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7)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7화(58/668)
한국에 남아있는 이능력자들을 대상으로 이민이나 망명간 이능력자들이 하는 말.
-쟤들은 머저리 병신인가?
쌍욕이다.
욕을 하는 이유는 역시 하나.
-저 모욕을 듣고도 왜 바보같이 한국에 남아있는 거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처럼 가족들 데리고 전부 외국으로 오면 되잖아? 내가 먹여 살리면 되는 거 아니야?
-한국에 있어서 마나 가득 차오른다고 해도, 마나 차는 거 따지고 보면 쥐꼬리만큼 오르는 건 어디나 똑같은데 큰 차이 있나?
-아니, 그 대-단하신 애국심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왜 한국을 안 떠나는 거지?
이해가 안 되니까.
한국에 남아있는 히어로가 왜 한국에 남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
-다른 나라에 가면 A급이 S급보다 더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왜 이민을 안 하는 거야?
라고 다들 생각한다.
실제로 결사에도 그렇게 생각해서 한국을 떠난 이들도 많다.
주로 한국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지는 않은 자들이라거나, 한국에서 계속 살고는 싶지만 한국에서 도구처럼 조종될 바에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 자들.
결사에서는 그들을 집중적으로 영입하고자 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국가에 대한 분노’야말로 결사의 가장 큰 무기가 될 테니까.
물론 그건 결사가 아닌 한국 내부에 있는 다른 조직에도 마찬가지.
“설희 씨한테 자꾸 아이 가져라, 임신하라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저도 뭐라고 한소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결사가 억압받는 이능력자를 상대로 하는 설득의 레퍼토리가 하나 있다.
“그런 자들에게 계속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불쾌하지 않습니까? 막 화가 나고, 폭주할 것만 같고 그러지 않습니까?”
“지환 씨?”
당연히 바로는 넘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제 말은, 국가에서 백설희 씨를 상대로 폭주하게 만드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그럴 일은…아마도 없어요.”
백설희는 자신이 폭주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저 같은 경우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스트레스가 막 다른 사람들만큼 크지는 않아서.”
“저한테는 이렇게 하소연하러 왔잖아요?”
“누구 한 명 정도는 이야기를 들어주면 그냥 하루 감정을 쏟아내고 난 다음, 그다음 날에는 괜찮아지는 그런 사람이에요. 저.”
“혹시 다른 사람들한테 답답하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없으십니까?”
“아직은 없네요. 왜냐하면….”
백설희는 멍하니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거나 떠나버렸으니까.”
“…….”
“지환 씨. 지금까지 정말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죠. 그중에서 폭주한 이능력자의 비율이 몇이나 될 것 같아요?”
“설희 씨가 하고 싶은 말을 맞춰보겠습니다.”
백설희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지났다.
이제는 내가 백설희에게 ‘생각을 심어줄 때’다.
“소위 진성 국까 이능력자들은 전부 죽은 겁니다. 맞습니까?”
“…….”
“이민 간 사람은 한국인으로서의 존재가 말살당하고, 사회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그러다가 한국 내에서 폭주한 사람이 있으면 가차 없이 죽여버리고.”
“…….”
“겉으로는 정말 동방예의지국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지만, 뒤로는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을 자행하고 있죠.”
백설희의 표정이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다.
“…라고, 빌런이라는 자들이 말하고 다니더군요. 특히 이매망량이라거나 그런 자들.”
당연히 나는 내가 논리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퇴로를 마련해뒀다.
“저도 이렇게 이 나라의 모순점을 보고 바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인 도지환이야 뭐 나라가 어떻든 월급쟁이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이능력자인 설희 씨는 저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짜증이 나고 환멸이 나지만…동시에 그것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게 뭐죠?”
“희망의 끈.”
내 말에 백설희는 눈을 사르르 감았다.
“아직 이 땅은 바뀔 수 있다는 믿음.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설희 씨가 생각하는 올바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리고 무너진다고 해도, 여러 창작물 속에서 보여주는 ‘희망찬 미래’가 다가올 것이라는 바람. 그것들이 설희 씨를 지탱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
“설희 씨는 남들에 비해 그런 동아줄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남들은 그걸 놓아버려서 미쳐버리고 폭주할 때, 설희 씨는 그걸 놓을까 말까 고민하게 될 정도로 멘탈이 단단한 편인 것 같네요. 하지만 동아줄이 짧거나, 잡는 힘이 약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전부 빌런이 되어 죽었어요.”
백설희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았다.
“소꿉친구를 빼앗겼던 유라 언니도,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를 가야 한다는 말 때문에 병역의 의무를 히어로로 지냈던 창현 씨도, 그리고 이능력 최연장자로서 이능력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정계에 발을 들였다가 토사구팽당했던 정환 씨도 모두 다 빌런이 되어 죽었죠.”
불만을 가진 자들이 있다.
위정자들의 관점에서 ‘매국’ 행위를 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가 빌런이라고 부르지도 않는 자들을 대상으로도 빌런으로 강제로 만들어 처리하는 걸 볼 때마다, 저는 이 나라에 관한 생각이 계속 달라지고 있죠.”
그들은 모두 국가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국가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 국가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는,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저항하려고 하는 자들을 모두 빌런으로 만들었다.
“어렸을 때 위인전을 보면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생각했던 마음가짐이라거나, 소방관이나 사회복지사와 같이 사회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저들의 윤리관을 본받아야 한다거나…. 어렸을 때 받았던 ‘사상교육’이 이제는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요. 현실의 더러움 앞에.”
