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e An Academy Award-winning Villain RAW novel - Chapter (598)
아카데미 훈수빌런이 되다-599화(588/668)
[이 정도도 안 하면 잉여인간이 되는 느낌만 들 뿐이에요. 괜찮아요. 중간에 정 힘들다 싶으면 월가 사람들에게 다 맡기죠, 뭐.]“…….”
아무래도 한 명의 독자라는 소시민이었던 나로서는 총수의 말이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이능력의 시대.
총수의 말 한 마디면 바로 S+급 이능력자 다섯이 총출동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말 한 마디면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우수한 전문투자자 다섯 그룹 정도는 바로 노트북과 펜을 들고 달려올 수 있다.
내게는 아무래도 전자보다 후자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총수가 가진 권력, ‘아메리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여인이 가진 힘이.
[지금이 적기예요. 대중이 광익공에게 열광하는 지금이 바로 호재죠. 이른바, 매수 타이밍.]그리고 그런 힘을 동원해야만 하는 일이 지금 당장 한국에는 존재한다.
[최호정이 공식적으로 사망한 현 시점, 심지어 최호정의 전 와이프가 죽었으니, 그 유산은 전부 최호정과 더 가까운 이에게 넘어갈 거예요.]“그, 단어에 조금….”
[어머,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는 거예요? 후후후. 친절하셔라.]“전역 한 달 전의 병장은 이등병의 한숨 소리에도 가슴이 괜히 철렁 내려앉는 법입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특히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이 세상이라면 더더욱.
[알았어요. 그래서 최호정 회장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은 지금 공중에 붕 떠버렸어요. 정확히는 최호정이 준비한 유서에 따라, 최호정의 재산은 법적으로 이혼 절차를 끝낸 전처에게로 전부 귀속되어야 하죠.]몸 갈아타기로 자기 전 와이프에게 넘어가면서, 최호정은 상속세를 낼 각오를 하고 몸을 갈아탔다.
피닉스의 깃털(위치추적기, 가짜)에 개인 자산 2조원을 태운 남자다.
그만한 값의 상속세는 신분세탁 비용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그마저도 대충 해그늘 장학생들을 이용하여 최대한 줄이려고 하겠지.
원래라면, 그렇게 되어야 했다.
“하지만 전 아내는 죽었습니다.”
최호정의 전처는 죽었다.
피닉스의 깃털로 위치를 잡고 습격했을 때, 최호정은 몸 갈아타기로 전처의 몸에 ‘바디 체인저’의 영혼을 집어넣고 육신을 파괴했다.
최호정 사망.
그의 전처도 사망.
그렇다면 최호정의 재산은 어디로?
[현 아내는 살아있죠.]“…….”
[양다린. 최호정에게 강제로 결혼을 당해 아이를 낳아야만 했던 비운의 히어로.]양다린은 죽지 않았다.
행방이 묘연하지만,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SNS 정도만 살펴봐도 바로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눈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어요. 최호정의 뒤를 이은 해그늘의 회장이 될 것인지, 아니면 히어로의 길을 걸을 것인지. 지금도 그녀의 SNS 반응이 곧 실시간 기사가 되고 있죠.]그녀의 태극워치, SNS 등은 ‘접속 중’으로, 양다린은 지금 살아있다.
불과 1분 전에도 본인 SNS 계정에 접속했다가 사라졌다.
비록 접속한 위치는 당장 확인할 수 없지만, 양다린의 태극워치를 양다린의 팔과 함께 잘라간 이가 있지 않는 한 양다린은 분명 살아있다.
[자식을 가지게 된 시점에서, 저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아직 낳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최호정의 아내가 되면서 겪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그녀는 ‘보상’을 원할 거예요.]“최호정의 재산을 상속받아서, 그걸 본인의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그녀의 바람이군요.”
[예. 그게 어쩌면 그녀의 소원일지도 몰라요. …이상하게 생각한 적 없어요? 최호정이라면 분명 양다린을 데리고 다녔을 텐데, 그 양다린이 최호정의 곁에 없었다는 게.]“…남자가 명품 손목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을 때는 두 가지 경우뿐입니다. 아껴야 하는 상황이거나, 아니면 잃어버렸거나.”
최호정에게 있어 양다린은 지구제 메이커 명품이었다.
그는 양다린을 여차하면 협박이든 뭐든 자신을 지킬 방패로 써먹었을 사람이다.
