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81)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82화(571/668)
그것도 히어로가.
쩌저적.
기울어진 회장실 전체가 얼어붙었다.
깨진 유리창 안으로 들어온 한기가 천장부터 바닥까지 전부 얼음동굴로 만들어버렸다.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며 아래로 떨어지던 소파와 책상은 바닥과 함께 그대로 얼어붙었다.
데구루루 구르며 유리창을 깨뜨리기 직전이던 의자는 바닥에서 뻗어 나온 얼음과 하나가 되었다.
마치 바닥에서 뻗어 나온 팔처럼, 얼음은 의자의 다리 하나를 붙잡은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겉으로 보면 상당히 얇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지만, 얼음의 강도는 어지간한 금속보다도 훨씬 단단하다.
회장실만 그럴까.
전혀.
나는 결사워치에 재생되고 있는 라이브 영상, 외부 카메라가 찍고 있는 영상으로 눈을 돌렸다.
와아아아ㅡㅡㅡㅡ!!
공기가 흔들린다.
조금 전까지는 비명과 공포가 부산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환희가 부산 전체에 울려 퍼진다.
‘굉장하긴 해.’
해그늘 본사 건물이 기울어진 채 얼어붙었다.
옆으로 무너지며 맞은 편에 있는 건물과 닿기 직전의 각도로 건물이 그대로 멈췄다.
건물 전체가 하얗게 물들었고, 그 바닥에는 아래에서 뻗어 올라간 하얀색의 무언가가 단단히 건물을 받치고 있다.
얼어붙은 손.
건물의 두께보다 훨씬 더 기다란 손으로, 아래에서 뻗어 올라간 두 개의 손이 해그늘 본사 건물 전체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 거대한 두 손을 중심으로, 마치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간 얼음이 건물 곳곳으로 침투했다.
눈 한 번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눈앞에는 기적이 펼쳐졌다.
혹시나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안에서 뭔가 물건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카메라에 담긴 사람들의 얼굴에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으나, 그들의 발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도망치던 발걸음을 그대로 멈춘 채, 그녀의 등장에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이게 히어로지.]영웅의 등장을.
와아아아ㅡㅡㅡㅡ!!
다시금, 함성.
행여나 함성으로 일어난 진동 때문에 건물이 다시 무너지는 게 아닐까.
집중력이 깨지는 바람에 건물을 지탱하는 두 얼음의 손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혹은, 지금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마력의 손길은 일시적으로 붙잡고 있는 것일 뿐, 금방 무너지는 게 아닐까.
저마다 시선을 주고받으며 불안감을 내비치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얼음의 손길은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조형물처럼, 굳건히 건물을 아래에서 받쳐 들고 있을 뿐.
저, 저기ㅡㅡㅡ!!
사람들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카메라가 홱 돌아간다.
마구 영상이 흔들리지만, 카메라맨은 줌을 당겨 해그늘 본사 건물의 옥상 쪽을 확대했다.
무너진 건물과 서 있는 건물의 사이.
마치 랑데부를 하듯 만나기 직전이 두 건물 사이에, 백발의 한 여인이 태연한 얼굴로 건물을 한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옥상 난간에 살포시 손을 얹은 채, 온통 하얀색만 가득한 한복을 입고는 묵묵히 허공에 떠 있었다.
이곳은 부산.
당연히 부산에는 부산을, 수도에는 수도를 지키는 히어로가 있다.
설령 수십 층짜리 건물이 통째로 무너진다고 해도, 지금처럼 손 한 번 대는 것으로 건물을 그대로 멈추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스노우화이트-백설희.
남들은 임신 은퇴니 뭐니, 월드컵 직전에 임신해서 애국형매국노니 뭐니 온갖 말들이 나왔지만.
그녀는 본질적으로, ‘히어로’다.
그리고 이 무대는, 그런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만들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
또각, 또각.
백설희가 손을 떼어내며, 옥상을 걷기 시작했다.
혹시 백설희가 손을 뗀 것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사람들이 또 한 걸음 물러나지만, 백설희의 여유로운 발걸음을 보며 다들 안도했다.
어, 드, 들어간다!!
옥상을 지나, 백설희는 깨진 유리창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나는 바로 결사워치의 영상을 끈 다음, 선비탈을 가볍게 눌러썼다.
[고생했다.]“…….”
행여나 주변에 뭔가 도청 장치 같은 게 달려있을까 침묵을 지키는 센스를 보아하니, 이제는 결사의 일원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나는 도깨비다.]“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자, 백설희는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끝난 거야?”
[당장은.]분노는 폭발했으나, 이렇게 얼어붙었다.
[과도하게 들끓은 분노는 이런 식으로 터질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니, 일단 다들 머리에 오른 열을 식힐 수 있겠지.]“계속 들끓을 수 있게 장작을 집어넣을 거면서.”
[그거야 당연한 거고.]나는 결사워치를 두드려, 내부 파일을 확인했다.
저장된 파일은 문제없음.
거대한 마력의 파장이 일어났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자료는 저장되었다.
[미안하지만, 사람이 죽기는 죽었을 거다.]“…미안할 필요 없지. 당신 설명대로라면, 그 사람들 해그늘에서 터뜨린 거잖아? 그럼 내가 잡아야 할 건 당신이 아니라, 해그늘에서 그러도록 지시를 한 사람들이지.”
