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90)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91화(580/668)
“하여튼, 뭐든지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백하랑 씨는 블루베리 스무디에 꽂은 빨대에 입을 대고 작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너무 그러지는 마. 저들은 사명감으로 움직이는 거니까.”
“사명감? 해그늘이 빌런도 아니…지. 빌런이긴 하지. 그럼, 시민 경찰 느낌일까?”
“그런 셈이지. 정작 본인들이 신고 있는 신발, 들고 있는 가방, 차고 있는 태극워치…. 고가 물품들은 여전히 해그늘 메이커지만.”
불매 운동이 시작된 건 고작 열흘.
아무리 분위기가 과열되었다고는 해도, 추진력 강한 이들이 전격적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런데도, 모두들 해그늘 지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마치 해그늘이 이 땅에 있으면 안 된다는 듯, 질색하며 어떻게든 해그늘을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장님. 이 테이크아웃 잔 말이에요, 해그늘 무늬 박혀있는데요?”
“아앗…!”
“조심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정리한다고 했는데…!”
저렇게 해그늘 시민 경찰들이 일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 다 사사건건 간섭할 정도.
“…저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지 않아? 저거 박힌 거, 해그늘 망하기 전에 발주 넣은 재고일 거 아니야.”
“재고를 지금 치워버리기에는 타이밍이 안 좋지. 자기 마시는 블루베리 스무디 컵에 최호정 얼굴 박혀있다고 생각해 봐.”
“생각만으로도 당신 얼굴에 이 스무디를 뿌려버리고 싶은데.”
“과격한걸. 지금 정부 업무에 호출되었다고 짜증 내는 거야?”
“그럼?”
백하랑은-빙정으로 정신이 연결된 백설희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어느 누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면서 해그늘 계열사 회장들 뚝배기 깨고 다니는지 몰라도, 그거 때문에 지금 히어로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왜?”
“정부에서 히어로들 동원해서 하는 게 해그늘 지우기잖아.”
“…….”
소위, 킬각이 나왔다.
해그늘 지우기에 열심인 건 민간만 그런 게 아니다.
“해그늘 세무조사 나갈 때 히어로 협회 대동해서 나가는 거 알지? 아직 지사에는 해그늘에 고용된 이능력자들이 있잖아. 그 사람들이 지사 건물 아래에서 버티고 있을 때마다…하아.”
“괜히 무너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거지. 본사 건물이 무너지는 것처럼.”
관공서, 즉 정부에서도 해그늘 지우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민간이 일상생활에서 해그늘을 지워나가는 사이, 정부는 해그늘의 각 계열사 건물들을 일제히 조사 중이다.
민간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S급 히어로를 비롯한 협회 요직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알려진 정보.
-해그늘 건물 지하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으니, 폭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한다.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든, 이미 지어진 건물이든 해그늘이 지은 건물에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그랬다.
나와 백설희가 제압하여 그의 하복부 아래에 박힌 ‘마나의 인장’을 마나골드에 봉인하지 않았다면, 아마 최중남이 폭발함과 동시에 해그늘 모터스 건물이 지하부터 폭발했으리라.
인간 폭탄은 아니지만, 인간 ‘기폭장치’ 같은 느낌.
“하랑아. 예전에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해그늘 임원 중 누가 죽으면, 아주 무서운 폭탄이 터질 거라고.”
“그랬지. 예를 들어, 성형 전 고등학교 졸업사진이라거나.”
“맞아. 그런데 진짜 폭탄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그러게.”
서버실이 폭발하면 자료가 날아갈 거라고 생각했지, 서버실과 함께 안에 있는 프로그래머들까지 폭사시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건물 지하에 숨겨둔 비밀 장부를 파괴하거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건물 전체를 무너뜨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 그 안에 사람이 있든 말든.
“…해그늘 지우기는 생존이 되어버렸네.”
백설희는 씁쓸한 얼굴로 자신의 컵을 토닥였다.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 그 양반.”
“…….”
“당신 쪽 회사 사람들도 찾고 있는 거 아냐? 지금 우리 쪽도 회의하고 있는 게 그건데.”
“…대가리는 어디에 숨었을까?”
계열사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해그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최호정 회장’이 지분을 꽉 붙잡고 있는 ‘해그늘물산’이라는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다.
모든 해그늘이 지워지고 있는 이 시점, 단 한 곳만이 불매 운동 이전과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다.
“회장, 아직 발견 못했지? 해외로 나른 거 아닐까? 이능력자의 도움을 받아서.”
“S급이 데리고 도망 다니고 있으면, 사실상 찾기 힘들긴 하지.”
“…이 나라에는, 정말 알려지지 않은 S급이 너무 많아. 하아.”
백설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
그대로 표정을 굳혔다.
“잠깐만. 뭐라고?”
“…본체 쪽에서 무슨 일이-”
삐빅.
손목에 진동이 울렸다.
태극워치가 아닌, 결사 워치가.
“……미친.”
백설희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꺄아악!”
“와, 대박!”
“미친, 이거 진짜야?”
카페에 있는 모든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놀란 속보.
[속보입니다. 강원도 한 야산에서, 최호정 회장의 것으로 보이는 시체가 발견되어….]최호정, 사망.
“…확인은 해봐야겠지만, 만약 진짜로 어디 발 헛디뎌서 죽은 게 아니라면.”
나는 가볍게 손으로 내 목을 그었다.
“명분이 섰어, 명분이.”
최호정 회장이 죽었다.
어떤 정치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대상이 사망하게 된다면 뭔가 상황이 흐지부지 되기 마련.
문제는 그 죽음에 의혹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경우, 사람들은 음모론을 펼치기 시작한다.
