 이능력자 PMC를 운영하던 것도 그렇고. 이제 다들 어느 정도 알았으니, 해그늘을 마냥 좋게 보지만은 않을 거야.”
백설희의 말대로, 사람들은 현재 새벽이 된 지금까지도 해그늘을 규탄하고 있다.
“제일 타격이 심한 건 뭔지 알아? 중고등학생들이 헌혈한 걸 팔아치우려고 했다는 거야.”
“조사, 많이 했군.”
“밤 동안 떡밥 굴러가는 거 살피기만 했는걸. 누가 현장에서 싸우는 동안, 커뮤니티에서 어떤 반응이 나왔는지 알려줘야지.”
“고맙다.”
나는 백설희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은?”
“하룻밤 정도는 안 자도 돼. 그리고 오늘 나한테 연락이 올 수도 있는데, 자면 안 되잖아.”
백설희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내 턱을 손으로 살짝 붙잡았다.
“젠로스 한 녀석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증언했다고 하더라. 도깨비 3호기 얼굴이 도지환이랑 비슷하다고.”
“일부러 알리려고 가면은 벗고 나선 거니까.”
“젠로스 한 애들이 심신미약 상태로 그런 증언을 하면 믿을 것 같아? 투신 앞에서는 가면 철저히 쓰고 나타난 도지라이더가 젠로스 하는 빌런들 앞에서는 가면 벗고 나왔다는 게?”
“그것이야말로 오리지널 도깨비와는 다르다는 세일즈 포인트 아니겠어? 가면을 벗은 도깨비. 평범하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잖아.”
“…흥.”
백설희가 내 볼을 손으로 꾹꾹 잡고 눌렀다.
“누가 물어보면 일단 발뺌한다? 지금 당장은 딱히 원하거나 그러지 않을 것 같으니.”
“대충 분위기만 흘려줘도 괜찮아. 떡밥 정도만 흘려주는 거지.”
“제일 어려운 걸 부탁하네.”
백설희는 툴툴거리며 내 가슴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오리지널 도깨비는 도지환이고, 백설희가 도깨비를 사랑으로 자빠뜨렸다. 그거 말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내가 자빠진 건가?”
“그래서 지금 부캐 만든 거 아냐. 오리지널이 사랑 때문에 조직을 배신하고 히어로의 편을 서고, 히어로는 빌런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시나리오가 필요했다.
모든 것은, 백설희의 배 속에서 태어날 자식을 위하여.
“남들은 지금 불륜이니 음탕한 히어로니 임신 중독자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그 ‘사실’이 드러나면 다들 탈룰라하게 만들려고 지금 빌드업하는 거잖아.”
“그걸 그렇게 다 얘기해버리면, 다른 사람들이 재미없을 수 있는데.”
“정보가 부족해서 답답한 것보다는 낫지. 지금 사람들 인터넷에서 가슴 두드리는 거 안 보여? 당신네들이 온갖 유언비어 퍼뜨리는 바람에, 사실도 유언비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
“괜찮다. 원래 사람은 자기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까.”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도, 그 진실을 자기 이득에 맞게 왜곡하여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을 진실로 떠드는 자가 있다.
“알리바이를 제공해도, 그 알리바이가 조작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이 나라에서는 해그늘이 가장 대표적이다.
“당장 태조만 하더라도 그렇잖나.”
“…그래, 그것 때문에 지금 더 난리지.”
백설희는 복잡한 얼굴로 태극워치를 두드렸다.
“도깨비의 경우처럼, 그 ‘마스터 진도’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아. 그리고 해그늘은 지금 ‘태조 세뇌설’을 주장하고 있어.”
백설희가 보여준 커뮤니티 속 반응들은 대부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반응이었다.
“이거 봐봐.”
-아머드 태조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혹시 결사와 손을 잡아서 국격 하락을 유도하는 것 아닌가요? 대통령이 직접 해명해야 합니다! (괄호 이후는 삭제할 것.)
“이래도 사람들이 블랙태조가 태조라고 믿고 있잖아.”
“태조의 태극워치가 부산에서 계속 있었고, 태극워치에 울린 신호를 부산에서 바로 체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도?”
“그래.”