백설희는 붉게 반짝이는 자신의 태극워치를 손으로 덮었다.
“아마 곧 전국 수배령이 떨어질 거야. 책임자는 한 명이라도 나와야 할 거고, 그 책임자는 당연히 해그늘의 회장이지.”
[쉽지 않을 텐데. 협회도 그렇고, 아직 해그늘에 협조하는 사람들은 많을 거다.]“질러버리기로 했대. 다들 쌓이고 있던 불만이…거머리들이 나오면서 폭발했거든. 협회장님도 마찬가지고.”
[그 사람이?]“응. 지금 아니면 또 언제 확실하게 잡겠냐고 그러더라.”
협회는 노선을 정했나보다.
그럼, 이쪽도 확실하게 그 흐름에 타야겠지.
[돌아가는 즉시 자료를 주모에게 편집해서 보내도록 하지. 일단은-]나는 가면을 가볍게 두드렸고, 백설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손을 뻗었다.
촤르륵!!
경사를 따라 흘러온 안개 같은 마력이 나를 휘감았다.
해그늘 본사와 마찬가지로 내 몸을 붙잡는 듯한 얼음의 손길에 나는 순순히 그녀에게 붙잡혔고, 곧 백설희가 들어온 정문을 통해 사람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스노우화이트!!”
“대기.”
펄럭.
“기다려.”
백설희가 소매를 펄럭이며, 회장실 안으로 달려온 히어로들을 제지했다.
명백히 선을 긋는 듯한 손길에 누구도 백설희에게 함부로 대꾸할 수도, 다가갈 수도 없었다.
아무리 협회의 이능력자라고 해도, 이런 건물 전체를 얼어붙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당신.”
백설희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목적이 뭐지?”
[보통 그럴 때는, 정체가 뭐냐고 묻는 게 정상 아닌가?]“!!”
백설희의 뒤에 있는 이들이 하나둘 눈동자가 크게 떠진다.
각도 때문에 내 뒤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백설희의 입꼬리가 살짝 부들부들 떨렸다.
[안 그런가, 스노우화이트?]“…아아, 그러네. 그런데 당신, 선비탈이라고 할 거 아냐?”
저벅, 저벅.
백설희는 나와의 거리가 거의 1m에 이를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일단 목적부터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왜 해그늘 본사를 습격한 거지?”
[정의를 위해서.]“정의?”
[번지르르 말만 정의롭게 행동하는 자들과 나는 다르거든. 부패한 자를 척결하겠다면서, 뒤로는 정작 그들과 결탁한 채 어둠에 물든 괴물들과는 다르다는 말이야.]“그건….”
백설희는 일부러 말을 아꼈다.
뒤에서 협회의 히어로들이 ‘헉’이라고 놀라거나, ‘활-‘이라면서 입을 꾹 다문다.
“그럼 당신은…. 혼자라는 거야?”
[글쎄. 혼자일 수도 있고, 여럿일 수도 있지.]“그런 말, 나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지금부터 여럿이 될 수도 있고.]파스스.
[혼자서 걷는 것보다는, 함께 걷는 게 좋겠지. 함께 하겠나?]나를 감싸고 있던 얼음의 손길이 해제된다.
곧 뒤에 있던 요원들이 깜짝 놀라 달려오려고 하지만-
[나와 함께 하지.]내가 백설희의 앞에 정중하게 손을 뻗는 걸 보며, 그들은 그대로 멈췄다.
“…유감이지만, 나는 가면을 쓴 사람이랑은 상대 안 해.”
[…….]“어느 못된 남자에게 하도 시달려서 말이야. 가면, 벗을 수 있어?”
[……그건, 유감이군.]나는 바닥을 가볍게 가리켰다.
[이 나라에서 해그늘을 완전히 박멸시키기 전까지는, 이 가면을 내려놓을 수 없다.]“……그게, 당신의 목적이야?”
[그래.]선비탈의 존재 의의는 어디까지나 해그늘의 멸망.
해그늘이 무너진다면, 그 뒤로는 이 부캐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정확히는, 선비탈을 벗고 정체를 드러내는 걸로 모두에게 진실을 말하겠지.
그 진실은 아주 먼 미래, 혹은 가까운 미래.
이 땅에서 완전히 해그늘을 몰아내고 그 혼란을 잠재울 때가 아닐까.
[그럼, 조만간 또 만나지.]타ㅡ앗.
나는 뒤로 뛰었다.
백설희는 가만히 있고, 놀란 히어로 협회의 요원들이 백설희를 지나치며 나를 쫓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건데.
나를 바라보는 백설희의 눈빛은 ‘의문’을 담고 있었다.
도깨비로서 영체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백금태양의 동료로서 차원문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하기는.’
가장 클래식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사라지는 것뿐.
사락.
나는 등장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웅성웅성.
갑자기 도로 한가운데에 나타난 나를 보며 시민들이 놀라고, 곧 건물 외벽에서 히어로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다려!! 얌전히 따라와라, 선비탈!!”
“이 난리를 치고 그냥 가려고 하다니! 협회는 적이 아니다! 순순히 협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