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2)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63화(665/668)
“괜찮아요. 최근에 그거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어서.”
“뭐라고?”
태채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냐? 어떤 놈이냐?”
“…….”
“말해줄 수 있겠니? 혹시 뭐 누가 또 정체를 숨기고 있다거나, 알고 보니 히어로라거나 그런 게 또 있거나 그러니?”
“…….”
태이린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명백히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였으나, 그녀는 곧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해요. 그건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나한테는 몰라도, 네 오빠한테도?”
“예. 결사에 협력하는 흑태조라면요. 오히려….”
그렇기에 더 할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해야 한다.
“…괜히 제가 아는 정보가 결사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태이린은 그 말을 간신히 삼킨 채, 괜히 다른 말로 조부를 안심시켰다.
“할아버지는 그러면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는 건가요?”
“…태조가 그러더구나. 결사가 자신에게 협조를 요청했다고. 결사가 실수해서 설령 자신이 결사와 빼도 박도 못하게 되면, 자신을 과감히 버리라고 하더구나.”
“그건….”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리고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하면….”
태채진은 자신의 탁자 앞, 자개 명패를 손으로 두드렸다.
“대통령 그만둬야지.”
“할아버지.”
“괜찮다. 최악의 경우라고 해도, 감옥에 몇 년 들어갔다 나오면 돼.”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 마세요. 할아버지가 왜 감옥에 들어가요?”
“뭐든지 걸고넘어지려고 하면 걸고넘어질 수 있는 게 정치 아니니. 특히 지금처럼 결사와 암묵적 동맹을 맺은 상황이라면.”
태채진은 진지한 얼굴로 탁자 위에 놓인 서류를 가리켰다.
“이번에 적십자를 시작으로 해서 민간기관, 나아가서는 보건복지부 쪽 인간들까지 전수조사를 펼칠 예정이란다. 해그늘에게 뒷돈 받아서 매혈에 가담한 자들, 싹 다 감옥에 보내버리려고 해.”
“…살생부네요.”
“그래.”
서류에는 어떤 이들의 인적 사항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해그늘에게서 뇌물이든 뒷돈이든 받아먹은 놈들, 국제 매혈 범죄로 엮어서 싹 다 치울 거란다.”
그 자료에는 수상한 자금 흐름이 가득했고, 대부분 국세청에 신고된 수입보다 훨씬 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명분이 우리에게 있는 이상, 우리는 칼만 쥐고 그대로 휘두르기만 하면 돼. 비록 그 처형장이 결사에서 마련해준 처형장이라고 해도.”
“…….”
“오히려 그러지 않으면 결사에서도 다음에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걸? 시민 경찰이 도둑 잡아다가 파출소에 던져놨는데, 파출소장이 도둑 수갑 풀어주고 집에 잘 들어가라고 택시비 쥐여주면 시민 경찰이 파출소를 믿을 수 있겠니?”
“순식간에 스케일이 좁아졌네요. 그런데 시민 경찰이요? 할아버지, 혹시.”
“…뭐, 인간 태채진으로서 하는 말이잖니. 너무 신경 쓰지 말렴. 혹시 이 할애비, 신고할 거니?”
태채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마음의 준비는 하게 해다오. 탄핵보다는 하야가 더 나을 테니까.”
“그런 말 안 해요. 설령 세상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태이린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가족이니까. 가족이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누가 우리 편이 되어주겠어요. 그리고 안심하세요, 할아버지. 제가….”
태이린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한 몸 희생해서라도, 할아버지랑 오빠는 반드시 지켜드릴 테니까.”
“…너 혹시.”
태채진은 진지한 얼굴로 태이린에게 다가갔다.
“좋아하는 남자 생겼니?”
“…….”
“그렇지?”
“……아닌데요.”
아무리.
“그리고 있다고 해도, 그걸 할아버지께 함부로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할아버지가 바로 그 사람이랑 저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하실 텐데.”
“……아닌 건가?”
“그래요. 만일 제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는 할아버지께 제일 먼저 말씀드릴게요.”
때때로.
가족이라고 해도, 가족끼리라고 해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이다.
“오랜만이야, 언니. 이렇게 불륜녀랑 첩으로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
거실.
테이블 위에는 모처럼 구워온 카스텔라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지만, 카스텔라의 열기는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만나자마자 나한테 하는 이야기가 불륜녀라고 선빵 날리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야, 너…현세린.”
백설희는 현세린을 향해 검지로 삿대질을 하며 이를 갈았다.
“너 지금 내가 식탁 안 빌려줬다고 이러는 거야?”
“언니. 내가 미르도 아니고, 애국 못하게 막았다고 삐쳐서 이러는 것 같아?”
“왜 불똥이 저한테 튀는 거죠?”
가만히 있던 유미르가 도탄 사격을 맞았지만, 나는 유미르가 내게 보내는 구원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셋의 앞에 커피를 놓았다.
“고마워. 그런데 내려놓기 전부터 취향 맞춘 것 같네?”
“아무렴 상사 취향 맞춰서 올려야지.”
“상사 아니잖아.”
“급으로 따지면 일단 상사는 맞으니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현세린은 나를 향해 엄지를 척 들며 커피를 두 손으로 들었다.
“와, 귀여운 척하는 거 봐. 현장에서는 500mL 물병 원샷으로 마신 다음 페트병 구기면서 던졌으면서.”
“언니. 내가 언니랑 저기 경주에서 싸웠을 때 이야기도 해도 돼?”
