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89)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90화(579/668)
최중남이 머리에 손을 올린 순간,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래쪽에 터럭 하나 없는 것처럼, 머리 위에도 민둥산이 펼쳐져 있었다.
[평생을 해그늘을 위해 살았다. 이제 해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진실을 밝히기로 했다.]“그, 그게 무슨…!”
[아마 이틀 뒤에 이사회가 열릴 거다. 그날, 나는 해그늘 모터스 사장의 자리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해그늘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한다.]“이, 이 미친…!!”
지금, 영상 속 저 남자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저, 저건 내가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하게 된다면, 해그늘의 낙인이 아직 네 몸에 남아있다는 거겠지. 이해한다. 평생을 해그늘의 사람으로 살았으니,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당연해.]“!!”
[그러니 설령 다시 낙인의 영향으로 해그늘의 개가 되었다고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단어. ‘양심’을.]“아니, 저 미친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장님….”
홍 전무는 울먹거리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결국, 해그늘의 낙인이 다시 이렇게…!”
“무슨 개소리냐니까!! 왜, 이게 왜 없냐고!!”
“…잊으셨군요. 아니, 다시 이전의 사장님으로 돌아가버린 거군요. 안타깝습니다, 정말….”
홍 전무는 동정심, 안타까움, 그리고 적의 가득한 얼굴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일주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장님을 진심으로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비록 낙인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버린 건 그렇지만, 이미 결정은 났습니다.”
딸칵.
홍 전무가 TV 속 영상을 멈추고 다른 영상을 재생했다.
[경제 뉴스에서 전합니다. 이사회에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최중남 회장이 스스로 머리를 밀고 큰절을 올리며,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아니!!”
[그리고 자신은 별장으로 들어가 평생 수양을 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어, 이사회에서는 만장일치로 홍이준 전무 이사가 해그늘 모터스 사장이 되었고, 해그늘 모터스는 ‘메타 모터스’라는 이름으로….]“네가…사장…?”
“예.”
홍 전무는 안경을 벗으며, 흐트러진 앞머리를 손으로 한 번 뒤로 쓱 쓸었다.
“제가, 이제 사장입니다.”
“그, 그런…!! 이건 말도 안 되는…! 그, 그래! 결사의 음모야!!”
최중남은 악을 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결사가 나를 세뇌해서 다른 사람으로 만든 거라고! 내 뇌를 조종해서, 내 뇌에 칩을 꽂아서 저런 짓을 하게 만든 거라니까! 저건 내가 아니야! 내가 저런 소리를 할 리가 없잖아!!”
“해그늘의 낙인 아래, 해그늘 아래에 있던 분이라면 그렇겠죠.”
삐빅.
다시, 영상이 재생되었다.
[중남아.]“닥쳐!!”
[이제, 자유롭게 살자. 58년을 최호정 그 인간 아래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최중남도 아니고 그냥 중남으로 자유롭게 살자.]“아악, 이 미친 결사가!!”
최중남은 목덜미를 잡고 침대에 주저앉았다.
“이럴 수는 없어…. 이건 결사의 음모야…. 결사가 나를 세뇌해서 개수작을 부린 거라고….”
[아마, 낙인이 다시 발동되거나 하면, 최중남이 된다면…. 이것만 기억해라. 1년이 될지, 3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네가 알던 해그늘은 이제 없다.]“아, 아앗….”
[양심껏, 살기를 바란다.]“으아아악!!!”
자신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내가, 내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모두 젠로스.”
나는 최중남의 상황을 분석하는 경제지의 내용을 살폈다.
“끔찍하네요. 내가 모르는 자신이 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나눠주고 알거지가 되다니.”
유미르는 진심으로 두렵다는 듯 몸을 떨었다.
“저도 모르는 제가 제 몸을 차지해서 막 저렇게 모든 걸 다 내어주고 그러면, 그 뒤에 정신을 차린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글쎄. 이능력자가 술 마시고 꼴아버린 걸 본 적은 없어서.”