그런데 양다린이 없었다?
[혹시, 양다린이 악마에게 소원을 빈 게 아닐까요. 최호정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죽고, 그 재산이 전부 자신에게 상속되도록 해달라고. 그냥 예상이에요, 예상.]“설마 읽으신 겁니까?”
[아니요. 굳이 미래를 보지 않아도, 이 정도는 유추할 수 있어요. 여자이자, 어머니가 될 사람이니까.]“어머니….”
어머니라는 존재는, 가장 무서운 존재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악마가 될 수도, 악마와 손을 잡을 수도, 아니면 본인이 악마같은-악마보다 더 한 존재가 될 수 도 있는 게 어머니. 어떻게 생각하세요?]“…세상 모든 곳의 어머니가 다 그렇겠지만, 양다린은 한국인이죠.”
그리고 이곳은 한국이다.
“그럼 양다린, 잡을까요?”
[아뇨. 우리가 잡아야 할 건 양다린이 아니에요. 양다린에게 몰리는 과정에서 흩어지고 분열하게 될 최호정의 지분과 재산, 그리고 수많은 ‘해그늘의 잔재’.]“……거믄머리가 전국에 있겠군요.”
최호정, 해그늘과 계약했던 S급들이 스폰서를 잃었다.
쩐주를 잃은 빌런들이 할 행동은 그저 하나.
“맡겨만 주십시오, 회장님. 빌런은 전부 없애버리겠습니다.”
악은 전부, ‘젠로스’.
“빌런 처형인으로서, 최선을.”
[네. 아 참. 그거, 보내드릴게요.]“그거…?”
[결사가 해그늘 주식 사들일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준 성공 수당. 그리고 당신이 원했던….]총수가 나를 향해 씩 웃는다.
[해그늘문고 대주주 자리.]노동에는.
그에 따른, 대가가 있어야 하는 법.
“사랑합니다, 총수님.”
빌런도 예외가 아니다.
단번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그 이슈를 따라가기 힘들어하기 마련.
세상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이슈라고 해도, 그것이 내 밥벌이와 관계가 없으면 딱히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밥그릇과 관계가 있다면 다르다.
-코스피가 연일 2500선으로 하락한 가운데….
-원화 가치의 하락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로 올려야 한다며, 0.25%P 올리는 빅스텝을….
경제적 위기.
그간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던, 유례없는 황금기를 누리던 한국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했다.
이웃 나라에서 거품이 꺼졌다느니, 국뽕이 사라졌다느니 떠들 정도.
이전에는 ‘감히 네가?’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한국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준 ‘해그늘 쇼크’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니, 이렇게 진행을 해야 한다니까?!
-지금 그랬다가는 더 혼란이 가중될 거라고! 좀 더 보수적인 관점에서….
-위기는 곧 기회야!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바로 잡아먹힐 거라고!
시작은 해그늘을 없애고 새롭게 로고부터 디자인한 회사들부터 시작되었다.
해그늘 지우기에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회사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해그늘의 것.
심지어 명함 마저도 해그늘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이름도 번호도 업무용 메일 주소도 전부 해그늘의 것이니, 이걸 하루 아침에 바꾸는 건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젠장, 황 전무 말이야. 사장 되더니 막 망나니처럼 날뛰는데?
-자기가 잘해서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아. 제일 무능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착하기만 한 사람이라고.
-저 양반에게는 사장보다는 전무가 더 어울려.
아무리 최씨 일가가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경영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그럼 너, 다시 최가네 김부장 할 거야?
-미친 소리.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전무한테 훈수두고 말지. 경영을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뭘 쏘려고? 투서? 그도 아니면 블라인드에 찌르기라도 하려고?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다고? 아서라. 나는 최가네 노예 할 바에는 그냥 밖에서 치킨이나 튀기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그늘 오너 일가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이들은 없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차가운 겨울에 익숙하게 살아서 그렇지, 다들 봄의 따스함 때문에 어색할 뿐 시간이 지나면 분명 봄에 적응하게 되리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던 겨울은 끝났다.
반도 전체에 드리워진 해그늘은 사라지고, 점차 따스한 햇살이 한반도를 남쪽에서부터 따뜻하게 뒤덮는 시기.
여기, 한 남자가 부산의 한 도서관에 와 있다.
“…….”
정장의 흑발 남자는 도서관이라는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백 번 양보해서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건 뭐 그렇다쳐도, 신간 코너 앞에서 ‘이능력 소설’을 주로 보고 있는 건 그렇다쳐도.