“그 이야기한다고 해도 내가 딱히 추해지는 건 아니니까 상관없는데? 그리고 지환 씨라면 다 알걸?”
“…….”
나는 묵묵히 내 몫의 커피를 마셨다.
“뭐야. 왜? 불안하게 왜 그래?”
“사실 나는 과거의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다.”
“…무슨 또 이상한 드립을 치려고.”
“이능력을 너무 많이 써서 뇌가 녹은 건지, 기억력에 구멍이 생겼거든. 농담 아니다?”
빙의자라는 설정에 개연성을 씌우기 위한 억지 설정 같지만, 이 세계 원작이 국뽕라노벨이라는 걸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다.
“그래서 과거 이야기를 하면 잘 떠올리지 못해. 특히 1년, 아니 그보다 더 과거의 일은.”
정확히는 조사한다고 해도, 사소하거나 논문 조사하듯이 찾아봐야 하는 일이 아니면 거의 알지 못한다.
‘현대사 공부하는 느낌이었다고.’
2000년 이후, 이 세계의 역사는 내게 그저 국사 교과서의 마지막 한 챕터일 뿐.
내가 피부로 느끼며 살았던 역사는 전부 지워지고 그 자리에 이능력과 해그늘이 자리를 잡았는데, 내가 그 모든 역사를 어떻게 다 공부하고 기억할 수 있겠는가.
기억은 하겠지.
하지만 그걸 바로 상황과 맥락에 맞게 꺼내는 건 버퍼링이 있다.
혹은 아예 찾지 못하거나.
“괜찮아. 둘이 뭐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든, 이제는 다 ‘패밀리’가 될 거니까.”
“마피아야?”
“진짜 가족이라는 의미에서 하나가 되는 거지.”
결사가 해그늘을 이 나라 한반도 땅에서 뿌리를 뽑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나중에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현세린 네가 낳아줘야 할 수도 있는걸.”
“으엑.”
“으엑은 무슨 으엑이야. …세린이 너는 또 왜 그런 표정으로 설희를 보는 건데.”
“저기요, 도지환 과장님.”
현세린은 성과 이름, 직책에 존댓말까지 하며 내게 손을 들었다.
“유미르 딸로 태어나서 애국무새가 되어도 좋으니까, 이 언니 딸은 좀 지양해주시죠?”
“야. 내 딸이 뭐 어때서? 나도 내 딸 너 같은 여자애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저도 조카에게 언니처럼 자라지 말라고 옆에서 열심히 말해줄 생각입니다만.”
“…….”
둘이 어떻게 싸웠는지는 딱히 관심 없지만, 어차피 둘 다 같이 밥이라도 한 번 먹고 나면 화해할 거다.
분명.
“선생님.”
유미르가 내 맞은편, 둘의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나를 부른다.
“저희, 애국할 거 아니죠?”
“하고 싶으면 할 건데,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지.”
나는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이왕 한다면 새 배터리 달고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세린이도 나도.”
빛바랜 금색의 장신구들.
“태조한테 헌 마나골드 주고, 새 마나골드 받으러 가자.”
“…마나 비어버린 게 마나골드?”
“저기 땅에 심어놓으면 나중에 시간 지나서 마나 다시 차니까, 그때까지 새 걸로 받아서 쓰는 거지.”
마나를 다 써 비어버린 유물 대신, 태조에게서 ‘신품’을 받는다.
“태조가 두꺼비야?”
“응.”
복두꺼비다.
“내가 본인한테 외부노심 쓰는 법도 알려줬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마나골드 내놔.”
“드리겠습니다. 금구슬이면-”
“필요 없어.”
태조는 나를 보며 ‘뭐 하자는 거지’라는 눈빛을 보냈다.
“여기 주변에 사람 없습니다. 저 아머드 태조 아닙니다.”
“농담 던지려고 한 거 아니다.”
“금구슬 필요해서 온 거 아니었습니까?”
“금구슬이 아니라 다른 게 필요해서. 마나골드.”
“…아하.”
이곳은 블랙태조의 작업실.
아머드 태조의 집 앞에 눈에 불을 켜고 서 있는 기자들을 피해,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본인의 작업실에서 그는 한참 뭔가를 작업하고 있었다.
“마나골드 정비 중인가?”
“깨먹은 건 수리해줘야죠. 더 크고 화려한 걸로.”
그가 만들고 있던 건 척준경의 양손대검.
본인이 직접 깨뜨렸던 만큼, 그 책임을 다하려는 것일 터.
“아 참. 준경이, 저 눈치챘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본인이라는 걸.”
“…그렇겠지. 그래도 그 녀석은 괜찮다. 함부로 남들에게 알리거나 할 놈은 아니야.”
“결사와 관련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 하지만 어디 가서 함부로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
척준경은 괜찮다.
진짜 문제는 투신이나 선무당 같은 자.
-뭐?! 블랙태조가 사실은 태조였다고?! 여러분ㅡㅡㅡ!
전자는 목소리가 커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사람이어서.
-이걸 이용해서 어떻게 활빈당에게 좋게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후자는 그 정보를 알고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도록 만들려고 할 것 같아서.
“선무당도 약간은 눈치를 챈 것 같았지만….”
“선무당도 괜찮다. 그녀는 알아서 내가 파둔 함정에 자기가 걸려들 테니. 내가 잘 커버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는 네 정체를 숨기는 데 집중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