“술이 아니더라도…. 음…. 아! 막 악마가 제 몸을 지배해서 다크 유미르가 된다거나. 그런 유미르가 모든 재산을 날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된다거나?”
“…….”
날려버리는 게 재산이 아니라 지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나는 애써 기시감을 억눌렀다.
“만일 네 몸에 악마가 빙의하더라도, 그 안에는 네가 분명 있을 테니까 내가 너를 깨워줄게.”
“어떻게요?”
“마음 가장 깊은 곳에다가 열심히 두드리면 깨어나겠지.”
“어머, 두드린다니. 그런.”
“악마 빙의 유미르가 매국노라고 한다면, 일단 며칠 지켜보겠지만.”
“아앗!!”
유미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게 삿대질했다.
“국가와 세계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애국하는 사람보다 매국노가 더 좋다니! 선생님이야말로 매국의 망령이 깃든 거죠?!”
“그럴 리가.”
나는 폭주하려는 유미르의 머리를 붙잡고 억눌렀다.
“오랜만에 공식적으로 세종아카데미에서 나왔다고 지금 신이 난 건 알겠는데, 잊지 마라. 너는 아직 학생이라는 걸.”
“씨이, 저 나름 ‘최종병기’ 거든요? 제 부캐, 장난 아니거든요?”
“아아, 그래. 장난이 아니긴 하지.”
여러 의미로.
“전 세계 추첨제, 60억분의 1 확률의 슈퍼볼에 당첨된 여자 아니야.”
“…….”
“안 그래? 해그늘 복권 사장님?”
“해그늘 복권 아니거든요?”
유미르는 태극워치를 두드려, 화상 스크린으로 반짝이는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이제는 미르복권 사장, 유미르거든요?”
“…….”
해그늘은 복권 회사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복권 회사가 왜 유미르에게 넘어왔느냐.
복권 회사 직원들이 전부 썩은 나머지, 재활용할 수 없다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
-저, 최대박은 선언합니다! 60억 지구인 중에 아무나 한 명, 추첨으로 사장 자리를 넘겨주고자 합니다!!
‘개☆심’한 해그늘 복권 사장이 미쳐서, 전 세계인을 상대로 뽑기를 진행했을 뿐.
회사의 사원들은 알음알음 주모와 보부상과 같은 결사의 사람들로 채워졌지만, 사장 자리는 뽑기로 정해진다는 말도 안 되는 미친 상황이 일어났다.
뭐, 그나마 다행이라면.
“복권 회사만 그 난리가 나서 다행이지. 에휴.”
해그늘의 다른 계열사들은 전부 하나둘 정상적인 고용승계가 이루어졌다는 것.
바뀐 건 우두머리 중 일부와 이름뿐.
직원들은 새롭게 변한 명함만 가진 채, 그대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늘이 진 곳에 햇빛이 스며들어 점차 밝아지듯,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변화는 시작되었다.
“아 참. 선생님, 아예 재단을 세울까요? 재단 이름도 미르ㅈ-”
“안 돼.”
부산.
인구가 가장 많은 수도는 한국에서 변화가 가장 빨리 일어나는 곳.
해그늘 불매 운동이 시작된 지 어느덧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부산 거리에는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다.
하나. 선비탈의 등장.
정확히는 도포와 같은 옷을 입은 이들의 등장.
처음에는 해그늘을 향한 분노로 가면을 쓰고 도포를 입었지만, 사람들은 하나둘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일이 잘 풀려!
-직장 상사가 나를 건드리지 않아!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복권에 당첨되었어!
-사고 차량이 나 피해서 전봇대에 들이받더라!
뭔가, 뭔가 선비탈을 쓴 이들에게 행운이 깃들기 시작했다.
행운이라고 하기에는 그냥 모든 일이 무탈하게 상황이 일어날 뿐이지만, 평소에 고생길만 가득한 가운데 일어나는 일상의 소소한 행운에 사람들은 선비탈과 도포의 효능을 믿기 시작했다.
-약간 행운 올라가는 거 아니냐? 막 네잎클로버 달고 다니는 것처럼.