바로 옆에 다른 누구도 아닌 S급 히어로, [파이어폭스]가 마치 호위처럼 달라붙어있는 건 진귀한 장면이었다.
한참 해그늘의 흔적을 지우기 바쁜 이들도, 해그늘의 아래에서 그간 숨죽이고 있다가 업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해 나선 이들도, 해그늘은 모르겠고 일단 이능력자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내기를 하던 이들도 모두 남자를 훑는다.
이능력자는 아닌 것 같지만, 이능력자인 것 같기도 한 남자.
항간에서는 신에게는 마력은 주지 않았지만 그 대신 정력을 줬다고 하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종마.
‘도지환’, 이라고 하는 남자가 있다.
지금은 워낙 해그늘 쇼크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바람에 떡밥이 줄어들었지만, 도지환이라는 남자의 떡밥이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다.
가령-
“저기, 실례합니다.”
정장 차림의 여자 사서 한 명이 조심스럽게 도지환으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등 뒤에 있던 불여우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여자 사서를 노려봤으나, 사서는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도지환에게 다가갔다.
“혹시, 도지환 님인가요?”
“…아, 네.”
남자는 순순히 자신이 도지환이라는 걸 인정했다.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이 도지환이라고 생각하면 가장 많이 떠올릴 수 있는 자료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검은 정장의 청년.
선글라스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눈매도 생글생글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겠지.
“그, 혹시 그 소문이 사실인지 여쭤보면 실례일까요?”
“실례입니다.”
사서의 질문에 답한 건 뒤에 있던 불여우, 윤이선이었다.
“선생님은 지금 이능력 관련 자료를 찾으러 오신 거지, 가십에 관해 논하고자 오신 게 아니세요.”
“그, 그게….”
사서는 울상이 된 얼굴로 도서관 정문 밖을 가리켰다.
“저도 공무원이라, 관장님께서….”
“…….”
창 밖.
도서관 앞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이들은 신이 난 얼굴로 도서관을 가리키며 카메라를 향해 열심히 떠들고 있다.
“여기는 부산 중앙도서관 앞입니다. 히어로 스노우화이트의 ‘애국인’인 도지환 씨가 도서관을 방문한 가운데, 현장에는 도지환 씨를 보러 온 시민들이 가득합니다.”
“안녕하세요, 우기TV의 허기우입니다! S급 히어로 파이어폭스가 호위로 붙은 남자, 백설희 님의 애국인 도지환 씨를 찍으러 왔습니다! 좋댓구알은 동영상 제작에….”
기자도, 사이버렉카도 가득하다.
무슨 연예인이 온 것도 아닌데, 일반인 한 명이 그저 S급 히어로와 함께 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고 있다.
누군가가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해그늘이 살아서 도지환을 이용하기 위해 하청 직원들을 보내서 여론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도지환이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특정 단체가 도지환에게 열렬한 관심을 보이는 척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나가던 선비탈께 여쭤보겠습니다. 오늘 이곳에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도지환 씨를 구경하러 왔습니다. 일단 국가에서 지정한 ‘애국문화재’ 제 1호가 아니겠습니까?”
주변에 종종 보이는 선비탈을 쓴 이들의 대답은 가관이었고, 그 소리는 환기마저 포기하고 닫아버린 유리창의 틈사이로 들어와 도서관 안을 소음으로 가득 채웠다.
“혹시 방금 저 말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사서님?”
“…죄송합니다. 그, 정말 죄송한 건 아는데, 도서관이 모든 시민들을 위해 열린 공간이라는 건 아는데…!”
사서는 울상이 되기 직전이었고, 도지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에 쥔 책을 내려놓았다.
“여쭤보고 싶은 게 뭡니까?”
“그, 사실인가요? 그….”
사서는 얼굴을 붉히며 뒤를 돌아봤다.
이미 도서관 열람실에 들어온 이들은 사서를 향해 무언의 압박을 보내고 있었고, 열람실 입구에는 관장처럼 보이는 안경의 중년 남자까지 내려와있었다.
“…그, 소위, 애국하면 강해진다는 게….”
“…….”
“선생님. 그냥 가시죠. 나중에 따로 협회 사람들 통해서 휴관일에 오거나 그래요.”
“그래야 할 것 같네. 죄송합니다. 그건 프라이버시라서.”