“그래서 설희 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민을 가실 겁니까?”
“이민 간 사람들은 전부 ‘스티븐 조’ 되는 거 아시죠?”
“예. 평생 한국 땅은 밟지 못하게 되겠죠.”
시기가 대격변 이후라서 일어나지 않은 역사적 사건도 있지만, ‘그 사건’은 이 세계에서도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다.
사람 이름은 다르지만, 경우는 매우 다르지만 90년대에 탑급 가수가 병역을 피하려고 이민을 가버린 사건.
-갓한민국에서 미국인이 되셨는데, 지금 어떤 소감이세요?
-내가 갓한민국 될 줄 알았으면 병역을 이행했지! 한국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라고 자책하지만, 한국에 있는 그 누구도 스티븐에 대해서는 ‘낫 웰컴’하게 되어버린 사건.
이능력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이 나라를 떠났든, 정부는 이민을 가버린 자들이나 망명한 사람들을 죄다 ‘스티븐’으로 만들었다.
여론을 조성하고 언론을 모아, 정부에서도 관련된 자료를 뿌리니 모두가 이들을 욕하고 비난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그런 행동이 또다른 스티븐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설희 씨가 만약 이민을 가거나 망명을 하게 된다면, 스티븐이 아니라 ‘백설희’가 되겠군요.”
“네. 제가 이 나라를 떠나면 입국 금지 수준이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전체가 부정당할 거예요. 저를 두고 무슨 ‘시로세키 유키하라’ 같은 이름으로 부르겠죠.”
“일본으로 망명하실 겁니까?”
“전혀요. 사람을 그런 식으로 부를 거라는 거예요. 마치 이름을 불러선 안 될 자처럼.”
“그리고 나라에서는 백설희 씨를 그런 자로 만들어버리겠죠. 설희 씨가 어떤 식으로든 한국을 떠나려고 한다면.”
“…예.”
백설희는 다시 우울해졌다.
“이 나라는 바뀔 수 있을까요?”
드디어.
백설희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본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을 모으고 뜻을 모은다면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설희 씨 한 명의 힘으로도 충분히 바꾸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대신 그 길은 험난하고 고되고, 정부에서는 설희 씨를 온갖 방법으로 모욕할 겁니다.”
이미 벌어진 숱한 일이고, 현실이다.
“어쩌면 정부에서는 정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능력자를 제거하기 위해 빌런에게도 손을 뻗었을지도 몰라요.”
“……그 정도까지는.”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히트맨을 고용할지도. 예를 들어…히어로가 사람을 죽이게 교묘히 상황을 꾸민 다음, 그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빌런으로 만들어서 누군가가 처형하게 한다거나.”
“도깨비…말씀이신가요?”
“예. 아, 말하기 전에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도깨비는 살인자니까요.”
나는 내가 살인자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도깨비가 처형하는 자 중에는 분명 그런 자들도 많을 겁니다. 나라에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어떻게 조종할 수 없게 되자,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떻게 제거할 수 없으니 도깨비가 그자를 처형하게 상황을 짜는 거죠.”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나라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아요. 지환 씨.”
백설희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지환 씨가 저처럼 S급 이능력자라면, 그리고 저와 같은 입장에서 있었다면 지환 씨는 어떻게 행동할 거예요?”
“저 말입니까?”
“예. 지환 씨를 놀리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진짜 순수하게 묻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저는….”
이미 길은 선택했다.
“정치 같은 건 잘 모릅니다. 나라가 아무리 거지 같은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제가 스스로 어떻게 이 나라를 바꾸어나간다거나 하는 그런 건 어려울 겁니다. 사람마다 각자 재능이 있으니까요.”
나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다.
“저는 그런 사람을 찾을 겁니다. 이 나라를 ‘안’이든 ‘밖’이든, 혹은 양쪽에서 뒤흔들어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하지만 나는 그런 재능을 가진 자를 알고 있다.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고 모두를 위해 일할 수 있으며, 이 나라를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위해 저는 평생을 일할 겁니다.”
단 한 명.
있다.
“사람마다 이 나라를 바꾸고자 하는 관점은 다를 겁니다. 설희 씨와 같은 착한 분과는 달리…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백설희가 말하는 위정자들을 전부 ‘대숙청’하여, 그 자리에 백설희와 같은 성향이 있는 이들을 요직에 앉혀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자들을 앉혀놓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이.
“자기들이 이능력자도 아니면서, 이능력자를 도구처럼 부리며 사욕을 챙기는 ‘탐관오리’들의 대가리를 전부 다 깨버려야 한다고.”
“…활빈당이세요?”
“아니요. 활빈당, 그자들은 그저 파괴로 끝날 뿐입니다. 중요한 건 이후, 파괴 후의 재창조.”
결사는 그보다 더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제 아이가 누군가에게 억압받고 조종받지 않고, 강제로 사상교육을 받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자유를 누리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일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적어도 그런 사람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 나라에서는….”
나는 그런 ‘빌런’들의 대가리를 깨부수는 도깨비가 되었다.
“최소한 한 여자를 이능력자를 낳기 위한 도구로 바라보지는 않을 테니까요.”
“……역시.”
백설희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지환 씨랑 상담하기를 잘했어요.”
“그럼 다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백설희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내게 물었다.
“…자고 가도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