-한복이랑 탈 쓰고 다니면 행운이 올라간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런 걸 두고 우리는 ‘미신’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믿든 안 믿든 그건 자유.
하지만 그런 미신도 사람들에게는 가십이 되고, 동시에 해그늘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
-이야, 해그늘 망하니까 우리 앞날이 다 화창하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ㄴ’틀’
ㄴㄴ느그 상사 최호정^^
일단 해그늘을 까고 본다.
선비탈을 쓴 이들도, 그냥 정장을 입은 이들도, 심지어 교복을 입은 이들도 세 명 이상 모이기만 하면 해그늘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누가 또 양심선언을 할까?
-양심선언은 무슨. 누가 뒤에서 도깨비방망이 들고 협박해서 대본 읊는 거 아니야.
-그게 도깨비의 망령이 저지르는 짓이라고? 아닐걸? 나는 진(眞).활빈당의 선비탈이 대금 들고 협박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대금 들고 불어서 음파로 세뇌하는 게 아니고?
-망상도 이 정도면 병이다, 병. 야, 너희 그렇게 망상한다고 이능력자가 되는 거 아니다?
해그늘을 향한 비판과 더불어, 해그늘의 변화하는 행보를 두고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양심선언을 한 오너들, 설마 진짜로 정신 지배 같은 걸 당해왔겠어? 그냥 자기들이 다 살려고 그러는 거지. 안 그러면 코스피 2500을 향해서 내려갈 때, 주주들 선비탈 쓰고 한복 소매 안에 칼 들고 거리로 나왔을걸? 사장 찌르러.
-무슨 그런 심한 말을. 코스피 2500?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야, 내가 올해 3000 이하로 내려간 걸 본 적이 없다. 내려가도 2700이야.
인간은 누구나 돈에 민감하다.
해그늘 계열사가 일제히 폭락하면서 한국 경제도 잠시 주저앉았고,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만든 해그늘 오너 일가를 향해 진심으로 마음속에 칼을 품었다.
그나마 그 분노는 그룹의 몇몇 사장들의 양심선언으로 이어져 다른 방향으로 터졌으니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쯤 병원 응급실마다 ‘해그늘 OO 이사’라는 직함을 단 이들이 중환자실에 누워있었을 테지.
그 분노의 변화는 무엇이냐.
바로 ‘해그늘 지우기’에 있다.
“저거 벌써 바뀌네. 하랑아, 뭐 먹을래?”
“블루베리 스무디.”
나는 백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검은 한복의 여인과 창밖이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부산 거리를 훑었다.
삐이익.
평일 대낮에 무슨 공사 소리인가 싶지만, 아무도 그 공사 소리가 시끄럽다느니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이야, 잘 바꾼다! 이름은 이상하지만.”
“드디어 저 꼴 보기 싫은 간판이 사라지네. 으휴, 저 옆에 있는 건 왜 안 사라지나 몰라.”
“사장부터 이사들까지 싹 다 ‘젠로스’ 되었잖아. 회사 이름 정하기 전에 저기는 회사 임원부터 다시 뽑아야 할걸?”
“그럼 저 해그늘 간판부터 일단 무슨 천막으로 덮어놓든가. 다른 곳은 다 바꾸는데 저기는 뭐야?”
“장사는 해야지. 네가 저기 사장님 월급 줄 거야?”
“끙.”
해그늘의 간판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다들 좋아하기 때문.
우리가 지금 음료를 마시고 있는 ‘카페 스타버스트’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전에는 해그늘의 색만 가득했던 곳이지만, 새롭게 사장이 된 이의 강력한 추진력 하에 카페 간판과 디자인부터 싹 다 바뀌게 되었다.
메뉴도, 포인트도, 심지어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도 다 똑같지만, 여기의 어디에도 해그늘의 흔적은 없다.
없어야 자영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아, 해그늘 경찰 떴다.”
“…으.”
펄럭.
입구에서 하얀 도포를 흩날리는 수상한 여인들이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평일 대낮에 여자 네 명이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하는 일은 카페 내부를 훑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