-해그늘 회장이 강원도에 있다가 죽은 이유는?
-갑자기 강원도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 이유는?
-시신이 누군지 모습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는데, 정말 본인인가?
-타살인가, 아니면 자살인가?
온갖 의혹들이 가득한 가운데, 나는 바로 강원도로 날아와 사건 현장을 멀리서 살폈다.
“이보세요! 가까이 오지 마세요!”
“안녕하세요, 기우TV입니다! 오늘은 고 최호정 회장의….”
경찰과 히어로 협회가 펼쳐놓은 폴리스 라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사건 현장을 중계하고 있다.
“정말로 최호정은 죽은 걸까요? 아니면 다름 사람을 죽여서 자신처럼 꾸며둔 걸까요? 아직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기자나 시민들이 정부에 불신의 시선을 보내는 것과 달리, 정부는 현재 열심히 죽은 최호정의 신체를 분석 중이다.
정확히는 예상과는 다른 너무나도 충격적인 진실 때문에, 현재 최호정의 시신을 연구하고 분석한 결과를 함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조사 끝났어.”
휘잉.
바람과 함께, 현세린이 굳은 얼굴로 내 옆에 섰다.
“본인 맞아. 최호정, 본인 시체야.”
“끔찍한 상황이군.”
정부 조사 결과.
유전자 감식, 혈액 성분 분석, 지문 대조.
훼손된 부분을 차치하고 남은 부분으로 최선을 다해 분석을 한 결과는 ‘일치’.
얼굴이 난자되고 전신이 숯검정이 될 정도로 불 탄 육신의 장본인은 다름 아닌 최호정 본인이었다.
“망했…나?”
최호정 회장이 진짜로 죽었다.
현대 과학은 최호정 회장의 사망을 만천하에 선언하고 있지만, 정부의 정치적인 입장이 현재 그 발표를 미루고 있다.
미루어야 한다.
아무래도 너무나도 잔인하게 살해당했을 정도로 모습이 심각하다보니, 해그늘-정확히는 최호정과 최씨 일가를 향한 동정 여론이 생길 테니까.
최호정 회장이 모든 것은 내 잘못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약을 먹든 머리에 총을 쏘든 그렇게 죽었어도 동정 여론이 약간은 생길 터.
그런데 거기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끔찍한 ‘타살’이 결합된다면, 동정의 여론과 함께 해그늘 몰락 자이로드롭은 중간에 한 번 크게 방지턱이 생기겠지.
“전국 각지의 과학자들이 분석한 결과는 최호정의 사망이야. 이제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찾아야지.”
나는 결사워치를 가볍게 두드렸다.
“음모론 중 하나. 최호정은 가짜를 내세워서 죽었다.”
“그 가설, 죽은 최호정이 진짜 최호정이라는 건 알고 있지?”
“과학적으로는 그런 결과가 나왔지. 현대의 과학으로는.”
만일, 미래과학이라거나 SF적 관점으로 본다면 어떨까.
최호정이 죽었되, 죽지 않았다면 어떨까.
“이능력적으로도 조사해야지. 당연히.”
과학적 관점이 아닌 초자연적, 이능력적 관점으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이능력적으로 봐도 ‘최호정이 죽었다’라고 한다면, 최호정을 끔찍하게 죽인 당사자를 찾아 나서야 하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최호정이 죽었을 리가 없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바퀴벌레가 되어 살아남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칠 자다.
이능력은 없더라도, 그에게는 이능력자를 이용할 수 있는 자본과 힘이 있다.
그러므로, 최호정을 추적할 수 있는 이능력자를 부른다.
상황이 워낙 급박한 상황이기에, 나는 그녀를 이곳까지 부를 수 있었다.
“세린아~ 안녕!”
“윽.”
우리의 뒤로 하얀 가운의 여인이 달려와 현세린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현세린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현세린을 끌어안은 청발 여인-도철 천주연은 음흉한 얼굴로 현세린의 앞으로 손을 뻗었다.
“으흥흥, 우리 세린이도 이제 분신컨이 아니라는 거지? 우와, 이 마력주머니 봐. 이게 S급이지.”
“언니. 성희롱이야.”
“우리끼리 뭐 어때? 같은 도 씨 자매 아니야.”
“코드네임이 도철에 도올이라고 해서 자매라고 하는 건 어느 세상 법도야?”
“나중에 도지환 딸로 태어나면 도세린이랑 도주연 되는 거 알지?”
“아.”
주물주물.
“아저씨도 만져볼래?”
“지금말고, 도망친 최호정 잡은 다음에.”
“뭐야. 되게 진지하네. 알았어. 그럼 양손의 꽃 플레이는 나중에.”
등장과 동시에 무슨 일본 만화 속 캐릭터처럼 현세린의 마나주머니를 희롱하던 천주연은 안경을 고쳐쓰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만사 제쳐두고 한국까지 전용기타고 온 만큼, 호출된 밥값은 다 하고 가야지. 흐흥.”
작가들에게 붉은 채찍을 휘두르며 연참을 지시하던 일도.
유미르의 분신체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S급 아메리칸 히어로로서 등판하기 위해 이능력을 가다듬던 일도.
심지어 전 세계를 살피며 혹시나 모를 사태를 조사하던 일도 잠시 내려두고 한국에 왔다.
그만큼 현재 상황이 중요하고 심각하다는 뜻.
“주변에 흙을 막 파내거나 그런 건 아니지?”
“전혀. 저들이 알았다면 아마 시체 주변을 초토화시켰겠지만, 그런 흔적은 전혀 없지.”
“좋아, 그러면 바로 조사 시작.”
천주연은 자신의 결사 워치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