조금, 난감한 상황이긴 하다.
“나도 솔직히 당신이랑 이런 관계 아니었으면 ‘태조 세뇌설’을 주장했을 거야. 진지하게.”
“정말?”
“결사에서 정신 개조를 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알 사람들은 알고 있으니까, 그 잼민이 태조를 결사에서 도저히 못 봐줄 것 같아서 세뇌했다는 게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잖아.”
현재.
대한민국 70%, 아니 전 세계의 70%는 진지하게 ‘태조 세뇌설’을 믿고 있다.
결사에서 아머드 태조를 붙잡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개조하면서, 잼민이를 죽이고 블랙태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역시 다들 잼민이가 싫었던 걸까.”
“연예인으로서는 매력이 있을지 몰라도, 히어로로서는 조금 그렇지.”
작년까지 보여줬던, 아니 신의주행 황금 열차를 타기 전까지의 아머드 태조를 좋아하는 이들은 소위 ‘빠’밖에 없다.
-우리 오빠 돌려줘!
-우리 태조는 저런 진중한 캐릭터가 아니란 말이야! 세상 물정 모르는 애새끼라고! 결사는 각성하라! 세뇌를 풀고 발랑 까진 애새끼를 되돌려놓아라!
-시간 회귀 이능력을 사용하든 뭘 하든, 우리의 태조를 돌려줘! 이건 살인이야! 살인이라고!
여러모로, 결사를 향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이해는 하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 마주하게 되니 이 광기가 몹시 당황스럽다.
만.
“괜찮아. 이것도 상정한 범위 안에 있는 일이야.”
블랙태조에게 협조를 구하면서, 이미 우리는 태조 세뇌설-근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블랙태조와 아머드 태조 동일 인물 설에 대응책을 전부 마련해뒀다.
“오리발 내밀면 돼.”
부정.
“블랙태조는 아머드 태조가 아니다. 알리바이가 있다.”
누구나 납득하면서도 누구도 함부로 더 이상 캐묻지 못할 알리바이가.
찰칵, 찰칵, 찰칵.
태극워치의 플래시가 반짝이며, 기자회견장에 검은 정장을 입은 한 청년이 안으로 들어왔다.
“저거 봐, 완전 똑같잖아.”
“본인 아니야? 서울에서 그 난리를 치고, 여기 바로 달려온 거야?”
“그게 가능해? 상처 입었다며.”
“모르지. 안에 막 상처가 있는 상태로 나온 걸지도.”
“결사에서 세뇌한 거 아니야?”
“세뇌당한 상태로 나온 거지. 자기는 그 남자가 아니라고 부정하라고 하게끔.”
기자들이 대놓고 수군거리는 가운데, 흑발 청년-태조가 얌전히 회견장에 앉아 마이크를 붙잡았다.
“아머드 태조입니다. 히어로로서 진실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직, 팩트만.”
“해그늘 일보의 조석준 기자입니다. 강화도 사건 당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건.”
“자택에서 히어로 시그널에 즉각 응답하셨지만, 다른 반응은 하지 않으셨죠. 이유가 뭡니까?”
“…이 자리에서 말하기에는 껄끄러워 고민이 많았으나, 국민 여러분의 궁금증을 깔끔하게 해결해드릴 수 있다면 제 치부는 아무것도 아니겠죠.”
태조는 너무나도 가볍게.
“ㅅ, 아니 애국하고 있었습니다.”
“…….”
폭탄을 터뜨렸다.
“다 걸고, 엠창.”
-[속보] 대통령 “자식 교육 대단히 송구.”
“자식 잘못 가르친 건 사과하지만, 다른 건 사과하지 않겠다. 정면 돌파군.”
아머드 태조가 기자회견장에서 해버린 말은 K-유교 국가를 뒤집어엎어 버렸다.
“역시 히어로 등록을 하면 안 되겠어요. 하고 싶은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으니.”
유미르는 태조의 발언으로 뒤집힌 여론을 살피며, 질렸다는 듯이 계속 혀를 찰 뿐이었다.
“아메리카에서는 F 워드 나오는 건 예삿일인데.”
“동방예의지국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부모님 욕하기, 또 하나는 공공장소에서 문란하게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